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지면 정말로 뒈지는 겁니다.
혈천궁이 내어 준 숙소에 들어선 무림맹 행렬은 일단 주변 점검부터 시작했다.
그들이 무언가 수를 부려 놨을 수 있으니 말이다.
온 사방을 꼼꼼히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쪽도 없습니다.”
꽤 오랜 시간을 점검했지만, 나온 것은 없었다.
“그들도 우리가 이렇게 나올 걸 알았을 테니, 여기에는 딴짓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혈천궁도 이미 무림맹이 이런저런 조치를 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 수를 쓰지는 않았을 터다.
그리고 조금 전 일주를 보고 팽중호는 느꼈다.
이들이 준비한 수는 힘이라는 것을 말이다.
혈천궁은 지금 순수하게 자신들의 힘으로 무림맹을 무릎 꿇릴 생각임이 분명했다.
“다들 좀 쉬십시오. 곧 힘들어질 것 같으니 말입니다.”
개파 대전이 시작되는 날은 모레부터.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이곳까지 오는 동안 쌓인 피로를 풀어 놔야 했다.
그래야 개파 대전에 만반의 상태로 임할 수 있을 터다.
지금 만반의 상태로 준비한다 해도 솔직히 혈천궁을 이길 것이란 장담을 할 수 없는 상태이니 말이다.
“소가주는 아까 보았겠지?”
“예.”
무각의 물음은 일주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무각도 확실히 일주의 강함을 느꼈으니 말이다.
절대로 우위를 점할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강자.
덕분에 지금 무각의 표정은 꽤 침통해져 있었다.
“그들은 분명 우리에게 대련을 요구해 올 걸세.”
무각은 혈천궁이 자신들을 초대한 이유가, 개파 대전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임을 알았다.
물론 그것을 예상하고 정예 무인들을 데려왔지만, 혈천궁에 직접 들어와 그들을 보니 걱정이 되었다.
쉽게 이길 수 있을 자들이 아니란 걸 느꼈으니 말이다.
“뭐, 보통 대련도 아니고, 아마 생사결을 하자고 할 겁니다.”
팽중호는 그들이 그냥 멀쩡하게 대련이나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마도 대련의 방식은 목숨을 건 생사결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대놓고 무림맹 고수들을 죽일 수 있는 기회니까.
“힘든 시간이 되겠군.”
“예. 분명 모두 살아서 돌아갈 수는 없을 겁니다.”
팽중호는 냉정하게 말을 했다.
혈천궁에 들어온 이상 모두 멀쩡하게 살아 돌아갈 수는 없을 터다.
분명 희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아미타불…….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인가.”
“하지만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무언가 시도는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팽중호는 무엇이든 시도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겨우 하루뿐이네. 가능하겠는가?”
오늘을 쉰다면 이제 남은 날은 겨우 하루.
그 안에 무언갈 하기에는 너무 촉박한 시간이었다.
무공 수련을 한다 해도 너무 짧고, 그렇다고 무슨 다른 수를 마련하기에도 너무나도 짧은 시간.
이 시간 동안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루면 충분합니다.”
팽중호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무각은 그 미소에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 * *
혈천궁의 궁주가 머무는 곳.
그곳에 지금 일주를 포함한 몇몇 인영과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하나의 인영이 모여 있었다.
“일주. 그들은 어떻더냐?”
가장 상석에 앉은 인물이 일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마치 신선과 같은 백발백미가 인상적인 노인.
겉으로 보아서는 더없이 신선과 같아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노인의 정체를 안다면 결코 그렇게 생각지 않을 터였다.
혈천궁 궁주(宮主).
이 노인이 바로 이 혈천궁을 이끄는 자인 궁주였다.
“팽중호와 무각, 그리고 위지철을 제외하고는 볼 것도 없는 이들입니다.”
“그 셋을 너와 비교하면 어떻지?”
“팽중호는 모르겠지만, 나머지 둘은 제 밑입니다.”
“팽중호란 자가 그 정도란 말이지?”
“예. 그는 확실히 요주의 인물입니다.”
일주가 평가한 무림맹 행렬의 수준.
