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작정하고 달려들겠지.
수많은 낭인들이 쓰러졌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이 남아 있었다.
계속해서 인원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흠. 내 힘을 빼 보시겠다?”
팽중호는 지금 저들의 속셈이 무엇인지 알았다.
수많은 낭인들을 투자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빼려는 것이다.
그리고 힘이 빠졌다고 생각했을 때.
저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 나설 것이다.
“좋아. 그럼 내 힘이 먼저 빠지는지, 너네가 먼저 쓰러지는지 보자고.”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무뢰단세(無雷斷世).
키이이이이이잉-
팽중호는 무뢰곡세가 펼쳐지는 와중에 무뢰단세까지 펼쳐 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세상이 멈춘 듯 모든 것이 고요해지며, 달려들던 낭인들이 모두 제자리에 우뚝 멈추었다.
서걱- 퍼억-
그리고 그 영원과 같은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팽중호의 주변에 달려들던 낭인들의 몸의 절반이 그대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팽중호 주변이 초토화가 된 것이다.
그 수많던 낭인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살아남아 있는 자는 오로지 팽중호뿐이었다.
“자, 더 있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저마다 무기를 들고 지금 팽중호가 내보낸 여파를 막아 내고 있었는데, 두 눈이 심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보니, 적잖이 당황한 듯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들은 이 여파를 막는 것에만 상당한 내공을 소모했기 때문이었다.
‘단 일수에…….’
게다가 지금 바닥에 모조리 쓰러진 낭인들.
단 일수였다.
겨우 단 일수에 저들이 모조리 쓰러진 것이다.
“왜? 사람 아닌 것 같아?”
팽중호는 지금 저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정확히 알아채었다.
저들은 지금 팽중호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더 투입해.”
“저들이 전부였습니다.”
준비했던 낭인들이 전부 쓰러졌다.
이제 남은 것은 팽중호가 힘이 빠질 때를 노리려던 이들 뿐.
“그럼…… 그들 보고 나서라고 해.”
“예.”
거웅상단의 무인 한 명이 한쪽에 있던 무리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들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도신이라도 힘이 빠졌을 거다.”
“그렇겠지. 크큭.”
그들은 좀 전의 낭인들과는 확실히 다른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강렬한 그들의 기운은, 그들이 보통 실력자들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이렇게 우리가 다 모인 것도 처음 아닌가?”
“그러게, 말이야.”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
이들은 절강성에서도 가장 최고로 치는 낭인들이었다.
절강성의 특급 낭인들.
그들이 지금 모두 동원된 것이었다.
오직 팽중호를 죽이기 위해서 말이다.
“다들 방심은 말라고.”
“당연하지. 너도 방금 봤잖아?”
팽중호는 가만히 서서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 특급 낭인들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천천히 팽중호에게 다가갔다.
속은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그들은 지금 잔뜩 팽중호를 경계하고 있었다.
‘언제 저렇게 당할지 모른다.’
조금 전 팽중호의 일수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언제 다시 그것이 날아올지 모르니, 경계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뭘 그렇게 다들 쫄았어? 그러지 말고, 한 번에 싹 다 덤벼.”
“흥! 놈!”
“도발해야 소용없다.”
특급 낭인들은 동시에 무식하게 달려들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조금 전의 낭인들처럼 될 것이라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조금씩 거리를 두고 천천히 전진했다.
“그렇게 천천히 오면…… 내가 간다?”
스슥-
팽중호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졌다.
팽중호에게 다가오던 특급 낭인들이 당황하며 급히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금 팽중호의 움직임을 놓쳤다.
“일단 하나.”
서걱-
팽중호의 목소리와 동시에 특급 낭인 하나의 목이 떨어졌다.
아직 채 태세를 하기도 전.
그리고 목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
“둘, 셋, 넷…….”
서걱- 서걱- 서걱-
엄청난 속도로 주변에 있던 특급 낭인들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가히 공포스러울 정도의 광경.
