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새로운 걸 보여 드려야겠습니다.
의형살인(意形殺人)의 경지.
그저 죽이겠다는 의지만으로 사람을 죽이는 경지를 일컫는 말이었다.
화경의 경지? 아니, 화경의 경지 이상이어야만 다다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청년의 실력이 화경의 경지 이상, 그러니까 현경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소리.
‘싸우면……. 아마도 지겠군.’
지금 싸우면 아마도 진다.
팽중호의 머리에서 계산이 섰다.
섣불리 패배를 예측하지는 않는 성격이지만, 지금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마교에 저런 괴물이 몇이나 더 있으려나.’
물론 아무리 마교라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무림에 지금 저런 괴물은 없는데, 마교에는 최소 셋은 있다는 것이 문제다.
검마, 소천마, 그리고 천마.
‘흐음. 문제로다 문제야.’
어떻게 저들을 막아선단 말인가?
갑자기 머리가 지끈 아파 오는 팽중호였다.
드르르륵-
그때 음식을 모두 다 먹은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천천히 걸어 팽중호를 향해 다가왔다.
팽중호는 어차피 저 소천마가 자신에게 다가올 것을 알았기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상대를 알아보았는데, 상대가 자신을 못 알아보았을 리 없으니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예. 안녕하십니까.”
정중하게 팽중호에게 인사를 해 오는 청년.
이렇게만 보면 그 누구도 청년을 소천마라고 생각하지 못할 터였다.
“저는 척한준이라 합니다.”
척한준.
분명 팽중호의 기억에 있는 천마의 성도 척씨였다.
역시나 청년이 소천마가 맞는 것이었다.
“팽중호라고 합니다.”
“아! 뇌성도제!”
팽중호가 인사하자 청년의 두 눈이 순간 반짝였다.
팽중호는 그 반짝임에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냥 인사나 하고 지나가지는 못하겠군.’
다행이라면 상대에게 조금의 살의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한적한 공터로 가실까요?”
“아! 예! 감사합니다.”
툭-
팽중호는 어차피 슬슬 음식은 다 먹었기에,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척한준과 함께 객잔 밖으로 나섰다.
객잔 안에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적마문 무인들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객잔 주인과 점소이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탓- 탓-
가볍게 발을 구르며 한적한 공터를 찾아 움직이는 두 사람.
아직 몇 걸음 떼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공터까지 날아온 두 사람이었다.
“후. 여기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예.”
그렇게 공터에 도착한 팽중호와 척한준은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서로의 실력을 잠시 가늠해 보는 시간.
팽중호가 아무리 척한준을 짐작해 보려고 해도 역시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은 무인의 싸움에 있어 분명 아주 치명적인 것으로 작용한다.
상대의 힘을 알 수 없으니 대처를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검마께 팽 소협에 대해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척한준이 무림 여행을 하기 전.
먼저 무림 여행을 나왔던 검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전해 들었는데, 그중 가장 척한준의 관심을 끌었던 이야기가 바로 팽중호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 팽중호가 검마가 인정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
마교에도 검마가 인정한 무인은 몇 없다.
그런데 무림에 있는, 그것도 젊은 나이의 팽중호가 검마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하니, 어찌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좋은 이야기를 좀 들으셨어야 하는데.”
“하하. 전부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럼 오늘은 가볍게 대련으로 끝을 내실 겁니까?”
팽중호는 슬쩍 척한준을 떠보았다.
그가 지금 무슨 마음가짐으로 이곳에 왔는지에 대해 말이다.
“예. 즐거움은 후로 미뤄 두고 싶으니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팽중호는 속으로 내심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만에 하나 척한준이 여기서 생사를 결판내자고 하면, 일이 커졌을 테니 말이다.
‘그랬으면 도망쳐야겠지.’
전생이라면 아무리 상대가 강하다 해도 도망은 절대로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렇기에 도망이라는 선택도 할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자신이 만약 죽는다면, 정말 많은 것들이 무너질 테니 말이다.
“그럼.”
스릉- 화르르르르륵-
척한준이 먼저 검을 꺼내어 들었다.
검을 꺼내어 들자 자연스럽게 그의 검에 검은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천마강기.
천마신공을 익힌 이들만이 뿜어낼 수 있는 불꽃.
이것의 위력은 팽중호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스릉- 쿠르르르르릉-
이에 맞서 팽중호도 무적도를 꺼내어 들었고, 뇌성과 함께 뇌강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척한준에게 진다고 판단한 팽중호지만, 그래도 일말의 자신감은 있었다.
전생보다도 더욱 높은 곳에 다다른 지금의 성취.
이 성취라면 분명 가능성은 있었다.
“대단하십니다!”
척한준의 순수한 감탄.
그는 지금 팽중호의 힘을 알아보고 감탄하는 것이었다.
척한준은 마교에서 수많은 이들과 싸워 보았다.
그들 중 자신을 감탄하게 할 만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특히나 자신과 비슷한 또래 중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팽중호는 자신과 같은 또래이면서 자신을 감탄하게 하고 있었다.
“그쪽이 더 대단합니다.”
“하핫. 감사합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탓-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가볍게 움직였다.
물론 이들 입장에서 가볍다는 것이지, 다른 무인들이 본다면 전혀 가볍지 않았다.
순식간에 허공을 격하며 서로의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의 검과 도가 격돌하기 시작했다.
쾅- 카캉- 콰쾅-! 카카카카캉-
주변이 두 사람의 부딪침에 의해 초토화가 되고 있었다.
정작 두 사람은 너무나 평온했지만 말이다.
“확실히 다르십니다.”
팽중호와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더욱더 밝게 빛나는 척한준의 눈.
