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이미 낭패는 본 것 같습니다.
하북팽가에서 혈천궁으로 향하는 행렬이 출발했다.
무림맹에서 준비한 마차로 이동하는 행렬.
일견 보기에도 평범치 않을 정도로 위용이 대단한 행렬이었다.
“흠. 아주 각 잡고 준비했군.”
지금 팽중호가 타고 있는 마차는 정말 최고급 중의 최고급 마차였다.
마차 값만 하더라도 웬만한 집 한 채의 값은 넘을 정도의 고가품.
혈천궁에 지금 무림맹의 힘을 보여 주기 위해 가는 길이니, 이런 준비를 한 것일 터였다.
사람들은 으레 보여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보다 혼자 마차를 타고 가니까, 넓어서 좋네.”
무림맹은 특별히 팽중호에게는 개인 마차를 내어 주었다.
이건 그만큼 지금 무림맹에서 팽중호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소리였다.
지금 팽중호말고 혼자 마차를 타고 가는 이는 소림사의 무각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팽중호는 넓은 마차에 다리를 쭉 뻗고 그대로 몸을 뉘었다.
마차 안에 누웠는데, 마치 침상에 몸을 뉜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질 정도.
혈천궁이란 적지로 가는 것이건만, 팽중호의 모습은 세상 여유로워 보였다.
“그것들이 무슨 개수작을 준비했을까가 문제인데…….”
팽중호는 마차에 누워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냥 순수하게 개파 대전이나 하자고 무림맹을 초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 준비한 게 있을 터인데, 그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래도 예상해 보자면, 아마도 이번 무림맹 행렬에 싸움을 걸고, 그 싸움에서 이김으로써 자신들을 힘을 무림에 보일 생각일 터였다.
그걸 바라기에 이렇게 당당하게 초대를 하는 것일 터고 말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정말 그것만 준비했냐다.
그들은 일이 수틀렸을 경우도 분명 준비했을 것이다.
만약 자신들이 생각한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았을 때를 말이다.
“그걸 대비해서 다양한 방면의 사람들을 데려오긴 했지만…….”
다양한 분양의 전문가들을 이번 행렬에 포함했다.
진법, 독, 기관, 암기 등.
여러 가지 수에 대비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전문가들이 올 것이란 사실은 혈천궁도 알고 있을 터.
분명 이것까지 생각해 수를 준비했을 것이다.
“뭐, 이렇게 생각해서는 끝이 없겠네.”
사실 이렇게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상황에 상황을 생각하면 그 끝이 없다.
결국 준비할 수 있을 만큼 준비한 후에 그때 상황에 맞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잠깐 눈이나 붙이자.”
팽중호는 그대로 마차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아직 혈천궁까지는 거리가 조금 있었으니 말이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고요한 숲길에 마차가 움직이는 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지나치게 적막한 숲속.
새소리나 들짐승, 날벌레 소리마저 없는 적막.
“아이고, 이런 데까지 마중을 다 나오셨데.”
마차에 눈을 붙이고 있던 팽중호가 눈을 뜨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팽중호의 감각에 걸린 살기들.
지금 이 주변이 살기로 아주 가득 차 있었다.
타닥- 탁-
마차가 멈춰 섰다.
이쯤 되면 다들 느꼈을 테니 말이다.
덜컥- 덜컥-
마차에서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팽중호도 가볍게 몸을 풀며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주변을 쓰윽 둘러보았다.
사아아아아아아-
스산하게 부는 바람이 주변 숲의 나뭇가지들을 스치며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나타나는 수많은 혈의인들.
드러난 곳은 오로지 두 눈뿐.
각자 손에 병장기를 꼬나쥐고 나타난 그들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좋은 목적으로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말이다.
“뭘 준비했을지 모르니, 다들 준비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다들 준비하시게.”
팽중호와 무각의 말에 다들 만반의 준비를 시작했다.
지금 이곳을 습격한 이들이 누구인지는 혈천궁인 게 뻔한 상황.
