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팽중호는 팽철도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실력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으니 말이다.
지금 팽철도의 실력이라면, 아마 팽구준의 삼초식도 막지 못할 수준이었다.
저런 자가 자신을 밀어내려고 했다니?
“뭐, 뒷배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는데, 좀 화나네.”
자신이 그렇게나 쉬워 보였던 것일까?
아니면, 하북팽가가 그렇게나 만만해 보였던 것일까?
저런 자들이 노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때 팽철도가 팽중호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의 팽철도.
입가에는 옅은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딱 재수 없다는 것이 어울리는 표정이었다.
“네가 팽중호인가? 나는 팽철도라고 한다.”
먼저 인사를 건네는 팽철도.
사실상 소가주인 팽중호에게 하는 인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예의가 없는 인사.
크게 경을 쳐도 될 상황이지만, 팽중호는 마주 보며 씨익 웃어 주었다.
“그래. 내가 팽중호다.”
상대가 예를 차리지 않는데, 예를 차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가 곧 소가주가 될 것이니, 너는 다른 자리를 알아보도록 해라.”
“너는 묫자리나 알아봐라.”
서로 날이 선 대화.
사실상 경합은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이겨야만 하는 경쟁자.
지금 이 싸움은 그저 소가주 자리만 놓고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의 모든 것을 걸고 경쟁하는 것.
당연히 이런 날 선 대화가 오갈 수밖에 없었다.
“그럼 소가주 후보들은 출발하시오!”
그렇게 날 선 대화가 끝이 나고, 소가주 경합이 시작되었다.
팽중호와 팽구준, 그리고 지호창은 하북팽가를 벗어나 움직였는데, 가는 길이 조금 특이했다.
“왜 따라오지?”
“뭐가?”
“왜 우리의 뒤를 따라오냔 말이다.”
지금 팽중호는 팽철도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상행으로 갈 수 있는 곳은 하북성 주변을 제외한 어느 곳이든 상관없다.
지금 팽철도가 향하는 곳은 절강성.
그곳에 그가 준비한 것이 있으니 당연히 그곳으로 가는 것.
그런데 다른 곳으로 가도 될 팽중호가 왜 자신과 같은 곳으로 가려고 한단 말인가?
“나도 절강성에서 물건을 좀 팔려고 하거든.”
“하, 마음대로 해라.”
팽철도는 팽중호가 마음대로 하게 두었다.
어차피 절강성은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곳.
어쩌면 차라리 팽중호가 절강성으로 오는 것이 좋을 수 있었다.
“먼저 간다.”
팽철도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마차를 타고 떠났다.
그렇게 셋이 남은 팽중호 일행.
“소가주님 그런데 저희는 뭘 파나요?”
상행을 하려면 물건이 필요한 법.
그런데 아무리 봐도 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완벽한 빈손.
“지금 무림에서 제일 비싼 걸 팔 거니까 걱정 마라.”
“네?”
팽중호의 말에 팽구준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하였다.
무림에서 제일 비싼 것이라니?
다만, 팽구준말고 옆의 지호창은 뭔지 알겠다는 표정을 했다.
“그게 무엇입니까?”
“가면 알게 된다. 자, 우리도 가자.”
팽중호는 일단 말은 하지 않고, 곧바로 미리 구해 놓은 마차에 올라탔다.
경합을 위한 것인 만큼 하북팽가에서 오는 지원은 아무것도 없기에, 직접 마차도 구한 것이었다.
셋이 타도 자리가 한참 남는 거대한 마차.
“오랜만에 쉬는데, 이 정도는 타야지.”
팽중호는 지금 이 소가주 경합을 휴식이라고 생각했다.
바쁜 와중에 잠깐 쉬어 가는 시간.
팽중호에게 이 소가주 경합이란 그 정도였다.
상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말이다.
“자, 다들 편하게 쉬다가 오자고.”
* * *
절강성.
상유천당 하유소항이라는 말이 있는 항주가 성도로 있는 곳.
향락의 도시인 항주로 수많은 이들이 모이고, 그만큼 수많은 돈이 오갔다.
