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미쳤나 보군.
“허억…… 허억…….”
급한 발걸음으로 뛰어가는 하나의 인영.
종남산 근처의 마을에서 골목골목을 돌며 뛰는 인영은 무언가에 쫓기는 듯싶었다.
그렇게 뛰어가던 그는 결국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앞을 가로막은 인영 때문이었다.
“어딜 그렇게 도망치나 막주승?”
지금 거친 숨을 내쉬며 도망치던 이는 바로 막주승이었다.
그는 혈천궁 무인들이 갑자기 칼을 들이밀 때, 몇몇 제자와 함께 곧바로 종남산에서 내려와 도망쳤다.
하지만 그들이 종남산을 벗어나자 의문의 추적자가 따라붙었고, 추적자는 거침없이 도망치는 자신들을 베어 내었다.
그렇게 자신과 함께 도망쳤던 제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고, 이제는 혼자만 남은 것이었다.
“왜 나를 죽이려는 것이냐! 나는 너희들에게……”
“너는 죽이지 않을 거니 걱정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너희는 나를 실험 재료로 쓰려는 것 아니냐!”
“크흐흐흐. 그게 죽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
파앗-
막주승은 갑자기 추적자에게로 달려들었다.
더 이상의 도망은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기에, 최후의 발악이라도 해 보려는 것이었다.
챙-
거칠게 뽑혀 나오는 막주승의 검.
그리고 그대로 추적자를 향해 검이 향했다.
급하게 달린 공격이라고 하기에는 깔끔하고 위력적인 공격.
콱- 콰드드드득-
하지만 막주승의 검은 채 추적자에게 닿기도 전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추적자의 손에 잡혀 버린 막주승의 검.
그리고 추적자는 그대로 막주승의 검을 손으로 잡아 우그러트리기 시작했다.
검기가 실린 검을 손으로 잡아 우그러트린다니?
결코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 같군.”
“이, 이게……!”
“하긴 알려 준 적이 없으니 그럴 만하지. 지금이라도 알려 주마. 나는 십이혈주 중 오주라고 한다.”
“!!!”
십이혈주 중 오주.
종남파에 있던 이들이 팔주와 칠주였는데, 그보다도 높은 인물인 것이다.
막주승은 자신이 애초에 도망칠 수 없는 상대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에게 힘을 주는 것이니, 슬프게만 생각하지 마라.”
투욱-
오주가 가볍게 막주승의 혈을 짚어 그를 쓰러트렸다.
쓰러진 막주승을 어깨에 짊어지고 몸을 옮기는 오주.
움직인다 싶던 오주의 신형이 그대로 연기처럼 꺼지듯 사라졌다.
* * *
종남파에서 마련해 준 마차로 하북팽가로 돌아온 팽중호.
지금 하북팽가는 오대회합의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태였다.
전보다 훨씬 더 화려해지고 멋들어지게 변한 하북팽가의 모습에 팽중호도 조금 놀랐다.
“오? 신경 좀 썼구나?”
“예. 신조상단과 태도상단 분들이 많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장춘오의 보고를 들으며 하북팽가를 천천히 둘러보는 팽중호.
지금 이 정도라면 확실히 오대회합에서 꿀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가가. 오셨습니까.”
그때 이세경이 밝은 얼굴로 팽중호의 앞에 나타났다.
먼저 종남파를 떠난 그녀는 하북팽가로 돌아와서 노심초사 팽중호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세경이 너도 잘 도착했구나. 다행이다.”
“예. 가가.”
팽중호와 이세경은 잠시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렇게 함께 움직이던 이세경은 용무가 생겨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종남파의 일은 어떻게 잘 끝내신 겁니까?”
“어. 아주 잘 끝냈지.”
팽중호는 장춘오에게 종남파에 있던 일들을 모두 알려 주었다.
장춘오는 가만히 모든 이야기들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분명 저희에게는 호재입니다.”
“그렇지.”
