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어디서 온 분들인지 한번 볼까요?
팽중호를 죽이기 위해 찾아온 이들은, 반대파 중에서도 가장 큰 불만을 가진 이들 중에 정예만 고르고 고른 이들이었다.
그들은 팽중호가 주었던 사흘 동안, 혹여 일이 잘못 틀어졌을 때를 대비해 이런 습격을 준비했다.
당연히 팽중호의 실력이 무림에서 손에 꼽는 강자라 생각했기에, 여러 가지 수를 준비했다.
하지만 오늘 낮에 보여 준 팽중호의 실력은 사실 그들이 상정한 것 이상이었고, 결국 몇 가지 수가 수정되었다.
어차피 그에게 써 봐야 쓸모없을 수는 모조리 폐기한 것이다.
‘산공무가 통하지 않는다니.’
그들이 준비한 수 중에 산공무는 분명 가장 확실한 수였다.
제아무리 화경의 무인이라도 산공무에 당하면 한동안은 내공을 움직일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의 팽중호는 어찌 내공을 움직이고 있단 말인가?
‘우리의 암습을 예상하고 준비한 것이겠지.’
습격자들은 팽중호가 무언가를 사전에 준비했다고 생각했다.
산공무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니 말이다.
“다음.”
습격자들은 곧바로 다음 수를 준비했다.
휙- 휙- 휙-
습격자들은 일제히 팽중호를 향해 무언가를 던졌는데, 작은 원반 형태의 무언가였다.
그리고 이 원반들은 팽중호의 근처에 다가서자 갑자기 무언가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피비비비비비비빅-
원반에서 나온 것은 아주 작은 바늘들.
이것으로 과연 무엇이 될까 싶었지만, 습격자들은 이번 공격은 반드시 성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회선살침(回旋殺針)이다. 이 거리에선 그 누구도 막지 못한다.’
회선살침(回旋殺針).
이것은 산공무와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위험한 물건이었다.
사파에서 만들어 낸, 희대의 역작이자 마물이라 불리는 것.
그 어떤 호신강기도 꿰뚫어 버리는 이 암기는, 무림에 나타났을 때 모든 고수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것이었다.
이 암기 앞에서는 그 어떤 고수도 살아남지 못했으니 말이다.
다만, 현재는 더 이상 이것을 만들 수 있는 기술자가 없기에 무림의 역사 속으로 사라진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 느닷없이 팽중호를 죽이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갔다.’
한 곳이 오롯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엄청난 거액이 들어간 물건이었다.
큰 지출이었지만, 그래도 호남성에서 무림맹을 지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이득이기에 한 선택이었다.
‘죽었다 놈!’
팽중호 주변을 가득 메운 회선살침의 침.
이곳은 운신의 폭이 한정된 방 안.
팽중호가 도망칠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이제 저 침들에 의해 온몸이 꿰뚫리며 죽음을 맞이하게 될 터였다.
“회선살침 오랜만에 보네 이거.”
* * *
팽중호는 습격자들이 던지는 회선살침을 보자마자 한눈에 알아보았다.
왜냐?
저것이 한창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었을 때가 바로 팽중호가 전생에 한창 날아다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저것을 만들어 내는 기술자들을 벤 것이 바로 자신이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이 마물이 아직도 남아 있네. 그때 도대체 얼마나 만든 거야?”
팽중호는 당연히 이 회선살침이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도 잘 알았다.
호신강기를 가볍게 뚫어 버리는 물건.
지금 운신의 폭도 좁은 방에서 이렇게 회선살침에 둘러싸인다면, 화경의 경지에 이른 절대 고수도 절대 성할 수가 없었다.
분명 예전이라면 지금의 상황은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볼 수 있었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런 물건까지 쓰는지 몰라.”
주변이 회선살침에서 나온 침으로 가득했지만, 팽중호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막 팽중호의 몸을 꿰뚫기 직전.
퍼서서서서서서석-
팽중호의 주변을 감싸던 모든 침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강기로 내려쳐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 침이 한순간에 가루가 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습격자들의 유일하게 드러난 두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떨려 왔다.
지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더 준비한 거 있습니까?”
씨익-
습격자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팽중호.