팽중호를 향해 다가오던 특급 낭인들의 얼굴이 대번에 사색이 되었다.
“어, 어떻게!”
지금까지 팽중호가 베어 낸 낭인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팽중호가 무림 제일의 무인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라면 아무리 그라도 지쳐야 마땅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팽중호는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어 보였다.
그의 내공은 끝이 없단 말인가?
“내 경지를 너무 우습게 봤네.”
팽중호가 오른 현경의 경지.
그것은 분명 이들이 전혀 알 수 없는 수준의 경지다.
화경의 무인조차 보기 힘드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터다.
너무나도 안일한 생각.
서걱-
그렇게 마지막 특급 낭인의 목이 떨어졌다.
지금 특급 낭인들 모두가 쓰러지는 것에 채 일 다경이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 일을 해낸 팽중호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자, 이제 너네만 남았나?”
이제 남은 것은 거웅상단의 무인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자신들의 미래를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덤벼 봐야 팽중호에게 죽는다는 것을 말이다.
“모두 흩어져서 도망친다.”
팟- 팟- 팟- 팟-
명령과 동시에 거웅상단 무인들이 모두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 명이라도 살아남아, 거웅상단에 이 일을 알리기 위해 도망치는 것이었다.
“판단이 너무 늦어.”
팽중호가 움직이자, 눈 깜짝할 사이에 도망치던 이들이 하나씩 쓰러져 나가기 시작했다.
완전히 다른 방향임에도, 순식간에 그 수가 줄어 나갔다.
‘이 일에 손을 떼야 한다고 알려야 한다!’
지금 거웅상단은 너무나 잘못된 상대를 건드렸다.
팽중호는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겨우 거웅상단의 힘으로는 말이다.
“너만 남았네?”
도망치던 마지막 거웅상단의 무인.
그는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팽중호의 목소리에 그대로 몸을 멈추었다.
어차피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좋아. 판단이 빠르군.”
팽중호는 곧바로 그를 베지 않고,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 두었다.
“원하는 것이 있습니까?”
무인은 팽중호가 다른 이와 다르게 자신을 살려 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너는 가서 지금 본 것을 그대로 전하기만 하면 돼. 그리고 돈 좀 더 쓰라는 말도 전하고 말이야.”
팽중호는 일부러 한 명을 남겨 두었다.
자신에게 이들을 보낸 이에게 말을 전하게 하려고 말이다.
“그, 그것이면 됩니까?”
“물론. 그러니까 빨리 가 봐. 마음 바뀌기 전에.”
파아앗-
무인이 재빠르게 달려서 팽중호에게서 벗어났다.
팽중호는 제자리에 서서 무인이 사라진 곳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렇게 속을 긁어 줘야, 작정하고 달려들겠지.”
팽중호가 굳이 이렇게 한 명을 살려 말을 전하는 이유.
그것은 거웅상단을 자극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팽중호는 거웅상단에 대한 정보를 꽤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상단주인 소후정이 어떤 자인지도 잘 알고 있었고 말이다.
그는 야망 넘치며 자존심이 강한 자다.
그런 자에게는 이런 도발이 아주 손쉽게 먹혀들어 간다.
소후정은 이 도발을 절대로 간과하지 않을 것이고, 더욱더 강수를 꺼내어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팽중호가 원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머리를 쓰는지 한번 볼까?”
* * *
거웅상단 본진.
그곳에 있는 소후정의 처소에서 소란이 나고 있었다.
“뭐라고? 전부 죽어?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고?”
“예.”
“그리고 너는 이 말을 전하기 위해 일부러 살려 줬고?”
“그렇습니다.”
퍼억-
소후정이 발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무인을 걷어찼다.
분노로 일그러져 있는 소후정의 얼굴.
“그 많은 돈을 쓰고, 겨우 사람 하나 어찌하지 못해?”
