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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의 개망나니-97화 (97/200)

97화 어디까지 흘려 내실 수 있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제갈신에게는 딱 한 명의 자식만 있었는데, 바로 제갈서린이었다.

그는 다른 가주들처럼 여러 명의 부인을 두지 않았고, 오직 단 한 명의 여인만을 두었다.

다만, 그녀가 제갈서린을 낳은 후 얼마 안 가 병으로 죽어 버렸기에, 둘 사이에는 제갈서린 단 한 명의 자식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무림세가는 보통 사내아이가 물려받는 것이 보통.

그렇기에 지금 제갈서린을 잡는다면 제갈세가를 잡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저는 하북팽가의 소가주입니다만?”

하지만 팽중호는 하북팽가를 뒤이어 이끌 소가주.

제갈서린과 혼인을 한다고 해도, 제갈세가를 잡을 수는 없는 자리였다.

하북팽가의 가주와 제갈세가의 가주를 같이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여기에 자리가 많지 않은가?”

“예?”

“제갈세가를 이리로 옮기면 되지.”

제갈세가를 옮긴다?

무슨 가정집 하나 옮기는 것도 아니고, 거대 무림 세가를 옮기는 것을 저리 쉽게 말한단 말인가?

제갈세가 같은 거대 세력이 움직이는 것은 결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준비하라고 말을 해 두었으니, 옮기는 데에 오래 걸리지 않을 걸세.”

“…….”

팽중호는 이미 제갈신이 굳게 마음을 먹었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 봐야 듣지 않을 터다.

이럴 때는 그냥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게 정답이었다.

“아까 다들 모이신 것으로 아는데,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셨습니까?”

팽중호는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를 바꾸었다.

조금 전 다른 사대 세가의 가주들이 회동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팽중호였다.

물론 대충 무슨 이야기가 오갔을지는 짐작이 가지만, 그래도 직접 듣는 것이 제일 정확하니 묻는 것이었다.

“뭐, 자네도 알겠지만, 포기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하더군.”

“흐음…….”

“특히 남궁 가주가 아주 단단히 벼르고 있네.”

“정우맹의 맹주님이니 당연하신 거겠지요.”

사람은 높은 자리에 앉아있다가, 다시금 낮은 자리로 내려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우맹의 맹주라는 자리에 있다가, 다시 그 자리를 내려놓고 무림맹의 밑으로 들어간다?

분명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자네의 힘이면 그에게 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조심하게. 그는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니 말일세.”

제갈신이 본 남궁태선은 숨기는 것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분명 그가 팽중호의 힘을 보고도 자신감을 내보이는 것은 숨기고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일 터다.

“그리고 모용세가의 가주도 조심하게.”

“그분은 어떤 분입니까?”

“사실 나도 잘 모르네. 대화도 많이 해 보지 못했으니.”

모용세가의 가주는 남궁태선보다도 더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그는 모든 것을 숨기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드러난 것이 없는 사람.

“뭐, 내일까지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겠군요.”

내일이 되면 아마 많은 것들이 드러날 것이다.

그들이 뭐를 숨기고 있던 내일은 그 패를 꺼내야 할 테니 말이다.

“그럼 오늘 내가 했던 말은 잘 생각해 보고, 우리는 이만 가겠네.”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그럼. 안녕히.”

제갈신과 제갈서린이 팽중호의 처소를 나섰다.

그리고 팽중호는 머리를 살짝 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난 이런 게 더 골치가 아프더라.”

차라리 서로 치고받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 훨씬 나았다.

물론 이런 문제를 언제까지 회피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나중으로 미뤄 두고 싶었다.

가능하면 모든 일이 끝났을 때까지 말이다.

“그런데 오늘 일을 알면, 세경이 분명 섭섭해하겠지?”

* * *

다음 날 아침.

다시금 시작된 비무.

팽중호는 오연한 자세로 비무대 위에 섰다.

그리고 그 앞에 사뿐한 발걸음으로 나타난 녹의(綠衣)의 중년인.

바로 사천당가의 가주 일수만천(一手滿天) 당정학이었다.