그렇다면 그들은 이 습격에 무언가를 준비했을 터다.
스릉-
팽중호도 무적도를 꺼내어 들고 준비했다.
스윽- 척-
혈의인 중 하나가 손짓을 하자, 모든 혈의인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혈의인들의 위용은 사뭇 대단했다.
“막게!”
캉- 카앙- 카카카캉-
서걱- 서걱- 촤아악-
혈의인들의 기세는 대단했지만, 솔직히 지금 무림맹 행렬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이 행렬에 있는 무인 하나하나가 모두 고수였으니 말이다.
순식간에 수가 줄어든 혈의인들.
이대로라면 금방 상황이 정리될 것 같았다.
“흐음…….”
팽중호는 착실히 혈의인들을 베어 나갔는데, 뭔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이렇게 대놓고 습격한 것도 이상한데, 실력이 너무 떨어지는 것도 이상했다.
굳이 이렇게 소모를 해서 혈천궁이 얻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퍼엉-
“크억!”
그때였다.
어디선가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터져 나오는 무림맹 무인의 비명.
팽중호는 이 소리를 듣자 곧바로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종남파에서 만났던 오랑.
그리고 그 오랑이 했던 자폭 공격.
부르륵- 꾸드득- 꾸득- 뚜드드드득-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 널려 있는 혈의인들의 몸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무림맹 무인들은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아직 모르는 듯한 표정.
“모두 피하십쇼!!! 최대한 멀리!!”
팽중호의 거대한 사자후.
다들 당황할 법도 했지만, 조금 전 터지는 것도 보았고, 고수들이라 그런지 금방 팽중호의 말을 이해하고 곧바로 피하기 시작했다.
무인들이 몸을 피하자마자, 일제히 혈의인들의 몸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펑- 퍼어엉- 퍼펑- 펑-!
오랑 때보다는 분명 폭발은 약했다.
하지만 워낙에 많은 수의 시체가 폭발했기에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무림맹 무인들이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면, 모두 휩쓸려서 함께 저승으로 갔을 것이다.
“이게 무슨!”
“아미타불……. 이것이 도대체…….”
몸이 화탄처럼 터지는 광경은 솔직히 상당히 끔찍한 광경이었다.
게다가 인간으로서 차마 용납되지 않는 짓이기도 했고 말이다.
주변 모든 무림맹 무인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 마차들이 모두 못 쓰게 되어 버렸습니다.”
팽중호는 처음 당했던 무인 몇 외에는 사상자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피와 살점 그리고 뼛조각에 초토화된 주변과 마차들이었다.
무림맹에서 준비한 최고급 마차들이 모두 못 쓰게 됐다.
말들도 모두 죽어 버렸고 말이다.
“아미타불. 어쩔 수 없겠네. 일단은 걸어가는 수밖에.”
당장 마차를 다시 구할 수도 없는 상황.
무림맹 무인들은 다친 인원은 들쳐 매고, 빠르게 움직여 일단 숲길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다시금 어떤 습격이 또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팽 소가주께서는 방금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 종남산에서 한 번 봤었습니다.”
“허어…….”
팽중호는 종남산에 있었던 일을 무림맹 행렬에 말해 주었다.
그들도 이미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지만, 오랑에 관한 것은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팽 소가주가 아니었다면, 큰 낭패를 볼 뻔했네.”
“하지만 이미 낭패는 본 것 같습니다.”
무림맹이 준비한 마차들이 모조리 박살이 났다.
무림맹의 위용을 보여 주기 위해 준비한 것들이 말이다.
아마 혈천궁이 처음부터 노린 것도 아마 이 마차들일 터였다.
거기에 무인들이 다치면 더 좋고 말이다.
“마차는 다시 구하면 되지 않나?”
“아마, 못 구할 겁니다.”
지금 이 주변은 혈천궁의 힘이 강하게 미치는 곳.
무림맹이 마차를 구할 수 없도록 손을 써 두었을 것이다.
“혹시 좋은 생각이 있나?”
