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가르침이 좋은 덕분입니다.
제갈소선이 처소 앞에 있는 한 정자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하나의 비파(琵琶).
디링- 딩- 디딩-
가볍게 시작하는 제갈소선의 연주.
아주 듣기 좋은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는데, 팽중호는 이 소리에 속으로 놀라고 또 놀랐다.
‘기운이 살아 숨 쉰다.’
제갈소선의 연주가 계속될 때마다, 주변의 기운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생명이 살아 숨 쉬듯 요동치는 기운에, 주변의 수풀들이 반응하며 움직이고, 나비와 새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부수고 살상하는 음공은 아니지만, 지금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경지인지는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렇게 하지 못한다.’
팽중호는 지금까지 무공은 오로지 누군가를 이기고 베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렇기에 이런 활공(活功)의 경지는 팽중호는 도달할 수 없다.
아마 평생을 갈고 닦아도 힘들 터였다.
“어떠십니까?”
“……이렇게 하라고 한다면, 못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것밖에 할 줄 모릅니다. 그래도 저에게 배우시겠습니까?”
“반드시 소저에게 배우겠습니다.”
팽중호는 더더욱 제갈소선에게 배우고 싶어졌다.
제갈소선 수준이라면, 지금 팽중호가 원하는 수준 그 이상이었다.
활공(活功)과 사공(死功)은 결국 한 끗 차이.
배우고 어떻게 쓰는가는 팽중호가 정할 수 있었다.
“그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갈소선의 허락이 떨어졌다.
팽중호는 곧바로 제갈소선에게 음공에 대해 처음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무공서로는 배울 수 없는 음공의 세계.
제갈소선은 처음부터 차근차근 팽중호에게 설명해 주었다.
“음…… 이것으로 음공을 펼치신다고요?”
음공에 대해 기본적인 것을 배운 후, 팽중호는 음공을 펼치게끔 해 줄 멸뢰진천도를 제갈소선에게 보여 주었다.
멸뢰진천도를 가만히 살펴보는 제갈소선.
“제가 조금 들어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팽중호의 허락을 구하고 멸뢰진천도를 들어 보는 제갈소선.
그녀는 손으로 뚫려 있는 구멍들을 한 번씩 쓸어 보더니, 이내 내공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이이이잉-
팽중호가 기를 불어넣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소리를 내는 멸뢰진천도.
듣는 이의 기분이 좋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군.’
자신이 펼쳤을 때와는 너무나 다른 소리가 아닌가?
이렇게까지 다를 수가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떤 분이 만드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분이십니다.”
제갈소선은 멸뢰진천도에 감탄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악기들을 봐 온 그녀였는데, 이렇게 도에 구멍을 뚫어 만든 것은 처음 보았다.
그런데 그저 대충 뚫은 것이 아니고, 이 구멍 하나하나가 모두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소리를 내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이건 이것을 만든 이가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뜻했다.
“제가 이것으로 시범을 보일 테니, 그 후에 따라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
제갈소선이 멸뢰진천도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내공이 흐르고, 좀 전과 같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이이이잉- 휘이잉- 휭-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조금씩 달라졌고, 그때마다 주변을 요동치는 기운이 느껴졌다.
휘이이익- 휙- 휘이익-
그리고 그녀가 움직이는 방향에 있던 물건들이 갑자기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제갈소선은 음공으로 기운을 움직여 물건들을 하늘로 띄우는 것이었다.
스윽- 타아앗-
그렇게 제갈소선의 움직임이 멈추었고, 하늘로 떠올랐던 물건들이 사뿐히 다시 바닥으로 내려 앉았다.
“아시겠습니까?”
“한번 해 보겠습니다.”
살짝 넣을 놓고 바라보고 있던 팽중호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멸뢰진천도를 받아 손에 쥐었다.
지금 팽중호의 뇌리에는 방금 제갈소선이 움직인 모습이 너무나 선하게 박여 있었다.
