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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의 개망나니-109화 (109/200)

109화 보는 눈이 확실히 늘긴 늘었군.

위지철은 혈천궁에서 입은 상처로 인해, 하북팽가로 돌아와서도 자신의 처소에 머물러 치료에 전념하고 있었다.

혈천궁에서 입은 상처가 생각 이상으로 깊었기에, 치료되는 데까지 시일이 꽤나 걸리는 것이었다.

특히 어깨의 상처가 꽤 위중했다.

제대로 치료한다 해도 다시금 예전처럼 움직이기는 힘들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검을 쓰는 검객이 어깨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은 검객으로서의 생명이 끝난다는 소리.

그렇기에 지금 그의 어깨를 정말 유명한 의원을 모셔 와 치료하는 중이었다.

“위 소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예. 괜찮습니다.”

팽중호와 이세경이 조심스럽게 위지철이 머무는 처소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위지철 말고도 두 사람이 더 있었는데, 한 명은 위지철을 봐 주는 의원이었고, 다른 한 명은 바로 곽채령이었다.

곽채령은 성무각의 일을 하면서 틈이 날때마다 이렇게 위지철을 찾아와 그 옆을 지키고 있었다.

하긴 둘은 이제 혼인을 정식으로 약속한 사이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어떻습니까? 어깨는 좀 괜찮습니까?”

팽중호는 위지철의 어깨를 보고 있던 의원에게 상태를 물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어깨를 살피던 의원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상태가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제 능력으로는 힘들 것 같습니다.”

의원의 말에 일순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다만 다들 무어라 입을 열지는 않았다.

지금 가장 힘든 당사자인 위지철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원님 감사했습니다. 이제 괜찮으니, 더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만히 있던 위지철이 애써 밝은 목소리로 의원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의원은 위지철의 말에 능력이 부족해 미안하다는 대답과 함께, 먼저 방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의원이 나서고 남은 네 사람.

네 사람은 잠시간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아직 왼팔이 남아 있는데, 다들 왜 그리 심각하십니까?”

어색한 공기를 먼저 깬 것은 역시나 위지철이었다.

아무런 일도 아니란 듯이 말을 꺼내는 위지철.

그가 지금 이런 상황이 싫다는 것을 느꼈기에, 팽중호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기 시작했다.

“좌검수가 요즘 대세이긴 하긴 합니다.”

좌검수(左劍手).

위지철과 팽중호 모두 장난처럼 말하기는 하였지만, 사실 장난은 아니었다.

위지철은 정말로 검을 쥐는 손을 왼손으로 바꿀 생각이었다.

평생을 쓰던 손을 바꾼다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고, 부단한 노력을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지금과 같은 시국에 다쳤다는 것이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위 소협. 제가 조만간 좋은 걸로 하나 구해다가 드릴 테니, 그동안 몸조리 잘하고 계십쇼.”

“알겠습니다. 소가주님.”

“분명 위 소협은 더 강해지실 겁니다.”

팽중호는 이번 일을 위지철이 극복하고 나면, 분명 전보다 더 강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위지철과 같은 무인은 이런 큰 위기 후에 더 강해지는 법이니 말이다.

“그럼.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에 대련이나 하죠.”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팽중호와 이세경은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위지철의 처소를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온 팽중호와 이세경.

그렇게 밖으로 나섰을 때,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이가 한 명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소가주님!”

팽중호의 앞을 가로막은 인영은 바로 팽구준.

팽구준은 팽중호가 위지철의 처소로 갔다는 것을 듣고, 그 앞에서 팽중호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무슨 일이야?”

“그, 그 혹시 제 무공을 한번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팽구준이 팽중호를 찾아온 이유.

그것은 지금 무공을 익히는 것에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였다.

혼자의 힘으로 뚫고 나가고 싶었지만,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는 느낌.

그래서 팽구준은 팽중호에게 그 길을 묻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이다.

