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뭐, 나야 좋지.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알겠습니다.”
팽중호가 오랜만에 무림맹을 벗어났다.
그런 팽중호와 같이 움직이는 이는 단 한 명.
위지철.
팽중호와 위지철 두 사람이 조용히 나온 것이다.
“위 소협. 길 잘 아시죠?”
“물론입니다.”
지금 두 사람이 향하는 곳.
그곳은 바로 무당파였다.
일주가 지금 향하고 있는 곳이 무당파라는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를 막기 위해 팽중호가 직접 움직이고, 무당파의 일이니 위지철도 함께 나선 것이다.
단 두 사람뿐이라면 불안할 수 있겠지만, 팽중호와 위지철이라면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다.
현 무림맹 최고 전력인 두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두 사람이 빠진 무림맹이 더 불안한 상태였다.
“한동안 마을이 없으니, 조금 빠르게 가죠.”
“예.”
아직 하북성인 두 사람은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마차도 타지 않고, 경공술로 산을 넘어 최단 거리로 달리는 두 사람.
아마 지나가는 이가 봤다면, 새가 날아가는 줄로 봤을 터였다.
그렇게 쉬지도 않고 달린 두 사람은 밤이 되면 근처의 마을에서 잠을 자고, 다시금 또 달렸다.
“후우. 여기부터는 마차를 타죠.”
하북성을 벗어난 후에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하북성 근처에는 혈천궁의 눈이 너무 많기에 일부러 마차를 타지 않고 달린 것이었다.
혹시나 두 사람이 움직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 혈천궁이 혹여나 다른 움직임을 보일지 몰랐으니 말이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좋은 마차는 아니기에 썩 타있는 느낌이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두 다리로 죽어라 달리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물론 시커먼 남정네 둘이서 작은 마차를 타고 가는 것은 문제였지만 말이다.
“좁지 않으십니까?”
“아, 저는 괜찮습니다.”
위지철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렇게 썩 괜찮지는 않았다.
급하게 마차를 빌리느라 터무니없이 작았으니 말이다.
서로 마주 보고 앉으면 무릎이 닿을 정도로 작았다.
“잠깐 바람 좀 쐬겠습니다.”
“예?”
덜컥-
바람 좀 쐬겠다고 말한 팽중호가 마차의 문을 열고 마차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가 향한 곳은 바로 마차의 지붕이었다.
주변에 인가가 없는 한적한 길이니, 마차 위로 몸을 옮긴 것이었다.
솨아아아아아아-
팽중호의 몸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
마차 위에 앉은 팽중호는 이 바람을 느끼며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을 만끽했다.
주변 풍광도 마치 예전에 보았던 것처럼 꽤나 정감이 가는 것이 더욱 기분을 좋게 해 주었다.
‘그래. 예전에는 이런 기분이 좋아 그렇게나 돌아다녔지.’
전생에 팽중호는 이런 자유롭고 시원한 기분이 좋아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추억에 젖어 있길 한참.
슬슬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직 마을에 도착하려면 꽤 거리가 남아 있는 상황.
이대로라면 노숙할 수밖에 없을 듯했다.
“아무래도 저기서 쉬고 내일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마차를 몰던 마부가 해가 지는 것을 보더니, 멀찍이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널찍한 공터였는데, 사람이 있던 흔적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노숙을 많이 하는 곳인 듯싶었다.
‘뭐, 노숙도 좋지.’
정말 오랜만의 노숙이었다.
마부는 마차를 세워 두고, 바로 노숙할 준비를 시작했다.
팽중호도 노숙 경험이 있기에, 이런저런 준비를 했는데, 위지철은 그저 멀뚱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노숙을 해 본 적이 없는 탓이었다.
“자자. 천막은 없으니, 대충 이렇게 자리만 깔고 자야 할 겁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팽중호가 위지철의 자리까지 깔아 준 후, 마부가 모아 온 나뭇가지에 불을 붙였다.
내공을 이용해 불을 붙인 팽중호.
