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얼마나 걸립니까?
선구운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건방진 청년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혈혈단신으로 이 마룡회에 쳐들어오다니?
물론 지금 주변을 보아하니, 실력은 상당한 것 같지만, 어차피 저들은 마룡회에서도 가장 하급 마두들.
저런 놈들을 베었다고 기고만장한 꼴을 보니 꼭지가 돌아 버릴 것만 같았다.
“어디서 온 놈팽이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여기서 네 명이 끝나겠구나.”
스윽- 탓- 탓- 탓- 탓-
팽중호를 둘러싸는 일곱 마두.
이들은 마룡회의 최고수들로 이루어진 마룡칠객(魔龍七客)이었다.
선구운의 손짓에 나타난 이들은 진득한 살기를 흘려 대며, 언제든지 튀어 나갈 준비를 하였다.
“죽여.”
파앗-
선구운의 말에 곧장 팽중호에게 달려드는 마룡칠객.
각자의 무기를 꼬나쥐고, 마기를 풀풀 풍기며 날아오는 그들의 공격은 꽤 살벌했다.
‘끝이 났군.’
마룡칠객의 합격은 선구운 자신조차 쉬이 막을 수 없다.
저런 새파란 애송이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선구운의 생각은 바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허접한 합격이라니. 삼류 무사들도 합격을 이렇게 하지 않을 거다.”
서걱-
딱 한 번의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한 번의 소리인데, 결과는 하나가 아니었다.
마룡칠객 일곱의 목이 전부 동시에 떨어졌다.
귀주성을 공포에 떨게 했던 마룡칠객의 최후라기에는 너무나 허망한 모습이었다.
“이, 이…….”
선구운은 지금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치열한 싸움도 아니고, 단 일수다.
단 일수에 지금 마룡칠객 모두가 명을 달리한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이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현 무림에 이것이 가능할 사람은…….
“도신!”
선구운이 발악하듯 도신이라는 별호를 내뱉었다.
현 무림에 마룡칠객을 단 일수에 베어 버릴 수 있는 사람은 도신 팽중호말고는 없었다.
게다가 저 젊은 나이에 도를 쓴다는 것.
인상착의까지 일치했다.
도신 팽중호.
그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이었다.
“너무 빨리 알아보는 거 아니야?”
선구운은 팽중호의 정체를 알아본 순간 도망칠 생각을 했다.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님을 알았으니 말이다.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
팽중호는 선구운이 도망칠 생각을 한다는 걸 알았다.
그의 두 눈이 바쁘게 굴러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를 놓칠 수는 없었다.
막후철과의 거래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슈와아아아악- 쾅-!!
선구운의 검에서 순간적으로 검은 마룡이 튀어나와 팽중호에게 날아들었다.
선구운을 마룡주라는 별호로 불리게 만든 마룡탐세검(魔龍貪世劍)이 펼쳐진 것이다.
무림을 공포에 떨게 만든 절세 마공.
선구운은 아무리 팽중호라도 쉽게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걱- 촤아아아악-
“크악!”
순식간에 선구운의 검을 쥔 팔이 떨어져 나갔다.
“그래도 실력은 있네.”
선구운을 완전히 베어 낼 생각이었는데, 그가 몸을 틀어 팔에서 그쳤다.
역시 그래도 무림에 악명을 떨칠 정도의 마두이기는 했다.
다만, 상대가 너무 나빴을 뿐이었다.
“사, 살려 줘!”
팔이 떨어져 나간 선구운은 곧바로 노선을 바꾸어 팽중호에게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목숨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했다.
“그럴 수는 없지.”
“제, 제발……. 컥!”
선구운의 목이 떨어졌다.
팽중호는 알고 있다.
선구운 같은 이를 살려 줘 봐야 후에 분명 후회한다는 것을 말이다.
“흐음.”
콰득-
선구운까지 모두 베어 낸 팽중호는 마룡회의 건물에서 현판을 뜯어내었다.
막후철에게 증표로 가져가야 할 것이 있어야 하니 말이다.
그렇게 마룡회의 현판을 챙긴 팽중호는 산에서 내려갔다.
