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거칠 것 없어 좋겠어.
“대단한 놈이 왔군.”
팽중호의 인사에도 한참이나 망치질하던 막후철의 입이 열렸다.
그는 팽중호를 바라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는데, 지금 팽중호가 내뿜는 기운만으로 그가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이름이 뭐냐?”
“팽중호입니다.”
“하북팽가의 놈이로군. 하북팽가에 이런 놈이 있었나?”
말과 함께 그제야 팽중호를 바라보는 막후철.
그가 아는 하북팽가는 망해 가기 직전의 무인들만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런 걸물이 있다니?
“아. 그렇군. 네가 최근에 이야기가 도는 그 도신(刀神)이란 놈이군.”
막후철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알고 있다.
최근 무림에서 팽중호를 부르는 별호가 바로 도신이었다.
혈천궁의 일 이후로 모두가 팽중호를 무림 제일이라 인정하며, 그에게 도신이란 별호를 붙여 준 것이다.
“허명일 뿐입니다.”
“클클클. 허명치곤 조금 과하지.”
“하하하.”
“그래. 도를 만들어 달라고?”
“예. 아주 단단한 도가 필요합니다.”
“얼마나 단단해야 하지? 한번 보여 봐라.”
스윽- 휙-
막후철이 팽주호에게 옆에 있던 도를 하나 던졌다.
그냥 옆에 있는 아무거나 던져 주는 것 같았는데, 팽중호가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걸작이었다.
“이거 부서져도 됩니까?”
“그래. 상관없다. 어차피 실패작이니까.”
실패작이 이 정도라니.
팽중호는 막후철을 찾아온 것이 역시나 맞았다고 생각했다.
“밖으로 나가시죠.”
“흠…… 그래. 그래야겠군. 여길 날려 먹을 수는 없으니까.”
막후철은 아직 팽중호의 무공을 보지도 않았는데도, 어떤 위력일지 대충 짐작했다.
지금 이 안에서 팽중호의 무뢰단세가 펼쳐졌다가는 아마 이 작업장이 날아가 버릴 터였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함께 동굴 밖으로 나온 두 사람.
팽중호는 동굴 입구에 서서 맞은 편에 보이는 절벽을 바라보고 섰다.
그리고 천천히 도를 움직였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무뢰단세(無雷斷世).
키이이이이이익- 서거거걱-
퍼석-
쿠구구구구구궁-
괴이한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멀리 떨어져 있는 절벽이 갈라졌다.
그리고 그대로 도가 터져 버렸다.
“흠. 그렇군. 알겠어.”
막후철은 팽중호의 무공을 보고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단 일수를 보고, 왜 도가 견디지 못하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가능하시겠습니까?”
“가능? 물론이지.”
막후철은 당연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만들기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다만, 초진동과 터져 나오는 내공을 견디려면, 웬만한 걸로는 안 돼.”
막후철의 말에 팽중호가 눈을 빛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초진동에 대한 것을 그저 한 번 보는 것으로 알아낸 것이다.
‘역시 정상에 오른 자는 다르군.’
막후철은 야장으로 정상에 오른 자.
어떤 일이든 정상에 선 자들은 달랐다.
“그럼 어떤 재료가 필요합니까?”
“신장운철(神匠隕鐵).”
신장운철(神匠隕鐵).
운철 중에서도 아주 극히 드문 운철.
아니,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의 물건이었다.
전설로 전해지는 수많은 신병이기들 중에서도 이것으로 만들어졌다는 무기는 딱 하나 존재했다.
천마검(天魔劍).
마교의 천마가 드는 검인 천마검이 바로 이 신장운철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었다.
“흐음…….”
문제는 아무리 팽중호라도 이 신장운철은 구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마교로 가서 천마검을 뺏어 올 수도 없으니 말이다.
“신장운철은 나에게 있으니 문제는 없는데, 그냥 줄 수는 없지.”
다행이라면 막후철에게 신장운철이 있다는 것이었다.
딱 도를 하나 만들 수 있을 정도만큼 말이다.
