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다.
우드드드득- 우드득- 우득-
뼈가 부서지고 뒤틀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연무장.
누가 듣는다면 이곳에서 고문이 행해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할 소리였다.
“끄아아아악!!!”
게다가 처절한 비명까지.
이건 분명 고문이 아니라고는 생각지 못할 소리였다.
하지만 분명 이것은 고문으로 인해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외공도 함께 착실히 하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해, 했습니다…….”
“아니요. 이건 충분히 하지 않으신 겁니다.”
지금 연무장에서 울리는 이 소리는 팽중호와 무인이 대련을 하며 나는 소리였다.
내공을 금하고 오로지 외공의 힘으로만 하는 대련.
그런데 이런 대련에서 마저 팽중호는 무림맹의 무인들을 완전히 압살하고 있었다.
괴물 같은 팽중호의 외공.
덕분에 무인들은 팽중호와 싸우며 근육이 뒤틀리고, 뼈가 부서지는 듯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외공과 내공의 조화가 필수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팽중호는 지금 무림맹 무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결론에 도달한 것이 바로 외공의 단련이었다.
혈천궁으로 향하는 길에 임시방편처럼 했었던 단련.
그것으로 이들의 체력이 상승하며 외공이 강해진 효과를 보았다.
그러니 그것을 본격적으로 행한다면, 얼마나 더 효과가 좋겠는가?
게다가 외공으로 인한 실력의 상승은 아주 단기에 확실히 효과를 볼 수 있으니 더없이 좋았다.
‘외공을 익히다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지.’
결국 모든 깨달음은 하나로 이어진다.
외공을 익히든 내공을 익히든 준비만 되어 있다면, 어느 것으로도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분명 이들을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모든 일이 끝난 팽중호.
팽중호는 무림맹에 있는 임시 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래 기다렸어?”
팽중호가 처소에 들어섰을 때.
아주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아니요. 저도 방금 왔습니다. 가가.”
바로 이세경이었다.
그녀는 지금 팽중호를 보기 위해 무림맹으로 온 것이었다.
혈천궁과의 일이 끝나고 한창 바쁜 신조상단이었는데, 다행히도 그녀의 오라버니인 이세홍이 그녀의 많은 일을 대신해 주고 있어 이렇게 시간을 낼 수가 있었다.
“귀주성에 다녀오셨다 들었습니다.”
“그랬지.”
“왜 제게는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걱정할까 봐 그랬지.”
“…….”
팽중호는 자신이 또다시 어디론가 떠난다고 하면, 이세경이 크게 걱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자신이 쉬지 않고 계속해서 무언갈 하는 것을 걱정하는 그녀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말없이 조용히 다녀온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그것이 꽤 섭섭한 모양이었다.
“내가 걱정돼서 이 늦은 밤에 찾아온 거야?”
“하아…… 예. 혹시나 몸을 너무 혹사하는 것은 아닌가 해서…….”
이세경의 걱정은 언제나 팽중호에 대해서였다.
팽중호가 지금 혼자서 얼마나 큰 짐을 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자자, 우선 들어가자.”
팽중호는 우선 이세경을 데리고 처소로 들어갔다.
밖에서 기다렸으니 몸이 조금 추울 터.
팽중호가 손수 또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화르륵-
지난번과는 다르게 직접 불을 붙여서 차를 끓이기 시작하는 팽중호.
팽중호는 전에 이세경에게 내공으로 끓인 차를 주고, 혹평을 받은 뒤 남몰래 차 끓이는 것을 연습했다.
그렇게 한참을 차 앞에서 심혈을 기울이던 팽중호는 완성한 차를 들고 약간은 긴장한 얼굴로 이세경 앞에 섰다.
쪼르르륵-
이세경의 찻잔에 팽중호가 끓인 차가 채워졌다.
“흐음. 향기가 아주 좋네요.”
“그렇지?”
“그럼. 마셔 볼게요.”
“응…….”
꿀꺽-
차를 마시는 이세경을 보고 팽중호의 긴장이 더해졌다.
