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멋진 이름입니다.
팽중호와의 특별 수련.
그것은 사람들의 예상과 다르게 크게 별건 없었다.
그저 팽중호가 직접 그들 한 명, 한 명의 무공을 봐 줄 뿐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약간의 어루만짐은 어쩔 수 없었다.
“위 소협은 분명 저와 같은 경지에 오르실 수 있습니다.”
지금 팽중호가 봐 주고 있는 이는 위지철.
위지철 또한 지금 무림맹으로 와 있는 상태였다.
팽중호는 하북팽가에 있는 무인들을 교대로 무림맹으로 오게끔 하였다.
그들을 수련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어쩌면 가장 팽중호와 오랜 시간 동안 대련을 나눴던 위지철은 팽중호와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가능성이 제일 컸다.
전부 한 번에 훈련을 진행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하북팽가가 완전히 비어 버리니 어쩔 수 없었다.
“허억. 허억. 제게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거친 숨을 몰아쉬며 팽중호에게 질문을 하는 위지철.
조금 전까지 팽중호와 대련을 가장한 폭행을 당했기에 몸이 성치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의 두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더욱더 강해지겠다는 욕망이 들어 있는 눈빛이었다.
팽중호는 이 눈빛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무인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저런 욕망이 있어야 했으니 말이다.
“아직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오른쪽 어깨에 너무 신경을 쓰십니다.”
“그렇습니까.”
팽중호의 한마디에 위지철은 곧바로 무슨 말인지를 깨달았다.
지금 위지철의 뇌호태극공은 그가 전에 익혔던 태극혜검과 완전히 녹아들지 못했다.
뇌호태극공이 태극혜검까지 아우르는 무공이라지만, 위지철은 평생 태극혜검을 익혀 왔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몸에 태극혜검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사실 이것은 위지철도 알고 있었다.
무공을 펼칠 때 습관적으로 태극혜검이 묻어 나은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굳어 온 습관이기에 쉽게 바꿀 수 없는 게 문제였다.
‘짧은 시간에 새로운 무공을 배운 것이 독이 되는 경우지.’
위지철은 곽채령을 위해 태극혜검을 놔두고 뇌호태극공을 익혔다.
본래 새로운 무공을 익히고, 그 무공에 적응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위지철은 그 시간이 너무나 짧았다.
그렇기에 완전히 융화되지 못해, 오히려 지금 깨달음을 막는 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건 물론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문제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왼손으로 검을 바꾼 것. 이것도 문제다.’
위지철은 혈천궁의 개파 대전에서 검을 쥐던 오른쪽 어깨를 심하게 다쳤다.
유명한 명의들을 모두 불렀지만, 결국 치료치 못했다.
그래서 위지철은 좌수로 검을 옮겨 잡았고, 그것이 아직까지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을 오른손으로 잡던 것을 왼손으로 옮겨 잡았으니 당연했다.
“제가 두 문제 모두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두 가지 문제 모두를 해결해 주겠다는 팽중호의 말을 위지철은 의심하지 않았다.
팽중호가 말했다면 분명 그렇게 해 줄 테니 말이다.
위지철은 그만큼 팽중호에 대해 신뢰가 있었다.
“자. 검을 다시 드십시오.”
“예.”
위지철이 다시금 검을 들었다.
그리고 팽중호도 무적도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팽중호의 몸에서 지독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자. 죽기 싫으시면, 노력하십시오.”
무공을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죽음의 위기에 몰리는 것.
죽음의 위기에서 사람은 굉장한 깨달음을 얻게 되니 말이다.
팽중호는 지금 정말 위지철을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살기를 끌어 올렸기에, 위지철은 절로 식은땀을 흘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그렇게 위지철이 마른침을 삼킬 때.
팽중호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움직이는 팽중호의 도.
무뢰(無雷)가 펼쳐진 것이다.
핏-
그 순간 위지철의 어깨에서 피가 조금 솟구쳐 올랐다.
지금까지 대련하면서 팽중호가 위지철에게 이렇게 상처를 입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지금 팽중호가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상황이었다.
