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나머지들을 싹 다 상대하겠습니다.
혈영오살이 먼저 매화검수들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들은 완벽한 짜임새를 보여 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합은 맞춰 본 듯 나름 전열을 유지하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좀처럼 보기 힘든 기형 병기들이 그들의 기세를 더욱 배가시켜 주고 있었다.
“하나씩 맡자꾸나.”
“예. 사형.”
매화검수들은 각자 한 명씩 따로 혈영오살을 맡기로 했다.
그들은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음은 물론, 저 기형 병기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기형 병기들은 각자 따로 상대하는 것도 까다롭지만, 그것들이 하나로 어우러졌을 때가 훨씬 더 까다로웠으니 말이다.
탓-
카앙-
곧바로 혈영오살과 매화검수들이 부딪쳤다.
첫 부딪침 후에 매화검수들은 약간 고전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기형 병기와 많이 싸워 본 적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자주 볼 수 있다면 기형 병기가 아닐 테니 말이다.
“크크크큭. 어떠냐? 내 낫의 맛이?”
혈영오살 중 겸(鎌)을 무기로 쓰는 이가 조롱 가득한 웃음과 함께 매화검수를 향해 이죽거렸다.
매화검수를 밀어붙이니 자신감이 차오른 것이었다.
“딱히 맛은 없구려. 이제, 그만 맛봐도 되겠소.”
카캉- 캉-!
밀리던 매화검수가 말과 동시에 혈영오살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제 어느 정도 기형 병기에 적응이 된 것이다.
기세를 잡자 매화검수들의 검이 화려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화산파 특유의 화려한 검법이 펼쳐지는 것이다.
“흡! 역시 매화검수는 매화검수구나! 하지만!”
연신 뒤로 물러나는 혈영오살의 입에서 약간 당황스러움이 담긴 외침이 나왔다.
자신들의 생각보다 매화검수들의 실력이 뛰어났기에 그랬다.
하지만 그들도 예전의 그대로가 아니었다.
스멀 스멀 스멀 스멀-
혈영오살의 몸에서 나오는 검붉은 기운.
지금 그들에게서 혈공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그들이 혈천궁에 충성을 맹세하고 받은 혈공.
덕분에 그들은 전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 눈앞의 매화검수들을 압도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쾅-!!
촤아아아아악-
좀 전과 차원이 다른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소리와 동시에 매화검수들의 신형이 거의 비무대 끝까지 쭈욱 밀려 나갔다.
당황스러운 표정을 하는 매화검수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한순간에 그들이 말도 안 되게 강해졌으니 당연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팽중호도 지금 혈영오살을 보고 살짝 인상을 썼다.
‘갑자기 저렇게 강해지는 혈공이라고?’
혈공이 보통의 무공보다 더 강한 힘을 내는 것은 맞다.
불안정성을 대가로 힘을 얻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혈공도 저렇게 갑자기 힘을 증폭시켜 주는 것은 아니었다.
저렇게 갑자기 힘을 증폭시켜 주는 무공은 서문세가의 무공인 ‘잠혼폭렬공’말고는 없었다.
‘그렇군. 이들이 잠혼폭렬공을 가졌겠군.’
서문세가는 이미 한 번 혈천궁과 손을 잡았었다.
그러니 그때 잠혼폭렬공을 입수한 듯싶었다.
‘큰일이군.’
잠혼폭렬공이 맞는다면, 매화검수들이 확연히 불리해진다.
오랜 시간 동안 싸운다면 잠혼폭렬공의 역풍에 자멸하겠지만, 이런 짧은 호흡의 대전에서는 다르다.
갑자기 강해진 저 힘을 매화검수들이 감당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크하하하하!!! 이 힘! 다시 해 보자!”
강해진 힘에 취한 혈영오살이 광소를 터트렸다.
이 힘이라면, 눈앞의 매화검수들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터지는 광소였다.
그리고 그것이 헛된 망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듯, 지금 매화검수들이 모두 저렇게 밀려서 나가떨어지지 않았는가?
지금이라면 저 매화검수들을 도륙 낼 수 있었다.
“가자. 오늘은 매화검수의 피로 목욕을 하겠구나!”
“키키키킥!”