하지만 신장운철은 막후철에게 귀한 것.
그냥 내어 줄 수는 없었다.
“물론입니다. 원하는 것이 있으십니까?”
팽중호도 날로 먹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연히 그에 합당한 것을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일을 하나 처리해 주면 만들어 주지.”
“어떤 일입니까?”
“귀주성에 나를 아주 귀찮게 하는 놈들이 하나 있거든. 그곳을 없애고 와.”
귀주성은 무림맹의 힘이 가장 닿지 않는 곳 중에 하나였다.
때문에 혈천궁에서 도망친 많은 이들도 귀주성에 둥지를 틀었다.
그만큼 귀주성에는 사파와 마두들이 횡행했는데, 그들 중 특히나 막후철을 아주 귀찮게 하는 이들이 있었다.
“어딥니까?”
“마룡회(魔龍會).”
마룡회(魔龍會).
귀주성에 자리를 잡은 마두들의 모임.
그들은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마두 중 하나인 마룡주(魔龍主) 선구운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이었는데, 사실상 무림맹에서도 그들에게서 손을 뗀 상태였다.
귀주성에 대놓고 있지만, 그들을 소탕하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무인들을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마룡회는 강력한 곳이었다.
‘내 검을 만들어라. 그러지 않으면 죽일 거다.’
그런 마료회의 회주인 선구운은 막후철을 찾아와 자신의 검을 만들라고 협박했다.
하지만 막후철은 마두의 검을 만들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가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그 제안을 거절하니, 계속해서 부하들을 보내어 막후철에게 협박을 계속했다.
그것이 최근 들어 더 심해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딱 팽중호가 나타난 것이다.
막후철은 팽중호라면 마룡회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일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가 그럴 실력도 안 된다면, 어차피 신장운철로 도를 만들어 줘야 소용없을 테니 말이다.
“가능하겠어?”
“물론입니다. 다만, 쓸 만한 도 하나만 빌려주십쇼.”
“좋아.”
막후철은 곧바로 팽중호에게 도를 하나 건네어 주었다.
팽중호는 그 도를 차고, 마룡회가 어디에 있는지 듣지도 않은 채, 곧바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어디에 있는지는 개방에게 물어보면 되었으니 말이다.
타탓- 탓- 타앗-
엄청난 속도로 산에서 내려와 주변의 마을로 향하는 팽중호.
그리고 곧바로 개방의 분타를 찾았다.
이미 개방 방주인 무명에게 개방의 힘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으니 문제없었다.
“마룡회가 어디에 있습니까?”
“아, 예.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팽중호의 말에 곧바로 개방 방도가 앞서 나가며 팽중호를 이끌기 시작했다.
귀주성의 수많은 산들 중에서 마룡회가 있는 곳을 정확히 찾기란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개방 방도를 따라 이리저리 굽이굽이 돌아 도착한 어느 산.
주변의 다른 산들과는 다르게 안개가 자욱이 껴 있는 음기가 강하게 느껴지는 산이었다.
“여기 중턱에 있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개방 방도는 여기서 돌아갔다.
그가 지금 이곳으로 들어가야 팽중호의 짐만 된다는 것을 잘 알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개방 방도가 돌아가고, 팽중호는 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산에 딱 발을 들여놓는 순간 느껴지는 살기.
‘이러니 무림맹이 고생하지.’
지금 이 안개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진법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흔적을 감춰주고, 방향을 상실하게 하며, 모습마저 흐릿하게 만들어 준다.
이 산 전체에 이런 광범위한 진법이 펼쳐져 있으니, 무작정 나서 봐야 피해만 보았을 것이다.
“자아. 얼마나 대단한지 좀 볼까?”
씨익-
팽중호가 미소를 지으며 거침없이 산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갑자기 날아드는 병장기들.
이 안개 속에 숨어 있던 이들이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서걱-
하지만 그들의 병장기가 채 팽중호에게 닿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명을 달리했다.
일초지적도 되지 않는 그들.
한참 달리던 팽중호는 갑자기 움직임을 딱 멈추었다.
