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멍하니 있으면 됩니까?
실전과 같은 대련.
진검과 검강이 오가는 살벌한 대련은 정말로 실전을 방불케끔 하였다.
덕분에 의각은 쉴 새 없이 바빴다.
“팔이 부러지셨다!”
“이쪽은 상처가 꽤 깊어!”
다행히 지금 대련을 하는 이들이 모두 손에 꼽는 고수들이라, 웬만한 상처는 스스로 치료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 의각은 아마 사람들로 미어터졌을 것이다.
“엄살떨 시간 없습니다.”
“자, 다시 일어나십시오.”
“당장 다시 일어나게.”
그리고 지금 의각을 미어터지게 만든 삼인방.
팽중호, 위지철, 장순학.
그들은 피도 눈물도 없이 지금 무인들을 수련시키고 또 수련시켰다.
‘여기서 약해지면, 이들은 모두 죽는다.’
지금 여기서 마음이 약해져 수련을 대충했다가는 이들이 모두 전장에서 죽는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독해야 이들이 살아남는다.
물론 이들 중에서도 당연히 강도의 고하(高下)는 존재했다.
“제, 제발!”
“어허. 그렇게 약한 마음으로는 그냥 칼침 맞고 죽습니다?”
“소가주, 살려 주시오!”
“크크크.”
가장 지옥 같은 강도를 자랑하는 팽중호와의 대련.
무인들은 팽중호와의 대련을 가장 기피했다.
물론, 지옥 같은 강도만큼이나 얻는 것도 많은 팽중호와의 대련.
그래서 무인들은 기피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팽중호와의 대련을 원하기도 했다.
“크, 크어억!”
다만, 그 결과는 좀 참담했지만 말이다.
팽중호의 일격에 바닥에 쓰러지는 무인.
그는 화산파의 매화검수 중 가장 제일이라는 개화검(開花劍) 선조운.
어디서 이렇게 당해 본 적이 없는 그였는데, 팽중호 앞에서는 매일 같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게 그의 일상이 되었다.
“확실히 더 좋아지셨습니다. 다만…….”
팽중호는 쓰러져 있는 선조운에게 조언을 시작했다.
최근 선조운은 화경의 경지를 돌파했는데, 모두 팽중호 덕분이었다.
그래서 선조운은 지금 죽을 것 같은 상태임에도, 팽중호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십시오. 화산의 검은 어떤 것이고, 선 검수님의 검은 어떤 것인지 말입니다.”
“어떤 검…….”
선조운은 고통도 잊은 채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화산파에 들어가 처음 검을 잡고 난 후, 어떤 검인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강해지는 것만 생각했으니 말이다.
‘내 검의 근원.’
선조운은 자신의 검에 대한 근원에 대해 궁구하고 또 궁구하기 시작했다.
“좋아.”
팽중호는 자신의 앞에서 고민에 잠겨 있는 선조운을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경지에 오른 선조운이기에 자신의 선문답 같은 질문 하나에 바로 깨달음으로 들어갔다.
그가 아직 경지에 이르지 못했거나, 자신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절대로 지금과 같이 깨달음에 이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을 알려 주는 것이 중요하지.’
선조운과 같은 경지에 있는 이라도, 그자에게 필요한 깨달음은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실질적인 움직임 한 번이 필요하고, 어떤 이에게는 직접적인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
이것을 알아보고 깨달음으로 들어서게 해 주는 것.
그것이 지금 팽중호가 하는 일이었다.
이면에서는 지금 위지철이나 장순학보다 단연 팽중호가 제일이었으니,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팽중호와 대련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래도 위 소협이랑 장 무사님이 생각 이상으로 잘해 줘서 다행이다.’
위지철과 장순학은 생각 이상으로 훌륭한 선생이었다.
그들은 팽중호 못지않게 무인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했는데, 각자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방법이 달랐다.
“조금 더 검을 옆으로 움직이십시오. 아닙니다. 힘은 그대로 유지해야 합니다. 자, 이렇게 하셔야 하는 겁니다.”
위지철은 아주 자세하게 무인들을 지도해 주었다.
특히나 초식의 정교함과 움직임을 교정해 주었는데, 곽채령과 함께 성무각에서 수없이 많은 무공을 공부한 결과였다.
