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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의 개망나니-106화 (106/200)

106화 나도 보답을 해야지.

혈라천강시(血羅天僵尸).

혈천궁이 만들어 낸 강시로, 그들이 지금까지 실험해 얻은 강시 제조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강시였다.

혈강시(血僵尸)를 개량하고 또 개량한 것.

당연히 그 힘 또한 혈강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혈라천강시 한 구, 한 구가 오혈랑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강제로 주입한 혈기로 가득 찬 몸과 금강불괴와 같이 단단한 피부.

거기에 더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움직이는 혈라천강시는 대법을 시행하기 전, 시신이 살아 있을 때보다도 월등히 강해진다.

스윽-

혈라천강시들이 얼굴의 천을 벗기 시작했다.

그러자 드러나는 그들의 얼굴.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팽중호마저도 놀랐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저자는 서문정천 아닌가?”

“그 옆에는 모용정승이네!”

“저자는 또 어떻고! 패중권(覇重拳)이 아닌가!”

지금 혈라천강시들의 정체는 서문세가의 가주, 모용세가의 가주, 그리고 무림에서 이름난 고수 중 하나인 패중권이었다.

모두 하나 같이 정도 무림의 기둥이라 불려도 될 만한 인물들.

그런데 그들이 지금 강시가 되어서 나타난 것이다.

특히나 사람은 한 강시를 보고 깜짝 놀랐는데, 바로 모용정승이었다.

분명 오대회합에서 팽중호에게 크게 당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강시가 될 만한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강시가 되어서 나타났단 말인가?

‘나를 강시로 만들어 주시오.’

그는 팽중호에게 지고 난 후, 모용세가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가주의 자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혈천궁에 모용세가가 합류한 후, 모용정승은 직접 자신을 강시로 만들어 달라고 혈천궁에 부탁했다.

오로지 팽중호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서문정천이나 패중권과는 다르게 그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강시가 되었다.

생강시(生僵尸).

보통 죽은 시신을 이용하는 사강시(死僵尸)보다 훨씬 더 뛰어난 효율을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생강시다.

그래서 지금 모용정승은 서문정천이나 패중권을 부리는 위치의 강시였다.

“죽여라.”

모용정승의 입이 열렸다.

말을 하는 강시.

이것 또한 그가 생강시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팟- 팟-

모용정승의 말에 다른 두 강시가 동시에 팽중호와 위지철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는 두 강시.

그 기세가 일견 보기에도 장난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화살처럼 쏘아져 날아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위 소협 누구랑 싸우고 싶으십니까?”

이 긴박한 상황에도 느긋하게 위지철을 향해 누구를 상대할지를 묻는 팽중호.

팽중호는 조금의 긴장감도 없는 모습이었다.

“제가 패중권을 맡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이기는 사람이 저기 저놈이랑 싸우는 겁니다.”

“예.”

팽중호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무적도를 허리춤에서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서문정천에게 달려갔다.

검을 들고 팽중호를 향해 다가오는 혈라천강시가 된 서문정천.

아무런 표정도 없는 그의 검에서는 검붉은 강기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원래라면 청록색의 강기가 나와야 하건만, 혈기로 변한 그의 내공 때문에 검붉은색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물론 위력은 생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지만 말이다.

“자. 힘 좀 볼까?”

쾅-

팽중호의 무적도와 서문정천의 검이 부딪치자 큰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이라면 서문정천이 뒤로 쭉 밀려났을 터지만, 지금은 호각으로 팽중호의 공격에 맞서고 있었다.

캉- 쾅- 카아앙-!

연신 팽중호와 서문정천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굉음.

둘 사이에 터져 나오는 기파에 주변 바닥이 터져 나가고 있었다.

“이것 참. 같은 사람을 두 번이나 베는 건 또 처음이네.”

쿠르릉- 쿠릉- 쿠르르릉-

팽중호의 무적도가 뇌성을 울리며 울기 시작했다.

