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밝게 빛나 주겠어.
장순학은 현경이라는 경지에 도달하고, 천하삼십육검에 대해 다시금 더욱 깊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천하삼십육검의 본질에 대해 깨달았고, 천하삼십육검은 그것 자체로 훌륭하며 완성된 무공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장순학의 천하삼십육검은 큰 변화는 없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저 겉으로 보았을 때일 뿐.
위력은 이전과 천지 차이를 보였다.
구파일방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종남파의 절세 무공인 천하삼십육검의 끝에 다다른 장순학의 힘은, 팽중호를 제외한다면 무림맹 최고라고 할 만하였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각- 서거거걱- 툭-
구릉주가 모든 힘을 끌어모아 장순학의 검을 막아 보려 하였다.
하지만 결국 장순학의 검은 구릉주의 도강을 베어 내고, 그의 몸까지 베어 버렸다.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는 구릉주의 몸.
“후우우…….”
장순학은 아주 깊은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 초식은 그에게도 꽤 무리가 가는 초식이었다.
게다가 구릉주를 베면서 온 반발력에 온몸의 기혈이 뒤틀려 버렸다.
그래서 피가 입으로 올라오려 했지만, 장순학은 다시 삼켰다.
아직 그런 모습을 보일 때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움직여야겠군.”
장순학은 다시금 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을 보니 이미 팽중호와 위지철도 상대를 모두 쓰러트린 상황.
이대로라면 이곳에서의 전쟁은 손쉽게 끝이 날 터였다.
서걱-
장순학은 피를 억누르고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는데, 빠르게 주변이 정리되는 것이 느껴졌다.
엄청난 힘과 속도로 적을 베어 내는 팽중호 때문이었다.
규격 외의 강자인 교마를 베어 내고도 엄청난 힘을 보여 주고 있었다.
“장 무사님. 이제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겠군.”
이제 주변에 살아 있는 혈천궁의 무인은 없었다.
장순학에게 다가온 팽중호는 조금 지친 얼굴이지만, 그래도 꽤 밝은 말투로 말을 건네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위지철과 도수도 다가왔다.
“바위를 넘어 올라가면 될 것 같습니다.”
위지철의 말대로 저들이 바위를 무너트려 막아 낸 길은 이곳에 있는 무인들이라면 충분히 넘어설 수 있는 상태였다.
팽중호는 일단 살아남은 무인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여력이 있는 분들은 크게 다치신 분들을 업어 주십시오.”
“예.”
수많은 사상자가 나온 지금의 전쟁.
멀쩡한 이가 드물 정도의 싸움에 다들 피곤하지만, 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밖에서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시라도 빠르게 움직여 그들을 도와주어야 했다.
“자, 그럼…….”
그렇게 팽중호가 이제 이들과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려던 때.
쾅- 쾅- 쾅- 쾅- 쾅-
화르르르르르르륵-
갑자기 주변 절벽에서 엄청난 폭발과 함께 굉음이 터져 나오고, 이내 거센 불길이 절벽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빠져나갈 길이었던 곳에서도 거센 불길이 내려오고 있었다.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태.
그 어디도 안전한 곳이 없었다.
“젠장. 진법을 설치해 두었군.”
* * *
마교로 발걸음을 옮기는 마뇌.
그녀는 마차에서 밖을 내다보며,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불 난리를 겪고 있겠어.”
마뇌는 지금쯤이면 그녀가 계획한 마지막 시련을 팽중호가 겪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멸화진(滅火陳).
아주 대단한 진법은 아니었다.
그저 화탄의 불길을 원하는 방향으로 향하게 하며, 더욱 불길을 키우는 진법.
다만, 이 진법은 화탄이 터지기 전이라면, 진법가들이라도 알 수 없다는 장점이 있었다.
화탄의 화약 냄새를 미리 맡는다면 해제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터지는 곳으로 무림맹 무인들이 당도할 때는 한창 싸움이 한창일 때.
