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수련을 멈출 수는 없잖아?
도수는 무림맹에 있으면서도 절치부심 노력했다.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혹여 무림맹에 싸울 일이 있으면 가장 앞장서서 나섰다.
그게 하북팽가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노호도(怒虎刀) 도수.’
노호도(怒虎刀).
도수가 익힌 도법인 노호진산도처럼 성난 호랑이처럼 날뛰는 도수에게 붙은 별호였다.
덕분에 도수는 무림맹에서도 나름 인정받는 무인이 되어 있었다.
“가겠습니다!”
“그래.”
팟-
말과 함께 달려드는 도수.
호쾌한 발걸음.
발걸음에서부터 벌써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발걸음만큼이나 호쾌하고 힘 있게 움직이는 도.
정말 한 마리의 성난 호랑이가 움직이는 듯싶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카카캉- 카캉- 캉-
팽중호는 가만히 서서 도수의 공격을 막아 나가며, 그를 지켜보았다.
노호진산도는 팽중호도 너무나 잘 아는 무공이기에, 더욱 심도 있게 보는 것이었다.
‘훌륭해. 정말로 혼자서 이 정도나 훌륭하게 끌어올리다니.’
지금 도수가 보여 주는 노호진산도는 정말 훌륭했다.
못 본 사이에 혼자서 정말 대단한 실력을 쌓은 듯싶었다.
다만, 그래도 앞날을 위해서는 아직 부족했다.
앞으로 닥쳐올 적들은 이 정도로는 막을 수 없으니 말이다.
“훌륭해. 다만. 아쉬운 건 너무 형태에 매달린다는 거야.”
도수의 노호진산도는 완벽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 형태에 집중한 나머지, 조금은 공격이 단조롭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깨달음이 녹아 있지 않은 도수의 노호진산도.
도수는 분명 자신의 깨달음이 있음에도, 아마 일부러 그것을 노호진산도에 넣지 않으려 배제했을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팽중호가 전해 준 무공에 자신의 깨달음을 넣는 것이 불경이라고 생각할 터였다.
“네가 깨달은 것들을 다시 노호진산도에 녹여서 펼쳐 봐.”
“네! 주군!”
팽중호의 말에 도수가 우렁차게 대답하더니, 이내 자세를 고쳐잡기 시작했다.
말 한마디에 곧바로 바뀌는 도수.
‘이거 내가 안목이 없었군.’
팽중호는 도수를 보고 자신의 안목이 부족했음을 느꼈다.
그저 말 한마디에 저렇게 바뀐다니?
저건 팽중호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도수가 보여 주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다시 가겠습니다!”
“마음껏 날뛰어 봐.”
팡-
도수가 달려드는 파공음마저 달라졌다.
공간을 압축해서 달려드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와 기세의 도수.
달라진 파공음만큼이나, 달라진 노호진산도가 펼쳐 나오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쾅-
짧게 짧게 끊어져 들어오는 대단한 위력의 연속 공격.
잠시의 틈도 없이 몰아치는 연격은 확실히 대단했다.
마구 몰아치는 와중에도 노호진산도의 형은 아직 남아 있었는데, 그것이 지금 도수의 강점이었다.
형과 무형을 자유롭게 오가는 것.
위력적이면서도 예측불허한 공격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정말 좋아!”
팽중호의 입에서 진심이 담긴 감탄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딱히 무언가를 지도해 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성도 높은 모습을 도수가 보여 주었으니 말이다.
“내가 조금만 짚어 주면 되겠다.”
물론 팽중호의 눈에 몇 가지 문제점은 보였다.
그것만 조금 봐 주면, 훨씬 더 높은 경지로 올라설 수 있을 터였다.
“역시 배우는 건 직접 몸으로 배우는 게 제일 빠른 건 알지?”
씨익-
팽중호가 미소를 지었고, 도수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몸으로 배우는 것.
그것은 지금부터 팽중호가 합법적으로 구타를 하겠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그럼, 간다.”
“네!”
* * *
혈천궁이 무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혈천궁의 명령하에 각 세가와 문파에서 차출된 무인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그들은 지금 강제로 모였기에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았는데, 덕분에 혈천궁 내부에서 자잘한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감히 나를 밀쳐?”
“너무 작아서 안 보였군 그래.”
사마 세력들까지 모두 모였기에 이런 자잘한 싸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챙- 챙-
그렇게 서로 싸움이 나면 한쪽이 피를 흘려야만 끝이 났는데, 무림맹과의 전면전을 앞둔 상황에서 분명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싸우고 싶은가?”
그때.
한창 싸움을 벌이고 있는 무인들 사이에 갑자기 검은 인영이 하나 나타났다.
마치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다는 듯 불쑥 솟아난 인영.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던 이들은 갑작스런 인영의 등장에 싸우던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웨, 웬 놈이냐!”
“뭐냐 네 놈은!”
무인들은 저마다 검은 인영에게 소리쳤는데, 인영은 그저 가만히 서서 그들을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듯한 눈을 한 인영.
무인들은 그 눈을 보자 왜인지 모를 오한을 느꼈다.
“싸우고 싶냐고 물었다.”
재차 물어오는 인영의 질문.
이것에 대해 대답은 하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 질문에 대답을 잘못했다가는 큰일이 날 것이란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저자가 나를 먼저 건드렸소.”
“하! 나를 무시한 건 기억이 나지 않는가 보지?”
하지만 그들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싸우고 싶지 않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걱-
동시에 싸우고 있었던 둘의 목이 떨어졌다.
주변에 있는 그 누구도 어떻게 두 사람의 목이 떨어졌는지는 보지 못했다.
“싸움은 조만간 원 없이 하게 해 주지. 그러니 여기서는 자중해라.”
“아, 알겠소.”
