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강해져야 합니다.
일주의 죽음.
이것은 곧바로 무림에 크게 회자되기 시작했다.
소문의 시작은 당연히 팽중호.
팽중호는 일주를 죽인 후 이것을 개방과 무림맹에 전했다.
개방이 나서서 보증한 이 소식에 당연히 무림은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죽었다고 해도 아무 문제 없다.’
혈천궁도 그의 죽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사기가 떨어져 전쟁이 수월하지 않을 것을 우려했는지, 곧바로 혈천궁으로 모든 이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산서성의 혈천궁에 모인 수많은 무인.
저마다 모두 흉흉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는데, 그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무림맹에 생각보다 타격을 주지 못했소!”
“맞소! 혈천궁의 힘이 고작 이것밖에 되지 않는단 말이오?!”
특히나 불만을 내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혈천궁에 합류한 무림 문파와 세가들이었다.
그들은 혈천궁의 힘을 믿고, 무림맹을 배신하고 혈천궁에 합류한 것인데,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했으니 당연히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나름 괜찮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당하고만 있었으니 말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오!”
“말을 해 보시오!”
그들은 지금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교마를 향해 소리를 쳤다.
그들의 소리에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교마.
그렇게 그들이 한참이나 떠드는 것을 지켜보던 교마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흘흘. 걱정들 마시오.”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소? 혈천궁의 최고수인 일주란 자도 당했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하겠소.”
여기 있는 이들도 모두 일주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리고 그 일주가 이 혈천궁의 최고수라는 것도 잘 아는 그들이었다.
그런 일주가 죽은 마당인데 걱정하지 말라니?
“그를 대신할 무인들이 왔으니 말이오.”
“??”
일주를 대신할 무인들이라니?
그런 절대 고수가 어디서 갑자기 온단 말인가?
이 무림 천지에 그런 곳은 마교 말고는 없었다.
“설…… 마……?”
“그렇소. 신강에서 데리고 왔소이다.”
“헛!!”
“흠.”
몇몇은 깜짝 놀랐고,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다.
혈천궁의 뒤에 마교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고개를 끄덕인 것이고, 몰랐던 이들은 깜짝 놀란 것이다.
스슥- 슥- 스읏-
그때.
교마의 뒤쪽에 갑자기 몇 개의 그림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치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나타난 이들.
순간 모든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몇몇 무인의 눈에는 경악의 빛이 담겨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있던 것인가? 아니, 지금 나타난 것인가? 전혀 모르겠다!’
그들이 나타났음에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만약 이곳이 전장이라면 곧바로 목이 베어졌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 것이었다.
“이들은 본 교의 중간 서열에 있는 자들이오.”
마교의 서열에 있는 자들이라는 것은 수많은 마교 고수들 중 백 위 이내의 고수라는 소리.
게다가 그들 중에서 중간 서열이라면 오십 위 근처.
오십 위 근처라면 분명 엄청난 실력자라는 소리였다.
‘최근 본교의 서열에 든 이들 중 중간 서열이라면, 일주 정도의 실력은 가지고 있지.’
마교는 최근 새롭게 서열을 재정비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말 수많은 신진 고수들이 나타나고, 엄청난 실력자들이 대거 새롭게 서열에 올랐다.
중간 서열이라면 경지 자체는 일주에 비해 부족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실력과 힘이 일주에 비해 크게 떨어지진 않을 터였다.
마교 무공의 힘이란 그런 것이었으니 말이다.
“여러분들 중에 이들의 힘을 의심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오.”
교마의 말처럼 지금 여기에 있는 이들 중 몇은 과연 저들이 얼마나 강할까를 의심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 의심을 지금 불식시켜 드리려고 합니다.”
“지금 말이오?”
“예.”
“어떻게 말이오?”
“이렇게 말입니다.”
서걱-
조금 전까지 교마에게 말을 하던 이의 목이 떨어졌다.
반응하기도 전에 떨어진 목.
이 일을 벌인 이는 교마의 뒤에 있던 이 중 하나였다.
커다란 언월도를 앞으로 쭉 뻗고,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 인영.
“자. 실력이 의심되는 분은 지금 말씀하십시오.”
교마의 말에 입을 여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느낀 것이다.
지금 입을 열면, 조금 전 목이 잘린 이와 똑같은 처지가 될 것이란 걸 말이다.
“흘흘. 그럼 의심은 없는 것으로 알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공포가 자리 잡은 회의장.
교마의 말에 그 누구도 입을 열거나 하지 않았다.
“여러분들의 무인을 우리가 마음대로 쓰겠습니다.”
교마의 말에 일순 여기 있는 이들의 표정이 변하였다.
무인을 마음대로 쓰겠다니?
이것은 그냥 무인을 내놓으라는 소리 아닌가?
아무리 혈천궁에 속했다지만, 문파와 세가의 무인들을 이들 마음대로 쓰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힘이 약해지니 말이다.
“무인들을 달라는 것은…… 컥!”
퍽-
한 명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었지만, 그대로 그자의 가슴팍이 꿰뚫렸다.
이번에는 언월도를 든 자의 옆에 있던 이가 던진 비도에 의해서 말이다.
“흘흘.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있군요. 이건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회의가 아닙니다. 명령을 내리기 위한 자리입니다.”
사아아아아아아-
교마의 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 주변을 완전히 질식시키는 살기.
대다수의 무인이 이 살기에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죽기 싫다면, 모두 명령을 따르시길 바랍니다.”
교마의 말에 다른 이들이 간신히 고개만 끄덕였다.
화악-
그제야 사라진 교마의 살기.
그리고 그대로 자리는 파했다.
넓은 대전에 남은 교마와 마교의 무인들.
“이보게 마뇌(魔腦).”
“예. 어르신.”
