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더 못나졌네.
서문천호는 혈천궁 무인의 손에 들려 혈천궁에 들어온 후, 그에게 여러 가지 실험이 행해졌다.
그리고 수많은 실험 끝에 그는 다시금 힘을 되찾았다.
아니, 더 강한 힘을 얻었다.
그의 육체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고, 내공 또한 수 배는 더 많아졌다.
한마디로 경천동지할 힘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힘을 얻은 서문천호는 오로지 한 명만을 생각했다.
‘팽중호, 반드시 복수하겠다.’
서문천호는 자신은 물론 자신의 가문을 완전히 망쳐 버린 팽중호에게 피의 복수를 다짐했다.
그래서 그는 정신이 돌아온 후에도 악착같이 혈천궁의 모진 실험에 자진해서 참여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것도 이렇게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크큭. 그렇게 주둥이를 놀리는 것도 이제 끝이다.”
서문천호는 팽중호를 바라보며 살기를 끌어 올렸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내가 팽중호를 맡는다.”
“마음대로.”
서문천호는 옆의 삼랑에게 자신이 팽중호를 맡겠다고 말했다.
삼랑은 완전히 무감정한 표정으로 마음대로 하라 대답했다.
어차피 그는 누구를 상대하든 상관없었으니 말이다.
스릉-
서문천호가 검을 꺼내어 들었다.
그러자 그의 검에서 검붉은 강기가 거세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확실 이전과는 그 크기와 기세가 차원이 달랐다.
자신감을 가져도 될 정도.
“무식하게 크기만 키웠네.”
하지만 문제는 상대가 팽중호라는 것이었다.
팽중호가 보기에 서문천호는 분명 엄청나게 강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알맹이는 그대로고 겉만 강해진 것일 뿐이었다.
어느 정도 수준의 무인이라면 통하겠지만, 일정 수준을 넘긴 무인에게는 저런 힘은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팽중호는 일정 수준은 이미 예전에 넘긴 무인이고 말이다.
“너는 굳이 내가 도를 안 뽑아도 되겠다.”
“하! 아직도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어. 그래. 무시하는 거다.”
팽중호는 지금 힘의 차이를 사람들에게 보여 줄 생각이었다.
그래야 무림맹에 이득이 갈 테니 말이다.
자신의 힘을 보여 줌으로 무림맹의 건재함을 알릴 수 있으니까.
팽중호는 무적도를 꺼내지 않고, 손을 자연스레 늘어트렸다.
지금 팽중호가 펼치려는 것은 혼원벽력장.
혼원벽력도와 혼원벽력장은 결이 거의 완전히 같은 무공.
그래서 지금 혼원벽력장의 성취는 혼원벽력도와 같다고 봐도 무방했다.
쿠르릉- 쿠릉-
팽중호의 두 손에서 울리는 뇌성.
서문천호는 이 뇌성을 듣자 갑자기 무언가 쎄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일이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
“예전의 내가 아니다!”
팡-
서문천호가 강렬한 진각을 밟으며 팽중호에게 쇄도했다.
팽중호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던 위지철에게 한마디를 건네었다.
“위 소협도 마음껏 날뛰어 보십쇼.”
“예.”
팽중호는 한마디와 함께 서문천호에게 마주 달려갔고, 위지철도 삼랑에게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작된 네 사람의 싸움.
사람들은 지금까지와 다른 엄청난 고수들 간의 싸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쾅-
서문천호의 검과 팽중호의 손이 맞부딪치자 강렬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검과 손이 부딪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굉음.
콰가가가가가각-
조금 전 부딪침으로 서문천호가 뒤로 쭈욱 밀려 나갔다.
두 다리를 비무대에 박아서 최대한 밀리지 않으려 했지만, 그런데도 뒤로 수 장이나 밀려났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큽!”
서문천호는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팽중호를 바라보았다.
분명 자신은 지금 화경의 경지를 넘어선 힘을 지녔는데, 어떻게 이렇게나 차이가 난단 말인가?
“그래 예전의 네가 아니네. 더 못나졌다.”
