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이름은 무엇으로 합니까?
팽중호가 스스로 느낀 부족함.
내공의 흐름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초식을 펼칠 때 단번에 도가 터져 버린다는 것이었다.
‘아직 부족하다. 새로운 도가 오기 전까지 완벽히 숙달해야 한다.’
새롭게 만든 도마저 터트려 버릴 수는 없다.
물론 막후철이 만들어 주는 도이니 쉽게 터지지는 않겠지만, 계속해서 쌓이면 결국 터져 나갈 터다.
만약에 그것이 중요한 싸움에서 그렇게 된다면, 아주 큰일이 되어 버리지 않겠는가?
목숨과 무림의 흥망이 갈라지는 곳에서 그런다면 말이다.
“소가주님.”
그때 팽중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천부중.
그는 남궁천세보다 조금 더 일찍 깨어났다.
“어떻습니까? 진전은 있으셨습니까?”
“예.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분명 무언가 잡혔습니다.”
천부중은 희미한 실마리를 잡았다.
아직은 희미하지만 분명 이것이 자신을 앞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 확신했다.
“후우.”
그리고 그때 남궁천세도 눈을 떴다.
비슷한 실력이니만큼 깨어나는 시간도 비슷했다.
“남궁 소가주님도 진전이 있으셨습니까?”
“예. 있었습니다.”
정기 가득한 그의 두눈은 확실히 그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말 몇 마디에 지금 두 사람이 곧바로 깨달음의 실마리를 잡은 것이다.
역시 재능이 있는 자들이었다.
아마 이들이 처음부터 자신을 만났다면, 지금 위지철만큼 강해졌을 것이다.
“그럼……. 깨달음을 한번 잡아 보죠.”
팽중호가 도를 어깨에 떡하니 올렸다.
그리고 지어진 팽중호의 미소.
천부중과 남궁천세는 아까 느꼈던 한기를 다시금 느꼈다.
“대련으로 지쳤던 몸은 다 회복되셨죠?”
“예.”
“예.”
물론 완벽히 회복되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내상이야 이미 모두 회복했지만, 외상은 남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찾아와 놓고, 몸이 조금 안 좋다고 뺄 수는 없는 노릇.
두 사람은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씨익-
그리고 팽중호의 미소가 진해졌다.
따로 말은 하지 않아도 두 사람은 지금 해야 할 것이 팽중호와의 대련임을 느낀 것이다.
“자, 동시에 오십쇼.”
끄덕- 끄덕-
천부중과 남궁천세는 고개를 끄덕이고, 눈빛을 주고 받은 후 곧바로 팽중호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이미 혈천궁과의 싸움을 대비해 여러 가지 합격을 함께 익혔다.
합격이 처음이 아니니, 서로 합이 잘 맞았다.
아주 찰나의 시간, 차이를 두며 들어오는 두 사람의 공격.
천부중의 매화가 먼저 눈을 어지럽히고, 그 사이를 남궁천세의 검이 배어들어 왔다.
훌륭한 합격이었다.
상대가 팽중호만 아니었다면, 분명 꽤 훌륭하게 먹혀들어 갔을 것이다.
콰창- 콱-
매화가 허공에서 모조리 사라지고, 남궁천세의 검은 팽중호의 도갑에 막혔다.
팽중호는 지금 무뢰를 펼치지도 않은 상태로, 그저 오로지 도의 움직임만으로 둘의 공격을 막아 낸 것이다.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
“자. 계속 움직이십쇼. 맞기 싫으시면.”
퍽- 퍽-
천부중과 남궁천세를 동시에 도갑으로 타격했다.
“컥!”
“억!”
두 사람은 갑자기 느껴지는 엄청난 통증에 자동으로 입에서 곡소리를 내었다.
눈 앞이 캄캄해질 정도의 고통.
그렇지만 이 고통에 아파할 시간이 없었다.
팽중호의 도갑이 다시금 움직이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피해야 한다.’
‘막아야 한다.’
천부중은 순간적으로 거리를 벌렸고, 남궁천세는 검으로 도갑을 막을 태세를 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팽중호의 도갑은 다시금 둘을 타격했다.
좀 전보다 더 강한 고통.