‘이런 것이었나? 음공이란 것이?’
팽중호는 지금까지 자신이 음공을 너무나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음공은 그저 소리를 내어 목표에 보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키이이이이이잉-
팽중호가 든 멸뢰진천도가 제갈소선이 들었을 때와는 다른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이 소리와 함께 움직이는 팽중호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움직였는데, 그때마다 주변에 있는 물건들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드득- 퍼석-
그중 약한 물건들은 그대로 터져 나가기 시작했고, 주변에 있던 꽃잎이 떨어지고, 나뭇잎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만. 그만해 주십시오.”
“아, 이런. 죄송합니다.”
팽중호는 제갈소선의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 때문에 주변이 죽어 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나 빨리 배우실 줄은 몰랐습니다.”
“가르침이 좋은 덕분입니다.”
“다만, 걱정이 됩니다. 살의(殺意)가 너무 짙어서…….”
지금 팽중호는 제갈소선이 그저 한 번 설명하고, 한 번 보여 주었을 뿐인데, 그것을 전부 흡수하고 깨달았다.
제갈소선이 놀랄 수밖에.
다만, 지금 막 보여 준 팽중호의 음공은 제갈소선이 보여 준 것과 정반대로 살의가 너무 강했다.
아마 조금 더 오래 팽중호의 음공이 펼쳐졌더라면, 주변에 있던 생물들이 죽어 나갔을 터였다.
“필요할 때에만 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팽중호라도 이것으로 아무것이나 죽이고 싶겠는가?
적을 베는 것에는 주저함이 없지만, 그렇다고 무자비한 살생을 즐기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제갈소선은 팽중호의 목소리에서 진심을 느꼈기에,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럼 몇 가지를 더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갈소선은 팽중호에게 음공에 대한 몇 가지를 더 알려 주었고, 후에 모든 일이 끝나면 살의를 없애고 활기를 불어넣는 음공을 다시 배우기로 약속하고 가르침을 마쳤다.
“이건 제가 준비한 선물입니다.”
팽중호는 제갈소선에게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하나 꺼내어 건네었다.
무언가를 배우러 와 놓고, 염치없이 빈손으로 올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기에 작은 성의를 준비해 온 것이었다.
“괜찮습니다.”
“받아 주셔야 제가 마음이 편합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제갈소선이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팽중호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제갈소선의 처소를 벗어났다.
혼자 남게 된 제갈소선.
제갈소선은 팽중호가 건네어 준 주머니를 살짝 열어 보았다.
“와…….”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것은, 너무나 예쁜 머리 장식이었다.
나비 모양의 장식.
제갈소선은 장식을 꺼내어 조심스럽게 머리에 달아 보았다.
“예쁘다…….”
동경에 비추어 본 머리 장식은 예상보다도 훨씬 더 잘 어울리고, 훨씬 더 예뻤다.
“소선아.”
“예. 가주님.”
그때 제갈소선의 처소 밖에서 제갈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팽중호와 인사를 마친 제갈신은 곧바로 제갈소선을 찾아온 것이었다.
“어떠냐? 팽 소가주님은.”
“정직하고 좋은 분입니다.”
“그렇지? 그럼. 너는 어떠냐?”
“예?”
너는 어떠냐니?
이게 도대체 무슨 물음일까 제갈소선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네 마음을 묻는 것이다. 혼처로 괜찮지 않느냐?”
“……저 같은 것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제갈소선은 이미 팽중호에게 혼처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팽중호와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너는 좀 더 너를 높게 볼 필요가 있다.”
제갈신은 팽중호를 포기하지 않았다.
딸인 제갈서린은 하북팽가의 정한승과 일이 잘되고 있었다.
그도 훌륭하고 좋은 혼처였지만, 그렇다고 팽중호를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그렇기에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아주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다.
‘소선이라면, 충분하지.’
