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술에 취한 이세경.
그녀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상태로 팽중호에게 주절주절 떠들어 대었다.
대체로 떠드는 내용은 자기가 얼마나 팽중호를 좋아하는지에 대해서였다.
팽중호는 그런 이세경을 마냥 귀엽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술에 취하니 그냥 평범한 아가씨군.’
평상시에는 그 나이로 보이지 않을 만큼 철두철미한 그녀였다.
그런데 이렇게 술이 들어가니 나이에 맞는 귀여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팽중호는 더 보고 싶었지만, 날이 너무 늦었기에 취한 이세경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해가 넘어가 주변에 어둠이 깔린 시간.
“우으음…… 나 업어 줘요…….”
“그래. 알았어.”
술에 잔뜩 취한 이세경은 업어 달라며 팽중호를 졸랐고, 팽중호는 곧바로 그녀를 등에 업었다.
세상 가벼운 이세경의 몸.
팽중호는 그런 이세경을 업고 천천히 팽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밤하늘의 별들이 밝게 빛나는 밤거리는 꽤 운치가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팽중호는 그런 별을 보면서 조금 발걸음을 천천히 내디뎠다.
지금과 같은 여유를 조금 더 만끽하고 싶어서였다.
언제 다시 이런 여유를 느낄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으으음…….”
새근- 새근-
팽중호의 등에 업혀 있던 이세경은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고, 팽중호는 그런 이세경을 보고는 살짝 미소 지으며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 * *
다음 날 아침.
팽중호는 일찍 팽가를 벗어나 무림맹으로 향했다.
혼자 조용히 떠나는 걸음.
근래에 항상 누군가와 함께 움직였는데, 혼자 움직이니 예전 생각이 나는 팽중호였다.
전생에는 항상 혼자 다녔기에, 이렇게 혼자 다니는 것이 익숙했으니 말이다.
‘그보다 아침에 생각보다 재밌었단 말이야.’
팽중호는 팽가를 조용히 나서기 위해 아침 일찍 몰래 밖으로 나섰었는데, 그때 누군가 팽중호의 처소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 가가…….”
바로 이세경.
그녀는 이른 아침에 팽중호가 떠날 것을 알기에, 미리 와서 팽중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뭔가 조금 불안한 눈빛과 떨리는 목소리로 팽중호를 부르는 이세경.
팽중호는 그녀가 왜 그런지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술꾼 일찍 일어났네?”
“제가 혹시 실수를 하지는 않았습니까?”
“기억이 나지 않는 거야?”
“예…….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신 것은 처음이라…….”
이세경은 어제 주루에 들어간 이후의 일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에 번쩍 눈이 떠지자마자 혹여나 자신이 실수를 했을까 불안해서 팽중호를 찾아온 그녀였다.
팽중호는 이걸 알기에 조금 장난을 쳤다.
“어제 장난 아니었는데……. 나는 세경이 너가 그렇게…….”
“헙! 죄, 죄송합니다! 가가!”
이야기를 다 듣지도 않고, 대뜸 허리를 숙이며 사과를 하는 이세경.
팽중호는 그 모습에 더 놀리려다가,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했다가는 그녀가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았으니 말이다.
“아니야. 그냥 등에 업혀서 잠만 잤어.”
“제, 제가 가가 등에 말입니까?”
“응.”
화아악-
등에 업혔다는 말에 이세경의 얼굴이 터질 듯 달아올랐다.
아직 손도 제대로 못 잡아 보았는데, 등에 업혔다니?
당연히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술에 취해서 그랬다니 더더욱 말이다.
“등에 업혀서 잘 자던걸? 내가 무림맹에 다녀오면 한 번 더 업어 줄게.”
“가가!”
“하하. 그럼 다녀올 테니까, 조심해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아, 알겠습니다. 가가도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응.”
이렇게 이세경과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하북팽가를 나온 팽중호였다.
지금은 이미 하북팽가에서 꽤 떨어진 곳까지 도착한 팽중호.
벌써 해가 산 뒤로 넘어가려 하기에, 팽중호는 저 멀리 보이는 마을에서 하루 쉬어 가기로 하였다.
“어서 옵쇼!”
