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성격들도 급하지.
혼원벽력도의 극(極).
팽중호가 소천마 척한준과의 대결 이후 현경의 벽을 두드리며 깨달은 것이었다.
무공에 극(極)이 있을 수 있겠느냐마는, 지금 혼원벽력도로는 극을 본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이 이후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혼원벽력도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 되어 있을 것이다.
무뢰(無雷).
혼원벽력도의 극에 다다라서 만들어 낸 단 하나의 초식.
혼뢰단세(混雷斷世).
뇌룡진천(雷龍振天).
원뢰멸혼(元雷滅魂).
이 세 개의 초식이 하나가 된 것.
그것이 바로 무뢰였다.
물론 그저 하나로 합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세 개 초식의 묘리가 모두 들어가 있는 것은 맞았다.
척한준을 만나기 전에는 완전히 합쳐지지 않았던 이 초식이, 그를 만난 후 완전히 합쳐지며 새로운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우선 이 경지에 발을 디디게 되면서 혼원벽력도의 상징과도 같던 뇌성과 뇌기가 사라졌다.
아니, 상징과도 같은 것들이 사라졌다기보다는, 그저 보이고 느껴지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그 힘들이 모조리 주변을 장악하는 것에 쓰이니 말이다.
무뢰는 초식이지만, 하나의 새로운 무공이기도 했다.
시전자의 주변 공간을 지배하는 무공.
무뢰를 펼치는 순간 주변의 수 장이 팽중호의 영역이 되는 것이었다.
조금 전 무명의 공격을 모두 파훼시킨 것이 바로 이 무뢰의 힘이었다.
극패도(極覇道)의 힘이 깃든 이 무뢰는 부수는 것도, 없애는 것도 팽중호의 의지에 따라 가능했다.
“하나 묻지. 지금 자네라면 마교를 막을 수 있나?”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마교도를 만난 적이 있나?”
“예.”
팽중호는 검마와 소천마를 만났던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도 말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선주천과 무명의 표정은 더없이 어두워졌다.
팽중호가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 여실히 느껴졌으니 말이다.
“우리가 그들을 이길 수 있나?”
“지금까지 이겨 오지 않았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
선주천과 무명은 갑자기 궁금증이 들었다.
도대체 왜 팽중호가 이렇게까지 하는지 말이다.
그의 지금 행보는 그저 하북팽가를 위한다기에는 헌신적이었으니 말이다.
“무림이 있어야 하북팽가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무림이 존재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자신이 하북팽가를 위해 한 일이 모두 헛수고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었다.
어떻게 키운 하북팽가인데 말이다.
“자네가 무림의 홍복이군 그래.”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 * *
시간은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흘러간다.
팽중호가 말했던 사흘은 유수와 같이 흘러가고, 반대파와 대결할 때가 왔다.
무림맹의 가장 큰 비무대에서 치러지는 대결.
많은 이들이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자. 그럼 시작해 봅시다.”
그 비무대 위에 팽중호가 혼자 서있었는데, 혼자만으로도 좌중을 모두 압도하는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팽중호는 지금 보란 듯이 일부러 이런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말이다.
“누구부터 나오실 겁니까?”
“내가 나가지.”
반대파에서 한 명의 무인이 나타났다.
바로 태혼문의 문주인 적방웅이었다.
가장 크게 반대를 하던 그가 가장 먼저 나선 것이다.
“긴말은 필요 없겠지. 바로 시작하세.”
“예. 뭐, 알겠습니다.”
구구절절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그저 이긴 자가 많은 것을 쥐게 되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다.
스윽-
적방웅이 주먹을 쥐고 앞으로 뻗으며 자세를 취했다.
독문 무공인 태혼신권(太魂神拳)을 펼치기 위한 자세였다.
후우우우우웅-
적방웅의 주먹에서 웅혼한 기운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태혼신권은 이름처럼 거대한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무공.
적방웅은 이 태혼신권에 통달한 자로, 그 실력이 이미 화경에 다다랐다.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옷깃조차 못 건드리지는 않을 터다.’
적방웅은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낮게 보지도 않았다.
팽중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옷깃조차 스치지 못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않았다.
‘너무나 어린 나이에 큰 힘을 손에 쥐어, 일을 그르치는구나.’
팽중호가 너무나 어린 나이에 큰 힘을 얻음으로, 자만심 때문에 날뛰어 일을 그르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지금과 같은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뭐 하십니까? 안 오십니까?”
“하압!”
팟-
적방웅이 무서운 기세로 팽중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팽중호에게 뻗어지는 그의 주먹.
일권에는 엄청난 거력이 담겨 있었는데, 적방웅은 이 일권으로 승부를 결정지으려 한 것이다.
그가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격.
방심하고 있는 팽중호에게 크게 교훈을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철컥-
“다음 나오십시오.”
‘……?’
적방웅의 귓가에 들려오는 팽중호의 목소리.
다음 나오라니?
아직 대련이 끝나지 않았는데 저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적방운은 무언가 이상했지만, 그대로 팽중호에게 계속해서 주먹을 뻗어 나갔다.
아니, 뻗어 나가려 했다.
풀썩-
적방웅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바닥에 무릎을 털썩 꿇었다.
온몸에 조금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혈만 제압했으니, 잠시 후에 움직이실 수 있을 겁니다.”
아직까지 영문을 모르고 있는 적방웅의 귓가에 들려오는 팽중호의 목소리.
적방웅은 그제야 자신이 지금 몸의 혈도를 제압당했다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언제……?’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적방웅의 눈이 의문을 가득 담은 채로 팽중호를 바라보았다.