“모든 힘을 짜내지 않으면, 정말 죽을지도 모릅니다.”
씨익-
말과 함께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짓는 팽중호였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섬뜩하고 무서웠다.
파아아아아앗- 치르르르르릇-
위지철의 검에서 푸른 뇌기…… 아니, 뇌강이 터져 나왔다.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뇌전.
위지철이 그동안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펼쳐지는 뇌호태극공.
좌수로 펼치는 무공이건만, 위협적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카캉- 핏- 카아앙- 피핏-
위지철은 팽중호의 무뢰를 잘 막아 나갔지만, 계속해서 상처가 늘어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어느새 피에 붉게 물들어 버린 위지철의 옷.
깊은 상처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상처는 아니었다.
“이제 끝내겠습니다.”
살기가 가득한 팽중호의 말.
정말로 위지철을 베어 버릴 것만 같은 그의 경고였다.
‘어쩔 수 없다.’
위지철은 자신이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무공도 적응이 되지 않으며, 왼손에 쥔 검 또한 익숙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팽중호의 공격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어? 불가능해?’
위지철의 머리를 갑자기 스치는 생각.
언제부터 자신이 이런 생각을 했단 말인가?
‘모든 생각을 바꿔야 한다.’
위지철은 지금 순간 스스로의 문제점을 찾았다.
새로운 무공이 적응되지 않는 것도, 좌수검이 불편한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것은 지금 자신의 생각 때문에 멈춰 있는 것이었다.
스윽-
위지철의 기세가 바뀌며, 그의 검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마치 거대한 강물처럼 바뀐 그의 기세.
물이 범람해 넘치는 강물과 같은 위지철의 기세는 팽중호마저 놀라게 했다.
‘내 생각 이상이었구나!’
팽중호는 위지철이 자신의 생각을 벗어난 천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아주 작은 하나의 계기만 있다면, 순간 백을 깨닫는 자였다.
‘내가 환생하지 않았다면, 결코 그처럼 할 수 없었겠지.’
두 번의 삶이 아니었다면, 위지철만큼 빠르게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팽중호는 만족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무적도를 움직였다.
카가가가각- 카가각- 카각-
똑같이 무뢰를 펼쳐 움직였는데, 위지철이 조금 전과 다르게 팽중호의 공격을 막아 내었다.
아니, 막아 내는 것이 아니라 흘려 내었다.
팽중호의 공격이 위지철을 베지 못하고, 그대로 흘러나와 애꿎은 바닥을 베기 시작했다.
위지철의 거대한 강물에 휩쓸려 버리는 것이었다.
콰지지지지지직-
그리고 이번에는 위지철이 팽중호를 향해 검을 찔러 들어왔다.
거대한 강물이 거대한 뇌기의 호랑이가 되어 쇄도했다.
순식간에 일변하는 검격.
쾅- 콰앙-!!
바뀐 검격만큼이나 위력도 엄청났다.
팽중호의 주변의 주변에서 연신 터져 나오는 엄청난 폭발음.
이 일격, 일격마다 팽중호는 지금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스으윽-
카가가가가각- 콰가각-!!!
한참을 위지철의 검격을 막아만 내던 팽중호가 무적도를 움직였고, 이 공격을 흘려 내려던 위지철이 그 힘을 완전히 흘려 내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검을 땅에 박아 간신히 멈춘 위지철.
그의 두 눈은 약간 멍하니 먼 곳을 보고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깨달음에 잠겨 있는 듯싶었다.
“자. 그럼 기다려 볼까.”
털썩-
팽중호는 멍하니 있는 위지철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가 깨달음을 완전히 정리할 때까지 앞에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 시진, 두 시진, 세 시진…….
시간이 흘러 주변에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계속해서 위지철은 움직일 줄을 몰랐고, 팽중호 또한 처음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위지철을 기다렸다.
“소가주님.”
그리고 드디어 가만히 있던 위지철의 입이 열렸다.
깨달음의 상념에서 벗어난 것이다.
“예.”