팽중호는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객잔으로 향했다.
객잔에 들어서자 밝게 인사를 건네오는 점소이.
팽중호는 간단한 음식을 시킴과 함께 방도 하나 미리 잡아 두었다.
“여기 나왔습니다!”
금방 팽중호의 앞에 나오는 음식들.
마을에서 가장 큰 객잔으로 들어왔는데, 확실히 음식이 썩 나쁘지 않았다.
향도 괜찮고, 맛도 괜찮았다.
“곧 무림에 큰 전쟁이 있을 걸세.”
“그러게나 말이네. 이거 어디에 줄을 서야 할지 원.”
“나는 일단 무림맹 쪽에 줄을 섰네.”
“나도 그러고 싶네만, 최근에 혈천궁에서…….”
주변에는 상인들이 많았는데, 상인들의 대화 주제 중 대부분이 무림맹과 혈천궁에 관한 것이었다.
상인들에게도 이 싸움은 꽤 중요한 것이니 당연했다.
잠잠했던 상권이 확 뒤집힐 만큼 큰 싸움이 될 터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상인들 사이, 조용히 식사하는 무인들이 몇 보였는데, 그중에 한 명이 팽중호의 눈길을 확 사로잡았다.
‘뭐지?’
조촐하게 만두와 소면을 시켜 놓고, 그것을 마치 산해진미를 먹는 듯이 음미를 하며 먹고 있는 한 명의 청년.
나이는 팽중호와 비슷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옷은 깔끔한 흑의(黑衣)를 입고 있었는데, 한눈에 보아도 평범치 않아 보이는 고급스러운 옷이었다.
물론 그것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청년의 얼굴이었다.
‘더럽게 잘생겼다.’
팽중호도 나름 잘생긴 편이고, 위지철이나 정한승 또한 보기 드문 미남형 얼굴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청년에 비하자면 다들 태양 앞의 반딧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늘이 온 힘을 다해 청년의 얼굴을 빚었다고 해도 될 정도의 미모.
만약 천하제일의 미남을 뽑는다면 청년에 견줄 사람이 없을 듯싶었다.
그만큼 잘생긴 얼굴.
‘게다가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검마를 만났을 때도, 혈천궁 궁주를 만났을 때도 그들의 힘이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청년에게는 조금의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일까?
절대로 아니다.
‘무공을 익히지 않아도, 사람의 힘은 느껴지는 것이거늘.’
무공을 익히지 않은 범인도 힘이란 것은 느껴진다.
그들이 숨을 쉬면서 얻은 아주 미약한 기운이 몸속에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청년에게서는 그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무저갱을 보는 듯이 말이다.
‘천마(天魔)를 보는 것 같다.’
전생에 만났던 천마(天魔) 척종호.
팽중호는 지금 청년에게서 그를 만났을 때의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에 생각이 미치자, 청년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미친. 소천마(小天魔)군.’
소천마(小天魔).
한마디로 차기 천마라는 소리다.
현 천마의 뒤를 이어 천마가 될 재목.
마교에서 천마 다음가는 권력자.
지금 그런 사람이 왜 이곳에서 소면이랑 만두를 먹고 있단 말인가?
‘도대체 길을 가다가 객잔에서 마교의 소천마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지난번에는 검마를 만났다.
물론 그것은 그나마 하북팽가의 권역 내에 있는 곳에서였다.
그런데 이곳은 하북팽가의 권역에서 좀 벗어난 곳.
그런 곳에서 마교의 소천마와 우연히 객잔에서 마주치다니?
이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 우연이란 말인가?
팽중호가 이 말도 안 되는 우연에 속으로 한탄하고 있을 때였다.
쾅-
갑자기 객잔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일련의 무인들이 들이닥쳤다.
모두 하나같이 붉은색 적의를 입은 무인들.
그들은 저마다 무기를 꺼내 들고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객잔 안으로 들어섰는데, 딱 봐도 음식이나 먹으려고 온 이들의 행색은 아니었다.
“객잔 점주 나오라고 해.”
“예, 예?”
쾅- 콰직-
“빨리 나오라고나 해!”
“예, 예! 알겠습니다!”