습격자들은 그 미소에 일이 크게 틀어졌음을 곧바로 직감했다.
무슨 짓을 해도 지금 팽중호를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팟- 팟- 팟-
습격자들이 흩어지며 밖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팽중호를 처리하지 못했으니, 정체라도 숨겨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도망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털썩- 털썩- 털썩-…….
갑자기 끈 떨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지는 습격자들.
그들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눈만 멀뚱히 끔뻑이고 있었는데, 그런 그들의 시야로 팽중호가 들어왔다.
어느새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무적도.
이들이 도망치려고 한 순간 팽중호가 무뢰를 이용해 동시에 이들의 혈을 전부 제압한 것이다.
“자, 그럼 어디서 온 분들인지 한번 볼까요?”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천천히 움직이며 습격자들의 복면을 제거하는 팽중호.
습격자들은 복면이 제거되는 동안에도 저항하지 못했다.
그렇게 모든 이들의 복면이 사라질 때쯤, 팽중호의 숙소로 몇몇 인영이 나타났다.
모두 하나같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꾀죄죄한 옷을 입고 있는 이들.
바로 개방의 방도들이었다.
“어디서 온 누구인지 알아봐 주십시오.”
“예.”
개방 방도들은 지금 방주 무명의 명령으로 팽중호를 돕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팽중호가 이미 무명에게 여러 가지 정보는 받았지만, 얼굴만 보고 습격자들이 어디 소속인지는 알 수 없는 법.
그래서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팽중호는 무명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무명은 개방 방도들을 보낸 것이다.
“추련상단입니다.”
“배전문입니다.”
개방 방도들은 지금 습격자들의 얼굴을 보자 바로 어디 소속인지를 알아내었다.
그렇게 습격자들의 정체가 모두 밝혀졌고, 혈도를 제압당한 그들은 그대로 개방 방도들이 데리고 사라졌다.
그들 말고도 그 뒤에 더 가담한 이들을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독이랑 암기라……. 확실히 위협적이기는 해.”
독과 암기란 것은 무공 실력이 고강하더라도 상당히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것들이었다.
만약 팽중호도 현경의 경지를 바라보지 못했다면, 지금 이렇게 멀쩡하게 있을 수 없었을 터다.
물론 그 정도의 독과 암기를 마음껏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의 무인들을 위협할 만한 독과 암기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세력과 세력 간의 전쟁에서 이런 독과 암기는 분명 엄청난 무기이고, 이것에 대한 대비는 분명 이루어져야만 했다.
‘마교가 무공에 미쳐 있다고 해도, 독과 암기를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게다가 혈천궁은 오히려 독과 암기를 아주 애용하고 말이지.’
마교는 힘을 숭상하는 곳이라 독과 암기를 썩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쓰지 않는 곳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마교에서 쓰는 독과 암기는 그들이 인정할 만한 위력의 물건이란 것이니, 훨씬 더 위험했다.
그리고 그런 마교보다 무림맹의 목전에 다가와 있는 곳인 혈천궁.
혈천궁은 독과 암기를 그 어느 세력보다 애용하는 곳이었다.
조만간 혈천궁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을 것이고, 그때 이 독과 암기는 승패를 가를 중요한 분수령 중 하나가 될 터였다.
‘사천당가가 필요하겠군.’
정도 무림에서 독과 암기에 가장 정통한 곳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백이면 백 모두 사천당가를 꼽을 것이다.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무림에 독과 암기로 이름을 날려 온 곳.
정도 무림에 쓰이는 독과 암기 중 팔 할 이상은 전부 사천당가에서 만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팽중호는 이번에 무림맹을 하북성으로 옮김과 동시에, 사천당가도 일부 하북성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독과 암기에 대해 대비해 둘 필요가 있으니 말이다.
“바쁘구만……. 아주 바빠.”
* * *
무림맹에서의 일은 빠르게 처리가 되었다.
개방은 빠르게 팽중호를 습격했던 이들의 정보를 전달해 주었고, 팽중호는 그것을 토대로 이권을 챙겨 줄 이들을 분류해 내었다.