절로 몸을 위축 들게 하고, 오감을 떨게 만드는 뇌성의 울림.

이 뇌성에 강시인 서문정천의 몸도 흠칫 떨렸다.

지금 팽중호의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강시인 상태에서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저쪽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끝내야겠지.”

쿠릉- 철컥-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혼뢰단세(混雷斷世).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뇌성이 울리는 소리와 도가 도갑으로 돌아들어 가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찰나, 허공이 반으로 갈라졌다.

스스스스슥- 털썩-

혈라천강시가 된 서문정천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이 모습에 지켜보던 혈천궁 무인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혈라천강시가 단 일도에 반으로 갈라져 쓰러지다니?

화경의 무인이라도 이렇게 한 번에 혈라천강시를 베어 낼 수 없다.

게다가 서문정천은 초절정을 넘어섰던 고수.

그런 서문정천으로 만든 혈라천강시가 일격에 쓰러졌으니, 표정이 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 무게 잡고 있을 거냐?”

팽중호는 아직까지 싸우고 있는 위지철과 패중권을 힐끗 바라본 후에, 가만히 서 있는 모용정승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는 서문정천이 죽을 때까지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만약 합공을 했다면 결과가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흐음. 그렇군. 동시에 두 구 이상을 조종하지는 못하는 거군,’

팽중호는 모용정승을 바라보다가 그 뒤에 있는 한 인물을 발견했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자리에 서서 무언가 비무대를 바라보며 땀을 흘리고 있는 인물.

그가 지금 이 혈라천강시를 조종하고 있는 술사인 듯한 모양이었다.

다만 그의 강시술의 숙련도가 부족했기에, 동시에 두 구 이상의 강시를 조종하지 못하는 듯싶었고 말이다.

사실 혈천궁의 강시술사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팔주가 팽중호의 손에 의해 죽어 버렸기에 혈라천강시를 동시에 세구 구 이상을 다룰 수 있는 자가 없었다.

혈라천강시는 강한 힘만큼이나 높은 숙련을 필요로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서문정천과 패중권이 움직이는 동안 모용정승은 움직이지 못한 것이었다.

“죽인다.”

스릉-

서문정천이 쓰러지고 난 후, 모용정승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긴말은 하지 않지만, 그의 기운이 모든 말을 대신해 주고 있었다.

팽중호를 향한 지독한 살기.

그가 얼마나 팽중호를 죽이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나랑 생각이 같네. 나도 죽일 생각이거든…… 아! 이미 죽었지?”

쿠르릉-! 쾅-!

팽중호가 엄청난 뇌성과 함께 강렬한 진각을 밟으며 그대로 모용정승에게 쇄도했다.

지금이 가장 빠르고 쉽게 모용정승을 죽일 틈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술사가 제대로 모용정승을 조종하기 위해 장악하기 전에 말이다.

휘익-

카가각- 서걱- 툭-

모용정승이 빠르게 몸을 틀었기에 몸이 갈리는 것은 피했지만, 그래도 왼쪽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대로 바닥을 구르는 모용정승의 팔.

물론, 다행이라면 이미 강시가 된 모용정승이기에 고통 같은 것은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 빠른데?”

팽중호는 모용정승이 피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찰나에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해 내었다.

술사가 장악을 완벽히 해 움직였다기보다는, 본능적인 움직임을 보인 듯싶었다.

카아앙-! 카가가가각- 카가각-

팔이 하나 떨어졌음에도 팽중호의 공격을 곧잘 막아 내는 모용정승.

혈기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현문구검은 전혀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부드럽게 공격을 흘리지는 못하지만, 거칠게 흘려 내며 상대를 향해 순간적으로 찔러 들어가는 공격이 매우 날카로웠는데, 위지철의 무공과 비슷해 보였다.

카가가가가각-! 캉-!!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슷해 보일 뿐.

위지철과 같이 깨달음으로 이룩한 경지가 아니기에, 당연히 훨씬 형편없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혈라천강시가 되면서 강해진 힘 덕분에 팽중호에게 밀리지 않고 맞설 수 있었다.