“벌써 오셨습니까?”
산을 완전히 벗어나자, 조금 놀란 표정의 개방 방도가 다가왔다.
그는 팽중호가 일을 끝낼 때까지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팽중호가 다시 나타나 조금 놀란 것이었다.
“예. 돌아가죠.”
“알겠습니다.”
마치 산책이라도 다녀왔다는 듯, 너무나 평온한 팽중호의 모습에 개방 방도는 속으로 ‘역시 도신이다.’라고 생각하며, 팽중호와 함께 다시금 길을 돌아갔다.
개방 방도의 도움으로 최단 거리로 다시금 막후철이 머무는 동굴로 돌아온 팽중호.
팽중호는 거침없이 다시 안으로 들어섰다.
“왔나?”
“예.”
툭-
팽중호는 챙겨 온 마룡회의 현판을 막후철 앞에 내려놓았다.
아주 잠깐 현판을 내려다본 막후철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딴 건 안 가져와도 돼.”
“기념으로 하나 챙기는 건 좋지 않습니까?”
“클클클. 좋아. 그럼 도를 만들어 주지.”
“얼마나 걸립니까?”
“나도 몰라. 완성되면 내가 직접 가져다줄 테니까, 돌아가 있어.”
“무림맹까지 말입니까?”
“네가 어디 있든 상관없다. 저승만 아니라면. 클클.”
만족할 만한 성과물이 나오기까지의 시일은 막후철도 예상치 못한다.
게다가 신장운철은 막후철도 다루어 본 적이 많이 없는 물건.
팽중호의 무공에 맞게 이것을 제련하려면 꽤 시일이 걸릴지도 몰랐다.
그래서 직접 가져다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너무나 흔쾌히 알았다고 대답하는 팽중호.
막후철이 혼자 그런 물건을 들고 움직여도 괜찮단 말인가?
혈천궁이 사라졌다지만, 아직 무림이 완전히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보물을 노린 이들이 얼마든지 막후철을 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초절정 이상의 경지에 다다른 실력이다.’
막후철은 초절정 이상의 경지에 다다른 이었다.
어디서 쉽게 당할 실력은 아니었다.
“그럼 그동안 이것 좀 빌리겠습니다.”
“그래.”
팽중호는 막후철에게 빌렸던 도를 새로운 도가 완성될 때까지만 빌려달라 하였다.
그동안은 써야 할 도가 필요하니 말이다.
그렇게 모든 이야기를 끝마친 팽중호는 동굴을 빠져나왔다.
사실 급하다고 재촉하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들을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꼈기에 포기했다.
그리고 그렇게 재촉해서 나온 도의 품질이 좋을 리도 만무했고 말이다.
‘어차피 그들이 당장에 움직이지는 않을 테니까.’
마교가 당장에 움직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보통 크나큰 대규모 전쟁이 있을 때는 사전 징후가 보이기 마련인데, 아직 마교에서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에게 시간을 주는 걸 거야.’
그들이 원하는 것은 최대한 대등한 상태의 싸움.
무림맹이 지금 혈천궁과의 전쟁 이후 더욱이 날카로워졌지만, 아직은 세력을 확실히 정비하지 못한 상태다.
그렇기에 마교는 무림맹에게 시간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정비를 끝마칠 시간을 말이다.
‘그럼 이 시간을 잘 이용해야지.’
시간을 줬으면 시간을 잘 써야 하지 않겠는가?
이전에 다짐했듯 그들이 후회할 만큼 아주 밝게 빛나는 별이 되어 줄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파앗-
팽중호가 엄청난 속도로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축지법이라도 쓰는 듯 엄청난 속도로 나아가는 팽중호.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마차도 포기하고 직접 달려가는 팽중호였다.
* * *
거대한 대전.
그곳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오연한 자세로 앉아 있는 한 중년인.
그는 자신의 앞에 허리를 숙이고 있는 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교마가 죽었다고?”
“예.”
“하핫. 교마를 죽일 수 있는 이가 무림에 있다니.”
“전에도 말씀드렸던, 팽중호란 자입니다.”
