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당신의 생각입니까?
팽중호는 지금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마교의 마뇌라면, 마교의 군사라는 소리.
굉장히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왜 자신을 찾아왔단 말인가?
“몇 명이 왔지?”
“두 사람이 왔습니다.”
“둘?”
단둘이서 적지나 마찬가지인 이곳에 왔다?
대단한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그만한 자신이 있는 것일 터였다.
둘이서도 충분하다는.
“가자.”
“저는 식사를 준비해 놓고 있겠습니다.”
“응. 그래.”
팽중호는 무인을 따라 접객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마교에서 온 손님이 있다고 하니 말이다.
스으으윽-
팽중호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두 명의 인영이 보였다.
자리에 앉아 있는 면사를 쓴 여인과 그 뒤에 시립해 있는 흑의 사내.
팽중호는 두 사람을 보고, 왜 둘이서만 왔는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강하군.’
강했다.
면사를 쓴 여인도 뛰어난 강자였는데, 진짜는 뒤에 있는 흑의 사내였다.
마치 검마를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내는 사내.
분명 엄청난 고수였다.
“안녕하십니까. 마교의 마뇌 여연홍이라 합니다.”
팽중호가 들어서자 여인이 면사를 벗으며 먼저 인사를 해 왔다.
마뇌 여연홍.
팽중호는 그녀를 보고는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마교는 얼굴로 사람을 뽑나 보군.’
소교주 척한준도 세상에 없을 대단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팽중호의 앞에 있는 여연홍도 마찬가지였다.
팽중호의 가슴이 다 두근거릴 정도의 미모.
이 정도 미모면 경국지색이 정말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북팽가의 소가주 팽중호입니다.”
팽중호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인사를 받았다.
이렇게 인사를 주고받을 사이는 아닐지 몰랐지만, 어찌 되었건 지금 저들은 손님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일단은 예는 차리는 것이 맞았다.
“뇌성도제 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다 허명일 뿐입니다.”
여연홍은 팽중호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전해 들었다.
검마와 척한준 그리고 마교의 정보 조직에 말이다.
‘과연 소교주님이 그렇게 평가할 만한 사람이다.’
척한준이 팽중호를 기대가 되는 대단한 무인이라는 평을 했다.
그에게 이런 평가를 들은 무인은 마교에도 존재치 않았다.
그래서 마뇌는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팽중호가 어떤 자인지 말이다.
‘직접 봐야겠다.’
그래서 여연홍은 팽중호를 직접 보기 위해 마교를 벗어나 무림으로 내려왔다.
교마에게 볼일도 있었고 말이다.
혈천궁에 우선 들린 마뇌는 교마를 만나 일을 처리하고, 곧바로 이렇게 팽중호를 만나기 위해 하북팽가에 발걸음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저 어떤 분인지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팽중호는 여연홍의 두 눈을 바라보며 지금 말의 진위를 확인해 보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두 눈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역시 그냥 마뇌가 된 것은 아니겠지.’
아무리 보아도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여인.
그런 여인이 마교의 군사인 마뇌의 자리에 올랐다.
당연히 평범할 리가 없을 터다.
“직접 보니 어떻습니까?”
“잘생기셨습니다.”
“하하핫!”
여연홍의 말에 팽중호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건 팽중호도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조금은 팽팽했던 분위기가 풀어졌다.
그래서 팽중호는 속에서 여연홍에 대한 긴장을 놓지 않았다.
‘조심해야 할 여인이다.’
여기서 분위기처럼 마음까지 풀어지면, 그대로 그녀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갈 터다.
마뇌라 불리는 여인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움직이는 것이 좋을 리 있겠는가?
“뇌성도제께서는 이번에 하늘에 뜬 찬란한 두 개의 별에 대해 아십니까?”
갑자기 별에 대해 아냐고 묻는 여연홍.
팽중호는 그런 그녀의 의도를 짐작해 보았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희는 그것을 천마성과 백린성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천마성(天魔星)과 백린성(白麟星).
마교는 천문에 관한 것에도 꽤 조예가 깊은 이들이 있었다.
하늘의 별을 보며 무공을 만들어 내고, 익히는 이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근래에 하늘에 나타난 두 개의 별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바로 천마성과 백린성이었다.
‘무림을 바꿀 두 명의 신(神)이 나타나고, 그들을 따르는 수많은 또 다른 영웅들이 나타날 것이다.’
두 명의 신은 천마성과 백린성을 타고난 이들을 일컫는 것.
마교는 천마성은 당연히 소교주 척한준을 뜻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파에서 나타날 백린성이 누구인지를 짐작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백린성을 찾고 있을 때, 나타난 이가 바로 팽중호였다.
그들은 팽중호를 백린성으로 보았지만, 확신은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뇌는 지금 팽중호를 직접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팽중호가 백린성이라는 것을 말이다.
“뇌성도제께서는 그중에 백린성이 되시는 분입니다.”
팽중호는 천마성이니, 백린성이니 하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다만, 저들의 이야기를 그냥 허투루 흘려들을 수만은 없었다.
어느 정도는 그들의 말이 맞는 부분도 있으니 말이다.
‘확실히 비정상적으로 고수들이 많이 나타나기는 하니까.’
팽중호가 전생에 활동했던 시기와 비교한다면, 지금 무림에 나타난 고수의 숫자가 훨씬 더 많다.
특히나 화경과 현경을 넘어선 고수들이 계속해서 나타난다는 점.
아무리 팽중호가 힘을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 비이상적인 것은 맞았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제게 해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백린성이라는 것이나, 그들만 알고 있는 별에 관한 이야기를 굳이 해 주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굳이 알려 줄 필요가 없는 정보인데 말이다.
“천마성과 백린성이 동등한 상황에서 싸우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생각입니까?”
