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의 개망나니-96화 (96/200)

96화 힘으로 다 때려눕히면 되니까.

제갈신은 지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이 팽중호에게 밀릴 것임은 알았지만, 이건 너무나 큰 차이가 아닌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런 낭패가 없구나.’

콰칵- 콰카칵- 콱 콰가가각-

자신의 조(爪)와 연신 부딪치는 팽중호의 무적도.

분명 가볍게 부딪치는 것뿐인데, 지금 자신의 손이 부서질 듯 저려 왔다.

거기에 더해 손을 타고 몸 안으로 들어오는 뇌기에 온몸의 혈맥이 뒤틀리고 있었다.

“이게 혼원벽력신공인가?”

“뭐, 좀 달라지긴 했어도, 맞습니다.”

서로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으면서 나누는 대화.

물론 제갈신은 표정이 여유롭지 못했고, 팽중호는 입가에 미소까지 짓고 있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시간도 없는데, 슬슬 끝낼까요?”

“받아 보겠네.”

쿠르릉- 쿠릉-

팽중호의 무적도에서 울리는 뇌성(雷聲).

이 뇌성을 듣고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놀랐다.

특히나 가주석에서 이 소리를 들은 팽자성은 아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럴 수가!”

혼원벽력도를 펼칠 때 들려오는 뇌성.

이것은 혼원벽력신공과 혼원벽력도가 모두 대성의 경지에 다다라야만 들려오는 것이란 걸, 팽자성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경지를 지금 팽중호가 보여 주고 있으니, 어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오랜 하북팽가의 역사에도 저 경지에 도달한 이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그런 경지를 지금 팽중호가 아직 젊은 나이에 도달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중호는 선조께서 우리 팽가를 위해 보낸 것이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함이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팽자성이 팽중호에게 감탄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비무대 위에 있는 제갈신도 지금 팽중호 덕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막을 수 있을까 모르겠군.’

팽중호는 여유롭게 자신에게 지금 준비할 시간을 주고 있었다.

막을 수 있으면 한번 막아 보라는 듯이 말이다.

‘이것 참.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구나.’

제갈신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만반의 준비를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에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으니 말이다.

무공에 순수하게 미쳐 있던 그때로 돌아간 기분.

제갈세가의 가주가 된 후 오로지 세가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며 살았다.

이렇게 전력을 다해 누군가와 무공을 겨루는 것은 이제는 하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팽중호를 만나 오랜만에 전력을 다 쏟아붓는 경험을 하게 되니, 왜인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그였다.

“오게.”

준비가 끝난 제갈신의 입에서 오라는 말이 나왔다.

씨익-

제갈신의 말과 함께 팽중호가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혼뢰단세(混雷斷世).

쿠릉- 철컥-

휘이이이이이잉-

어디선가 날아든 바람이 지나가는 비무대 위.

지금 이 주변에서 팽중호의 일도를 제대로 본 이가 몇이나 될까?

아마 두 손가락을 넘지 못할 것이다.

“제갈세가는 오늘부로 정우맹을 탈퇴하고, 무림맹으로 가겠네.”

가만히 서 있던 제갈신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터져 나왔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정우맹을 탈퇴하겠다는 발언을 한 것이다.

다른 세가의 가주들도 제갈신의 결정을 예상치 못했는지, 다들 동요하는 눈치였다.

“내 위신을 지켜 주어 고맙네.”

“뭘요.”

제갈신은 팽중호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네고는, 본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제갈신이 자리에 돌아오자, 옆자리 사천당가의 가주가 질문을 해 왔다.

“왜 제대로 공격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포기한 것이오?”

“당 가주님은 못 보셨나 봅니다.”

“무얼 말이오?”

“이걸 보십시오.”

제갈신은 자신의 무복 앞부분을 가리켰다.

무복의 위부터 아래까지 정확히 반으로 무복이 잘리지 않을 만큼만 베어져 있었다.

조금 전 팽중호는 제갈신이 어떻게 막을 움직임을 취하기도 전에, 정확히 그의 옷을 가르고 도를 다시금 회수한 것이다.