마부는 불을 붙이기 위해 마차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챙겨 오다가, 갑자기 맨손으로 불을 붙여 버리는 팽중호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냄비 있으십니까?”
“여, 여기 있습니다.”
마부는 팽중호와 위지철이 무림인이라는건 알았는데, 아무래도 자기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조금 긴장을 하였다.
그들에게 힘있는 무림인들은 공포의 대상이었으니 말이다.
“물은 저기서 떠 오면 될 것 같고, 토끼라도 하나 잡아 오겠습니다.”
팽중호는 마부가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최대한 친절한 표정과 말투로 말을 하며 솔선수범해 움직였다.
노숙을 할 수 있기에 육포 따위는 준비했지만, 이렇게 터가 괜찮으니 간단한 요리 정도는 해 먹을 수 있을 듯싶었다.
팽중호의 말에 위지철이 직접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냇가에서 물을 떠 왔고, 팽중호는 곧바로 토끼를 잡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흐음.’
최대한 기감을 넓게 퍼트리는 팽중호.
현경의 경지에 도달해 얻은 아주 날카롭고 예민한 기감을 토끼 잡는 것에 쓰는 것이었다.
바스락-
그때 팽중호의 기감에 작은 움직임이 걸려들었다.
팽중호는 바로 몸을 날렸다.
타탓- 타탓- 타타타탓-
재빠르게 요리조리 움직이는 토끼.
하지만 팽중호를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잡았다.”
팽중호는 손에 토끼를 잡아 들었다.
꽤나 살이 오른 토실토실한 토끼.
이 정도면 그래도 셋이서 어떻게 맛은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아갈……?”
팽중호는 토끼를 들고 조금 전의 공터로 돌아가려 했는데, 무언가가 팽중호의 기감에 잡혔다.
아주 이상한 기의 흐름.
그것이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뭘까?”
확인해 보지 않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팽중호는 손에 토끼를 든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흐으음……. 여기 어디인데…….”
흐름이 이상한 곳에 도착을 했지만, 무언가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팽중호는 다시금 기감을 날카롭게 세웠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발을 다시금 옮겼다.
한쪽에 온갖 넝쿨과 나뭇조각 그리고 돌덩이로 가려져 있는 곳.
파악- 퍼서서서석-
팽중호가 가볍게 손을 움직이자, 앞을 가로막고 있던 것들이 사라지더니, 하나의 동혈이 나타났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동혈 안.
팽중호는 안력을 돋구고 안으로 진입했다.
동혈 안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기의 흐름.
이건 분명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징조가 아니겠는가?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가는 팽중호.
아주 크지는 않지만, 사람 하나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동혈.
팽중호는 안으로 들어가면서 하나를 느꼈는데, 이 동혈이 자연 동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곳저곳에서 느껴지는 사람의 손길.
물론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만든 것은 아니고, 한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 만든 듯싶었다.
그렇게 꽤 깊숙이 안으로 들어서자 조금 넓은 공동이 하나 나타났다.
그리고 팽중호의 두 눈에 보이는 찬란하게 빛나는 꽃.
어두운 동혈이건만, 꽃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주변이 살짝 밝을 정도였다.
“성류화(星流花)!!”
웬만해서는 놀라지 않을 팽중호인데, 지금은 눈까지 커지며 깜짝 놀랐다.
아니, 무림의 그 누구라도 지금 눈앞에 있는 꽃을 보면 이렇게 놀랄 터였다.
성류화(星流花).
무림에 전해 오는 수많은 영약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영약.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별이 흐르는 듯한 모습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성류화.
공청석유 그 이상이라고 전해지는 이 꽃은, 천년에 한 번 핀다는 전설이 있는 꽃이었다.
사실 팽중호도 실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대번에 이 꽃이 성류화임을 알아보았다.
생김새는 말할 것도 없고, 꽃 자체에서 느껴지는 기운 때문이었다.
“진법으로 막아 놨었군.”
이 동혈 주변에 진법을 쳐서 이 성류화의 기운을 최대한 막아 놓은 것이다.
그래서 팽중호가 그저 기운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것만 느낀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왜 성류화가 있지?”