“나는 비무를 포기하겠네.”

비무대 위에 선 당정학은 팽중호를 한 번 바라보더니, 비무의 포기를 선언했다.

당정학은 어차피 자신이 팽중호를 이길 수 없음을 잘 알았으니 말이다.

괜히 싸워 봐야 흠만 잡힐 터였다.

“결과가 나오는 것에 따라 사천당가는 움직일 것이네.”

당정학은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팽중호가 이긴다면 무림맹으로, 그가 진다면 그대로 정우맹에 남을 생각이었다.

“그럼. 다음은 누가 나오시겠습니까?”

당정학이 자리로 돌아가고, 이제 남은 가주는 둘.

팽중호의 여유로운 목소리가 주변을 울렸고,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두 가주에게 모였다.

스윽-

그때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정을 알 수 없는 완벽한 무표정의 중년인.

사람들은 그가 일어나자 저마다 소리치기 시작했다.

“유운검객 모용정승이다!”

“드디어 그를 보는구나!”

모용세가 가주 유운검객(流雲劍客) 모용정승.

유능제강의 현문구검을 대성한 그의 검이 마치 흘러가는 구름과도 같이 부드럽다고 하여 붙여진 별호였다.

다만, 여기 있는 중 실제로 그의 검을 본 이는 단 하나도 없었기에, 사람들은 이번에 소문만 무성한 모용정승의 실력을 볼 기회라고 생각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천천히 비무대 위로 걸어나서는 모용정승.

팽중호는 그런 모용정승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힘을 숨긴 호랑이군.’

팽중호도 모용정승에 관한 정보들을 들었다.

사람들의 평가는 초절정과 화경의 사이.

하지만 지금 팽중호가 본 모용정승은, 화경의 경지는 이미 넘어서 있는 자였다.

‘마냥 쉽지는 않겠어.’

제갈신 보다도 몇 수 위의 고수.

당연히 쉽지 않을 터였다.

“안녕하신가.”

무표정한 표정만큼이나 무감정한 목소리.

펭중호는 예전에 봤었던 모용세가의 소가주가 도대체 어떻게 태어났을까 궁금할 정도였다.

“예. 안녕하십니까.”

“비무에 앞서 하나 제안하지.”

“무엇입니까?”

갑자기 하나만 묻겠다는 모용정승.

팽중호는 그가 어떤 제안을 할까 궁금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해 보라 하였다.

“하북팽가를 모용세가에 넘기게.”

“예?”

제안이라고 하는 것이 하북팽가를 넘기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란 말인가?

너무 어이없는 제안에 팽중호가 조금 벙찐 얼굴로 되물었다.

“돈은 얼마든지 지불하지.”

“하하. 하하하…….”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니 웃음이 나왔다.

돈으로 하북팽가를 사겠다니?

이건 지금 자신을 너무 물로 보는 것 아닌가?

“마차 열 대를 금으로 채워 주지.”

마차 열 대만큼의 금.

그것은 분명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거금이었다.

그 정도 돈이면, 삼대가 평생을 망나니처럼 살아도 다 쓰지도 못할 만큼의 돈이니 말이다.

“거절합니다.”

하지만 팽중호에게 그런 돈은 전혀 필요 없었다.

돈이 필요했다면, 하북팽가를 키울 게 아니라, 상단을 키웠을 것이다.

팽중호에게 하북팽가는 돈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돈에 팔 생각 따위 조금도 없었다.

“어차피 곧 망할 곳이니, 돈이라도 받는 게 좋지 않겠나?”

“저희가 망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렇네. 자네 하나만 있는 곳이 아닌가? 이 격변의 무림에서 그런 곳은 살아남을 수 없네.”

팽중호도 이미 수차례 들었던 말이고, 그도 고민하던 문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이미 해결한 문제.

그렇기에 팽중호는 자신 있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럴 일 없으니, 모용 가주님은 비무에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분명 내 제안을 거절한 걸 후회 할 것이네. 아니, 그렇게 만들어 주겠네.”

쿠우우우우우우-

모용정승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주 거대한 기운.