순간적으로 몸이 휘청할 정도의 고통에 두 사람은 이를 악물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자자, 노력하지 않으시면 지옥을 계속 맛보게 될 겁니다.”
팽중호가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도 알고 있었다.
정말 지옥 같을 것이란 걸 말이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지금 조금 전 얻은 깨달음의 실마리까지 모두 꺼내기 시작했다.
쓸 수 있는 것은 뭐든 써야 하니 말이다.
사라락- 사락- 사라라락-
천부중의 검에서 피어난 매화가 흩날렸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달랐다.
조금 더 짙은 색의 매화는, 짙어진 색만큼이나 짙은 향기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화의 수도 달라졌다.
아까보다 더욱더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매화.
‘이건 새로운데?’
팽중호는 지금 천부중의 깨달음을 보고 조금 놀랐다.
팽중호가 천부중에게 해 준 조언은 너무 화려함에 집착하지 말라는 이야기.
그런데 천부중은 그것에서 화려함을 줄이는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더 화려함을 더하는 선택을 했다.
‘아예 자신의 길로 가는 거군.’
천부중은 자신의 화려함이 미흡해 팽중호에게 화려함에 집착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천부중에게 매화이십사수검법은 그 어떤 무공보다도 화려한 무공이었다.
상대마저 홀리게 만들 만큼 화려한 무공.
그렇기에 그는 이 화려함을 극한으로 끌어 올리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깨달음.
‘취매환(醉梅幻).’
매화에 취해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게 만들 정도의 환영.
당연히 아직 완벽하지는 않았다.
이제 막 깨달음의 실마리를 잡은 수준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라도 끄집어내야 할 상황이었다.
사아아아악-
그리고 그런 천부중의 취매환 사이로 엄청난 검격이 파고들어 왔다.
남궁천세의 검격이었다.
그저 있는 힘껏 직선적으로만 베어 오던 그였는데, 지금의 검격은 달랐다.
화려한 취매환의 사이를 유려하게 헤치며 팽중호에게로 다가왔다.
쾅-!
그런데 위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더 강했다.
이 짧은 시간에 깨달음을 무공에 훌륭하게 녹여 낸 것이다.
“좋습니다.”
팽중호는 이 짧은 시간에 이만큼이나 진전을 보인 두 사람에게 칭찬의 말을 했다.
분명 지금 둘은 좀 전과는 다른 실력을 보였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무뢰(無雷).
그렇기에 팽중호는 이 두 사람을 제대로 상대해 주기로 했다.
도갑으로 펼쳐지는 무뢰.
쾅- 쾅-
무뢰가 펼쳐짐과 동시에 천부중과 남궁천세가 날아갔다.
주변을 완벽히 장악한 팽중호.
“하압!”
“핫!”
뒤로 나가떨어졌던 두 사람이 재차 몸을 날려왔다.
고통은 있었지만, 지금 멈출 수 없었다.
조금 전 팽중호의 무뢰는 정확히 두 사람의 약점을 파고들어 둘을 타격했다.
이것을 막아 내어 보완한다면, 또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을 터였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두 사람이 동시에 생각한 것.
지금 이 기회는 흔하게 오지 않을 것이다.
무언가 희미했던 실마리가 점점 짙어지는 상황.
“날이 밝을 때까지 해 봅시다. 크크.”
* * *
매일 수련이 계속되는 무림맹.
이 무림맹에 손님이 찾아왔다.
팽중호를 찾아왔다는 손님의 정체는 바로 괴신장 막후철이었다.
팽중호의 도를 완성한 그가 찾아온 것이다.
“오셨습니까.”
“그래. 완성하자마자 왔다.”
막후철의 손에 들린 기다란 목갑.
이 안에 팽중호의 도가 들어 있었다.
스윽-
막후철이 목갑을 팽중호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열어 보라고 손짓했다.
딸칵-
망설임 없이 목갑을 여는 팽중호.
목갑을 열자 그 안에 보이는 묵색 일색의 도(刀) 한 자루.
매끄러운 묵색의 도갑은 그 어떤 장식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 어떤 장식을 한 것보다 세련되어 보였다.
“뽑아 봐라.”
스릉-
자신감 있게 뽑아 보라는 막후철의 말에 팽중호는 도를 들어 살짝 뽑아 보았다.