혈영오살이 힘에 취해 그대로 매화검수에게 달려들었다.
검붉은 혈공을 두르고 달려드는 그들의 기세는 확실히 범상치 않았다.
매화검수들은 놀랐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곧바로 다시 강하게 검을 고쳐 쥐었다.
저들이 갑자기 강해졌다고 해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리고 그들에게도 숨겨 둔 수는 있었다.
“후. 사제.”
“예. 사형.”
“다음 생에도 보세.”
“하하. 예. 다음 생에도 제가 사형을 모시겠습니다.”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매화검수들.
그리고는 지금의 상황에 맞지 않게 밝은 미소를 지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이런 밝은 미소라니?
콰아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그 웃음과 동시에 매화검수들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혈영오살이 보여 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지금 매화검수들의 몸에서 나오는 기운은 더없이 청아하고, 더없이 깨끗한 느낌을 주었으니 말이다.
‘선천지기를 모조리 터트렸다.’
지금 매화검수들이 갑자기 힘을 내는 이유.
그것은 그들이 선천지기를 터트렸기 때문이다.
저 정도라면 지금 모든 선천지기를 모두 태운 것일 터였다.
아마도 매화검수들이 대전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아마 살아남을 수 없을 터였다.
지금 저들은 생명을 담보로 힘을 선택한 것이다.
무림맹의 승리를 위해서 말이다.
쾅-!!
서로 모든 것을 터트린 혈영오살과 매화검수의 격돌.
한 번 부딪칠 때마다 주변이 떨쳐 울렸다.
엄청난 힘과 힘의 격돌에 지켜보는 이들도 눈을 떼지 못하고 비무대 위에 집중했다.
서걱- 툭-
푸우욱- 털썩-
격렬한 싸움에 하나둘씩 바닥에 쓰러져 나갔다.
그리고 이 싸움의 끝.
비무대 위에는 단 두 사람만이 멀쩡히 서 있었는데, 매화검수 두 명이었다.
승리자는 무림맹.
하지만 매화검수 두 명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일 줄을 몰랐고, 이를 지켜보는 무림맹 무인들의 표정은 더없이 숙연했다.
“좀 더 열심히 수련할 걸 그랬나 보네.”
“그래도 무림에 저희가 도움은 된 것은 맞겠지요?”
“그렇겠지.”
“저는 그거면 족합니다.”
휘이이이이잉-
두 사람을 휘감는 바람.
그리고 그 두 사람은 그렇게 선 채로 생을 마감했다.
연속된 무림맹의 승리 아닌 승리.
승리했지만 무림맹 측의 분위기는 더없이 숙연했고, 혈천궁 측은 오히려 분위기가 달아올라 있었다.
“다음, 준비하기를 바랍니다.”
혈천궁은 쉬지도 않고 바로 다음 대전의 준비를 알렸다.
그들은 지금 계속해서 소모전을 하는 것이었다.
무림맹의 전력을 깎아 냄과 동시에, 그들의 명예를 떨어트리기 위해 말이다.
스윽-
그때 팽중호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비무대 위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팽 소가주. 어디를 가려는 것인가?”
무각이 갑자기 비무대 위로 나서려는 팽중호를 불러 세웠다.
아직 팽중호의 차례가 아니다.
벌써 팽중호가 나선다면, 후에 있을 대전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팽중호는 지금 무림맹의 최후의 수인데 말이다.
무각도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침통하고 슬펐지만, 그래도 대의를 위해서 참는 중이었다.
여기서 감정적으로 나서면 안 되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싹 다 때려눕힐 테니 말입니다.”
“소가주님.”
이번에는 위지철이 팽중호를 불렀다.
팽중호가 몸을 돌려 위지철을 바라보았는데, 대번에 그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같이 가시죠.”
“감사합니다.”
위지철은 지금 팽중호에게 함께 싸우고 싶다는 눈빛을 보낸 것이다.
이번에 혈천궁에 온 이유는 곽채령이 만든 뇌호태극공(雷虎太極功)을 무림에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지금 팽중호가 나선다면 그럴 기회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혼자서 전부 처리할 테니 말이다.
‘위 소협이라면, 함께해도 되지.’
