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오싹합니다.
원래라면 서로의 실력을 가늠하며, 천천히 싸움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거대한 전쟁 중.
자신들이 늦으면 밖의 피해가 커진다.
그것을 알기에 팽중호는 거침없이 달려든 것이다.
목표는 당연히 교마.
‘저자를 이겨야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
검마와 비슷한 정도의 절대 고수.
자신이 교마를 이겨야만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터였다.
“좋군 그래.”
교마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팽중호를 보며 미소 지었다.
피가 끓어오르는 느낌.
팽중호를 마주하자 오랜만에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분이었다.
‘그래. 이 느낌 때문에 내가 사는 것이었지.’
쿠구구구구구구-
교마의 몸에서 항거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기운이 솟아올랐다.
주변을 장악하는 거대한 기운.
일순 모든 이들의 시선이 교마에게 모일 수밖에 없을 정도의 기운이었다.
“흘흘. 힘을 다해서 부딪치시오.”
“예. 물론 그럴 생각입니다.”
팽중호의 무적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마의 두 주먹도 움직였다.
교마의 무공은 ‘파천수라권(破天修羅拳).’
마교에 있는 수많은 권법들 중에서도 단연 첫손에 꼽히는 무공.
게다가 교마는 그것을 현경의 경지 이상까지 익힌 인물.
그 위력은 이미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
콰아앙-!!!
쿠드드드드득-
팽중호의 무적도와 교마의 주먹이 부딪쳤는데, 주변 땅이 꺼지고, 절벽이 부서져 내렸다.
두 사람이 모든 힘을 낸 것도 아닌 부딪침에 생긴 결과.
“힘이 꽤 좋은 것 같소.”
“그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한 번의 부딪침으로 두 사람은 서로의 실력을 제대로 느꼈다.
교마는 팽중호가 예전에 보았을 때보다 몰라보게 강해졌다는 걸 알았고, 팽중호는 교마가 역시나 검마 못지않게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
‘역시 엄청나다.’
무적도를 향해 타고 들어오는 묵직한 충격.
팽중호가 현경의 경지에 오르고 오랜만에 느껴 보는 충격이었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무뢰(無雷).
팽중호는 곧바로 무뢰를 펼쳤다.
어차피 지금 교마에게 다른 초식들은 아무런 위협조차 주지 못할 것이란 걸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호오?”
교마는 지금 팽중호가 무뢰를 펼치자, 자신의 주변이 바뀌었다는 것을 눈치채었다.
주변 모두가 팽중호의 영역이란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휘이익-
팽중호의 무적도가 힘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무뢰를 펼칠 때 가볍게 움직일 때와는 달랐다.
그만큼 교마가 강자라는 것이었다.
서걱-
자신을 베어 오는 기운을 향해 교마가 주먹을 내뻗었는데, 주먹에 서려 있던 그의 권강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급하게 손을 틀지 않았다면, 그대로 손이 잘렸을지도 몰랐다.
“놀랍군.”
갑자기 공간이 갈라지듯 베어 오는 것도 놀라웠는데, 그 힘이 자신의 권강을 베어 낼 정도라는 것은 더 놀라웠다.
현경의 경지에 다다른 자신의 권강이다.
보통의 권강에 비하면, 말도 못 하게 더 강력하다.
그런데 그런 권강을 마치 종이를 자르듯 손쉽게 잘라 버리다니?
‘게다가 공간 자체를 지배하에 두는 것도 놀라워.’
또 하나 교마를 놀라게 한 것.
그것은 지금 팽중호가 펼친 무뢰의 초식 그 자체였다.
현경에 오르게 되면 깨달음에 따라 무공이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교마는 지금까지 마교에서 현경의 경지에 오른 이들의 무공을 여럿 견식했는데, 공간을 자체를 지배하에 두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정말 목숨을 걸어야겠군 그래. 흘흘.’
교마는 속으로 웃으며 모든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상대의 무공이 강하다는 것은 인정했다.
그렇지만 이대로 넋 놓고 질 수는 없는 노릇.
평생을 갈고 닦은 힘은 보여 주고 끝내야 후회 없는 삶이 아니겠는가?