팽중호는 이 기운에 입가에 진하게 미소를 피워 올렸다.

‘베일에 싸여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미친놈이라 그런 거였군.’

팽중호가 평가한 모용정승은 그냥 미친놈이었다.

모용세가의 힘을 믿고 날뛰는 미친놈 말이다.

‘그래도 가진 힘은 꽤 있나 본데, 알려진 게 없는 걸 보면 구린 일을 많이 했겠군.’

모용정승이 그 많은 돈을 들이밀며 하북팽가를 사려는 것을 보면 모용세가가 가진 힘이 상당한 듯싶었다.

그런데 무림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은, 그들이 행하는 일들이 대부분 밖으로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다는 뜻일 터였다.

온갖 불법적인 일들일 테니 말이다.

‘이쪽은 그냥 확실하게 박살 내 놓는 게 낫겠네.’

모용세가와 함께 갈 이유가 없어졌다.

언제 뒤에서 칼을 꽂을지 모를 곳과 함께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아예 지금 본색이 드러나도록 확실하게 밟아 줄 생각이었다.

쿠르릉- 쿠릉- 쿠르르르릉-

팽중호의 몸에서 뇌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색으로 변하는 두 눈.

지금 팽중호도 처음으로, 대성에 다다른 상태에서 뇌신지체로 들어선 것이다.

파아아아아아악-

주변을 장악하던 모용정승의 기운을 씻은 듯이 없애 버리는 팽중호.

스릉-

자신의 기운이 소멸되어 가는 것을 본 모용정승이 검을 먼저 빼 들었다.

그리고 그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파앗-

카캉- 캉- 카가가강- 카카카가가캉-

팽중호에게 달라붙은 모용정승의 검이 집요하게 팽중호를 노리기 시작했다.

팽중호는 입가의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그의 검격을 막아 나갔는데, 확실히 유능제강의 묘가 담긴 검이라 그런지, 팽중호의 반격을 아주 부드럽게 흘려내며, 연신 빈 곳을 공략해 들어왔다.

“어디까지 흘려 내실 수 있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스윽-

카앙-! 카가가가캉-! 카캉-!

팽중호의 도가 움직임을 바꾸기 시작했고, 그대로 거칠게 모용정승을 압박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조금 전과 다르게 부드럽게 공격을 흘려 내지 못하는 모용정승.

카앙-!

거칠게 팽중호의 도를 흘려 낸 모용정승이 재빨리 몸을 뒤로 빼었다.

지금 이 상태로 계속 팽중호와 공격을 주고받으면 낭패를 볼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저릿- 저릿-

뇌기로 인해 저려 오는 손.

최대한 공격을 흘려내었음에도 지금 이런 상태이니, 이 이상 공격을 주고받는 것은 안 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수는 결국 한 번의 힘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수밖에는 없었다.

파아아앗-!

모용정승의 검에서 새하얀 검강이 뿜어져 나왔다.

모용세가 특유의 백검강(白劍罡).

그리고 그대로 휘둘러지는 모용정승의 검.

백검강이 하늘을 가득 채울 만큼 뿜어져 나오더니, 그대로 팽중호를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보는 사람의 넋이 나갈 만큼 아름답고 압도적인 모습.

지금 모용정승이 쏘아 보낸 것들이 모두 검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사람들도 대충 유추할 수 있었다.

“화경의 경지는 진즉 넘었구나!”

“허어! 유운검객의 힘이 이 정도였다니!”

깜짝 놀란 사람들의 반응과 다르게, 팽중호는 조금도 놀란 기색이 없었다.

이미 모용정승이 화경의 경지를 넘어선 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뿐더러, 지금 이 공격이 그리 놀랍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라면, 자신이 얼마든지 깨부술 수 있었으니 말이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뇌룡진천(雷龍振天).

쿠르르르릉- 쿠르릉- 콰아아아아아-

팽중호의 무적도에서 거대한 뇌룡이 나타나더니, 그대로 자신을 향해 쇄도해 오던 모용정승의 백검강에 쇄도했다.

콰가가가가가각-

그리고는 그대로 백검강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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