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은 지금 나타난 인영이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가 범상치 않은 자라는 것은 아주 잘 알았으니 말이다.
스으윽-
인영은 나타났을 때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바닥에 쓰러진 두 구의 시신만이 방금 있었던 상황이 환상이 아니었음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흘흘. 처음부터 이렇게 할 걸 그랬나?”
멀찍이서 지금의 소동을 지켜보고 있는 눈이 있었으니, 바로 혈천궁 궁주인 교마였다.
거대한 혈천궁 곳곳에서 이런 상황들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지금처럼 마교에서 온 이들을 보내어 상황을 정리했다.
공포.
그것은 분명 꽤 신통한 능력을 보여 주었다.
이 수많은 이들이 손쉽게 통제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교마는 오랜 시간 공포로 통제하면 부작용이 크게 온다는 것을 알았다.
‘이곳에서의 일은 금방 끝이 나지 않습니까? 그전까지는 공포로 움직이시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공포로 통제하면 부작용이 오겠지만, 이 혈천궁에서의 일은 조만간 끝이 난다.
이번에 온 마뇌는 그 점을 강조하며 공포로 통제를 하라 일러 주었다.
교마도 나름 공포로 혈천궁을 통제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조금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마뇌가 직접 나서서 공포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어디 보자…… 그럼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군.”
어느 정도 공포에 의해 통제되기 시작하는 무인들.
이제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수뇌들을 모이라 하거라.”
“명!”
교마의 말에 그림자 속에서 대답이 들려오더니, 그대로 그림자가 사라져 버렸다.
* * *
무림맹의 출정.
무림맹이 혈천궁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무림맹의 무인들을 가장 앞서서 이끄는 자.
뇌성도제 팽중호.
그를 앞세운 무림맹의 전력은 역대 무림맹 전력 중 최고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전력이었다.
“새로운 이들이 나타났다는 겁니까?”
“예.”
팽중호에게 보고를 하는 개방의 무인.
최근 혈천궁에 나타난 새로운 무인들에 대한 보고였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이들이니, 당연히 보고가 이루어져야만 하였다.
“마교에서 온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혈천궁과 마교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알았다.
그렇기에 마교에서 무인이 왔다는 것은 크게 놀랍지도 않은 이야기.
다만,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진 무인들이 왔을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필시 보통 실력자들은 아닐 것이다.’
마교에서 아무나 어중이떠중이들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이전에 하북팽가에서 만났던 마뇌.
그녀가 왔다는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예상이 갔다.
상당한 강자들이 왔는 것이 말이다.
“다른 움직임은 없습니까?”
“아직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개방 무인이 사라지고, 팽중호는 잠깐 혼자 고민에 잠겼다.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했다.
물론 그들의 집인 혈천궁에서 싸우는 것이 그들에게 유리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들이 승리를 한다고 해도 피해가 막심할 터다.
그런데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기다린다니?
보통이라면 별동대라도 움직일 터인데 말이다.
“춘오야.”
“예.”
“어떻게 생각하냐?”
팽중호는 자기 옆에서 모든 보고를 함께 듣고 있던 장춘오에게 생각을 물었다.
팽중호의 질문에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짓던 장춘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아마 혈천궁을 버릴 생각인 모양입니다.”
장춘오는 그들이 혈천궁을 버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에게 혈천궁은 언제든 버려도 그만인 소모품일 테니 말이다.
그렇게 혈천궁을 버리면서 자신들에게 타격을 주고, 그 후에는 무언가 또 다른 계책이 있을 터였다.
“그럼 어떻게, 가지 말까?”
“그래도 가야 합니다. 차라리 그게 더 피해가 적을 테니 말입니다.”
혈천궁으로 들어가 싸우는 것이 차라리 피해가 적을 터다.
만약 그들을 피해 혈천궁으로 향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또 다른 움직임을 보일 것이고, 그것은 예상치 못한 피해로 이어질 테니 말이다.
“적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가야 한다니.”
“그래도 준비는 해서 가니까, 크게 문제는 없을 겁니다.”
무림맹도 혈천궁의 소굴에 들어가는 것이니, 당연히 준비를 단단히 해 왔다.
여러 가지 수를 모두 상정하고 준비를 했으니, 속절없이 당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보다 저래서 제대로 싸울 수나 있습니까?”
“응? 저 정도에 못 싸울 거면, 어차피 가서 죽어.”
장춘오가 가리킨 것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걷고 있는 무림맹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지금 손과 발에 묵직한 족쇄들을 차고 있었다.
“가는 길에도 수련을 멈출 수는 없잖아?”
혈천궁으로 진격하는 지금도 수련의 연장이었다.
팔과 다리에 찬 족쇄는 혈도를 눌러 내공을 움직이지 못하게끔 하는 것이었는데, 그들을 체력을 늘리기 위한 방편이었다.
‘무공의 힘은 체력에서 나온다.’
물론 여기에 있는 무인들은 모두 범인을 뛰어넘는 체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내공이란 것을 가진 후부터, 이렇게 내공 없이 몸을 움직인 적이 극히 드물었다.
언제나 모든 움직임에 내공을 사용하니 말이다.
내공은 가진 힘을 배가시켜 주는 장치이다.
가진 체력이 뛰어나다면, 당연히 내공이 배가시켜 주는 힘은 더 크지 않겠는가?
팽중호는 그것 때문에 이들의 체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공을 모두 썼을 때. 그때를 위해 체력이 필요하다.’
싸움을 하다 보면, 내공을 모두 쓸 때가 생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제 정신력과 체력으로 싸우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
강인한 정신력은 강인한 체력에서 나오는 법 아닌가?
지금 기른 체력은 분명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터였다.
“허어억…… 허어억…….”
“더, 더는…….”
물론 그전에 이들이 먼저 죽을 것 같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