이곳은 유명 명산도 아니고, 그저 길이 지나는 어느 야산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곳에 성류화가 있다니?
그것도 자연적으로 자란 것도 아닌, 누군가가 옮겨 놓은 것이 말이다.
“뭐, 나야 좋지.”
누가 왜 이렇게 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덕분에 이렇게 성류화를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스윽-
팽중호는 토끼는 왼손으로 바꾸어 들고, 성류화를 조심스럽게 뽑아 들었다.
성류화를 뽑아 들자 그 밑에 하나의 작은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응? 이건 또 뭐야?”
팽중호는 작은 상자까지 일단 꺼내어 들었다.
아무래도 이 동혈과 이 성류화를 남긴 자가 놓아 둔 것 같았으니 말이다.
드드드드드드-
팽중호가 상자까지 꺼내어 들자, 갑자기 동혈이 떨리기 시작했다.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동혈.
팟-
팽중호는 곧바로 동혈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팽중호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동혈이 그대로 무너져 내려 버렸다.
왼손에는 토끼를 오른손에는 성류화를 그리고 품에는 상자를 챙긴 팽중호는 다시 공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늦으셨습니다.”
“좋은 걸 발견해서 말입니다.”
위지철은 그제야 팽중호의 오른손에 들린 성류화를 발견했다.
딱 보아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모습의 꽃.
“성류화라는 건데, 아십니까?”
“예?!”
위지철도 성류화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물론 당연히 소문이나 전설로만 들어 보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지금 어떻게 팽중호의 손에 들려 있단 말인가?
“더 시들면 안 되니, 지금 당장 먹죠.”
조금 시간이 지나면 성류화가 시들어 버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성류화의 모든 기운이 날아가 버린다.
그러니 그전에 이 성류화를 먹어야 했다.
“아참. 그전에 잠시만.”
팽중호는 토끼는 우선 마부에게 전해 주고, 품 안에서 상자를 꺼내었다.
성류화를 먹기 전에 확인해 보고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딸칵-
팽중호가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안에 보이는 하나의 족자.
팽중호는 조심스럽게 족자를 펼쳤다.
“그렇군.”
족자에는 하나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 그림을 본 팽중호는 곧바로 이 그림이 무엇이며, 어째서 그곳에 성류화가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은하성류도(銀河星流圖)라니…….”
은하성류도(銀河星流圖)는 아마 무림에서 가장 신비한 그림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천하제일의 힘이 담겨 있다고 알려진 그림.
이 그림이 나타날 때마다 무림에 피바다가 몰아쳤는데, 팽중호의 전생에도 이 그림이 나타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팽중호는 이 그림을 마지막에 손에 넣었었다.
물론 그때는 조금도 흥미가 없었기에, 곧바로 가장 친한 친우에게 건네주었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다시금 자신의 손에 돌아들어 온 것이다.
“승운 너였더냐…….”
팽중호가 마지막에 이 그림을 주었던 친구.
승운.
그는 무공에는 큰 재능이 없었지만, 약초학이나 진법 등 온갖 잡기들에는 아주 능한 친구였다.
그런 그에게 이 은하성류도를 건네어 주며 잘 연구해 보라고 했었는데, 그때 자신에게 이 그림의 비밀을 풀어 꼭 나에게 다시 전해 주겠다고 하였었다.
그 뒤로 자신은 천마에게 달려갔고, 죽임을 당했으니 당연히 소식을 들을 수 없었는데, 이렇게 너무나 의외인 곳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결국 전해진 것인가…….’
길고 긴 세월이 흘렀지만, 결국 자신에게 이렇게 전해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하늘이 정한 운명이란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 은하성류도는 성류화의 위치를 기록해 둔 것이었군.’
은하성류도에 담긴 천하제일의 힘은 바로 이 성류화를 가리키는 것인 듯싶었다.
승운은 결국 이 은하성류도의 비밀을 풀어낸 것이고, 이렇게 성류화를 얻어 내어 이곳에 보관해 둔 것이다.
‘그런데 왜 이곳에 보관해 두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