위지철이라면 함께 싸워도 문제가 없을 터다.
그는 도움이 되면 되었지, 방해가 될 실력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흔쾌히 함께하자고 한 것이었다.
“괜찮겠는가? 무리하지 말게.”
무각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팽중호와 위지철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혈천궁 쪽도 보통이 아니다.
지금 두 사람은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둘이서 남은 혈천궁 측 무인들을 모두 상대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그것은 분명 매우 힘든 일이었다.
“정말 괜찮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너무 큰 짐을 주는 것 같군그래. 차라리 내가 나가는 것이…….”
“대사께서는 수습만 잘 해 주시면 됩니다.”
“아미타불…….”
저벅- 저벅- 저벅- 저벅-
팽중호는 말을 남기고 다시금 비무대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르는 위지철.
위지철은 비무대 위로 올라서기 전에 현청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현청도 마주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현청은 지금 팽중호와 위지철을 믿는 것이었다.
처억-
그렇게 팽중호와 위지철이 비무대 위에 섰다.
팽중호는 비무대 위에 서서 혈천궁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랑 여기 위 소협 둘이서 그쪽에서 나올 나머지들을 싹 다 상대하겠습니다. 어떠십니까?”
* * *
혈천궁은 팽중호의 제안에 급히 머리를 굴렸다.
팽중호와 위지철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기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전력의 손실은 물론, 계획이 모조리 어그러질 수 있으니 말이다.
“내 힘을 빼놓고, 날 죽이면 이득 아닙니까? 뭘 고민하십니까? 어차피 그렇게 정정당당하고 깔끔한 분들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혈천궁의 귀를 파고드는 팽중호의 도발.
하지만 그저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달콤한 도발이었다.
확실히 여기서 팽중호를 죽인다면, 혈천궁으로서는 아주 큰 장애물을 하나 치우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좋네. 받아들이도록 하지.”
혈천궁 궁주의 입에서 허락이 떨어졌다.
팽중호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짓고 있는 궁주.
팽중호도 그 미소를 보고 마주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주 잘 생각하셨습니다.”
팽중호는 그래도 생각대로 됨에 만족했다.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직접 나섰다.
지금 계속 싸워 봐야 피해만 커진다는 다는 것을 잘 알았으니 말이다.
‘애초부터 내가 나설 걸 그랬어.’
차라리 아예 이렇게 처음부터 먼저 나설 것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앞선 이들의 괜한 희생은 없었어도 되었을 테니 말이다.
혈천궁의 힘을 조금 약게 본 자신의 실책이었다.
타탓- 타탓-
그렇게 팽중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위지철과 팽중호 앞에 두 개의 인영이 나타났다.
지금 두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 나타난 혈천궁 무인들이었다.
“저 두 사람은 혈천궁의 오혈랑(五血狼) 중 사랑(四狼)과 삼랑(三狼)입니다.”
혈천궁은 준비했던 중간의 무인들을 빼고, 곧바로 오혈랑을 내보냈다.
어차피 지금 오혈랑 밑의 수준 무인이 나서 봐야, 힘을 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몸만 풀어 주는 꼴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사랑과 삼랑이라면 팽중호의 이기지는 못해도, 충분히 힘 정도는 뺄 수 있을 실력이었다.
“오랜만이다. 팽중호. 으득.”
그때 오혈랑 중 사랑이 팽중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얼굴 전체를 뒤덮은 가면 때문에 누구인지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팽중호는 대번에 누구인지 대충 짐작은 갔다.
“너 그 서문세가 놈이구나?”
“그래. 오늘만을 기다려 왔다.”
“대가리가 박살 나고도 멀쩡한 걸 보니, 혈천궁이 대단하긴 대단한가 봐?”
지금 가면을 쓰고 나타난 사랑의 정체는 바로 서문세가의 소가주였던 서문천호였다.
서문세가에서 열린 오대회합에서 팽중호에게 머리가 박살이 났던…….
“내가 오늘 어떤 수를 써서라도 네놈을 죽일 것이다!”
“아아. 그래. 뭐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해 봐. 그런데 그거 아냐?”
“?”
“대가리가 깨지기 전이나 지금이나, 상대를 가려가면서 나대지 못하는 것은 여전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