하남성에서 무림맹이 떠남으로 큰 손해를 볼 것이라 생각했던 반대파 이들은 팽중호가 그들의 이권을 최대한 챙겨 주겠다고 하자, 다들 너나없이 감사의 인사를 전해 오며 무림맹에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알려 왔다.
그렇게 무림맹은 곧바로 하북성에 새롭게 터를 짓기 시작했고, 수많은 이들이 나서자 하북성에 순식간에 무림맹의 터가 완성되어 갔다.
그렇게 일을 모두 마치고 하북팽가로 돌아온 팽중호.
팽중호가 하북팽가에 돌아왔을 때, 하북팽가에서 예상외의 인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시오.”
“안녕하십니까. 당 가주님.”
지금 팽중호를 찾아온 이는 사천당가의 가주였다.
사천당가의 가주 일수만천(一手滿天) 당정학.
그가 팽중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무슨 일로 저를 기다리셨습니까?”
팽중호는 사천당가를 만날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가주인 당정학이 찾아올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당정학이 지금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정말 염치없지만, 부탁을 하나 하러 왔소.”
“무슨 부탁이십니까?”
당정학의 부탁?
도대체 어떤 것을 부탁하려고 하기에, 가주인 그가 직접 몸을 움직인단 말인가?
“내 아들을 한번 봐 줄 수 없겠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들을 한번 봐 달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것이…….”
당정학의 입에서 연유가 흘러나왔다.
지금 사천당가에는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후계의 문제였다.
당정학에게는 단 하나의 아들만이 있었는데, 그가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
독에 정통한 사천당가이니만큼 의술에도 굉장한 조예를 보이는 사천당가였는데, 그런 사천당가의 역량으로도 병을 고치기는커녕, 왜 그런지 이유조차 알 수 없는 병으로 소가주가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당정학은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유명한 신의들은 모두 찾아가 보았지만, 그것 또한 모두 헛수고였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하나 알아낸 것이 있었는데, 아들의 병이 내공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보통과 다른 상이한 내공이 문제라는 것.
이것을 알고 당정학은 자신은 물론 당가 내의 고수들과 함께 내공을 불어넣어 치료하였으나, 병세를 조금 호전시켰을 뿐 근본적인 치료는 할 수 없었다.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상상도 못 할 내공이 필요하다.’
병의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결국, 상상을 뛰어넘는 막대한 힘이 깃든 내공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하지만 무림에 그 정도의 내공을 가진 이는 손에 꼽을뿐더러, 그들을 모아서 치료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
결국 어쩔 수 없이 치료를 포기해야 하느냐고 있을 때, 팽중호가 나타났다.
‘팽 소가주의 내공이 현경의 경지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무림맹에 당정학을 대신해 가 있던 이가 전서구를 통해 소식을 알려 왔고, 이 소식을 듣자마자 당정학은 곧바로 쉬지 않고 하북팽가로 달려온 것이었다.
어쩌면 지금 무림에서 자신의 아들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팽중호뿐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렇게 부탁하겠소. 제발 아들을 한 번만이라도 봐 줄 수 없겠소?”
털썩-
말을 하던 당정학이 팽중호의 앞에 갑자기 무릎을 꿇으며 부탁해 왔다.
천하오대세가 중 사천당가를 이끄는 가주가 지금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 모습에 오히려 팽중호가 조금 당황했다.
‘이것이 부정(父情)이란 것인가?’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자존심을 모두 다 내려놓았다는 뜻.
사천당가의 가주가 그러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팽중호는 이것이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아닐까 싶었다.
자식을 위해 자존심 같은 것은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것 말이다.
“가주님. 일어나십시오.”
팽중호는 무릎을 꿇은 당정학을 일단 일으켜 세웠다.
누가 보면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니 말이다.
“제가 한번 봐 드리겠습니다.”
“정말이오? 정말 고맙소!”
팽중호를 향해 허리를 깊게 숙이는 당정학.
치료해 준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살펴본다는 것일 뿐인데, 이런 인사를 받으니 좀 머쓱하였다.
그리고 당정학의 부정에 감동해 순수하게 도와주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이번 일로 사천당가에 빚을 만들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제가 당가로 갈까요?”
“아니오. 지금 당장 이리로 오라고 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