“아, 검마랑 한준이 그놈이 말하던 자였던가?”
“예. 그렇습니다.”
중년인의 앞에 허리를 숙이고 있던 이가 대답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
바로 마뇌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중년인.
천마(天魔) 척산주.
현 마교를 이끄는 교주이자, 마교 서열 일 위의 절대 고수.
당금의 천하제일이라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는 자였다.
“재미있는 소식이야. 너가 말했던 그 별과 관련된 자이지? 백린성이었던가?”
“예. 그렇습니다.”
척산주는 지금 마뇌의 보고에 꽤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마교에 수많은 싸움이 있지만, 크게 새로운 일은 많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무림에서 들려온 소식에 당연히 흥미가 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무려 교마를 죽인 무인에 관한 이야기니 더 흥미가 생길 수밖에.
교마는 척산주가 인정한 무인 중 하나다.
별호의 뒤에 마(魔)라는 글자는 아무나 붙이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런 교마가 싸움 끝에 죽었다?
그것도 일 대 일의 싸움에서?
“아주 재미있어.”
따분했던 일상이 변화하는 것을 느끼는 척산주였다.
“그래. 그래서 언제 무림으로 나가면 될 것 같나?”
“소천마께서 폐관에서 나올 때, 그때가 적기일 것 같습니다.”
“흐음. 좋아. 그럼 준비하도록 해.”
“예.”
척산주의 말에 마뇌가 고개를 숙였다.
무림을 향한 진격의 준비.
이 진격에서 마뇌가 준비할 것은, 얼마나 더 흥미진진한 싸움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것.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사박- 사박- 사박- 사박-
대전을 벗어난 마뇌.
자신의 처소로 향하는 마뇌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으니, 나만 준비 잘하면 되겠어.”
팽중호가 그녀의 생각대로 성장하고 있었다.
교마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멸화진까지 훌륭하게 헤쳐 나왔다.
그가 이렇게 점점 성장하는 만큼, 또한 척한준도 성장하고 있었다.
폐관에 들어간 척한준이 다시금 나올 때.
그는 분명 상상할 수 없는 괴물이 되어 있을 것이다.
“무림의 역사에 새겨질 전쟁이 되겠지.”
이번 마교의 무림 진격은 분명 무림의 역사에 크게 새겨질 것이다.
그리고 그중 가장 크게 새겨질 내용은 척한준과 팽중호의 대결.
천마성과 백린성의 대결이 될 터였다.
“어서 더욱더 밝게 빛나 주길.”
* * *
새 무림맹주의 취임.
장순학이 새로운 무림맹주가 되었다.
무림맹의 힘을 알리기 위해 성대하게 치러진 취임식.
사람들은 정혼검신 장순학이 무림맹주가 되었다는 소식에 환호했다.
물론 왜 도신 팽중호가 아니냐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에게 무림맹주라는 직책까지 주어 짐을 더 짊어줄 수는 없다는 무림맹의 이야기에 어느 정도는 수긍했다.
‘우리는 이제 작은 산을 하나 넘었을 뿐입니다. 아직 넘어야 할 큰 산이 있습니다. 다들 힘을 하나로 모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장순학의 연설.
그의 연설처럼 무림은 혈천궁이란 산을 넘었지만, 이제 곧 마교라는 큰 산이 남아 있었다.
승리의 분위기에 취해 있는 무림맹이지만, 이 분위기에 계속 취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예!’
지금 무림맹의 모든 무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날카로운 칼과 같이 벼려져 있는 상태였다.
지금 이들은 지금 마교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두려운 것이 하나 있었으니…….
“자, 이제 다시 수련에 들어가야죠?”
“으으…….”
“으아악!”
바로 팽중호였다.
취임식이 끝나고 무림맹으로 돌아온 팽중호는 곧바로 수련을 시작하자고 했다.
이에 무림맹 무사들이 모두 기겁했는데, 이미 팽중호의 수련이 얼마나 지독한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팽중호가 하나 더 이들을 절망으로 빠트리는 말을 더했다.
“마교가 얼마나 강한지는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제 수련의 강도를 더욱더 올리겠습니다. 크크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