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그만한 무기가 필요합니다.
무림맹의 승리.
무림맹과 혈천궁의 전쟁은 그렇게 무림맹의 승리로 끝이 났다.
혈천궁은 완전히 와해가 되었고, 무림맹은 빠르게 움직이며 무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혈천궁에 가담했던 문파들은 그에 합당한 징계를 받았으며, 아직까지 혈천궁의 잔당을 자처하는 이들은 모두 베어 버렸다.
다소 강경한 대처.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 어수선한 무림을 수습할 수가 없었다.
‘승리에 도취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다들 조만간 신강의 마교가 무림으로 올 것이란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최대한 빠르게 다시 정비를 끝내고 마교를 막아 낼 준비를 해야만 했다.
‘신(新)무림맹(武林盟).’
마교의 침공을 대비하기 위해 새로운 무림맹이 탄생했다.
물론 완벽히 새로워졌다기보다는 기존의 무림맹을 개편했다는 것이 맞을 터였다.
이제는 완전히 하북성에 터를 잡은 무림맹은 세를 키우고, 안정화를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팽 소가주! 무림맹주를 맡아 주시오!”
“맞소! 무림맹주가 되어 주시오!”
“아아. 절대로 싫습니다.”
팽중호에게 무림맹주의 자리를 권하는 사람들.
새로운 무림맹이 되었으니, 새로운 무림맹주를 추대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팽중호는 한사코 반대하였다.
‘그런 귀찮은 직책을 맡을 수는 없지.’
이들을 강해지게 하려고 스스로 나섰지만, 무림맹주란 직책을 맡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무림맹주라는 자리는 팽중호에게는 귀찮은 자리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무림맹주라는 명예는 그에게 어차피 관심 없었고, 오히려 책임만 잔뜩 가진 자리였다.
“그럼 누가 무림맹주를 맡는단 말입니까?”
지금 무림에서 팽중호보다 적임자는 없다.
그의 힘으로 혈천궁을 이겼으며, 그의 힘 덕분에 무림맹이 강해졌으니 말이다.
게다가 무인들이 그에게 보내는 신뢰도 아주 두텁다.
이보다 무림맹주에 적합한 자가 있단 말인가?
“제가 아주 좋은 분을 알고 있습니다.”
“누구십니까?”
팽중호가 적합한 사람을 알고 있다는 말을 하자,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가 추천한다면 이들도 수긍할 수는 있으니 말이다.
“장순학…… 정혼검신님 입니다.”
“아! 하지만…… 정혼검신께서도 무림맹주 자리는 고사하셨습니다.”
확실히 팽중호가 아니라면, 지금 무림맹주의 자리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은 장순학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장순학도 이미 무림맹주를 맡지 않겠다고 고사해 둔 상태라는 것이었다.
자신은 그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며 말이다.
“제가 직접 부탁드리겠습니다.”
팽중호는 직접 장순학에게 부탁을 할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지금 그보다 무림맹주의 자리에 적격인 인물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이 상황에서 무림맹주를 하지 않으려면, 장순학에게 떠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팽중호는 곧바로 장순학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그래도 모두 무림맹에 모여 있었기에, 장순학을 바로 만날 수 있었다.
“무슨 일인가?”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 자네의 부탁이라면 반드시 들어주겠네.”
“예. 꼭 반드시 들어주셔야 합니다.”
“말해 보게.”
장순학은 정말로 팽중호의 부탁이라면 그 어떤 것도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그는 그 정도로 장순학에게는 은인이었으니 말이다.
“무림맹주를 맡아 주십시오.”
“음?”
팽중호의 부탁에 장순학의 눈이 조금 꿈틀했다.
이건 조금 예상치 못한 부탁이었기 때문이었다.
장순학이 무림맹 맹주 자리를 거절했던 이유 중 하나는 팽중호 때문도 있었다
지금 무림맹주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은 장순학의 생각에도 팽중호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팽중호가 자신에게 무림맹주를 맡아 달라고 한다니?