도를 드는 순간 팽중호는 이 도에 흠뻑 빠져 버렸다.
너무나도 완벽하게 손에 딱 맞았으니 말이다.
‘역시는 역시다.’
막후철이 괜히 무림에서 첫 손에 꼽히는 야장이 아니었다.
팽중호는 완전히 도를 뽑아 들어 가만히 바라보았다.
유려하게 뻗은 도신.
신장운철이라는 희대의 광물로 만들어진 도신은 도갑과 같은 묵색이었는데, 뿜어져 나오는 예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근처에 손을 대기만 해도 베일 듯한 예기였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것이 하나 있었다.
도신의 중간, 중간에 뚫려 있는 구멍 몇 개.
“그 구멍들이 초진동을 버티게 해 줄 거다.”
도에 뚫려 있는 구멍들은 그저 멋으로 낸 것이 아니었다.
팽중호가 무뢰단세를 펼칠 때 나오는 초진동을 도가 보다 잘 견디게끔 하기 위해 뚫은 것이었다.
이 구멍으로 초진동이 흘러나옴으로 도에 걸리는 부하가 줄어드는 것이었다.
“이름은 무엇으로 합니까?”
“이름? 네가 알아서 해라. 난 그런 건 신경 안 쓰니까.”
팽중호는 도를 가만히 바라보며 이름을 생각했다.
이런 훌륭한 도에 이름이 없을 수는 없는 노릇.
“멸뢰진천도(滅雷振天刀)로 하겠습니다.”
멸뢰진천도(滅雷振天刀).
이름따라 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팽중호는 일부러 이름을 아주 거창하게 붙였다.
“클클. 거창한 이름이군. 알아서 해라. 이제 그건 네 것이니까.”
막후철은 용무를 마쳤다고 생각했는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팽중호가 머물다 갈 것을 제안했지만, 사람이 많은 곳은 싫다며 다시 돌아가겠다 하였다.
“그럼 마차라도 내어 드리겠습니다.”
“됐다. 천천히 걸어서 주변 구경이나 하면서 가려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이것이라도 꼭 받아 가 주시기 바랍니다.”
막후철은 한사코 모든 호의를 거절했는데, 팽중호는 마지막으로 막후철에게 작은 목갑을 하나 전달해 주었다.
“이게 뭐냐?”
“대환단입니다.”
“대환단? 클클. 쓸모없다.”
“몸에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받아 주십시오.”
“……그래. 뭐 알겠다.”
팽중호가 건넨 목갑에 든 것은 대환단.
막후철은 이것마저 거절하면, 팽중호가 더 귀찮게 할 것이 뻔했기에 챙겨 들었다.
대환단이 쓸모없다고 한 막후철이지만, 설마 쓸모가 없을 리가 있는가?
대환단은 평범한 범인이 먹어도 평생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영단인데 말이다.
“조심히 가십시오.”
“그래. 혹시나 그거 부숴 먹으면, 다시 내게 올 생각은 하지도 마라.”
“하하하. 예. 알겠습니다.”
“클클클.”
막후철은 그렇게 곧바로 무림맹을 떠났다.
그가 떠나고 팽중호도 이 멸뢰진천도를 들고 무림맹을 벗어났다.
무림맹에서 떨어진 한적한 평야 위에 선 팽중호.
스릉-
다시금 손에 쥔 멸뢰진천도.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절로 기분 좋게 해 주었다.
스윽-
팽중호는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번쩍-
팽중호의 두 눈이 번쩍 빛을 뿜었다.
그리고 움직이는 멸뢰진천도.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무뢰단세(無雷斷世).
키이이이이이이이잉-
멸뢰진천도에 뚫린 구멍이 공명하며 기이한 소리를 내었다.
“후우.”
멸뢰진천도를 다시금 도갑으로 집어넣는 팽중호.
그리고 잠시 뒤.
쿠구구구구구구궁- 쿠웅-
팽중호가 서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의 봉우리가 일부 베어져 떨어졌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파사사사사사삭-
떨어져 나간 봉우리가 갑자기 허공에서 가루로 변해 버렸다.
거대한 봉우리가 잘려 나가고, 가루가 되어 버리다니?
이게 정녕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하! 이래서 무기는 좋은 걸 써야 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