“뭐, 움직이신 그 순간에 끝났습니다.”
“……!!”
자신이 팽중호에게 달려들던 그 순간에 끝이 났단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팽중호가 움직인 것을 보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이 주변은 모두 제 영역입니다.”
적방웅은 팽중호의 말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하나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팽중호가 상상을 뛰어넘는 고수라는 것과 애초에 이 대결은 자신들에게 승산이 조금도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 무림맹은 하북성으로 가겠군.’
* * *
압도적인 강함.
그것은 지금의 팽중호에게 너무나도 어울리는 말이었다.
반대파 무인들 모두가 팽중호의 옷깃조차 건드리지 못하고 패배했다.
먼지 한 톨조차 묻지 않은 팽중호의 옷.
팽중호는 처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여전히 비무대 위에 서 있었다.
“더는 없습니까?”
“…….”
반대파에서 이제 더 이상 나설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모든 고수가 지금 팽중호에게 패배했으니 말이다.
“그럼 무림맹을 하북성으로 옮겨도 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팽중호의 말에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처음 제안을 수락했고, 자신들은 그 제안을 따를 책무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저는 이만.”
팽중호는 그대로 몸을 돌려서 비무대를 떠났다.
멍하니 그런 팽중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
선주천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무림맹의 이전이 확정되었으니, 지금부터 아주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특히나 사안이 급박하다는 것을 아니, 더욱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흐음. 오늘 저녁이 바쁘겠어.”
부산스러운 비무대를 떠나, 숙소로 걷던 팽중호는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자신이 승리했지만, 분명 승복하지 않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은 오늘 밤에 자신을 찾아올 터다.
팽중호는 그것을 기다렸다.
‘모두 다 챙겨 줄 수는 없지.’
팽중호가 반대파의 이권을 최대한 챙겨 주려했지만, 그렇다고 그들 모두를 챙길 수는 없었다.
거를 곳은 걸러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오늘 밤에 자신에게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찾아온 이들은 모두 거를 생각이었다.
어차피 그런 곳들은 이권을 챙겨 주어도 뒤통수를 칠 곳들이었으니 말이다.
차리리 그들의 몫까지 다른 곳을 챙겨 주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자. 오늘은 다들 돌아들 가십쇼.”
무림맹의 숙소로 돌아온 팽중호는 숙소에 있는 모든 이들을 돌려보냈다.
혹시나 싸움에 휘말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렇게 팽중호의 말에 모두가 떠나 텅 비어 버린 숙소.
팽중호는 느긋하게 누워서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스르르르륵-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해가 지고, 창을 통해 어둠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곧 찾아올 칠흑 같은 어둠.
팽중호는 이제 슬슬 그들이 올 시간이 되었음을 느꼈다.
‘어떤 수를 가지고 올까?’
조금 전 비무대에서 자신의 실력은 충분히 봤을 것이다.
그렇기에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 터다.
분명 무슨 수를 분명 준비할 것이다.
암기든, 독이든 말이다.
스슥- 스스슥- 스슥- 스스스스슥-
그때 팽중호가 머무는 숙소 주변으로 미약한 인기척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편하게 하라고 잠에 빠져 있는 척을 하였다.
다만, 예상이 맞아떨어졌기에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왔군. 성격들도 급하지.’
아마 자신이 없으면 무림맹 이전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 터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스으으으으으-
그때, 팽중호가 누워 있는 방으로 갑자기 뿌연 안개 같은 것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산공무(散功霧)라…….’
산공무(散功霧).
산공 독을 안개처럼 퍼지게 만든 것이 바로 산공무였다.
오로지 사천당가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것이었는데, 당연히 구하기가 엄청나게 힘든 초고가의 독이었다.
물론 구하기 힘든 만큼 그 효과는 확실한 물건이었다.
직접 섭취하는 산공 독보다도 오히려 더욱 강했으니 말이다.
‘산공무라면 그래도 나름 머리는 썼군.’
보통의 독이 자신에게 통하지 않을 것임은 그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마 이 산공무를 선택한 것일 터다.
잠든 상태에서 이렇게 다량은 산공무를 들이키게 되면, 아무리 내공이 고강한 절대 고수라도 한동안 내공을 쓸 수 없게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산공 독은 보통의 독과 다르게 내공을 모으려 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독이니, 오히려 중독된 상대가 고수이면 고수일수록 효과가 좋았다.
‘게다가 피독주도 듣지 않고 말이야.’
산공무가 보통의 산공 독보다 훨씬 고가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피독주가 무용해진다는 것.
산공무는 피독주로도 막을 수 없는 독이었다.
스으윽- 스으윽-
그렇게 산공무가 사라지고 잠시 뒤.
팽중호가 누워 있는 방으로 몇 개의 검은 인영이 나타났다.
얼굴까지 흑의로 완전히 가리고 있는 그들.
누가 보아도 좋은 목적을 가지고 온 이들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는 행색이었다.
“죽여.”
쇄애애애액-
아직까지 누워 있는 팽중호를 향해 망설임 없이 찔러 들어가는 검.
그 기세가 사뭇 대단한 것이, 그가 보통의 고수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거참. 이렇게 어설퍼서야 어디 개미라도 하나 죽이겠습니까?”
퉁-
팽중호가 누워 있는 상태 그대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가볍게 날아오던 검을 쳐 내었다.
팽중호는 가볍게 쳐 낸 것이지만, 검을 든 상대에게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파캉-
그대로 검이 반으로 부서져 버렸으니 말이다.
“설마 산공무 하나만 준비하진 않으셨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