그가 주목한 무인은 셋이었는데, 팽중호와 무각 그리고 위지철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경계해야 할 이는 팽중호뿐이었다.
나머지 둘은 확실히 자신보다 밑이었고, 팽중호는 정확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기에,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속단할 수 없었다.
“재밌구나. 그 나이에 너보다도 강한 놈이 있다는 게 말이다.”
궁주는 흥미가 가득한 눈빛을 하며 입을 열었다.
일주는 십이혈주 중에서도 그가 가장 공을 들인 이다.
실력을 놓고 보았을 때, 현 무림에 그를 이길 수 있을 만한 이는 단연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실력.
그런데 아직 젊디젊은 무인이 그런 일주보다도 강하다니?
이미 팽중호가 십이혈주 중 여럿을 죽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일주에 비하자면 턱없이 부족한 이들이기에 큰 상관은 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잘못 생각하고 있던 듯싶었다.
“그래도 일에 문제는 없겠지?”
“예. 어차피 그를 제외하면 다들 볼 것 없습니다.”
“그래. 나를 실망하게 하지 마라.”
궁주의 몸에서 나오는 압도적이고 살인적인 기운.
감히 형언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기운이었다.
“예.”
“예!”
궁주의 기운에 일주를 포함한 다른 인영들이 모두 몸을 덜덜 떨어 대며 대답했다.
궁주는 그런 그들을 만족스럽게 바라보고는, 이내 그들을 대전에서 물러나게 했다.
그렇게 넓은 대전에 혼자 남게 된 궁주.
“좋아.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군.”
궁주는 지금 일들이 제 생각대로 흘러감을 느꼈다.
무림은 하나로 뭉쳤고, 그들에게 새로운 신성이 나타났다.
“아직 조금 멀었지만, 이번 일이 끝나면 그들은 더욱 강해지겠지.”
물론 아직 계획의 완성에 다다르기에는 조금 부족했지만, 이들은 이번 일을 통해 분명 더 강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이 혈천궁을 만든 목적은 달성하는 것이었다.
“교로 돌아가기 전까지 확실히 맡은 일은 처리해야지.”
* * *
다음 날 아침.
아니나 다를까, 혈천궁은 무림맹에게 개파 대전의 참가를 요구해 왔다.
본래 개파 대전은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로 진행되었는데, 자신들끼리 대전함으로 힘을 보여 주는 방식과 개파 대전에 참여한 이들 중 선택해 대전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나뉘었다.
지금 혈천궁은 개파 대전에 참여한 무림맹을 대전의 상대로 선택한 것이다.
당연히 이럴 것임을 알고 온 무림맹이기에, 무림맹은 그들의 개파 대전 참가에 응해 주었다.
이렇게 성사된 무림맹과 혈천궁 간의 대전.
사람들도 모두 이것을 기다려왔기에, 지금 모든 무림의 이목이 혈천궁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대전의 결과에 따라 무림 전체의 판도가 크게 바뀔 수 있었으니 말이다.
더더욱 많은 이들이 이 혈천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혈천궁 주변은 지금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 * *
“자자. 모여 주십시오.”
혈천궁에 당도한 무림맹 무인들이 모두 지금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을 불러 모은 이는 팽중호.
팽중호는 지금 그들 앞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여러분 중 몇 분이나 대전에 참여하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모두가 준비하는 게 좋을 것이라 생각해서 모이시라고 했습니다.”
모인 무인들은 팽중호를 향해 다들 의아하다는 눈빛을 보내었다.
이제 내일이 대전의 시작인데, 지금 무언가를 준비한다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들과 전혀 다른 눈빛을 보내고 있는 이도 있었는데, 바로 위지철이었다.
위지철은 팽중호가 하는 말이라면 전적으로 신뢰를 하는 경지에 다다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팽중호가 필히 무언가 좋은 수를 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러분들은 지금 하루 만에 뭘 할 수 있냐고 생각하실 겁니다. 맞죠?”
팽중호의 말에 정곡을 찔린 무인들의 표정이 변했다.