“좋아. 힘은 좋네.”

팽중호는 오랜만에 무적도를 타고 전해져 오는 묵직한 느낌에 미소를 지었다.

조금은 무인의 피가 끓어오르는 이 느낌.

싸워볼 만한 상대와의 싸움은 팽중호를 즐겁게 하였다.

‘이런 상황에도 이런 걸 보면, 나도 천성이 무인이군.’

무림과 하북팽가에 아주 중요한 이런 대전에서도 싸움이 즐겁다.

결국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무인인 것이다.

“즐겁게 해 주었으니, 나도 보답을 해야지.”

쿠르르르릉-

지금까지 와는 차원이 다른 뇌성.

일순 모든 시선이 팽중호에게 집중될 만큼 큰 소리였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소리만이 아니었다.

쿠르르릉- 쿠르릉- 쿠릉-

팽중호의 몸 주변에 내리치는 벽력(霹靂).

이전의 뇌신지체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벽력은 그를 경외의 눈으로 보게끔 만들었다.

번쩍-

팽중호의 두 눈이 엄청난 안광을 뿜어내었다.

일순 주변이 밝아 보일 정도로 밝은 안광.

이에 모용정승도 마주 혈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아아-

보통의 혈기와 다르게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 나오는 모용정승의 혈기.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엄청난 혈기였다.

쿠르르릉-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혼뢰단세(混雷斷世).

팽중호의 혼뢰단세의 초식이 모용정승에게 뻗어 나갔다.

일순간 공간이 갈라지는 듯한 위력의 공격.

조금 전 서문정천에게 펼쳤던 혼뢰단세와는 차원이 다른 위력이었다.

“합!”

반응조차 하지 못했던 서문정천과는 다르게 모용정승은 반응을 했다.

그는 검을 움직여 그대로 팽중호의 공격을 흘려 내려고 하였다.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본능으로 안 것이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그런데 모용정승의 검이 팽중호의 혼뢰단세를 막 흘려 내려고 할 때였다.

순식간에 모용정승의 온몸에 금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촘촘하게 그어지는 금.

투두두두두둑-

그리고 그대로 모용정승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철컥-

그리고 그제야 팽중호의 무적도가 도갑으로 돌아 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멍한 눈으로 팽중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조금 전.

그들의 눈에 믿기지 않는 광경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모용정승이 있던 곳에 생긴 수많은 공간의 갈라짐.

사람들은 팽중호가 보여 준 놀라운 무위에 지금 눈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서문정천을 한 번에 베어 낸 그 초식을 저렇게 많이 한 번에 펼쳐 낼 수 있다니?

이건 상식이라는 수준을 벗어난 것 아닌가?

“역시 사람은 발전하는 맛이 있어야지.”

팽중호는 지금까지 무공의 수련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그는 끊임없이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난 것이다.

혼뢰단세의 초식을 수십 번 연속으로 펼쳐 내는 것.

단 한 번의 혼뢰단세라면 모용정승이 어떻게 막아 냈을지 모른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 펼쳐지는 수십 번의 혼뢰단세를 막아 낼 수 있는 자는 지금 이 혈천궁에서 딱 한 명밖에 없다.

‘혈천궁 궁주.’

주변의 다른 이들은 물론, 혈천궁의 일주마저 팽중호의 이 공격을 보고 놀람에 눈을 부릅뜨고 있었는데, 혈천궁 궁주만이 흥미롭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팽중호의 실력에 놀라움보다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지?’

팽중호는 그 자리에 서서 혈천궁 궁주를 똑바로 바라보며 눈으로 물었다.

방금 그 수를 보았으니 어떻게 처신할 것이냐고 말이다.

여기서 다른 이들이 나와 봐야 자신의 상대가 안 될 것임을 알았으니 직접 나오라는 도전의 눈빛이기도 하였다.

쾅- 서걱-

그리고 때마침 옆의 패중권과 위지철의 싸움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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