“마차를 타고 오는 게 싫다고 하니, 그에 맞춰서 가 줘야지요.”
“으음?”
* * *
혈천궁(血天宮).
산서성 서문세가가 위치했던 곳에 둥지를 튼 혈천궁은, 자리를 잡자마자 그 규모를 어마어마하게 키워 나갔다.
게다가 속속들이 모인 수많은 문파들의 합류로, 지금 혈천궁은 무림맹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을 위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쿠구구구궁-
항상 굳게 닫혀 있던 혈천궁의 정문이 오늘은 활짝 열렸다.
개파 대전이 시작되는 아침.
혈천궁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열린 것이었다.
“문이 열렸다!”
“드디어 그들의 실체를 볼 수 있겠구나!”
혈천궁은 모든 이들을 가리지 않고 안으로 받아들였다.
수많은 이들이 혈천궁 내부로 들어섰는데, 그들은 내부에 들어서자 깜짝 놀랐다.
“이렇게 크다니!”
“이 많은 사람을 수용하고도 여력이 남는구나.”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지만, 그럼에도 자리가 부족하거나 음식이 부족하지 않았다.
게다가 악의 소굴이라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지금 보이는 혈천궁은 너무나도 멀쩡하고 정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혈천궁의 이런 모습에 저마다 감탄을 하기 바빴다.
“저기 온다!”
“무림맹이다!”
그때 갑자기 사람들 사이에서 일단의 소요가 일어났다.
정문 저 멀리서부터 등장하는 일단의 행렬 때문이었다.
맹(盟)이라 쓰인 기(旗)를 들고 나타나는 행렬.
바로 무림맹의 행렬이었다.
사람들은 무림맹의 행렬이 나타나자 다들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런데 행렬의 모습이 그들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보통이라면 마차를 타고 등장하기 마련인데, 무림맹 무인들은 지금 모두 마차 없이 두 발로 걸어서 등장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상당히 없어 보일 수도 있었는데, 지금 무림맹 행렬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저자가 뇌신도성(雷神刀星)이구나!”
“그 옆에는 천우신권(天宇神拳) 무각이다!”
행렬의 가장 앞에서 무림맹의 행렬을 이끄는 두 사람.
팽중호와 무각이 어마어마한 기운을 흩날리고 있었고, 뒤를 따라오는 무림맹 무사들도 모두들 날카로운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이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전쟁터로 향하는 군인들처럼 걷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역시 무림맹은 무림맹이다.”
사람들은 역시 무림맹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무림맹 행렬이 혈천궁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어서들 오십시오.”
그때.
혈천궁의 내부에서 거대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 혈천궁에 있는 모든 이들의 귀에 똑똑히 들리는 목소리.
이 목소리의 주인이 가진 내력이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게끔 해 주었다.
“저는 혈천궁의 십이혈주 중 일주(一柱)라고 합니다.”
무림맹 행렬의 앞에 나타난 목소리의 주인공.
보통 장정 둘을 합친 것과 같은 거대한 체구의 중년인.
자신을 일주라고 소개한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이래서 혈천궁이 대놓고 나대는 거군.’
일주에게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
팽중호는 이것을 느끼고, 왜 혈천궁이 양지로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고, 개파를 선언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일주에게서 마치 검마에게 느꼈었던 것과 비슷할 정도의 기운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면, 대놓고 활동을 할 만했다.
“이렇게 우리를 축하해 주시기 위해 오셨으니, 제가 이곳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무각의 수락과 함께, 일주의 소개로 혈천궁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무림맹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을 규모와 수많은 무인.
보란 듯이 지금 무림맹에 그들의 힘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혈천궁을 소개해 주는 일주의 입에 걸린 미소가 그것을 확신하게끔 해 주었다.
“자, 이곳이 여러분들이 지내실 숙소입니다. 내일까지는 편하게 쉬시기를 바랍니다.”
소개의 마지막은 무림맹이 머물 숙소.
숙소를 소개한 일주는 묘한 위화감이 드는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