소설리스트

하북팽가의 개망나니-154화 (154/200)

154화 더 깔끔하게 저들이 인정할 겁니다.

신옥팽호상(神玉彭虎像).

하북팽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조각상이다.

뭔가 거창한 것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가주들에게 내려오는 일종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게 남아 있었구나.’

팽중호는 이 신옥팽호상이 하북팽가에 없는 것을 보고,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다니.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이세경은 팽중호의 표정에서 이것이 의미가 있는 물건이란 것을 알아채었다.

“응. 꽤 의미가 있는 물건이야.”

팽중호에게는 꽤 의미가 있는 물건이었다.

전생에 팽주천이 가장 아끼고 아끼던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이건 우리 하북팽가의 가주를 상징하는 거다. 후에는 네가 이것을…….’

팽주천이 전생의 팽중호에게 종종 하던 말.

그때는 사실 그저 자신에게 짐을 씌우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그때가 조금은 후회가 되는 팽중호였다.

‘이제야 이걸 제가 받습니다…….’

팽중호는 신옥팽호상을 가만히 손에 들었다.

한 번의 생이 끝나고 나서, 다시 손에 돌아왔다.

이제는 이것을 받을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지킬 준비도 되었고 말이다.

“이걸 가져와 줘서 고마워.”

“아닙니다.”

팽중호는 정말로 이세경이 너무나 고마웠다.

이세경이 그저 지나쳤다면, 아마도 이것은 돌아오지 못했을 터.

그런데 그녀가 관심을 가져 준 덕분에 이렇게 다시금 돌아올 수 있었다.

‘인연이라는 운명인가.’

팽중호는 이것이 이세경과의 인연이고, 이것이 그녀와의 운명인가 싶었다.

“자, 그럼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갈까요? 아가씨?”

“호호. 좋습니다.”

* * *

천마동(天魔洞).

천마의 핏줄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수련장.

그곳의 문은 한동안 아주 굳게 닫혀 있었다.

소천마 척한준.

그가 그곳에서 폐관 수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그 누구도 머물게 하지 않고, 오랜 시간 홀로 천마동에 머무는 척한준.

그렇게 오늘도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 같던 천마동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구궁-

천마동 전체가 떨어 울리는 엄청난 진동.

이 진동에 멀리서 천마동을 지키고 있던 무인들이 천마동의 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느낀 것이다.

이 진동이 절대로 자연적임이 아닌 것이라는 걸 말이다.

천마동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기운이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석- 파사사사사사삭-

진동이 멈추고, 천마동의 입구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와 동시에 천마동의 입구를 막고 있던 거대한 철문이 그대로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철문이었건만, 마치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가루처럼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과연 누가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소천마를 뵙습니다!”

“소천마를 뵙습니다!!”

천마동의 주변에 모인 무인들이 일제히 천마동의 입구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천마동 안쪽에서 들려오는 걸음 소리.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의 인영이 나타났다.

너무나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미청년.

소천마 척한준.

바로 그였다.

“역시 밖의 공기가 좋습니다.”

너무나도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을 내뱉는 척한준.

주변의 무인들은 척한준의 목소리를 듣고, 절로 몸을 엎드리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에 깃든 항거할 수 없는 기운.

‘천마신공의 극에 다다르셨다!’

만마를 굴복시키는 힘.

이것은 천마신공의 극에 다다랐을 때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스으-

말과 동시에 척한준의 신형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척한준.

주변에 있던 무인들은 그가 사라졌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나왔느냐?”

그렇게 신형을 날린 척한준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교주전.

천마(天魔) 척산주는 자신의 아들인 척한준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천한준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말이다.

“예.”

“그래. 그만 가 보거라.”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것이면 이미 모든 대화는 다 나눈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나오셨습니까?”

교주전을 나가는 척한준에게 다가오는 또 하나의 목소리.

척한준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마뇌 여연홍.

바로 그녀였다.

“예. 방금 막 나왔습니다.”

“성과는 이루신 것 같습니다.”

“예. 어느 정도는 이루었습니다.”

척한준의 말에 여연홍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때가 된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곧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척한준은 여연홍이 말하는 시작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무림 진출.

이제 척한준의 폐관이 끝이 났으니, 무림으로 나아갈 준비가 된 것이다.

“무림맹은 준비가 다 되었다고 합니까?”

척한준이 여연홍에게 무림맹에 관해서 물었다.

아니, 무림맹을 물은 것이 아니라, 아마도 팽중호에 관해 물은 것일 터다.

“예. 분명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하하. 좋군요.”

여연홍의 대답에 척한준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상대할 이가 강해졌는지이니 말이다.

무림맹이, 그리고 팽중호가 강해졌다는 것이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 * *

무림맹에 전해진 하나의 소식.

그 소식에 무림맹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마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무림맹주 장순학의 주도로 진행되는 무림맹의 대회의.

무림맹에 소속된 문파들의 수뇌들이 거의 전부가 모여 있었다.

“그럼 어서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소?”

“맞소! 당장 우리도 무인들을 준비해야 하오!”

주변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다들 싸움의 준비를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조급해 보이기까지 한 그들의 모습.