그것도 옷이 잘려 떨어지지 않을 만큼 아주 미세하게 조정을 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있는 힘껏 베는 것보다도 훨씬 힘든 일.

제갈세가의 가주이자, 화경의 경지에 막 발을 내디딘 제갈신을 상대로 이것을 해내었다는 것은 지금 팽중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자. 바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내일 할까요?”

제갈신을 상대하고도 비무대 위에 서 있던 팽중호의 말에 다시금 시선들이 그에게 향했다.

방금 막 대련을 끝냈는데, 곧바로 대련을 해도 상관없다는 팽중호의 말.

비령신조 제갈신을 상대하고도 여유가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내일 다시 하도록 하지.”

다른 가주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남궁태선이 내일로 대련을 미루자는 말을 꺼내었다.

지금 갑작스러운 일련의 사태에 대하여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생각 이상인 팽중호의 실력과 갑작스러운 제갈세가의 정우맹 탈퇴와 무림맹행.

겨우 한 번의 대련이 끝난 것인데, 갑자기 과제들이 우수수 쏟아져 버렸으니 말이다.

“뭐, 좋습니다.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뵙죠.”

* * *

저녁 시간.

하북팽가를 제외한 다른 네 개 세가의 가주들이 한곳에 모였다.

오늘 낮에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제갈 가주. 왜 독단적으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입니까?”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태선이 제갈신에게 질문을 하였다.

그는 물론 팽중호가 제갈신에게 대련에서 했던 것을 본 사람 중 하나였다.

그래서 어느 정도 제갈신의 발언이 이해가 갔지만, 그래도 이렇게 급작스럽게 결정까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궁 가주님은 보셨겠지요?”

“그렇소.”

“저는 그것 말고 또 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갈신의 두 눈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현묘함으로 빛나는 두 눈은 그가 왜 제갈이라는 성을 가졌는지를 느끼게끔 해 주었다.

“무엇을 보셨습니까?”

“미래. 그에게서 저는 무림의 미래를 봤습니다.”

“허허. 미래요?”

“앞으로의 무림은 그와 하북팽가를 중심으로 돌아갈 겁니다.”

제갈신은 확신했다.

팽중호가 무림의 중심이 될 것이라 말이다.

그리고 그 무림은 분명 지금과 다른 새로운 무림이 될 것이고 말이다.

“잠깐이지만 그는 이 약육강식의 무림을 바꿀 것이라 확신합니다.”

약육강식의 무림.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바라보는 무림.

제갈신은 사실 이런 무림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가 무림맹을 나와 정우맹에 들어온 것은 이런 무림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들어온 정우맹도 무림맹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실망하던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팽중호를 만났다.

‘그는 분명 이 무림을 바꿔 줄 것이다.’

팽중호는 분명 무림을 바꿀 자였다.

“그는 분명 미래를 이끌어 갈 만한 재목이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남궁태선이 제갈신의 말에 반박하고 나섰다.

은연중 흘러나오는 남궁태선의 기운.

거대하고 압도적인 그의 기운은 분명 다른 가주들을 상회하고 있었다.

그리고 굳은 결의가 느껴지는 눈빛과 함께 열리는 남궁태선의 입.

“정우맹이 앞으로의 미래를 이끌어 갈 것입니다.”

* * *

“미리 말씀이라도 좀 해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하아.”

“크크. 미안하다.”

장춘오가 팽중호를 향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내었다.

미리 팽중호가 언질을 주었다면, 조금 더 많은 것을 준비했을 텐데 말이다.

“일단 각 세가의 상황이랑, 무림맹의 상황, 그리고 혈천궁의 상황까지 모두 조사하겠습니다.”

“부탁한다.”

분명 조금 전 상황 이후 지금 모든 세력들이 바쁘게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지금 팽중호와 하북팽가가 있으니, 당연히 더 발 빠르게 준비하고 움직여야 했다.

그래야만 모든 상황에 대응할 테니 말이다.

“그럼 저는 일하러 가 보겠습니다…….”

“고생해. 일 끝나면 제대로 챙겨 줄게.”

“뭐…… 일 다 끝나면, 한동안 건드리지 말아 주십쇼.”