“제가 어떻게 해야 이 은혜를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위지철의 두 눈이 앞에 앉아 있는 팽중호를 향했다.
지금 자신은 팽중호 덕에 또 다른 경지에 발을 내디뎠다.
그를 만나고부터 계속해서 새로운 경지에 발을 내디뎠는데, 이것은 무인에게 있어 그 어떤 것과 비할 수 없는 은혜였다.
“하하. 은혜는 혈천궁을 막는 걸로 갚으시면 되고, 그보다 이름은 무엇을 정하셨습니까?”
하나의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무공을 만들었을 때, 무인들은 그 무공에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단순히 구분하기 쉬우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공에 붙는 이름은 그 무공을 나타내는 것이자, 그 무공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름이 가진 힘.
그것이 무공에 깃드는 것이기도 하기에 아무런 이름이나 붙여서는 안 되었다.
“뇌호등천류(雷虎登天流)입니다.”
“멋진 이름입니다.”
* * *
혈천궁이 본격적으로 움직임을 시작했다.
그들은 거침없이 무림맹 소속 문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짓밟고 지나간 곳은 쑥대밭이 되어 개미 한 마리 남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피의 정화 시작이었다.
조금의 자비도 없는 그들의 이런 공격에 무림맹 소속 문파들은 치를 떨었고, 혈천궁 소속 문파들은 오히려 열렬히 환호했다.
이제는 결코 화합할 수 없는 두 세력의 대립.
‘무림맹은 무엇을 하는 것이오!’
이 공격에 무림맹에 소속된 문파들이 성토하고 나섰다.
혈천궁이 이런 공격을 하는 동안 무림맹은 아무런 것을 하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성토에 드디어 무림맹도 움직임을 시작했다.
하북성으로 무림맹이 옮겨오고 드디어 첫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었다.
무림맹에 소속되어 아직 혈천궁의 공격을 받지 않은 곳으로 파견된 무림맹 무인들.
그들이 파견된 후에 혈천궁이 쳐들어왔는데, 무림맹 무인들은 그들을 어렵지 않게 모두 막아 내었다.
엄청난 무림맹 무인들의 실력.
‘무림맹에서 그 지옥을 겪느니, 차라리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게 낫소.’
상처를 입어도 무림맹 무인들은 웃으며 싸웠다.
어쩌면 혈천궁 무인들보다 더 무서운 그들의 광기.
이것은 모두 팽중호가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그들은 팽중호와 하는 수련보다, 혈천궁과의 싸움이 훨씬 더 편했다.
조금의 쉴 틈도 없는 그 지옥 수련보다, 차라리 적의 칼침이 더 나은 것이었다.
‘피의 복수를 시작하겠다.’
큰 피해를 입은 혈천궁은 무림맹에게 피의 복수를 선포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혈천궁에서 숨겨두었던 것들과 그들의 고수들이 대거 등장했다.
혈라천강시(血羅天僵尸)는 물론이고, 새로운 십이혈주와 새로운 오혈랑이 등장했다.
비어 있던 자리가 새롭게 채워진 것이다.
또한 개파 대전에서도 본 적 없던 새로운 부대까지 등장했다.
그리고 그들을 가장 앞에서 이끄는 자.
개파 대전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던 일주(一柱)였다.
이들은 무림맹에 의해 막혔던 곳들에 다시금 찾아갔는데, 이들이 찾아간 곳의 대부분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가공할 그들의 힘.
그 엄청난 무림맹 무인들마저 그들에게는 속수무책으로 패하고 만 것이다.
‘정의와 협의를 지켜야 한다.’
무림맹도 핵심 전력인 무력 부대와 고수들을 대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혈천궁과 무림맹 사이의 전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고, 점점 전면전의 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무림에는 칼이 부딪치는 소리와 고통에 찬 비명, 그리고 피가 마를 날이 없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정세가 흉흉해질수록 무인들은 날카로워졌고, 살아남기 위해 하나로 똘똘 뭉쳤다.
‘대(大)전쟁(戰爭)의 시대.’
당금의 무림은 그렇게 대(大)전쟁(戰爭)의 시대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시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