“자네가 더 어울리는 자리이네.”
“아니요. 저는 무림맹주라는 직책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허허…….”
“조금 전에 반드시 부탁을 들어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장순학은 가만히 팽중호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림맹주에는 팽중호가 어울린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가 무림맹주가 된다면, 운신의 폭이 줄어들지는 않을까 싶었다.
“알겠네. 내가 맹주의 자리를 수락하지.”
그래서 장순학은 무림맹주 자리를 수락했다.
어쩌면 그것이 더 나을 수 있으니 말이다.
자신이 훌륭한 무림맹주가 된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팽중호에게 짐이 되지 않는 무림맹주가 되겠다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맹주님.”
팽중호는 장순학이 수락하자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그를 맹주님이라 불렀다.
그리고 다시금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장순학이 무림맹주 자리를 수락했으니, 이제 공표해야 했으니 말이다.
“자. 여기 정혼검신께서 무림맹주를 맡아 주실 겁니다.”
“오오!”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부족하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짝짝짝짝- 짝짝짝짝-
장순학의 말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장순학이라면 무림맹주의 자리에 조금도 부족한 사람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니, 어쩌면 더 어울리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나이나 배분으로 보자면 말이다.
팽중호가 무림맹주를 하기에는 사실 상당히 젊은 나이였으니까.
“그럼. 곧바로 새로운 무림맹주님을 중심으로 무림맹 개편을 시작하겠습니다.”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군사 사마운의 말.
무림맹주가 정해졌으니, 이제 대대적인 개편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취임식은 보름 후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럽시다.”
“알겠소.”
그리고 장순학의 무림맹주 취임식도 정해졌다.
장순학은 이런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취임식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세간에 보여지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혼검신 장순학이 무림맹주로 있는 새로운 무림맹을 알려야 하니 말이다.
“그럼 일단 세부적인 것은 후에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이만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사마운의 주도로 진행되던 회의가 끝을 맺었고, 사람들은 다시금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이 회의실에 남은 이는 셋.
팽중호, 장순학, 사마운이었다.
“역시 아직은 이 자리가 어색하군.”
“하하, 금방 적응하실 겁니다.”
“제가 옆에서 최대한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장순학의 옆에 사마운이 있다면, 장순학이 무림맹주의 자리에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터였다.
“그럼. 저는 잠시 볼일 좀 보고 오겠습니다. 아마 취임식에는 못 올 것 같습니다.”
“무얼 하려고 하나?”
툭툭-
“이걸 새로 만들려고 합니다.”
팽중호가 손으로 툭툭 가리킨 것.
그것은 바로 도(刀)였다.
혈천궁과의 마지막 싸움에서 교마와 싸우고 나서 완전히 박살이 나 버린 무적도.
그렇기에 지금 팽중호에게는 새로운 도가 필요했다.
새로운 초식을 견딜 수 있을 도가 말이다.
“어디로 갈 건가?”
“조금 멀리 가 볼까 합니다.”
“얼마나 멀리 갈 건가?”
“귀주로 갑니다.”
* * *
귀주성.
하북팽가와 무림맹이 있는 하북성과는 거의 정반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었다.
워낙에 산이 많은 데다가, 흐린 날이 대부분인 귀주성은 여러 괴인(怪人)이 머무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조용히 산에서 혼자 지내기 좋은 곳이니 말이다.
여러 괴인 중에서 팽중호는 이곳으로 한 괴인을 찾아왔다.
‘괴신장(怪神匠).’
괴신장(怪神匠) 막후철.
온 무림 전체를 따지고 봐도 단연 첫 손에 꼽힐 만한 실력의 야장.
그가 만든 모든 무기는 신병으로 불렸으며, 그가 실패작이라 칭한 것들도 온 무림을 놀라게 할 정도의 품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야말로 야장 중에서는 신이라고 불러도 될 자였다.