팽중호는 그들을 보고 씨익 웃어 주며, 허리춤에서 무적도를 꺼내어 들었다.
“여러분의 생각처럼 하루 만에 갑자기 뭘 해내기에는 분명 매우 힘듭니다. 다만 정신 무장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이죠.”
새로운 무공이나 새로운 기술 등을 배우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팽중호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정신적인 부분뿐.
팽중호는 무인들 간의 싸움에서 이 정신적인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다.
때로는 이 정신이 실력을 압도할 때가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제가 여러분들의 정신을 제대로 무장시켜 드리겠습니다.”
씨익-
더욱 짙어진 팽중호의 미소.
무림맹 무인들은 지금 팽중호의 미소에 굉장한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팽중호의 몸에서 갑자기 엄청나게 지독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아아아아아악-
지금까지 수많은 마두와 사파들을 상대해 봤던 무림맹 무인들이지만, 지금 팽중호의 몸에서 나오는 살기는 도저히 감당되지 않았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털이 곤두섰으며, 몸이 제멋대로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이곳은 지금 적진 한복판입니다. 이겨도 살아나가기 힘들고, 지면 당연히 살아서 못 나가는 곳 말입니다.”
지금 이곳은 적진 한복판.
지금 무림맹은 혈천궁이라는 범의 아가리 속으로 제 발로 들어온 것이다.
저들이 잡아먹기 위해 준비를 했다면, 꼼짝없이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상황.
개파 대전에서 무림맹이 승리를 한다 해도, 멀쩡히 살아 돌아갈 것이라 장담은 못 한다는 소리였다.
“그러니 다들 목숨을 걸고 싸우십시오. 지면 정말로 뒈지는 겁니다.”
말을 할 때마다 점점 더 팽중호의 살기가 짙어졌다.
이제는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로 강해진 살기.
하지만 팽중호는 여전히 살기를 거두어들이지 않은 채로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겨우 이깟 살기에 두려워서 마시고 이겨 내십시오. 정신을 더 단단히 조여 매십시오. 이 살기에 진다면 여러분은 결코 이곳에서 살아 돌아갈 수 없습니다.”
“크윽…….”
“흡……!”
팽중호의 말에 무인들이 다들 이를 악물고 팽중호의 살기에 저항을 시작했다.
무인들의 눈이 충혈되고, 입에서 침을 흘리는 자도 있었으며, 당연히 약하지만 내상을 입는 자도 있었다.
내일이 대전인데 이렇게 무리해도 되는가 싶었지만, 다들 지금 그런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지금 무인들의 머릿속에는 이 살기에 저항해서 살아남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흐압!”
“흐아앗!”
몇몇 무인들이 기합성과 함께 팽중호의 살기를 저항해 내었다.
굉장히 힘들게 저항해 낸 듯 그들의 모습이 멀쩡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두 눈은 아주 매섭게 빛이 나고 있었다.
“좋습니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그렇게 계속 하나둘씩 팽중호의 살기를 이겨 낸 무인들이 늘어났다.
팽중호의 살기를 이겨 낸 것뿐인데, 다들 눈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조금 전은 그저 평범한 무인들의 눈빛이었다면, 지금은 마지막 필사의 결사 항전을 앞둔 군인의 눈빛이었다.
‘좋아.’
팽중호는 이들의 눈빛에 아주 만족했다.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필사의 각오였다.
이런 정신과 각오라면 분명히 가진 힘 이상을 낼 수 있을 터였다.
“자, 그럼 여러분들도 저한테 배우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팽중호의 다음 대상은 무각을 포함한 무림맹의 절대 고수들.
사실 지금 이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 혈천궁과의 개파 대전의 향방은 이들의 결과에 따라 좌지우지될 테니 말이다.
“아미타불. 우리도 당연히 해야겠지.”
“좋습니다.”
“좋네.”
무각을 포함한 이들 모두가 동의하고 나섰다.
그들은 팽중호가 얼마나 강한지를 알고 있었기에 흔쾌히 동의한 것이다.
팽중호가 자신들보다 훨씬 위의 고수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여러분들은 좀 더 특별히 교육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