그 상태로 현경에 다다른 위지철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무공과 그 사람의 문제점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위지철에게 교정을 받은 이들은 정말 순식간에 무공의 위력이 증가함은 물론, 깨달음까지도 도달했다.
“내공과 기의 흐름에 집중하게. 자네를 믿게. 할 수 있네.”
장순학은 내공과 정신에 관한 것에 대해 일러 주었다.
그는 종남파라는 도가 계열의 정도 문파에서 배운 것들과 자신이 직접 이 자리에 오르면서 느낀 것들을 토대로 말해 주는 것이었다.
팽중호와 만난 후 스스로를 돌아보며 얻은 마음가짐과 깨달음을 말이다.
평소 강해지는 것만 생각하던 이들과 자신을 의심하던 이들은 장순학의 진실한 말에 깨달음의 길에 들어섰다.
스윽-
그때, 깨달음에 잠겨 있던 선조운이 깨어났다.
조금 전과는 사람이 달라져 있는 선조운.
그 잠깐의 깨달음으로 순식간에 경지가 오른 것이었다.
“어떤 검인지 아셨습니까?”
“보여 주겠소.”
팽중호가 고개를 끄덕였고, 선조운의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전에 화려하게 움직이며 수많은 매화를 피워 내던 그의 검이었는데, 지금은 이전보다 화려하지 않았다.
다만, 한 송이, 한 송이 피어나는 매화가 가진 힘이 달라졌다.
화아아아아-
피어나는 매화와 함께 주변에 퍼지는 매화향.
지금 선조운의 검에서 피어나는 매화와 매화향은 사람을 홀리기에 충분할 만큼 아름다웠다.
“훌륭합니다.”
확실히 지금 선조운의 매화이십사수검법은 너무나도 훌륭했다.
팽중호가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아름다웠으니 말이다.
사라라라라락-
완전히 피어난 매화 꽃잎이 흩날리기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장관이 따로 없었다.
사방을 가득 메우는 매화 꽃잎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가공할 위력을 지닌 강기.
이 아름다움에 넋을 빼앗기면, 그대로 목숨마저 빼앗길 터였다.
“이제 막 깨달은 분에게는 죄송하지만, 그래도 대련이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스윽- 서걱-
팽중호의 무적도가 움직였고, 그대로 주변을 흐드러지게 수놓던 매화들이 모두 잘려 나갔다.
일순간에 모두 잘려 나간 매화.
자신이 피워낸 매화가 잘려 나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선조운.
그런 그의 멍한 표정은 이내 금방 사라졌다.
퍼억-
“커어억.”
고통에 일그러지는 선조운의 표정.
그의 코앞에는 지금 팽중호가 사악한 미소와 함께 주먹을 들고 서 있었다.
“싸움 중에 상대가 공격을 막았다고 멍하니 있으면 됩니까?”
* * *
팽중호는 이따금 하북팽가에 들렀다.
아무리 이런저런 장치를 해 두었다지만, 그래도 직접 가서 한 번씩 확인해야 마음이 놓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가서 직접 봐야 할 이들도 많았고 말이다.
“가가. 요즘 많이 피곤하신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바빠서 말이야.”
“가가의 건강도 신경 쓰셔야 합니다.”
“하핫. 알지 알아. 근데, 나보다 세경이 더 피곤해 보이는데?”
“저는 괜찮습니다.”
팽중호가 오늘 만난 이는 이세경.
이세경도 최근 꽤 바쁘게 움직였는데, 무림맹에 물자들을 대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바쁜 두 사람은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 얼굴을 보는 길이었는데, 이세경은 팽중호의 얼굴이 피곤해 보이는 것을 보고 걱정을 하였다.
그녀 또한 상당히 피곤함에도 말이다.
“그보다 가가 이것을.”
이세경이 무언가 보자기 하나를 팽중호에게 건네었다.
그리 크지 않은 크기의 보자기.
팽중호가 이것을 받아들자, 이세경이 지금 풀어 보라는 눈빛을 보내었다.
스륵- 스륵-
팽중호는 곧바로 이 자리에서 보자기를 풀어 보았다.
그러자 안에 보이는 옷 한 벌.