“그는 겨우 사람이 아닙니다.”
“하! 그럼 뭐 귀신이라도 되더냐?”
“……귀신도 그를 어쩌지 못할 겁니다.”
털썩-
소후정은 더 이상의 대답은 않고, 털썩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이마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가 고민이 깊어질 때 하는 행동.
“그리고 그가 이 말도 전하라 했습니다.”
“뭐냐?”
“돈을 더 쓰라고 말입니다.”
“크크큭. 그래…… 그랬단 말이지?”
소후정이 광기 어린 웃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가 지금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다는 뜻.
“감히 이 소후정을 도발해? 하! 그럼 보여 줘야지. 돈이 얼마나 강한지를.”
소후정은 팽중호의 말이 도발임을 잘 알지만, 걸려 주기로 하였다.
“모든 계획을 바꾼다. 철도 그놈도 돌아오라고 전해.”
“예.”
소후정은 모든 계획을 전면 수정하기로 했다.
소가주 경함을 통해 하북팽가를 접수하는 것이 아닌, 팽중호를 죽임으로 하북팽가를 접수하는 것이로 말이다.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겠지만, 지금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팽중호를 죽이는 것.
그것만이 소후정에게 중요했다.
“돈은 어차피 하북팽가를 먹으면 다시 채우면 되는 것이니까.”
지금까지 소후정은 자신에게 덤벼든 이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조리 제거했다.
이것이 지금 그가 거웅상단을 절강 제일상단으로 만든 비결 중 하나였다.
등 뒤에 가시를 남기지 않아야, 편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팽중호 제거에 들어가는 자금은 후에 다시금 채우면 그만이다.
물론 지금 무림맹의 기둥인 팽중호를 제거한다면, 무림맹이 가만히 있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 또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이란 돈 앞에서는 모두 굴복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반드시 후회하게 해 주마.”
읊조리는 소후정의 두 눈이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 * *
항주.
팽중호 일행은 드디어 항주에 도착했다.
향락의 도시라는 말이 어울리는 풍경의 도시.
확실히 다른 곳들과는 차원이 다른 경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항주 오랜만이네.”
팽중호는 항주에 도착해 주변을 바라보며 잠깐 추억에 잠겼다.
전생에 몇 번 왔었던 항주.
갑자기 그때의 기억이 나는 팽중호였다.
“우선 객잔으로 향할까요?”
“그래.”
팽중호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지호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우선 머물 객잔을 정하는 것이 우선.
그렇게 지호창의 인도로 세 사람은 한 객잔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상당히 으리으리한 크기의 객잔이었다.
“여기가 그 객잔입니다.”
만송(萬松)객잔.
이 항주에서도 유명한 객잔 중 하나로, 항주 오대 객잔 중 한 곳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팽중호 일행이 이 객잔을 정한 것은 단순히 좋은 곳이라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만송상단이 운영하는 곳이랬나?”
“예. 맞습니다.”
만송(萬松)상단.
절강성에서 거웅상단 다음으로 손꼽히는 거대 상단.
팽중호 일행은 일부러 만송상단이 운영한다는 이 만송객잔에 짐을 풀기로 정한 것이었다.
이번에 팽중호가 거래를 할 곳이 바로 이 만송상단이었으니 말이다.
“어서 오십쇼!”
팽중호 일행이 객잔 안으로 들어서자, 점소이가 다가와 밝게 인사를 건네어 왔다.
지호창은 점소이에게 이런저런 주문을 시작했고, 모든 이야기를 들은 점소이가 일행을 이끌기 시작했다.
점소이를 따라간 곳은 객잔의 뒤편.
“여기가 별채입니다. 이곳에서 머무시면 되시고, 음식은 금방 이곳으로 내어 오겠습니다.”
지호창은 아예 별채를 하나 통째로 빌렸는데, 팽중호가 별채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쉬더라도 수련을 게을리할 수는 없지. 그렇지?”
“예!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