“노오오옴!!!”
파앙-!
서문천호가 노성을 내지르며 다시금 팽중호에게 달려들었다.
조금 전은 자신이 아직 모든 힘을 내기 전이다.
분명 모든 힘을 낸다면 조금 전과 같지는 않을 터다.
“너는 학습 능력이란 게 없냐?”
쿠르릉- 펑-
달려들던 서문천호의 가슴팍에 그대로 팽중호의 일장이 작렬했다.
미처 서문천호가 반응하기도 전에 닿은 팽중호의 일장.
“컥.”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서문천호의 신형이 그대로 멈추었다.
팽중호가 손을 떼었음에도 미동도 없는 서문천호.
파사사사삭-
서문천호의 얼굴에 있던 가면에 금이 가더니 그대로 부서져 내렸다.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흉터가 자리 잡은 서문천호의 얼굴.
그런 서문천호의 얼굴을 보니, 두 눈이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다음 생은 좀 더 착하게 살아 봐라.”
털썩-
서문천호의 신형이 뒤로 그대로 넘어갔다.
완벽히 숨이 끊어진 서문천호.
겨우 단 일장에 싸움이 끝이 난 것이다.
‘이러면 폭발은 하지 못하나 보군.’
팽중호는 지금 서문천호를 쓰러트리고도 긴장을 풀지는 않고 있었다.
혹시나 이전 오랑처럼 몸이 화탄처럼 터질까 봐서였다.
그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한 번에 몸 안을 완전히 뇌기로 박살 내어놓았는데, 아무래도 그것이 정답인 듯싶었다.
서문천호의 몸이 터지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저쪽이군.”
아직 위지철과 삼랑의 싸움이 끝이 나지 않았다.
* * *
위지철과 삼랑은 서로 말도 없이 곧바로 싸움을 시작했다.
삼랑의 무기는 얇은 연검.
낭창낭창 휘며 위지철을 압박해 오는 연검은 상당히 매서웠다.
카카캉- 카캉- 카카캉-
위지철은 그런 삼랑의 공세를 검으로 유연하게 흘려 내고 있었다.
다만, 연검은 쉽게 볼 수 있는 무기는 아니기에, 쉽게 공세로 전환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위지철이 수비만 하자 삼랑이 더욱더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이 싸움이 길어져서 좋은 것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디든 한쪽이 승부를 내고 합공한다면 곤란해지니 말이다.
키이이이잉- 키이이이잉-
삼랑의 연검이 괴상한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주변 공간을 모조리 베어 버릴 듯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갈아 버릴 듯한 엄청난 기세의 공격.
“딱 좋군요.”
위지철은 이 위급해 보이는 상황에서 오히려 입가에 슬쩍 작은 미소를 지었다.
스윽-
지금까지 수비만 하던 위지철이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며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기세를 내뿜는 위지철.
그는 드디어 이 자리에서 뇌호태극공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위지철의 검에 푸른 뇌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치르르르르릇- 치르르르르릇-
위지철을 향해 공격해 오던 삼랑은 이 청뢰(靑雷)를 보고 곧바로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저 안에 지금 어마어마한 힘이 담겨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자신이 밀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무인 중에서 자신을 이길 수 있는 무인은 셋 정도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번쩍-
물론 그런 삼랑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위지철의 두 눈에 안광이 번뜩였고, 이내 그대로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뇌호태극공(雷虎太極功). 뇌호도천(雷虎跳天).
위지철의 검에서 튀어나온, 뇌기를 머금은 검강이 그대로 온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치 호랑이가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듯 엄청난 기세로 퍼져 나가는 검강.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엄청난 힘이 그대로 삼랑의 연검을 때리기 시작했다.
콰가각- 콰각- 카가가가각- 칵-
팽중호의 검강과 삼랑의 연검이 서로 힘 싸움을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는 팽팽해 보이는 힘 싸움.
하지만 이내 이 힘 싸움의 결과가 결정되었다.