“그래.”

장춘오가 팽중호의 처소를 빠져나가고, 혼자 남은 팽중호.

팽중호는 의자에 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일단 제갈세가는 통과했고…… 이제 세 곳 남았군.’

남은 네 개의 세가 중 이제 남은 곳은 남궁세가, 사천당가 그리고 모용세가.

사실 저 세 곳 모두 어디 하나 쉬운 곳이 없었다.

그중 사천당가는 그나마 그렇다고 쳐도, 문제는 남궁세가와 모용세가였다.

화경의 경지를 이미 넘어선 남궁태선의 힘은 팽중호로서도 분명 가볍게 볼 것이 아니었고, 모용세가는 다른 세가들 중 가장 베일에 싸인 곳이라 정보가 없기에 문제였다.

‘흠. 뭐 어차피 힘으로 다 때려눕히면 되니까.’

말로 안 될 것 같으면 힘을 쓰는 수밖에.

제갈신은 말이 통할 것 같아 최대한 예를 갖추며 대련을 끝냈지만, 다른 세가의 가주들이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으면 힘을 좀 보여 줄 생각이었다.

그들이 찍소리도 못하게끔 아주 제대로 박살을 내 놓는 것으로 말이다.

‘일을 빨리 끝내야 혈천궁 놈들이 뭘 하기 전에 대비를 할 텐데.’

팽중호가 빨리 이 일을 끝내려는 이유.

그것은 혈천궁 때문이었다.

그들이 지금 양지로 올라오며 개파까지 선언한 상황.

분명 조만간 무슨 일을 벌일 터이고, 그전에 무림을 하나로 만들어 놔야 대비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똑똑똑-

“소가주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누구시지?”

“제갈세가의 가주님이십니다.”

“들어오시라고 해.”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며, 밖에 있던 무인이 제갈신이 찾아왔음을 알려 왔다.

팽중호는 왜 제갈신이 왔을까를 생각하며, 일단 그를 안으로 초대했다.

“안으로 들게 해 줘서 고맙네.”

“아닙니다.”

팽중호의 처소 안으로 들어온 제갈신.

그런데 제갈신 혼자가 아니고, 옆에 누군가가 함께였는데, 바로 제갈서린이었다.

제갈신은 자신의 여식인 제갈서린과 함께 팽중호를 찾아온 것이다.

“자. 일단 앉으시지요.”

“고맙네.”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는 제갈신과 제갈서린.

곧바로 차가 내와졌고, 가볍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가볍게 차를 마시며 팽중호가 물었다.

제갈신이 정우맹의 탈퇴를 선언하고, 무림맹의 합류를 선언한 후에 제갈신도 이래저래 바쁠 터.

굳이 자신을 지금 제갈서린을 동행한 채로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자네에게 하나 제안을 하러 왔네.”

“어떤……?”

“내 딸아이와 혼인해 주게.”

“예에?!”

갑작스럽게 찾아와 혼인을 해 달라니?

분명 이런 거대 세가 간에는 이렇게 정략적인 혼인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다짜고짜 찾아와서 단도직입적으로 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자네에게 신조상단의 부상단주라는 본처가 있다는 건 알고 있네, 그래서 첩이라도 상관없으니 내 딸아이를 받아 주게.”

“이미 제가 제갈 소저께도 말씀드렸듯 저는 첩을 둘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내가 듣기로는 오늘까지 생각해 본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그랬다.

분명 팽중호는 제갈서린에게 오늘까지 생각해 본다고 했다.

그리고 제갈서린도 결과를 보고 생각해 보라고 했고 말이다.

‘하아…… 이거 아주 박살을 내 놨어야 했나?’

분명 제갈신을 처음 생각했던 대로 박살 내 놓았으면, 분명 제갈서린이 생각을 바꿨을 것이다.

그리고 제갈신도 당연히 다른 생각을 했을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너무 예를 차린 덕분에 다들 생각이 바뀌지 않은 모양이었다.

“분명 자네에게 나쁘지 않은 조건일 걸세. 우리 제갈세가에는 지금 세가를 물려받을 사내아이가 없으니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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