일견 보기에도 평범치 않아 보이는 옷이었다.
“한번 입어 보시지요.”
팽중호는 일단 옷을 들고 옆으로 이동해 옷을 갈아입었다.
사라락- 사라락-
부드럽게 팽중호의 몸에 딱 맞는 무복.
옷에 새겨진 호랑이의 자수는 마치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생생했는데, 그것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옷의 재질이었다.
‘도대체 이건 무슨 천일까?’
팽중호도 처음 보는 천이었다.
몹시 부드러운데, 웬만한 도검으로는 베이지 않을 듯했다.
혼자서 고민해 보아야 결론은 나지 않을 터.
팽중호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이세경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역시. 아주 잘 어울리십니다.”
이세경은 팽중호의 모습을 보고 밝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생각한 대로 지금 팽중호에게 이 옷이 아주 잘 어울렸으니 말이다.
“고마워. 그런데 이건 무슨 옷이야?”
“신잠사(神蠶絲)로 만든 옷입니다.”
“신잠사?”
“예.”
신잠사(神蠶絲).
아주 드물게 나오는 특별한 천잠사(天蠶絲)를 일컫는 말이었다.
중원 땅에서는 나오지 않고, 새외로 나가야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매우 귀한 것이었다.
이 신잠사는 아주 부드러울 뿐 아니라, 탄력 또한 대단하고 강도 또한 매우 좋았기에, 이것으로 만드는 옷은 그야말로 최고의 갑주나 마찬가지.
이세경은 팽중호를 위해 이 신잠사를 구해, 그에게 딱 맞춘 무복을 만든 것이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물론이지.”
“다행입니다.”
“그럼 나도 보답을 해야겠지?”
“예?”
이번에는 팽중호가 작은 목갑을 하나 꺼내어 왔다.
아주 예쁘게 칠해져 있는 목갑은 딱 보기에도 안에 든 것이 평범치 않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열어 봐.”
딸칵-
팽중호의 말에 이세경은 목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목갑을 열자 안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듯싶었다.
“너무 예쁩니다.”
그리고 보이는 아름다운 모습의 팔찌 하나.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마력이 있는 팔찌였다.
특히나 팔찌의 가운데에 박혀 있는 보석은 지금까지 수많은 보석을 봤던 이세경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거 보석은 아니고……. 피독주야.”
이세경의 팔찌에 박혀 있는 보석은 사실 보석이 아니고, 피독주였다.
그것도 사천당가에서 만들어 낸 피독주 중에 가장 최상품의 피독주.
직계가 아니라면 가질 수도 없는 피독주였다.
하지만 팽중호는 사천당가의 은인.
피독주 정도는 얼마든지 줄 수 있었다.
그렇게 팽중호는 사천당가에 부탁해 피독주를 받은 후에 직접 팔찌를 만든 것이었다.
혹시나 이세경이 중독될 것을 염려해서 말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세경은 곧바로 팔찌를 손목에 찼다.
자신을 걱정하는 팽중호의 마음이 담긴 팔찌.
세상 그 어떤 팔찌보다 이세경의 눈에는 아름다워 보였다.
게다가 왜인지 팔찌에서 따뜻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어때?”
“호호. 팔찌에서 따뜻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 같습니다.”
“응. 내가 기운을 불어넣었거든. 한동안 지속될 거야. 다 쓰면 내가 다시 불어넣어 줄게.”
팔찌에서 나오는 따뜻한 기운은 기분이 아니라, 정말로 팽중호의 기운이 나오는 것이었다.
팔찌와 피독주에 기운을 불어넣어 두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팽중호와 이세경이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똑똑똑-
“소가주님. 전할 말씀이 있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하북팽가의 무인 한 명이 나타났다.
웬만한 일이 아니라면 이렇게 찾아올 일은 없었기에, 팽중호는 무슨 일인가 싶었다.
보통이라면 자신에게 오기 전에 알아서 다 처리가 되니 말이다.
“무슨 일입니까?”
“그, 그것이…….”
무언가 굉장히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의 무인.
팽중호는 얼른 말해 보라는 표정을 지었다.
“마, 마교의 마뇌라는 여인이 소가주님을 뵙고 싶다며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