콰차차차차차창-
투두두두두둑-
삼랑의 연검이 그대로 조각나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던 삼랑의 두 눈이 놀람과 당황의 빛을 담았다.
힘은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왜 그러십니까?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멍하니 서 있는 삼랑에게 말과 함께 재차 다가서는 위지철.
위지철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삼랑은 이미 반 이상이 잘려 나간 연검으로 맞서 나갔다.
잘린 연검의 길이만큼 길게 뻗은 삼랑의 검붉은 검강.
- 혈사탐천검(血蛇貪天劍). 탐세(貪世).
삼랑의 검강이 수백 마리의 뱀과 같이 갈라지며 그대로 위지철을 잡아먹기 위해 다가왔다.
그 기세가 사뭇 대단해 이 대련을 지켜보는 이들 모두가 입을 살짝 벌리고 지켜봤다.
조금 전 위지철이 보여 준 힘이 대단했지만, 그래도 이건 그도 쉬이 막기 힘들어 보였다.
“여기서 질 수는 없지.”
치지지지지지직-
위지철의 검이 다시금 청뢰를 내뿜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말이다.
그리고 위지철의 온몸을 휘감는 청뢰.
- 뇌호태극공(雷虎太極功). 뇌호낙룡(雷虎落龍).
위지철의 검에서 검강이 마치 거대한 호랑이와 같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삼랑의 검붉은 뱀과 같은 검강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서걱- 촤아아아악-
털썩-
그리고 삼랑의 모든 뱀을 먹어 치운 위지철의 뇌호는 그대로 삼랑의 목마저 물어뜯었다.
목이 떨어져 나가고 그대로 삼랑의 몸이 허물어졌다.
“후우.”
위지철은 길게 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지금 무당파 위지철의 완전히 새로운 검법에 놀라는 중이었다.
지금까지의 무당파 검법과 전혀 다른 검법.
그것도 한눈에 봐도 느껴질 만큼 엄청난 패도의 검법이었다.
‘무당파가 새로운 길에 발을 내딛겠구나.’
사람들은 무당파가 위지철 덕분에 새로운 길에 도달할 것이라 생각했다.
강함과 유함이 모두 갖추어진 무당파는 분명 지금과는 확연히 달라질 터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위지철에게 팽중호가 다가와 수고했다고 말을 건네었다.
위지철은 고개를 돌려 팽중호를 바라보았다.
옷에 먼지 한 톨 묻어 있지 않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모습의 팽중호.
그에 반면 자신은 옷이 조금 해져 있었다.
‘더 먼 곳으로 가셨구나.’
자신이 화경의 경지에 다다라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팽중호는 지금 더 먼 곳으로 가 있었다.
꽈아악-
위지철은 손의 검을 좀 더 강하게 쥐었다.
평생 그를 따라잡지 못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멈출 생각은 없었다.
팽중호는 위지철이 평생을 뛰어넘어야 할 노력을 해야 할 산이었다.
“그럼. 다음 대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다음 대전을 알리는 혈천궁 무인의 목소리.
그들의 표정은 지금 조금 일그러져 있었는데, 오혈랑이 이렇게 쉽게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들에게 오혈랑은 어차피 소모품일 뿐.
소모품이 몇 개 사라졌다고 큰 문제는 아니었다.
스슥- 스슥- 스슥-
비무대 위로 세 개의 인영이 갑자기 연기처럼 나타났다.
모두 짙은 혈색의 무복을 입고 있는 인영들.
얼굴 부분까지 혈색의 천으로 감고 있었는데, 팽중호는 그들을 보고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사람이 아닌 듯한 느낌.
“강시구나?”
지금 팽중호와 위지철의 앞에 나타난 세 개의 인영.
그들은 바로 강시였다.
응당 사람에게 느껴져야 할 생기(生氣)가, 그들에게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몸에서는 생기가 아니라, 아주 진득하고 커다란 혈기(血氣)가 느껴졌다.
마치 몸 안의 모든 것이 혈기로 이루어진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저들은 저희가 만들어 낸 혈라천강시(血羅天僵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