확실히 마교라는 이름이 주는 압박감이 상당한 듯싶었다.

“자자, 진정들 하시죠.”

그때 회의를 가만히 관망하던 팽중호가 입을 열어 주변을 진정시켰다.

하북팽가에서의 일을 끝내고, 마교가 움직인다는 소식에 다시금 무림맹으로 돌아온 팽중호였다.

“아직 그들 내부에서 움직이는 것일 뿐이니까, 성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확실히 지금 마교의 움직임은 그들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조만간 그들이 진출할 것임은 맞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그러니 성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확실히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릇 준비하는 자가 승리를 쟁취하는 법.

미리 마교의 움직임에 대비해야, 그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터였다.

“성급하지 않다고, 가만히 있자는 건 아닙니다. 준비는 확실하게 해야죠.”

“생각하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저희도 만들어 봅시다. 서열.”

“예?”

서열을 만든다니?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린가?

서열은 마교에서 쓰이는 것.

그런 걸 왜 갑자기 만든단 말인가?

그것도 마교와의 일전을 준비하며 말이다.

“우리를 알아야 싸움에서 이기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우리를 너무 모릅니다.”

팽중호가 서열을 만들려는 이유.

그것은 무림맹 내 무인들의 실력을 확실히 알기 위해서였다.

물론 팽중호가 어느 정도는 내력을 짐작해 강함은 알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력만 본 것일 뿐.

실제의 강함은 다를 수 있었다.

실제에는 내력 외에 여러 가지 요인들이 강함을 좌우하니 말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다.’

이 무림맹 서열을 통해 우리를 알아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서열은 또 하나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호승심. 그것을 최대한으로 이끌어 주지.’

무인들의 호승심을 최대한으로 자극해 이끌어 낼 터다.

무인이라면 강해지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마교는 이것을 알고 이 서열이란 것으로, 그들의 호승심을 자극해 스스로를 채찍질해 더욱 강해지게 만들었다.

첫 서열이 정해지면, 분명 이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이 생길 것이고, 그것은 그들을 더욱 채찍질할 터다.

“허면, 서열은 어떻게 정할 생각인가?”

장순학이 팽중호에게 방식을 물었다.

서열을 정하는 것에 대한 방식도 분명 확실하게 정해야 할 터다.

그래야 후에 말이 나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뭐, 방법 있습니까? 치고받고 싸워야죠. 크크크.”

무인이 서열을 정할 방법이 뭐가 있겠는가?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것 말고 말이다.

이미 이것에 대한 자세한 것은 군사인 사마운과 이야기를 끝내 놓은 상태였다.

“자, 군사님 설명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사마운이 앞서 나와 서열을 정하는 것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경청하는 이들.

이내 사마운이 발언이 모두 끝나고, 이야기를 모두 들은 이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서열에 따라 보상까지 준다는 말씀입니까?”

“예. 그래야 더 열심히 하시지 않겠습니까?”

서열 백 위까지는 보상까지 약속했다.

무공이면 무공, 영약이면 영약.

백 위에만 든다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이것으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고수가 나와야 한다.’

선택과 집중.

팽중호는 지금 한 명의 고수라도 더 많이 만드는 것을 선택하고 집중하기로 했다.

실상 마교와의 전쟁에서 일류 이하의 무인들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나서봐야 오히려 피해만 느는 꼴일 뿐이니 말이다.

마교와의 전쟁에서 필요한 것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고수.

이 서열을 통해서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고수를 만들어 내야 했다.

“조금 더 질문을 해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 내기 시작했고, 그렇게 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모든 것이 정리될 수 있었다.

“오늘 회의는 이만 파하겠습니다.”

마지막 장순학의 말을 끝으로 무림맹 대 회의가 끝이 났다.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고 돌아가는 이들.

회의실에는 팽중호와 장순학, 그리고 사마운 세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오히려 역효과를 보지는 않겠는가?”

장순학이 팽중호를 향해 물었다.

서열을 매기는 것.

이것이 혹여 무인들 간의 지나친 경쟁을 부추겨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하나가 되어 싸워야 할 지금.

혹시나 이 서열 때문에 사분오열(四分五裂) 찢어질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거에 찢어질 거면, 지금 찢어지는 게 낫습니다.”

“음.”

팽중호의 말처럼 이것으로 찢어질 거면 차라리 지금 찢어지는 것이 나을 수 있었다.

마교가 무림으로 진격해 왔을 때, 찢어진다면 그건 아주 큰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오히려 이 방법이 더 깔끔하게 저들이 인정할 겁니다.”

팽중호, 장순학, 위지철은 무림맹의 그 누구도 확실하게 인정을 하지만, 다른 이들에 관해서는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 상황이다.

마교와의 전쟁에서 이런 혼돈은 분명 좋지는 않은 것으로 작용할 터.

서열을 통해 이런 것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는 것이 좋았다.

서열은 확실히 눈에 보이는 것이니, 저들도 분명 깔끔하게 인정할 터다.

“그런데 우리도 서열에 모두 참가하는 건가?”

“물론입니다. 크크크. 저희도 모두 무림맹 무인 아닙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