다만, 막후철은 워낙에 괴이한 성격과 행적을 보여 주어, 그의 별호 앞에 괴(怪)가 붙었다.
당연히 그는 아무에게나 무기를 만들어 주지도 않았을뿐더러, 쉽게 만날 수 있는 자도 아니었다.
“어디 보자…….”
팽중호는 귀주성에 도착해, 한 야산을 천천히 올랐다.
괴신장 막후철이 지내고 있다는 야산.
개방의 도움으로 팽중호는 이곳을 정확히 찾아온 것이었다.
“저기 있구나.”
그렇게 산을 오르던 중 팽중호는 어느 한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교묘하게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 않는 동굴의 입구.
팽중호가 동굴 앞으로 다가서자, 아주 희미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깡- 깡- 깡- 깡- 깡-
쇠를 두드리는 망치질 소리.
팽중호는 제대로 찾아왔음을 느꼈다.
저벅-
팽중호가 동굴 안으로 발을 딱 내딛는 그 순간.
“돌아가라.”
귓가에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바로 앞에서 말하는 듯 또렷하게 들리는 목소리.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바쁘니 그냥 돌아가라.”
“천마의 목을 베어야 하는데, 그만한 무기가 필요합니다.”
“클클클. 그럴 실력은 되나?”
“괴신장께서 도를 만들어 주시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팽중호의 말에 동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물론 그 와중에도 망치질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일단 이곳까지 들어와 봐라.”
다시 들려온 목소리.
이 목소리에 팽중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슈슈슈슈슈슈슉-
그때.
갑자기 양옆의 벽면에서 무수한 비수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엄청난 예기를 자랑하는 비수들.
‘뭐, 이럴 줄 알았지.’
지금 이 동굴에는 아마 수많은 기관진식들이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막후철에게 무기를 만들어 달라고 찾아오는 이들이 분명 수없이 존재했을 터다.
물론 아무나 알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막후철은 귀찮은 이들을 막기 위해 이 동굴에 직접 기관진식을 설치한 것이다.
상당히 위협적인 기관진식들이 설치되어 있지만, 팽중호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주지 못했다.
이런 것에 당할 실력은 아니니 말이다.
“흣차.”
이곳저곳에서 날아오는 기관진식을 파훼하던 팽중호는 그것도 귀찮아 그대로 허공답보를 시전했다.
보통 기관진식은 발로 밟았을 때 발동하니 말이다.
깡- 깡- 깡- 깡- 깡- 깡-!
망치질 소리가 더욱더 커졌고, 저 멀리 붉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화로의 불길이 내는 빛인 듯싶었다.
그렇게 팽중호가 빛을 내는 곳으로 들어가려던 그때.
슈와아아아악-
팽중호의 사방에서 도검들이 갑자기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 어느 곳으로도 피할 수 없는 공격.
게다가 이 검들의 예기는 이미 강기를 두른 것과 같은 정도로 날카로웠다.
막후철이 직접 공들여 만든 도검으로 만든 마지막 함정인 것이다.
초절정의 무인도 방심하면 그대로 몸이 꿰뚫릴 함정.
팡- 콰창-!
하지만 팽중호는 현경의 경지를 넘어선 무인.
간단하게 도검들을 쳐 내 버리고, 빛이 나오는 안으로 들어섰다.
화르르르르륵- 깡-! 깡-! 깡-!
얼굴이 뜨거울 정도로 거센 불길과 망치질 소리.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한 명의 노인.
노인이지만 그 풍채는 이미 범인을 벗어나 있을 정도로 장대해 마치 탁탑천왕(托塔天王)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괴신장 막철후 님을 뵙습니다.”
그랬다.
지금 팽중호의 앞에 보이는 이 노인이 바로 무림 제일의 야장으로 꼽히는 괴신장 막철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