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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의 개망나니-135화 (135/200)

135화 모든 수를 꺼내 보라고.

무림맹 무인들이 노숙하는 곳으로 돌아온 팽중호.

팽중호가 나갔다가 돌아왔음에도 그것을 아는 이는 없었다.

아니, 두 명이 있었다.

위지철과 장순학.

두 사람은 팽중호가 악준과 싸우는 것을 느꼈는데, 일부러 찾아 나서지는 않았다.

팽중호라면 문제없을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하. 안 주무셨습니까?”

“그렇게 대차게 싸우는데 잠이 오겠는가?”

팽중호는 장순학과 위지철이 깨어 있는 것을 보고, 멋쩍은 미소와 함께 그들에게 다가갔다.

하긴, 그 정도의 싸움을 이 두 사람이 못 느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터였다.

“누구였습니까?”

“마교 사람이었습니다.”

위지철의 질문에 솔직히 대답하는 팽중호.

이제는 뭐 숨길 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강합니까?”

“예. 강합니다.”

“흐흠…….”

팽중호는 악준의 강함도 솔직히 말해 주었다.

자신이 아니라면, 솔직히 쉽게 이길 수 있을 만한 실력자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자자. 걱정하지 마시고, 우선은 혈천궁에 집중합시다.”

지금 당장의 문제는 혈천궁이다.

마교는 그 이후의 문제.

혈천궁을 무너트리는 것이 선결되어야 할 과제였다.

“예.”

“그래야지.”

위지철도 장순학도 눈앞의 혈천궁이 먼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두 사람의 얼굴에 약간의 걱정이 남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교의 강함.

팽중호가 인증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당연히 걱정되지 않겠는가?

“걱정하지 마십쇼. 제가 이기게 만들 테니.”

그렇게 돌아가는 위지철과 장순학의 뒤에서 들려오는 팽중호의 목소리.

팽중호는 두 사람의 얼굴에서 걱정을 읽은 것이다.

“언제까지 자네만 고생시킬 수는 없지. 우리도 이길 수 있게끔 노력하겠네.”

“예. 맞습니다.”

두 사람도 걱정은 조금 했지만, 그렇다고 걱정만 하며 모든 것을 팽중호에게 맡길 생각은 없었다.

지금까지 팽중호의 덕으로 이렇게 온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이제는 자신들도 힘을 내야 할 때였다.

“아주 좋은 자세입니다.”

* * *

혈천궁의 본진 코앞.

그곳에 무림맹은 멈춰 섰다.

고요한 주변.

이미 큰 싸움이 난다는 소식이 퍼졌기에 사람들이 모두 떠난 탓이었다.

“지나치게 고요하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장순학은 지나친 이 적막이 무언가 불안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사람들이 떠났다지만, 그 이상으로 너무나 지나치게 고요했으니 말이다.

이건 절대로 자연스러운 고요함이 아니었다.

“그럼. 움직여 보죠.”

팽중호의 말에 무림맹의 무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법가들을 포함한 무인들.

그들은 빠르게 주변에 혹시나 있을 진법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없습니다.”

“없습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보고.

이 주변에는 지금 진법이 없는 듯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혹여나 다른 수들을 준비했을 수 있으니 말이다.

“화탄도 없습니다.”

또 다른 보고.

이들은 혹시나 화탄이 있을까 싶어 함께 온 특수 무공을 익힌 이들이 해 온 보고였다.

내공을 후각에 집중해 땅속 깊은 곳까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이들.

“진법도, 화탄도 없다라…….”

그들이 써먹기 가장 쉽고, 위력적인 것들이 없었다.

‘알고 있었다는 건가.’

그들은 무림맹이 이런 준비를 하고 올 것이란 걸 예상한 것이다.

그렇기에 애초에 준비조차 하지 않은 것일 터.

짝짝짝짝짝-

“어서들 오십시오.”

그때.

주변을 울리는 박수 소리와 함께 갑자기 하나의 인영이 무림맹 앞에 나타났다.

혈혈단신 혼자 나타난 인영.

검은색 일색의 무복을 입은, 꽤 젊어 보이는 청년.

그는 입가에 아주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팽중호는 청년이 그럴 만한 실력은 된다고 생각했다.