“세경. 괜찮을까?”

팽중호는 이세경에게 일단 괜찮겠냐고 물었다.

오늘 하루는 이세경과 보내기로 했었으니 말이다.

“호호. 물론이죠.”

이세경이 환한 웃음과 함께 괜찮다고 해 주었다.

그저 팽중호와 함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어디든, 그가 무엇을 하든 상관없었다.

“좋아. 그럼 가자.”

“감사합니다!”

곧바로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무장에는 무인들이 각자 수련을 하고 있었는데, 팽중호가 나타나자 인사를 하고는 재빠르게 연무장 한 편을 비워 주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금 눈치로 팽중호와 팽구준이 무언갈 하려고 한다는 걸 안 것이다.

“그럼 지체 없이 바로 볼까?”

“옙.”

스릉-

팽구준의 도가 뽑혀 나왔다.

보통의 도보다 훨씬 얇은 도신을 가진 도.

팽중호가 전해 준 환영천무도법(幻影天舞刀法)을 펼치기에 최적화된 형태의 도였다.

사아아아아악-

이전과 다르게 팽구준이 도를 뽑아 들자 예기(銳氣)가 주변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의 성취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수련을 정말 열심히 했군,’

팽중호는 지금 팽구준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 기운은 물론이고, 그의 손을 자세히 보면 어디 한 곳 성한 곳이 없었다.

그만큼 쉬지 않고 도를 휘둘렀다는 소리.

그러니 지금과 같은 성취를 보일 수 있는 것일 터였다.

“가겠습니다.”

“그래.”

타탓-

팽구준이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팽중호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팽중호의 앞에 도달하자 주변에 펼쳐지는 수많은 도의 환영.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완벽한 수준의 환영이었다.

환영천무도법(幻影天舞刀法)의 성취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좋구나.”

팽중호마저 살짝 감탄할 정도.

사실상 팽중호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면, 이 환영들의 진위를 구별하지도 못할 터였다.

물론 지금 팽중호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카카캉-

팽중호가 가볍게 무적도를 휘둘러 정확하게 진짜만 골라내어 막아 냈다.

하지만 팽구준도 이 공격이 막힐 줄 미리 알고 있었기에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선 팽구준이 호흡을 가다듬더니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던 주변의 모든 이를 놀라게끔 하는 변화가 팽구준에게 나타났다.

팽중호마저 놀라게끔 하는 변화가 말이다.

“허!”

“저게 뭔가?”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건가?”

꿈뻑- 꿈뻑-

지금 사람들의 눈앞에 두 명의 팽구준이 움직이고 있었다.

서로 완벽하게 똑같은 모습으로 움직이는 두 명의 팽구준.

검의 환영이 아니라, 사람 자체의 환영이라니?

물론 이형환위(移形換位)라는 경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저 잠깐의 눈속임처럼 잔상이 남는 것일 뿐.

저렇게 움직이지는 못한다.

그런데 지금 팽구준이 만든 환영은, 어느 것이 진짜인지 모를 만큼 완벽하게 똑같은 움직임으로 팽중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화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둘로 늘어난 팽구준만큼 그의 도에서 펼쳐진 환영 또한 두 배로 많아져 있었다.

도저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모습.

팽중호는 씨익 미소를 지음과 동시에 무적도에 뇌기를 두르기 시작했다.

쿠르릉-

팽중호는 팽구준을 상대함에 조금 진심을 담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야 그가 지금 헤매고 있는 길을 보여 줄 수 있을 터였으니 말이다.

쿠르르릉- 쿠르릉-

콰가가가가가각-

뇌성과 함께 팽중호의 무적도가 사방을 휘몰아쳤고, 팽구준이 만들어 낸 모든 검의 환영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둘이었던 팽구준의 신형도 하나로 돌아왔다.

“허억…… 허억…… 허억…….”

거친 숨을 연신 몰아 내쉬는 팽구준.