이 때문에 항주를 중심으로 수많은 이권이 얽혀 있었으며, 그만큼 수많은 무림 문파와 상단이 얽혀 있었다.
거웅상단은 이런 항주에서도 제일 첫 손에 꼽히는 거대 상단.
그만큼 그들이 가진 힘은 실로 막대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예.”
절강성에 먼저 도착한 팽철도.
그는 지금 거웅상단의 본진에서 한 명의 노인을 만나고 있었다.
매혼상(賣魂商) 소후정.
영혼까지 판다는 별호의 그가 바로 거웅상단의 현 상단주였다.
그리고 앞에 있는 팽철도의 어머니인 소조란의 아버지이자, 팽철도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하였다.
“우리가 무언가 술수를 준비했다고 생각하나 보구나.”
“예.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팽중호가 자신을 따라서 절강성으로 온다는 것은 무언가 생각이 있어서 일터.
그것은 아무래도 자신들이 무언가를 꾸민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래서 팽철도는 곧바로 준비해 두었던 곳으로 가지 않고, 이렇게 소후정을 찾아온 것이었다.
“흠, 그래도 우리가 준비한 것은 알아보지 못할 터다. 너는 가서 계획대로 움직이거라.”
“예.”
“내가 뒤를 한번 볼 테니.”
지금 팽철도를 움직여 하북팽가를 집어삼키려는 것은 전적으로 소후정의 계획이었다.
팽철도의 야심과 방계의 피를 가졌다는 것을 이용해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소가주 경합을 어떻게든 이기게끔 할 생각이었다.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래, 가 보거라.”
너무 오래 있으면 팽중호가 뭔가를 알아차릴지도 모를 일.
팽철도는 곧바로 거웅상단을 빠져나가 원래 목표했던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팽철도가 나가고, 소후정만 남은 방.
“가서 슬쩍 건드려 봐라.”
갑자기 허공을 향해 말을 내뱉는 소후정.
아무도 없는 공간에 말을 한다니?
“하지만 상대는 도신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던 공간에서 말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바닥에서 쑤욱 나타나는 하나의 인영.
“도신은 사람이 아니더냐?”
“……저희들로는 무슨 짓을 해도 어쩌지 못합니다.”
“그럼 돈을 줄 테니, 사람을 더 써라.”
“알겠습니다.”
소후정의 말에 알겠다고 대답한 인영이 사라졌다.
그리고 소후정은 그 인영이 서 있던 곳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돈이나 축내는 것들이…… 도신이고 뭐고, 어차피 인간임은 똑같은 것. 돈이라면 하늘도 죽이는 마당에, 인간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소후정은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팽중호가 제아무리 대단한 무인이라고 해도, 그도 결국은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
자신이 돈을 쓴다면, 그 하나쯤은 분명 죽일 수 있을 터였다.
자신에게 그 정도의 돈은 충분히 있었으니 말이다.
“차라리 이리로 와 줘서 다행이군.”
그가 다른 곳으로 갔다면, 이렇게 돈을 써서 죽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영역인 절강성 안으로 와 주었으니,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그를 죽인다면, 오히려 아주 깔끔하게 하북팽가를 접수할 수 있을 터였다.
“자, 도신은 얼마짜리인지 볼까?”
소후정은 사람에게 가격을 매기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으로 사람을 평가했는데, 과연 도신에게는 얼마의 가격이 매겨질지 궁금했다.
지금까지 그가 붙인 가격 중 최고액이 될 것인지 아닌지 말이다.
* * *
절강성에 다다른 팽중호 일행의 마차.
그렇게 평탄하게 길을 달리던 마차를 팽중호가 멈춰 세웠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예?”
“잠깐 볼일 좀 보고 오겠습니다.”
“아, 예…….”
갑자기 마차를 멈추고 볼일을 보고 오겠다는 팽중호의 말에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하는 마부였지만, 팽중호가 어떤 이인지 알기에 딱히 더 묻지는 않았다.
“구준아, 혹시 모르니까 잘 지키고 있어라.”
“네! 소가주님!”