‘악준보다 강하다.’

일전에 싸웠던 악준보다 청년이 더 강했다.

청년의 몸에서 느껴지는 차분하고 절제된 기운.

그것은 마치 바다를 보는 듯 넓었다.

마교의 사람임은 거의 확실하고, 악준보다 상위 서열인 것도 분명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장고두라는 사람입니다.”

청년의 이름은 장고두.

마교 서열 사십구(四十九) 위(位)의 강자.

오십 위를 기준으로 그 위와 아래는 차이가 꽤 컸다.

오십 위 위의 무인들은 예전부터 그 서열에 그대로 있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물론, 장고두는 오랫동안 서열에 있던 자는 아니지만, 그가 이 서열에 오르기 위해 꺾은 자가 그런 자였다.

젊은 나이에 사십구 위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무인을 이기고, 이 서열을 차지한 것이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볼 필요 없습니다. 이 위에 진법은 설치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이미 전부 확인해 본 상태.

확실히 장고두의 말처럼 지금 이 주변에는 진법은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나왔습니까?”

팽중호가 한발 앞으로 나서며 장고두를 향해 질문했다.

팽중호가 나서자 빤히 팽중호를 바라보는 장고두.

그의 두 눈이 위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아아. 당신이 팽중호 맞습니까?”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듣던 대로 역시 대단하십니다.”

지금 장고두는 한눈에 팽중호의 강함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싸우면 자신이 필패할 것이란 것도 깨달았다.

그렇기에 장고두는 기뻤다.

강자와의 싸움.

그것이 그가 살아가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었으니 말이다.

“무슨 일로 혼자 나왔는지를 물었습니다만?”

“아아. 제가 먼저 나온 이유는……. 여러분들의 시선을 잠시간 끌기 위함입니다.”

“음?”

사사사사사사삭-

갑자기 사방에서 인기척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는 분명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는데 말이다.

‘진법? 분명히……!!!’

팽중호는 갑자기 머리에 스쳐 가는 말이 하나 있었다.

조금 전 장고두가 말했던, 이 위에는 진법이 없다는 것.

이들은 지금 땅속에 있다가 나타난 것이다.

‘땅을 파고 진법으로 모든 기운을 가렸다?’

이 주변은 혈천궁의 영역이기에, 제대로 된 첩보 활동은 하지 못했다.

단편적인 정보들을 전해 주던 이들도 얼마 전에 갑자기 다들 연락이 끊긴 상태.

아무래도 이것을 준비하기 위해 그들을 모두 찾아내어 제거한 듯싶었다.

‘내가 너무 물로 봤군.’

팽중호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상대는 이기기 위해 어떤 수든 쓸 이들이었다.

혈천궁도 그랬고, 마교도 그랬다.

마교는 정정당당히 실력으로 이긴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들 중에는 어떻게든 이기는 것이 강한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고, 마교도 딱히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 그들과 몇 번 싸우면서, 나도 모르게 그들이 이런 수를 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검마부터 척한준, 그리고 악준과 마뇌까지.

그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마교가 정정당당하게 싸운다는 생각을 가져 버렸다.

이건 꽤 큰 실책이었다.

실력이 늘면서 마음속에 자만을 가진 듯싶었다.

“자아. 싸움을 시작해 봅시다.”

장고두의 말과 동시에 사방에서 나타난 혈천궁의 무인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무림맹을 포위하며 달려드는 혈천궁의 무인들.

그 기세가 사뭇 대단했다.

“준비하십시오!”

팽중호의 외침에 무림맹 무인들도 곧바로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그리고 부딪치는 두 세력.

“죽어!!”

“사라져라!!”

치열한 싸움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칼을 휘두르는 상황.

무림맹 무인들 개개인의 힘이 더 강한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큰 전진은 거두지 못하며, 오히려 조금씩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합격진을 짜라!”

무림맹 무인들은 그제야 지금 혈천궁 무인들이 합격진을 짜 공격해 온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자신들도 합격진을 구축했다.

그리고 드디어 무림맹 무인들이 혈천궁 무인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연신 뒤로 밀려나는 혈천궁 무인들.

그러더니 이내 한쪽이 뚫렸고, 혈천궁 무인들은 그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쫓아!”