가볍게 부딪치는 것이지만 팽중호의 힘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확실히 자신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실력을 갖춘 자였다.
“역시 팽 소협을 만나려 한 생각이 맞았습니다.”
척한준은 하북팽가로 팽중호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검마에게 들은 그를 직접 만나 보고 싶었으니 말이다.
혹시나 그를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천운이 따랐는지 가는 길에 이렇게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직접 만나 보니, 그를 만나려고 했던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여실히 느꼈다.
“좀 더 힘을 내 봐도 될까요?”
“후우. 예.”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
이건 팽중호도 척한준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왕 척한준과 싸우게 된 것이니, 얻을 건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잘하면 나도 화경을 넘어설 수도.’
팽중호는 지금 자신이 현경의 벽 앞에 섰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눈앞의 벽을 부수면 현경의 경지라는 지고한 경지에 발을 내딛는 것이다.
그리고 이 벽을 부수기 위해서는 새로운 깨달음이 필요했는데, 분명 척한준과의 대련은 그 깨달음을 얻는 데 큰 도움을 줄 터였다.
“최선을 다하셔야 할 겁니다!”
“그럴 생각입니다!”
조금 더 힘을 낸다고 했지만, 절대 조금이 아니다.
쿠구구구구구구-
두 사람의 기운으로 인해 주변의 땅이 흔들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정도라면 정말로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힘.
다만, 서로의 실력을 짐작하기에 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뿐.
팟- 팟-
두 사람의 신형이 다시금 사라졌다.
그리고 두 사람의 중간.
그곳에서 다시금 만난 두 사람의 검과 도가 서로를 향해 무섭게 뻗어나갔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원뢰멸혼(元雷滅魂).
-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수라참(天魔修羅斬).
툭- 콰아앙-!! 퍼서서서서서서석-
처음에는 가벼운 소리, 그 후에는 주변을 진동시키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마치 먼지처럼 산산이 부서지며 사라져 버렸다.
가공할 힘과 힘의 맞대결에 버티지 못한 것이다.
혼원벽력도도 천마신공도 모두 극패도(極覇道)를 추구하는 무공간의 부딪침이었으니 말이다.
“아직입니다!”
“이거 좀 봐 주십쇼.”
물론 이 한 번의 부딪침으로 끝이 아니었다.
다시 재차 움직이는 두 사람.
“무림에서 이걸 쓸 줄은 몰랐는데, 한번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런 건 안 보여 주셔도 되는데…….”
“하하하!”
“어쩔 수 없이 저도 아직 미숙한 것이지만, 새로운 걸 보여 드려야겠습니다.”
화르르르르르륵-
척한준의 천마강기가 거대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절로 찍어 누르는 엄청난 위용.
십만 마도 위에 군림하는 자인 천마의 무공이라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쿠르르르릉- 쿠릉- 콰쾅-!!
사아아아아악-
그리고 그에 맞서 팽중호의 뇌성이 거칠게 울어대며 엄청난 뇌강을 뿜어내는 듯싶더니, 갑자기 씻은 듯이 뇌강과 뇌성이 사라졌다.
팽중호는 깨달음의 벽 앞에서 또 새롭게 혼원벽력도에 대해 깨달았다.
물론, 아직 팽중호도 완벽하다고 할 수 없었기에 꺼내는 것이 조금 망설여졌지만, 상대가 척한준이니 꺼낼 만하다고 생각했다.
척한준이라면 이 새로운 깨달음을 실험해 보기 가장 최적의 상대이니 말이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무뢰(無雷).
-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天魔君臨).
콰아아아아아앙-
천지가 뒤집힐 듯한 거대한 울림.
그리고 정말로 주변의 하늘과 땅이 뒤집혀 버렸다.
완전히 초토화된 주변에서 멀쩡히 서있는 두 사람.
팽중호와 척한준은 도와 검을 늘어트린 채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 내공을 조절했다지만, 이런 결과라니.’
팽중호는 지금의 상태를 보며 속으로 푸념을 내뱉었다.
팽중호는 지금 속이 다 울렁거리고, 피가 목에 넘어오기 직전의 상태였다.
하지만 척한준은 입가에 미소까지 머금고 있는 여유로운 상태.
그리고 또 하나의 증거.
그것은 바로 발밑이었다.
깊게 파인 팽중호의 발밑과 다르게, 척한준의 발밑은 그리 깊게 파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훗날이 기다려집니다.”
척한준이 정말 밝은 미소를 지으며 훗날이 기다려진다고 말하였다.
조금 전 팽중호가 보여 주었던 그 일수.
그것은 분명 척한준에게도 엄청난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음에도 그 위력이 범상치 않았으니 말이다.
덜덜-
지금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있는 척한준이지만, 검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은 막지 못했다.
손이 떨려오는 이 느낌.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것이었다.
“저는 그 훗날이 안 왔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니, 팽 소협께서도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즐기라?
예전이라면 정말 흔쾌히 즐겼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태다.
‘반드시 무림맹을 옮겨 와야겠군.’
지금 척한준과의 부딪침으로 팽중호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
무림맹을 하북성으로 무조건 옮겨 와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지 않으면, 혈천궁은 어찌어찌 막아 내도 마교는 막아 낼 수 없을 것이다.
“저는 목적은 이뤘으니,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더욱 강해지시기를…….”
“아, 예. 뭐.”
스슥-
마치 검마가 사라졌던 것처럼 척한준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초토화된 공터에 홀로 남게 된 팽중호.
그곳에서 팽중호는 움직이지 않고 잠깐 생각에 잠겨 서 있었다.
‘그래도 소천마와의 대련으로 벽을 부술 실마리는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