“이래서는 하루 종일 찾아도 못 찾겠네.”
지금까지 수십을 베어 내면서 산을 올랐는데, 제자리만 계속 맴도는 느낌을 느꼈다.
뚫고 올라서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런 진법은 아닌 듯싶었다.
그렇다면 방법을 바꾸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콰아아아아아아-
팽중호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주변의 안개가 모조리 걷힐 정도의 기운.
그리고 팽중호의 도가 그대로 한곳을 향해 그어졌다.
스스스스스스슥- 서걱-
쿠구구구구구궁-
산의 한쪽이 그대로 참격에 베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변을 자욱이 덮고 있던 안개도 사라졌다.
“진즉에 이럴 걸, 괜히 헛고생만 했네.”
팽중호는 환해진 시야로 다시금 주변을 바라보았다.
팽중호를 중심으로 주변에 널려 있는 시신들.
안개 속에서 팽중호가 베어 낸 마룡회의 무인들이었다.
“멀리 있지는 않군.”
안개가 사라지자 제대로 기감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수없이 많은 기감이 잡혔다.
아마도 마룡회의 본진일 터였다.
파앗-
팽중호가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몇 발짝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벌써 마룡회의 본진 앞에 도착한 팽중호.
산 중턱의 평지에 세워진 거대한 건물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게 왔네.”
정문의 가장 위의 현판에 쓰여 있는 마룡회라는 글자.
확실히 제대로 찾아왔다.
“싹 다 마두라 그랬지? 그럼 뭐, 거칠 것 없어 좋겠어.”
이곳으로 오면서 개방 방도에게 이미 마룡회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는 들었다.
마두들이 모인 곳.
팽중호는 마두들을 좋아했다.
어떻게 해도 뒤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 만한 놈들이기도 했고 말이다.
쾅-
팽중호는 그대로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팽중호가 오는 것에 대해 신호가 갔는지, 수많은 마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두 놈들이 뭐 잘났다고, 이렇게들 모여 계실까? 뭐, 편하고 좋지만 말이야.”
“놈!!!”
“어린놈이 감히!!”
팽중호의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몇몇 마두가 그대로 팽중호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지금 눈앞의 팽중호가 정확히 누군지 몰랐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무모한 달려듦이었다.
서걱-
팽중호의 도가 움직이지도 않은 것 같은데, 달려들던 이들의 목이 동시에 달아났다.
이 모습에 주변에 있던 마두들의 두 눈이 커졌다.
말도 안 되는 엄청난 강자라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이야. 역시 잘 만들긴 잘 만드시는군.”
팽중호는 그런 그들의 반응은 개의치 않고, 손에 들린 도에 감탄했다.
막후철이 잠깐 쓰라고 준 것인데, 품질이 범상치 않았다.
전에 쓰던 무적도와 비교해도 조금도 부족하지 않을 듯했다……. 아니, 더 좋았다.
이게 괴신장이라 불리는 막후철의 솜씨인가 싶었다.
“자. 그럼 끝을 보자고.”
저벅-
팽중호가 한 발짝을 앞으로 내디디며 말했고,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마두들이 베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감히 팽중호의 근처에도 오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나가는 마두들.
지금 팽중호는 교마와 싸운 이후로 더 강해진 상태.
이런 마두들은 팽중호의 일초를 막는 것도 불가능했다.
“패기 넘치는 미꾸라지가 나타났구나!”
그때 붉은 바탕에 검은 용이 장식된 무복을 입은 이가 나타나 소리를 쳤다.
바로 마룡주 선구운이었다.
‘저놈이군.’
팽중호는 한눈에 선구운을 알아보았다.
그의 기운이 가장 강한 것도 그랬지만, 옷부터 딱 마룡주라는 그의 별호에 어울리지 않은가?
“감히 이 마룡회에 와서 행패를 부리다니! 죽고 싶은가!”
“이렇게 실력 가늠을 못 해서야. 쯧. 그래서 뒤지는 거다. 너무 원망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