오로지 이세경을 위해 차 끓이는 것을 연습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흐음. 아주 좋은데요?”
“정말?”
“네. 정말 좋습니다.”
“하하하.”
정말 좋다는 이세경의 평가에 그제야 환하게 웃는 팽중호.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저를 위해 연습하신 겁니까?”
“뭐, 그렇지.”
스윽-
“흡!?”
차를 마시던 이세경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갑자기 팽중호의 입에 입맞춤을 했다.
갑작스러운 이세경의 입맞춤에 당황해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팽중호.
“이건 보답입니다.”
“보답치고 너무 센데?”
“호홋. 앞으로도 해 주실 테니, 미리 지불한 것입니다.”
“음, 그럼 좀 싼데?”
“호호호.”
팽중호는 이세경과 이야기를 나누며 늦은 밤을 보내었다.
그저 겉으로만 혼인한 척 행세를 하는 사이였는데, 어느새 이런 사이가 되어 있었다.
‘평온해진다.’
팽중호는 이렇게 이세경과 이야기를 나누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머리에 남아 있던 번뇌 같은 것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래서 팽중호는 이세경과의 이런 시간이 소중했다.
‘마교만 막아 내면, 이런 시간을 자주 가질 수 있겠지.’
* * *
무림맹의 아침.
본래라면 팽중호가 아침부터 무인들을 대차게 굴릴 시간인데, 오늘은 그렇지 못했다.
아침부터 팽중호를 찾아온 두 명의 손님 때문이었다.
화산파의 취매룡(醉梅龍) 천부중과 남궁세가의 소검룡(小劍龍) 남궁천세.
두 사람이 이른 아침부터 팽중호를 찾아온 것이다.
“무슨 일입니까?”
“강하게 만들어 주십쇼.”
“강해지고 싶습니다.”
굳은 의지로 활활 타오르는 두 사람의 눈.
팽중호는 왜 이들이 이런 눈을 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위 소협 탓이겠지.’
위지철은 정협룡이란 별호말고, 이제 무림에서 뇌류신검(雷流神劍)이라 불리고 있었다.
후기지수를 벗어 던지고, 당당히 절대 고수로서 무림에 이름을 알린 것이다.
그런 위지철을 보고 이 두 사람은 아마 아주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같은 후기지수였던 그가 이렇게나 강해졌으니 말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위지철을 따라잡기 위해 자진해서 팽중호를 찾아온 것이었다.
“아주 힘들 겁니다.”
팽중호는 두 사람의 눈을 보고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고, 대신 각오하라고 하였다.
이왕 하는 거면 제대로 할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각오했습니다.”
“예.”
“크크. 그럼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답을 들은 팽중호가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드는 한기에 두 사람은 몸을 살짝 떨었는데, 그 이유가 팽중호 때문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과연 잘한 것인지 아주 잠시 생각했다.
‘강해져야 한다. 어떻게든.’
하지만 이내 다시 마음을 굳게 잡았다.
두 사람은 강해지고 싶었다.
위지철만큼 말이다.
‘좋아. 아주 좋아.’
팽중호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아주 흡족했다.
이런 경쟁심은 언제나 대환영이었다.
경쟁심은 위로 올라갈 원동력을 얻게 해 주는 아주 중요한 마음이었으니 말이다.
이 두 사람은 분명 강해질 수 있을 터였다.
이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럼. 바로 시작하죠.”
“예!”
“예!”
“일단 두 분이 대련부터 해 보죠.”
팽중호는 우선 천부중과 남궁천세의 대련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둘의 실력을 정확히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팽중호가 직접 상대해도 되지만, 둘이 싸움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경쟁의식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다.
좋은 경쟁을 할 상대는 많을수록 좋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천부중과 남궁천세는 팽중호의 말에 따라 곧바로 대련을 준비했다.
둘 다 무림에서 검으로 유명한 화산파와 남궁세가의 사람들.
검을 들고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에 질 수 없다는 의지가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위지철에게는 밀렸지만, 눈앞의 사람에게는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
스릉- 스릉-
둘의 검이 동시에 뽑혀 나왔다.