조금 전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신형은 엄청난 양의 내공을 잡아먹었다.

그 상태로 유지하는 것도 힘들 정도고, 이렇게 무공을 펼쳐 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사실 아직 완벽하지 않은 것이지만, 팽중호에게 보이기 위해 무리해서 꺼낸 것이었다.

“왜 그렇게 똑같은 것에 집착하는 거냐?”

“허억…… 예?”

팽중호는 아직까지 숨을 고르고 있는 팽구준에게 나지막이 말을 꺼내었다.

팽구준은 지금 팽중호의 말을 언뜻 이해하지 못했다.

환영이란 본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같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환(幻)은 똑같은 것이 아니라, 상대를 홀리는 거야. 거짓을 진실처럼 보이게 하고, 진실을 거짓처럼 보이게 하는 것 말이야.”

“아……!”

“그리고 환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변하는 거야. 그저 똑같이 밀려 들어오는 것은 너무나 막기 쉽지 않겠어?”

“……!!!”

팽구준이 두 눈이 쉴 새 없이 떨리더니, 이내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깨달음에 들어선 것이다.

“자. 세 명만 여기서 호법을 서 주시고, 다른 분들은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쉬도록 하십쇼.”

“예. 소가주님.”

팽중호는 주변에 있던 무인들에게 팽구준의 호법을 부탁하고, 오늘 하루는 이 주변에서 수련 금지를 명했다.

지금 팽구준은 팽중호의 말에 아주 중요한 깨달음의 문턱에 서 있었으니 말이다.

이 문턱을 넘는다면 팽구준은 수 걸음은 앞서 나갈 수 있을 터였다.

‘나도 보는 눈이 확실히 늘긴 늘었군.’

팽중호는 조금 전 팽구준의 움직임을 보고 곧바로 팽구준이 가야 할 길이 보였다.

물론 경지가 높아짐에 따라 보는 눈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했지만, 그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의 무공을 봐 주며 생긴 안목이었다.

전생의 팽중호가 다른 이들의 무공을 봐 줄 때는 오로지 싸울 때뿐.

하지만 지금은 하북팽가의 소가주로서 수많은 이들의 무공을 봐 주면서 자연스럽게 보는 눈이 는 것이다.

‘좋은 일이야. 무림맹을 개조시키려면 필요한 능력이었으니까.’

그렇게 팽중호가 속으로 만족하며 걷기를 조금.

팽중호와 이세경은 비무대를 떠나서 목적했던 곳에 도착했다.

“흐음. 둘이서 주루는 오랜만이지?”

“호호. 예. 맞습니다.”

팽중호와 이세경이 도착한 곳.

그곳은 바로 팽가 앞에 있는 주루였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주루는 조용히 식사와 술 한잔하기에 딱 좋은 분위기였는데, 이세경이 팽중호가 떠나기 전에 술을 한잔하고 싶다고 하여 온 것이었다.

“어서…… 헙! 어서 오십시오.”

팽중호와 이세경이 들어서자 인사하는 점원.

그리고 팽중호와 이세경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급하게 허리를 숙이고 인사를 해 왔다.

두 사람을 알아본 것이다.

하긴, 하북팽가 주변에서 장사하는데 두 사람을 모른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것.

점원은 급하게 움직여 두 사람을 주루에서 가장 좋은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주루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전망이 가장 좋은 곳.

하북팽가 주변의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자리였다.

“실례하겠습니다.”

잠시 뒤 음식과 술이 차례로 나오기 시작했고, 팽중호와 이세경은 좋은 분위기 속에서 술을 한 잔, 두 잔 계속해서 주고받기 시작했다.

해가 넘어가고 조금은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술자리.

이 길어진 술자리에 팽중호는 아직 멀쩡했지만, 문제는 이세경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본적 없이 술에 취해 버렸다.

“제가…… 가가 굉장히 좋아하는 거 아시죠? 예?! 아시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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