스으으윽- 쿠구구구구구구-
교마의 몸에서 기운이 일어나더니, 이내 그것이 하나의 형상을 취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수라의 형상.
한눈에 보아도 절대 범상치 않은 형태.
교마가 파천수라권으로 현경의 경지에 다다랐을 때 만들어 낸 것이었다.
수라지형(修羅之形).
교마가 가진 내공과 기운을 형상화한 것.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강기가 수라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어떻소?”
“대단합니다.”
솔직히 교마의 수라지형은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마치 세상을 부술 듯한 위용은, 저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위험한지를 알려 주었으니 말이다.
“그럼 다시 시작해 보겠소.”
쾅-
교마가 먼저 움직였다.
교마의 움직임을 따라 함께 움직이는 수라지형.
팽중호를 향해 달려드는 교마와 수라지형이 내는 압박감은 대단했다.
휘이이익-
팽중호의 무적도가 교마의 움직임에 맞춰 움직였다.
허공을 가르는 무적도.
하지만 그때마다 교마의 신형이 흔들리고, 수라지형이 잘려 나갔다.
서걱-
교마의 얼굴에 작은 상처가 났다.
다만 그래도 교마의 움직임은 막을 수 없었다.
다른 무인들이라면 이미 목이 달아났을 팽중호의 공격.
하지만 교마는 확실히 달랐다.
아슬아슬하게 팽중호의 공격을 피해 내거나 막아 내었으니 말이다.
콰아앙-!!!
쿠르르르르릉-
결국 팽중호의 지척까지 다가온 교마가 그대로 팽중호에게 주먹을 내뻗었다.
팽중호는 무적도를 움직여 공격을 막았는데, 뒤에 있던 절벽이 그대로 박살이 나며 무너져 내렸다.
“오싹합니다.”
“흘흘. 오싹한 걸로 끝이라니, 이것 참 슬프기 그지없소.”
지금까지 팽중호에게 이렇게까지 다가와 타격한 이가 있었던가?
아니, 현경의 경지에 다다른 이후 단연코 없었다.
아마도 지금 빠르게 무뢰로 공간 자체를 갈라서 막아 내지 않았다면, 뒤에 부서진 절벽처럼 자신도 부서졌을 터였다.
대화는 여기까지.
둘의 싸움은 다시금 시작되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공방.
서로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는데, 조금씩이지만 이 싸움의 결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걱- 촤아악- 서걱- 촤아아악-
교마의 몸에 연신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그에 반면 팽중호는 너무나도 멀쩡했다.
아니, 실은 완전히 멀쩡하지는 않았다.
속이 진탕이 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교마에 비하면 멀쩡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서걱-
교마의 내공이 떨어졌음일까?
교마의 뒤에 서 있던 수라지형의 모습에도 점점 상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팔 한쪽은 떨어져 있고, 얼굴도 반 이상 사라져 있는 수라지형의 모습.
마치 아주 오랫동안 방치되어, 풍파에 휩쓸린 조각상 같아 보였다.
“무인으로서의 최고의 죽음을 즐겨 보겠소.”
번쩍-
교마의 눈과 수라지형의 두 눈이 빛을 번쩍였다.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는 것이었다.
- 파천수라권(破天修羅拳). 파천(破天).
주변 모든 것을 짓누르는 거대한 압력과 함께 교마의 두 주먹이 동시에 팽중호를 향해 움직여 왔다.
팽중호는 이것을 지금의 힘으로 막을 수 없음을 느끼고, 속으로 숨을 가다듬으며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후우.’
팽중호는 지금까지 쉬지 않고 자신을 갈고닦았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도 팽중호는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무뢰(無雷) 하나만으로 마교를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궁구하고 또 궁구했다.
그리고 팽중호는 하나의 답을 얻었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무뢰단세(無雷斷世).
키이이이이이익- 서걱-
괴이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 잘려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교마의 뒤에 있던 절벽이 사선으로 갈라졌다.
때문에 절벽의 형태가 비틀렸다.
거대한 절벽이 갈라지고 비틀렸다?
그렇다면 그 앞에 서 있던 교마는?
교마는 제자리에 우뚝 서서는 팽중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최고의 순간이었소.”
“정말. 당신들은 모두 미쳤습니다.”