그럴 경황도 없을뿐더러, 짙은 피 냄새에 화약 냄새가 가려질 터였다.
마뇌는 이것까지 생각한 것이었다.
“사방이 막힌 절벽과 거센 불길. 과연 어떻게 빠져나오려나 궁금하네.”
그 절벽은 마뇌가 점지해 둔 자리였다.
멸화진을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곳.
아무리 고수들이라도 멸화진이 펼쳐진 그곳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특히나 부상자들까지 챙겨서는 더욱더.
“그가 빠져나오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때.
마차를 끌고 있던 이가 마뇌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전에 마뇌를 지키고 있던 자.
마뇌를 가장 가까이서 지키는 호위였다.
마교 서열 십구(十九) 위(位) 흑연.
그는 천마가 직접 마뇌를 위해 호위로 붙여 준 무인이었다.
“아니요. 그는 무조건 빠져나올 겁니다.”
마뇌는 팽중호가 무조건 이 멸화진에서 빠져나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백린성을 타고난 이였으니 말이다.
이 정도 시련에 쓰러질 리가 없었다.
문제는 그가 어떻게 이 시련을 빠져나올 것 인가와 그리고 그 후에 그가 어떻게 변할 것 인가가 문제일 뿐이었다.
“앞으로 큰 적이 될 자인데, 없애는 것이 낫지 않았습니까?”
“호홋. 그가 존재함으로 소천마께서도 더욱 강해지실 겁니다. 아직은 그가 필요합니다.”
천마성과 백린성은 서로 경쟁하며, 서로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어 준다.
아직 천마성을 타고난 소천마 척한준은 완성이 되지 않았다.
그가 완성되어 무림에 나가는 날.
그때 그의 손으로 직접 백린성인 팽중호를 베어 내는 것이 마뇌의 계획이었다.
그렇기에 아직까지 팽중호가 필요했고, 팽중호는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팽중호가 강해지는 만큼 척한준은 더 강해질 테니 말이다.
“교에 빨리 돌아가야겠습니다. 과연 무림맹이, 그가 어떻게 바뀔지를 봐야 할 테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흑연의 대답과 함께 마차는 더욱 빠르게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차 안에 있는 마뇌의 미소는 조금 더 짙어지기 시작했다.
* * *
화르르르르르르륵-
뜨거운 열기가 계곡을 뒤덮고, 사방에서 불길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불길로 완벽히 둘러싸인 사방.
어디로도 빠져나갈 곳은 없었다.
“일단 이리로 모두 모이십시오.”
무인들이 모두 한곳으로 똘똘 뭉쳤다.
최대한 멀쩡한 이들이 불길을 밀어내며 불길이 다가오는 것을 최대한 막아 내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내공은 유한했고, 불길은 계속 더 강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제 뒤에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주십시오.”
“무얼 하려는 건가?”
“길을 내겠습니다.”
길을 낸다니?
이 상황에서 어디에 길을 낸단 말인가?
저벅- 저벅- 저벅- 저벅-
팽중호가 걸음을 옮겨 바위로 막힌 길 앞에 섰다.
지금 길을 뚫을 수 있는 곳은 여기 말고는 없으니 말이다.
스으윽-
팽중호가 도를 앞으로 쭈욱 뻗어 들었다.
모든 시선이 팽중호에게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몇은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해했고, 몇은 그가 과연 이것에 성공할 수 있을지 의심했다.
“후우.”
팽중호는 그런 그들의 모든 시선을 등에 업고, 모든 내공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교마와의 싸움 때문에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니고, 손에 들린 도(刀)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지만, 지금 그런 것을 다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여기서 이들을 다 죽게 둘 수는 없었다.
‘나 혼자만이라면, 얼마든지 손쉽게 살겠지만…… 그럴 수는 없지.’
혼자만 이곳을 빠져나간다면, 분명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 버리면, 이곳에 있는 다른 무인들이 모두 죽는다.