팽구준은 혹시 모르니 마차와 마부, 그리고 지호창을 지키게끔 하기 위해 남겨 두었다.
그리고 팽중호는 곧바로 신형을 움직였다.
마차에서 꽤 떨어진 곳.
그곳에 다다르자 수많은 무인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옷을 입은 이들부터, 각양각색의 옷과 무기를 든 무인들.
몸에 살기들이 가득한 것이, 좋은 목적으로 모인 이들이 아님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많이도 모았네. 돈 좀 썼겠어?”
팽중호는 물어보지 않아도 이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았다.
거웅상단.
팽철도의 외가에서 보냈음이 분명했다.
지금 팽중호의 앞에 있는 무인들을 돈으로 부리려면 그 정도가 아니면 힘들 터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내 이름값이 있는데,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주변에 울려 퍼지는 팽중호의 목소리에 모든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너무나 여유로운 표정을 하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팽중호.
무인들은 갑자기 나타난 그를 바라보곤, 다들 재빨리 출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래도 팽중호인데 말이야.”
콰아아아아아아아-
팽중호의 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터져 나왔다.
주변을 모조리 집어삼키는 거대한 살기.
이 살기에 지금 모여 있는 수많은 무인들의 살기가 모조리 먹혀 버렸다.
“덤벼.”
팽중호의 말에도 무인들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돈을 받고 모여들기는 했지만, 상대는 도신 팽중호다.
실제로 본 그의 힘은, 지금 과연 자신들이 어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에 달려들어! 상대는 하나다!”
그때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지금 여기에 모여 있는 무인들은 모두 절강성에서 내로라하는 낭인들.
최소 절정을 넘은 이들만이 모여 있었다.
제아무리 팽중호가 대단한 무인이라도 이렇게 수많은 무인들을 혼자서 모두 이길 수는 없을 터였다.
“으아아아!!!”
“달려들어!!!”
낭인들이 외침과 동시에 우르르 팽중호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돈을 받고 움직이는 그들.
이번 의뢰에 상당한 돈을 미리 받았다.
그러니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너네들이 선택한 거니까, 원망들 마라.”
지금 달려드는 이들은 모두 자신의 목을 노리고 이 길을 선택한 자들.
그렇기에 손속에 자비를 둘 생각은 없었다.
“딱 음공을 써 보기 좋은 상황이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수많은 무인들.
이런 다수의 무인을 가장 효율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무공.
그것이 바로 음공이었다.
스릉-
팽중호의 멸뢰진천도가 뽑혀 나왔다.
그리고 울기 시작하는 멸뢰진천도.
키이이이이이이잉-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무뢰곡세(無雷哭世).
무뢰곡세(無雷哭世).
팽중호가 음공에 붙인 이름이었다.
그리고 이 무뢰곡세가 펼쳐지자, 팽중호를 향해 달려들던 이들이 갑자기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커억.”
“끄억!”
팽중호가 도를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쓰러지는 무인들을 보고 달려들던 이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들은 다시금 느낀 것이다.
팽중호가 자신들 전부가 달려들어도 어찌할 수 있는 이가 아님을 말이다.
“자, 도망칠 거면 도망치던가.”
팽중호의 말에 몇몇 무인들이 도망을 치려는 듯 몸을 뒤로 빼었다.
하지만.
서걱-
뒤로 몸을 빼려던 이들은 가장 뒤에 서 있던 같은 복장을 한 이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흑의 무복을 걸치고 있는 이들.
“물러나면 죽인다. 돈을 받았으면, 돈값을 해야지.”
그들은 거웅상단이 직접 거느리는 무인들이었다.
낭인들은 그들이 팽중호를 상대하기 전, 팽중호의 힘을 빼는 용도.
게다가 이미 낭인들에게 선금을 모두 준 상황.
그렇기에 도망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제길! 달려들어!”
“죽어라!!”
낭인들은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결국 다시 팽중호에게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돈을 받았으면 반드시 그 값을 해야 하는 것.
그것이 낭인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돈에 혹하지 말고, 의뢰가 어떤지를 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