화산파와 남궁세가의 대결이나 다름없는 이 대련.
매화이십사수검법과 무적제왕검의 싸움이었다.
팟- 팟-
검을 뽑은 것처럼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두 사람.
천부중의 검이 흐드러지게 매화를 피워 내고, 남궁천세의 검은 그 매화들을 베어 내며 전진해 가고 있었다.
대련이지만 실전과 같은 치열한 싸움.
카카카카카캉- 카캉- 카카카캉-
서로 확연히 다른 느낌의 검법이 만나 이루어 내는 장관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보았다면, 입을 벌리고 감탄했을 모습.
하지만 팽중호는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두 사람에게 부족한 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흠.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다.’
잠깐의 대련이지만 팽중호의 눈에는 보였다.
두 사람의 부족한 점이 말이다.
한쪽은 너무 화려함에 집착하고, 한쪽은 너무 경직되어 있었다.
물론 그것뿐 아니라 다른 것도 있었지만, 일단 가장 큰 것은 그것들이었다.
콰가가가가각- 쾅-
둘의 대련이 끝이 났다.
옷이 군데군데 찢어졌지만, 멀쩡히 서 있는 남궁천세와 바닥에 쓰러져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천부중.
이 대련의 승자는 남궁천세였다.
확실히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되어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그가 더 우세한 것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팽중호는 곧바로 둘에게 다가가 수고했다고 말을 해 줌과 동시에, 둘의 문제점에 관해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팽중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두 사람.
그렇게 한참이나 두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 준 팽중호였다.
팽중호의 말이 끝나자 둘은 곧바로 깨달음에 들어섰는데, 팽중호는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이들이 깨달음에 나오면 다시금 해 줄 것이 있었으니 말이다.
“나도 몸 좀 풀어 볼까?”
팽중호는 저들이 깨어날 때까지 자신도 좀 움직일 생각이었다.
최근 들어 개인의 시간을 가질 틈이 별로 없었다.
하루 종일 잠들기 전까지 무림맹 무인들을 봐 주었으니 말이다.
지금 무림맹 제일 고수인 팽중호지만, 아직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소천마와 천마……. 그들을 이기려면 아직 부족하다.’
지금이라면 소천마와 비슷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도 분명 더 강해질 테고, 그렇다면 차이가 벌어질 수 있었다.
그러니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자신도 계속 강해져야만 했다.
스으으으으윽-
팽중호는 도를 꺼내어 들어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로 매우 느린 움직임.
동중정(動中靜) 정중동(靜中動)의 묘리를 담은 움직임.
스르륵-
팽중호의 얼굴과 몸에서 흐르는 땀.
현경의 경지인 팽중호가 조금 움직였다고 땀을 흘린다?
그만큼 지금 팽중호가 하는 움직임이 엄청난 체력 소모를 한다는 것이었다.
휙- 휘익- 휙-
그렇게 한참이나 느리게만 움직이던 도가 이번에는 아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움직임.
지금 도의 움직임은, 조금 전 아주 느리게 움직이던 때와 같은 길로 움직이고 있었다.
같은 길을 한 번은 아주 느리게, 한 번은 아주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팽중호는 이것을 두 사람이 깨어날 때까지 쉬지 않고 반복했다.
“후우.”
온몸이 땀으로 가득하고, 입에서 단내를 내뿜는 팽중호.
모르는 이가 본다면 도대체 이것이 무슨 효과가 있겠냐고 하겠지만, 분명 이것은 팽중호에게 있어 아주 큰 효과를 보여 주었다.
‘내공의 흐름이 훨씬 더 매끄럽고, 유연하며, 강해진다.’
이 수련을 하고 팽중호가 얻은 것은 내공의 흐름에 관한 것.
사실상 성격이 급한 팽중호에게 동중정 정중동과 같은 수련은 꽤 고역이었는데, 이번에 느낀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이 수련을 택한 것이다.
‘무뢰단세의 초식을 펼칠 때, 도가 터지는 것은 내가 내공의 흐름을 조절치 못한 것에도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