“흘흘. 칭찬으로 알겠소.”
털썩-
말을 마친 교마의 몸이 갈라지며 그대로 허물어졌다.
마교 서열 구(九) 위(位)의 교마가 진 것이다.
퍼석-
물론 팽중호도 완전히 무사하지는 못했다.
교마가 마지막에 보여 주었던 공격을 베어 낼 때, 무적도가 부서져 버린 것이다.
교마의 공격이 강했다는 것과 팽중호의 무뢰단세 초식의 힘을 도가 견디지 못한 것이 겹친 탓이었다.
‘새로운 무공을 위해서는 새로운 도가 필요하겠어.’
팽중호는 손잡이만 남은 무적도를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새롭게 얻은 해답인 혼원벽력도.
그것은 복잡한 것은 아니었다.
화경의 경지에 깨달았던 세 가지 초식에 무뢰를 녹이는 것.
어찌 보면 굉장히 간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눠진 초식을 다시 하나로 합치고, 다시 그것을 나누는 일.
팽중호는 결국 그것을 해내었는데, 문제는 이 엄청난 무공을 담아낼 만한 무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강한 기운이 한 번에 방출이 되니, 버티지를 못한다.’
팽중호 정도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라면 무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팽중호가 새롭게 답을 얻은 무공은 그 힘이 강해도 너무나 강했다.
이미 수차례 실험해 보았는데, 전부 펼치기도 전에 도가 터져 나갔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만약 무적도가 아니었다면, 아마 무뢰단세가 펼쳐지기도 전에 도가 터져 나갔을 터였다.
그랬다면, 어쩌면 이 싸움에서 패했을지도 몰랐다.
이 무공을 완벽히 펼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가 필요했다.
‘일단 이건 이번 일이 끝나면 생각하자.’
팽중호는 손잡이만 남은 무적도를 내려놓고, 주변에 쓰러져 있는 무인의 도를 집어 들고 다시금 움직였다.
아직은 전쟁 중.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움직여야 피해가 줄어들 터였다.
팽중호가 다음으로 향한 곳.
도수가 상대를 하고 있는 장고두가 있는 곳이었다.
* * *
교마 옆에는 총 세 명의 마교 무인들이 있었는데, 지금 장순학이 한 명, 위지철이 한 명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한 명.
장고두는 도수가 맡아서 상대를 하였다.
예전의 도수라면 장고두에게 벌써 목이 달아났겠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버티고는 있었다.
물론, 연신 밀려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휙- 휘익- 휙- 피싯-
장고두는 아주 가벼운 발놀림으로 도수의 엄청난 연격을 피해 내며, 그 사이사이 비도를 던져 대었다.
치명상을 입을 만한 것은 쳐 내었지만, 너무나 은밀하고 쾌속한 비도의 움직임에 도수의 몸에는 조금씩 상처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도수는 멈칫하거나 하지 않고, 더욱더 거세게 장고두를 향해 달려들었는데, 그 모습에 장고두도 도수를 인정했다.
“분명 훌륭한 무인이십니다. 다만 상대가 나빴을 뿐.”
도수의 무공은 힘이 넘치고 쾌속했지만, 그보다 더욱 빠른 움직임을 하는 장고두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도 맞아야 의미가 있는 법.
무공의 상성상 도수는 장고두를 이길 수가 없었다.
“다른 이들과 더 싸우고 싶으니, 이만 끝을 내겠습니다.”
장고두는 최후의 공격을 예고했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폭발적인 기의 폭풍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서늘하게 퍼지는 그의 기운에 도수는 몸 안의 모든 내공을 끌어올리며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여기서 죽는다고 하여도, 조금의 보탬이라도 되겠다!’
도수는 자신이 장고두를 이길 수 없음은 이미 깨닫고 있었다.
그를 붙잡아 두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도수는 모든 힘을 짜내며 최대한 장고두를 자신에게 붙잡아 두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
상대가 최후의 수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도수는 최소한 그의 팔 하나라도 가져가, 조금의 보탬이라도 될 생각을 하였다.
파지지지지지직-
도수가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올리자, 그의 몸에 뇌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죽음을 결심하고 모든 것을 꺼내든 탓이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장고두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