“제 생각이기도 하고, 소천마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동등한 상황에서의 싸움.
아마도 그런 상황에서의 승리만이 그들에게 의미가 있는 듯싶었다.
‘뭐, 나쁠 건 없지.’
그들이 지금 당장에 쳐들어온다면 무림맹으로서는 막을 힘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기다려 준다면 힘을 키울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스으윽-
마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떠날 시간이었다.
이곳에 오래 있을 사이는 아니니 말이다.
“가시는 겁니까?”
“예.”
팽중호는 직접 마뇌가 떠나는 길을 배웅해 주었다.
그녀와 뒤에 있는 이가 갑자기 날뛸지도 모르는 일이고, 마교의 군사라는 지위에 있는 그녀이니 이런 대접을 해 주는 게 맞았다.
“조심히 가십시오.”
“다음에 만나 뵐 때는 전장에서 뵙겠습니다.”
“뭐, 썩 만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호호. 그전에 제가 준비한 것도 있으니, 부디 잘 헤쳐 나오시기 바랍니다.”
마뇌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팽중호는 그녀가 말한 준비한 것이 매우 찜찜했지만, 지금은 알 방도가 없었다.
“소가주님 이대로 보내도 되겠습니까?”
무인 중 하나가 팽중호에게 마뇌를 이대로 보내도 되겠냐는 것을 물었다.
마교의 군사.
지금 이 자리에서 제거한다면, 분명 큰 성과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팽중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벌집을 쑤셨다가는, 우리 모두 죽습니다.”
아직 마교라는 거대한 벌집을 건드리기에는 부족하다.
여기서 만약 마뇌를 죽였다가는, 마교는 곧바로 무림으로 향해 올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지금 마뇌와 마뇌를 따라온 자를 죽일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사람은 팽중호 자신뿐.
다른 이들은 나서 봐야 저들에게 오히려 당할 뿐이다.
“더 가열하게 수련시켜야겠어.”
* * *
무인들의 집결.
지금 무림맹과 혈천궁에 수없이 많은 무인이 모여들었다.
서로가 전면전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혈천궁의 군사가 머리를 쓴 것 같습니다.”
사마운과 장춘오가 팽중호에게 계획에 대한 것을 다시금 알려 왔다.
혈천궁이 갑자기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며, 그들이 본래 생각했던 계획들이 바뀌었으니 말이다.
‘마뇌 그녀군.’
팽중호는 혈천궁이 갑자기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가, 마뇌 때문이라는 것이라 짐작했다.
그녀 아니고는 갑자기 그들의 움직임이 변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전면전을 해야 할 겁니다.”
본래는 혈천궁의 주변을 시끄럽게 만든 후, 무림맹 무인들이 비어있는 혈천궁을 공격해 적의 수뇌를 베어 내는 계획.
물론 실제 계획은 이렇게 간단하지는 않고 굉장히 복잡한 여러 가지 계책이 합쳐진 것이지만, 계획의 핵심은 저랬다.
하지만 지금 혈천궁은 주변을 공격하는 무림맹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모두 산서성의 혈천궁 본진에 모여들고 있었다.
때문에 방법은 이제 전면전밖에 없어져 버렸다.
“전면전이라…….”
전면전이라면 정말 많은 수의 사상자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면, 오히려 전면전이 나을 수도 있었다.
전면전은 정말 정직한 힘과 힘의 대결이니 말이다.
“좋아. 그럼 전면전으로 생각하고 준비합시다.”
팽중호는 전면전을 생각하고 계획을 준비해 달라고 하였다.
전면전이라고 그저 다짜고짜 부딪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예. 그럼 그렇게 알고 회의에서도 전하겠습니다.”
지금 무림맹의 중심은 팽중호다.
무림맹의 모든 큰일은 모두 팽중호에게 먼저 보고가 된다.
이건 지금 무림맹에 있는 모든 이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팽중호는 곧바로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혈천궁과의 전면전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니, 그전까지 더욱더 실력을 올려야만 한다.
그렇게 팽중호가 연무장에 도착하자 일순간 수련하던 무인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모두들 팽중호에게 수련을 명목으로 이래저래 당한 것이 많기 때문이었다.
슬금슬금 팽중호를 피하는 무인들.
그런데 그때, 한 무인이 팽중호에게 거침없이 다가왔다.
“주군!!!”
지금 팽중호에게 다가온 이는 바로 도수.
도수는 정말 오랜만에 팽중호를 보는 것이었다.
그는 그동안 무림맹에 남아 있으면서 묘하게 팽중호와 시간이 맞지 않아, 계속해서 그를 보지 못하였다.
격하게 감동한 표정으로 팽중호에게 다가오는 도수.
팽중호는 그런 도수를 보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오랜만이다.”
팽중호는 도수가 오랜만에 봤음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아, 물론 실력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지만 말이다.
‘날카로워졌군.’
무림맹에서 수많은 실전 경험을 해서일까?
도수의 기운은 지금 잘 벼려진 도와 같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마침 잘되었다. 오랜만에 대련이나 하자.”
팽중호는 누구와 첫 대련을 시작할까 싶었는데, 이렇게 딱 도수가 나타나 주었다.
안 그래도 도수의 실력을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예! 주군!”
이미 예전부터 팽중호와의 대련을 수없이 해 본 도수.
도수는 아마 여기에 있는 이들 중 거의 유일하게 팽중호와의 대련을 겁내지 않는 사람일 터였다.
때문에 도수는 팽중호와의 대련을 반기며, 곧바로 대련을 준비했다.
스윽-
서로를 바라보며 선 팽중호와 도수.
팽중호는 자신의 앞에 도를 들고 선 도수를 보고 또 놀랐다.
‘이거 이거, 완전히 호랑이가 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