제갈소선이라면 팽중호의 혼처로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처소 밖으로 나오지 않고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문제였는데, 그것은 오늘로 해결이 되지 않았는가?
이건 분명 가능성이 있었다.
“소선이 네가 원한다면, 내가 노력해 보마.”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제갈신은 이 정도 답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제갈소선이 싫다고 하지 않은 것이면, 승낙이나 다름없었다.
‘포기할 수는 없지.’
* * *
하북팽가.
최근 들어 조용할 날이 없는 곳이었지만, 오늘은 특히나 조금 더 시끄러웠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세가 회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새로운 소가주를 올리는 것에 대한 확답을 내려 주십시오!”
거대한 회의장에 모인 수많은 이들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팽자성에게 말을 꺼내었다.
그는 최근에 하북팽가의 세력에 합류한 곳인 흑철도문(黑鐵刀門)의 사람이었다.
하북팽가는 세를 확장하면서, 분가와 같은 개념으로 수많은 문파들을 휘하로 두게 되었다.
흑철도문은 그곳들 중 하나로, 유일하게 팽 씨 성을 가진 방계 혈족이 있는 문파였다.
오래전 하북팽가를 떠나서 문파를 차린 그들이 다시금 하북팽가로 돌아온 것이었다.
팽 씨라는 것에서 그들은 하북팽가에서 꽤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정말로 새로운 소가주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오?”
“물론입니다. 지금 소가주께서는 무림의 일로 바빠 세가를 돌보지 못하니, 세가를 돌볼 새로운 소가주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맞습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소가주가 필요하오!”
흑철도문의 말에 이곳저곳에서 동조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들의 이런 소리에 기존 하북팽가 사람들은 살짝 인상을 썼는데, 딱히 뭐라 말은 하지 않았다.
장춘오가 이미 이들에게 그저 아무런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달라고 말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가만히 소리를 듣고 있던 장춘오가 입을 열었다.
일순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장춘오는 지금 이 자리에서 가주인 팽자성 다음가는 권력자라고 해도 무방했다.
“정당하게 소가주 경합을 하도록 하죠.”
소가주 경합?
갑자기 소가주 경합이라니?
“소가주가 되고 싶은 모든 분은 경합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반대하겠소.”
장춘오의 의견에 흑철도문의 사람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소가주 경합을 하자는데 반대라니?
“경합에서 도신을 무공으로 이길 수는 없지 않겠소? 우리는 무공이 강한 소가주가 아니라, 우리를 잘 이끌어 줄 소가주를 원하는 것이오.”
소가주 경합이라고 한다면, 필수적으로 무공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터.
도신 팽중호를 무공으로 이길 수 있을 실력자는 없다.
“무공 경합이 아닙니다. 경합의 종류는 그쪽에서 정하시면 됩니다.”
“음?!”
무공 경합이 아닌 것도 놀라운데, 경합까지 정하라니?
이것은 그냥 소가주 자리를 포기하겠다는 것 아닌가?
“지금 한 말 반드시 지키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이미 이야기가 다 된 것입니다.”
장춘오는 이미 팽중호와 전서구를 통해 이야기를 나눈 상태다.
지금 이 일은 모두 팽중호의 인가하에 진행되는 것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경합을 결정해서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몇몇 안건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누고 회의가 끝이났다.
모든 이들이 돌아가고, 회의실에는 장춘오와 팽자성만이 남았다.
“괜히 저들에게 빌미를 준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아닙니다. 오히려 저들이 우리에게 빌미를 준 것입니다.”
“어떤 것을 가져올지 모르지 않느냐?”
“어떤 것을 가져와도 어차피 저들은 안 될 겁니다.”
팽자성은 괜히 새로운 소가주를 올릴 수 있는 빌미를 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팽중호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들이 어떤 것을 경합의 주제로 가져올지 모르니 그것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장춘오의 생각은 달랐다.
‘저들이 무슨 계략을 짜내던, 어차피 통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