점소이는 무인이 옆에 탁자를 부수며 말을 하자,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대답하며 얼른 몸을 옮겼다.
괜히 무인들의 말을 듣지 않아 봐야 피를 본다는 것을 잘 알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점소이가 점주를 부르기 위해 사라진 객잔.
객잔에 남겨져 있던 무인들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상인들은 이미 몸을 돌려 도망친 상황이었고, 객잔에는 두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팽중호와 청년.
무인들은 그중 청년을 보더니, 저들끼리 수군거리더니 그에게 다가갔다.
“크크크. 예쁘장하게 생겼구나.”
청년을 둘러싸며 조롱섞인 말을 내뱉는 그들.
청년은 그런 그들의 말에도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계속해서 소면과 만두를 먹고 있었다.
“우린 적마문(赤魔門)의 영웅님들이신데, 어떠냐 오늘 우리와 함께 놀아 보겠느냐?”
“크크크크크.”
“흐흐흐흐흐.”
적마문(赤魔門).
최근에 이 주변에 터를 잡은 사도 문파로, 혈천궁 소속의 사도 문파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혈천궁의 힘을 등에 업고 지금 이 주변에서 날뛰는 이들이었다.
‘흠. 지켜볼까?’
팽중호는 당장 움직이려다 적마문 무인들이 청년에게 다가서는 것을 보고,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왜 대답이 없지? 우리 그렇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니 겁먹지 말라고.”
천천히 청년에게 다가서며 추파를 던지 듯이 말하는 적마문 무인들.
그들은 지금 청년의 얼굴을 보고 그를 조롱하는 것이었다.
잘생긴 얼굴에 생긴 시샘 때문에 말이다.
그들은 이렇게 잘생긴 얼굴을 보며 가만히 놔둘 수가 없었다.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으니 말이다.
특히나 지금 청년은 그들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미남이었으니, 한층 더 시샘이 났다.
쿵-
“사람이 말을 걸었으면 대답을 해야지. 안 그래?”
청년이 그들을 무시하듯 아무 말도 없이 계속해서 음식만 먹자, 결국 그들은 허리춤의 도를 꺼내어 청년의 식탁에 협박하듯 올려놓았다.
물론 청년은 여전히 계속해서 음식을 입에 넣고 있을 뿐이었다.
“이놈이!”
적마문 무인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을 무시하는 청년에게 화가나 소리를 지르며, 청년이 먹고 있던 음식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음식을 치워 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틱-
음식을 향해 거칠게 휘둘러지던 도가 허공에 딱 멈추어 섰으니 말이다.
움직이던 도가 멈추어진 이유.
그것은 바로 청년이 들고 있던 젓가락 때문이었다.
청년은 젓가락의 뒷부분으로 가볍게 도를 막아 내고 있었다.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시지요.”
그리고 그땡 청년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얼굴만큼이나 너무나도 듣기 좋은 목소리의 청년.
청년의 말에 주변에 있던 적마문 무인들이 일제히 무기를 꺼내어 들었다.
지금 딱 일수를 보고 청년이 고수임을 알아본 것이다.
“공격해!”
젓가락에 공격이 막혔던 무인이 소리쳤고, 적마문 무인들이 그대로 자리에 앉아있는 청년을 향해 동시에 공격을 가했다.
“예의를 모르는 사람들이군.”
탁-
청년은 자신에게 무기들이 찔러 들어옴에도 가만히 앉아 있는 상태 그대로 젓가락을 잠깐 손에서 내려놓았다.
이제 청년의 지척까지 다가온 적마문 무인들의 무기.
이대로라면 청년의 몸이 벌집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사아아아악-
청년의 몸에서 무언가가 바람처럼 불어 나오더니 그대로 적마문 무인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청년을 향해 무기를 찔러 들어오던 적마문 무인들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청년은 분명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를 향해 무기를 뻗어오던 이들이 바닥에 쓰러진단 말인가?
“음식을 먹는 데 피를 볼 수는 없지.”
너무나 태연하게 다시금 젓가락을 들고 식사에 집중하는 청년.
그리고 그런 청년을 팽중호는 무슨 괴물을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의형살인(意形殺人)의 경지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