“모두 쓰러트려!”

무림맹 무인들은 기세가 올라 혈천궁 무인들을 쫓아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전쟁의 광기가 차오른 그들은 앞만 보며 혈천궁 무인들을 향해 달렸다.

“잠시만 다들 멈추십시오!”

팽중호는 이상한 예감에 멈추라 소리쳤지만, 이미 광기에 잡힌 이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우르르 혈천궁 무인들을 쫓아가는 무림맹 무인들.

푹- 푹- 푹- 푹- 푹- 푹-

“컥!”

“크아아악!”

그런데 갑자기 그들의 발밑에서 무기들과 함께, 무인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앞으로만 달려가던 무인들은 이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나갔다.

무림맹을 상대하기 위한 준비.

이 준비에서 무림맹이 지금 진 것이었다.

‘실책에 또 실책이구나.’

이런 대규모 전쟁은 이끌어 보지 못한 탓에 준비가 미흡했다.

장춘오도 사마운도 모두 이런 경험은 없었으니 더욱더 그랬다.

너무 단편적인 준비만 한 것이다.

‘마뇌. 그녀가 준비한 것이겠지.’

물론 아닐 수 있다.

마교와 혈천궁에 그녀 말고도 군사가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팽중호는 그녀가 준비했음을 느꼈다.

‘준비한 것이 이것인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긴장은 놓을 수 없었다.

“좋아. 전략에서 졌다는 건 인정해야지. 하지만 전쟁에서 질 수는 없지.”

팽중호의 눈빛이 변하며, 기세도 함께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팽중호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팽중호는 힘으로 마뇌가 준비한 것들을 모조리 꺾을 생각이었다.

서걱- 콰가가가가가가가각-

팽중호의 무적도가 움직일 때마다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뒤집혔다.

지금 팽중호는 전례 없을 정도로 힘을 방출하는 중이었다.

전장을 휘젓는 팽중호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神)과도 같았다.

혈천궁의 그 어떤 이도 감히 팽중호의 앞을 막아서지 못했다.

“자. 속아 줄 테니, 준비한 모든 수를 꺼내 보라고.”

가장 앞서 달리며, 순순히 혈천궁 무인들이 이끄는 곳으로 달리는 팽중호.

그 뒤를 위지철과 장순학 등 무림맹 고수들이 따랐다.

수많은 혈천궁 무인을 베어 넘기며 도착한 곳은, 어느 계곡.

들어온 길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절벽으로 막혀 있는 곳.

매복하기도 좋으며, 배수의 진을 치기도 좋은 곳이었다.

한마디로 끝을 보기에 아주 좋은 장소.

“아주 잘들 오셨소.”

팽중호와 고수들이 계곡에 들어서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

그들의 가장 앞에서 상황과 맞지 않는 말투로 무림맹 고수들을 반기는 초로의 노인.

바로 혈천궁의 궁주인 교마였다.

그의 옆으로는 조금 전 보았던 장고두도 자리해 있었다.

“여러분들을 자극하지 않으면, 이곳으로 오지 않을 것 같아 수를 좀 썼는데, 잘 들어맞아서 다행이오.”

“여기서 뭐 다 죽을 생각입니까?”

“맞소. 여기서 전부 죽을 생각이오.”

쿠구구구구구궁-

교마의 말과 동시에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듯한 떨림이 울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 팽중호와 고수들이 지나온 외길 위로 커다란 바위들이 떨어져 내리면서 나는 소리였다.

이제 사방 그 어느 곳으로도 나갈 길은 없었다.

쉽사리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는 상황.

지금 이들이 서 있는 곳은 약간 넓은 공터였는데, 지금 사방이 막히며 천혜의 비무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흘흘. 이겨야만 나갈 수 있을 것이오.”

웃으면서 말하는 교마.

이겨서 살아야만 나갈 수 있는 전장.

이것이 교마와 마교도들이 원하던 최후의 무대였다.

“그럼 반드시 이겨서 나가 보겠습니다.”

팽중호가 몸을 움직이며 입을 열었고, 곧바로 이 안에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

어쩌면 밖에서 이루어지는 전쟁보다 더 중요한 전쟁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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