교마의 부름에 대답이 들려왔다.
하지만 교마의 옆에 있는 이들에게서 들려온 대답이 아니었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교마의 바로 뒤편의 공간.
사박- 사박- 사박- 사박-
교마의 뒤에서 작은 발소리와 함께 새로운 인영이 나타났다.
얼굴에 면사를 쓰고 있지만, 목소리와 몸을 보니 여인을 추정되는 인영.
그녀는 바로 마교의 머리라고 하는 마뇌였다.
마교 역사상 처음으로 여인의 몸으로 마뇌라는 이름을 받았으며, 역대 마뇌들 중 가장 젊은 나이에 그 자리에 오른 여인.
그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마교 밖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직접 무림에 나선 것이다.
“이러면 저들이 오히려 우릴 떠나려 하지 않겠는가?”
지금 공포 분위기의 조성은 모두 마뇌가 계획한 것이었다.
교마는 이런다면 저들이 무서워 모두 도망을 치지 않을까 싶었다.
“떠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들은 어차피 무림맹에서도 받아 주지 않을 터이니 무시하면 됩니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오히려 우리를 더 신뢰하게 될 겁니다.”
공포.
이것은 어쩌면 독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지금의 혈천궁에는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그저 혈천궁의 힘을 보고 달려든 이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리고 저들은 힘을 보고 모였으니, 이렇게 힘을 계속해서 보여 줘야만 붙어 있을 터였다.
“마뇌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교마는 마뇌의 능력을 신뢰했다.
그녀는 그만큼 존중받을 능력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앞으로 무림맹은 어떻게 움직일 것 같나?”
“아마 이곳으로 곧바로 진격해 올 겁니다.”
“전면전을 한다?”
“예.”
“그렇다면 저들의 무인들은 그들을 막는 데 쓰는 것인가?”
“아닙니다. 저들은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무림맹을 이끌 미끼가 될 겁니다.”
“호오? 미끼라?”
“예. 그들을 저희가 원하는 전장으로 끌어들일 겁니다.”
교마는 가만히 마뇌를 바라보았다.
면사로 가려져 있어 얼굴을 정확히 보기 힘들지만, 교마 정도의 무인에게 면사쯤은 문제는 아니었다.
‘속을 알 수가 없구나.’
면사 속에 보이는 마뇌의 두 눈.
너무나 맑게 빛나는 두 눈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좀처럼 읽을 수가 없었다.
교마는 수십 년간 사람을 만나고 가르치면서, 나름 사람의 눈을 보고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자부했는데, 마뇌만큼은 도저히 그 마음을 읽을 수 없었다.
“아마, 본 교가 오기 전에 충분히 그들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겁니다.”
* * *
무림은 지금 소강상태에 들어섰다.
끊임없이 일어나던 크고 작은 싸움이 잠시 멈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았다.
이것이 평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기 전의 고요함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북성 무림맹.
그곳에 다시금 팽중호가 나타났다.
일주를 상대하고 돌아온 팽중호는 무림맹으로 다시금 향한 것이다.
하북팽가는 다시금 건강을 되찾은 팽자성이 맡아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만약 하북팽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움직일 수 있는 장치까지 마련해 놓았기에 조금은 마음 편하게 올 수 있었다.
‘게다가 특별한 진법들까지 설치했고, 말이지.’
이전 일주를 비롯한 혈천궁 무인들이 왔을 때는 정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진법이 제대로 힘을 쓰지도 못했다.
적의 당당한 정문 침입까지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한 특별한 진법을 하북팽가에 설치해 두었다.
이전처럼 적들이 쉽사리 하북팽가를 침입하지는 못할 터였다.
“자자. 이제는 죽어도, 강해져야 합니다.”
무림맹에 돌아온 팽중호는 곧바로 무림맹의 고수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았다.
이주와 삼주, 그리고 일주와의 싸움을 하며 팽중호는 느꼈다.
지금 무림맹의 실력으로는 마교는 절대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아직 이들로는 한참 부족하다.’
지금 현경의 경지에 도달한 무인은 둘.
위지철과 정혼검신.
그리고 화경에 새롭게 도달한 이들이 몇 있었지만, 아직은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특히나 이제 막 경지에 도달했으니, 아직은 경지에 미숙했다.
‘시간이 있을 때 끌어올려야 한다.’
지금 잠시간 주어진 시간.
이 시간을 황금처럼 아껴서 써야만 하였다.
아주 조금도 허투루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실전으로 가겠습니다. 정말로 죽고 싶지 않으면, 열심히 하셔야 할 겁니다.”
팽중호는 전에 특별 수련 때에 위지철에게 했던, 실전과 같은 대련을 준비했다.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하게 실력을 키우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이번에는 팽중호 혼자서 하지는 않았다.
“이 두 분이 도와주실 겁니다.”
팽중호의 소개에 앞으로 나서는 위지철과 장순학.
둘은 이미 현경이라는 지고의 경지에 도달한 이들이다.
두 사람은 팽중호와의 대련에서 얻을 것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들을 봐 주면서 얻는 것도 많을 것이다.
‘제대로 손속을 쓸지 그게 좀 걱정이지만, 나한테 당한 대로 하면 된다고 했으니 잘하겠지.’
팽중호는 이미 저 두 사람과 한바탕 실전과 같은 대련을 했다.
그리고 그들을 정말 죽기 직전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 후에 저 두 사람에게 이것과 같이 무인들을 가르치면 된다고 하였다.
직접 몸으로 체험했으니 아마 잘할 터였다.
‘좋아. 눈에 아주 독기가 가득하군.’
지금 위지철과 장순학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그만큼 팽중호에게 당한 것이 많은 두 사람이었다.
저런 눈이라면, 팽중호는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 그럼 시작해 봅시다. 강해지지 못하면…… 죽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