그렇게 되면 무림맹의 전력이 너무나 큰 타격을 받는다.
이 혈천궁이 끝이 아니라, 마교까지 상대해야 하는데 말이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무뢰단세(無雷斷世).
다시금 팽중호의 손에서 펼쳐지는 무뢰단세.
‘버텨라. 버텨. 제발.’
무뢰단세의 문제.
이 힘을 도가 견딜 수 없다는 것.
지금 팽중호의 손에 들린 도는 평범한 도.
이 무뢰단세를 버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팽중호는 최대한 이 도를 보호하면서 무뢰단세를 펼쳐 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쩌저저저저저적- 파사사사사삭-
하지만 그럼에도 도가 부서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초식이 펼쳐지기도 전에 도가 먼저 부서질 판.
주르륵-
게다가 내상까지 덧나기 시작하며, 팽중호의 입가에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교마와의 싸움에서 알게 모르게 입었던 내상 탓이었다.
동시에 터진 두 가지 문제.
잘못하면 무공이 역류해 오히려 팽중호가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스으으으으윽-
그때.
팽중호의 등 뒤로 새로운 기운이 흘러들더니, 도를 보호하는 것에 힘을 보탬은 물론, 내공까지 보충해 주기 시작했다.
“힘을 보태겠네.”
“저도 보태겠습니다.”
“주군!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장순학과 위지철, 그리고 도수가 팽중호에게 내공을 전해 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 뒤로 멀쩡한 무림맹 무인들 모두가 팽중호에게 내공을 전해 주었다.
팽중호의 몸에 충만해진 내공.
번쩍-
팽중호는 모두의 내공을 담아서 그대로 도를 내뻗었다.
“무뢰단세(無雷斷世)!!!”
우렁찬 기합과 함께 내질러진 무뢰단세.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이 멈춘 듯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거세게 타오르던 불길도, 내공을 전해 주던 무인들도 멈추었다.
그리고.
서서서서서서서석- 퍼엉- 파사사사사사삭-
불길에 휩싸인 채로 앞을 가로막고 있던 바위들에 금이 가더니, 그대로 터져 나갔다.
훤하게 뚫린 길.
다들 이 엄청난 광경에 멍하니 서 있었다.
자신들이 내공을 보태 주었다지만, 절벽 높이만큼 쌓여 있던 바위들이 단 일도에 모조리 터져 나갔으니 말이다.
“빨리 움직이죠.”
“아, 예!”
팽중호의 외침에 멍하니 있던 무인들이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사방에서는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타다다다닥-
그렇게 빠르게 계곡 밖으로 벗어난 무림맹 무인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눈앞에는 꽤 참혹한 현장이 들어왔다.
시산혈해(屍山血海).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때 한 명의 무인이 팽중호들에게 다가왔다.
피 칠갑을 하고 있었지만, 분명한 무림맹 무인.
“괜찮습니다. 그보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피해는 컸지만, 결국 승리했습니다.”
생각 이상의 큰 피해가 있었지만, 결국 혈천궁을 이겼다.
승리를 기뻐해야 할지 고민되게 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무림맹.
하지만 결국 이긴 것이다.
어쩌면 이들과 아주 오랫동안 싸워서 입을 피해보다는 이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혹시 모르니 주변을 다시 살펴 주십시오.”
“예.”
팽중호는 혹시나 아직 적의 계책이 남아 있을지 모르니 다시 한번 더 경계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들 전쟁의 여파에 피곤함이 가득하겠지만, 아직 방심할 순간은 아니었다.
‘이것으로 우리가 더 강해지길 바라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그 생각 이상으로 강해져 주지.’
팽중호는 마교와 마뇌가 바라는 것.
그것은 무림맹과 팽중호 자신이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팽중호는 그렇게 해 주기로 했다.
그들 생각 이상으로 더욱더 강해지기로 말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다시금 만들지 않을 생각이었다.
‘내가 백린성인지 뭔지라면, 그 어떤 별보다 밝게 빛나 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