또다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발걸음을 옮기던 팽중호와 장춘오는 이내 팽중호의 집무실로 돌아왔다.
집무실에 들어오자 이제 장춘오의 이런저런 보고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보고의 마지막.
그것은 팽중호도 놀라게 할 만큼 꽤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혈천궁이 개파를 선언했습니다.”
“뭐?!”
혈천궁이 개파를 선언하다니?
개파 선언을 했다는 것은 그들이 당당하게 양지로 나왔다는 소리 아닌가?
무림 공적인 그들이 당당히 나서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을 터다.
“산서성에 서문세가가 있던 곳에 혈천궁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미쳤나 보군.”
“단순히 미쳤다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습니다.”
혈천궁의 개파 선언과 함께 무림은 당연히 한바탕 난리가 났다.
당장 그들을 멸해야 한다고 목소리가 높아졌는데, 무림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동시에 터져 나오며 일의 진행이 쉽지 않게 되었다.
우선 하룻밤 사이에 수많은 문파들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사건이 터져 나왔다.
범인은 당연히 혈천궁.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멸문지화를 당한 문파들 중에, 무림에서 손에 꼽힐 만큼 위세를 떨치던 곳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문파들마저 고작 하루아침에 모두 멸문을 당했으니, 당연히 큰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
바로 변절이었다.
몇몇 문파와 고수들이 혈천궁의 수족을 자처하며, 그들의 밑으로 들어간 것이다.
하나같이 무림에 이름이 알려진 문파와 고수들.
당연히 무림은 이 일로 크나큰 충격에 휩싸였다.
어떻게 보면 지금 누구 하나 제대로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무림의 마지막 문제.
그것은 둘로 나뉜 무림맹과 정우맹이었다.
하나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국에 세력이 둘로 나뉘어 서로를 견제하기 바쁘니, 당연히 제대로 무언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개판이네.”
장춘오의 보고를 모두 들은 팽중호의 입에서 나온 지금 무림에 대한 평가.
딱 저 말이 맞았다.
개판.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이번에 오대회합에서 하나는 확실하게 해 놔야겠네.”
“뭐 따로 준비할까요?”
“아니, 괜찮아.”
팽중호는 이만 장춘오를 돌려보내고, 집무실에 혼자 남았다.
그리고 종남파에서 가져온 선물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우선은 태을신공.
팽중호는 집무실에 앉아서 곧바로 태을신공을 읽기 시작했다.
“역시 도가 무공의 정수란 말이야.”
위지철이 알려 준 무당파의 태극공 또한 도가 무공이지만, 태극공은 어디까지나 가장 기초적인 무공.
하지만 태을신공은 무림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대단한 절세의 도가 무공이다.
확실히 그 깊이가 남달랐다.
게다가 태을신공은 도가 무공의 특징 중 포용과 화합을 가장 중점에 둔 무공.
팽중호는 어쩌면 지금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무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분명 도움이 되겠어.”
팽중호는 태을신공을 들고 개인 연공실로 걸음을 옮겼다.
“태을선단을 먹기 전에 익혀 두면 좋겠지.”
팽중호는 태을선단을 섭취하기 전에 태을신공을 익혀 둘 생각이었다.
태을선단은 종남파 무인들을 위한 영약.
그러니 분명 종남파의 무공에 가장 최적화되어 있을 것 아닌가?
태을신공을 익힌 후에 태을선단을 섭취하면 분명 더 효과가 좋아질 터였다.
“얼마나 효험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회합 전에 확실하게 더 강해져야 하니까.”
팽중호는 이번 오대회합에서 생각했던 것을 이루려면 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종남파에서 팔주와 오랑을 직접 상대해 본 후, 힘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진 것도 있고 말이다.
혈천궁을 상대하려면 힘이 더욱더 필요했다.
스으으으으으으-
가부좌를 틀고 태을신공의 구결을 운용하기 시작하는 팽중호.
그러자 기의 바람이 자연스럽게 팽중호의 몸에서부터 불어 나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지속되던 바람 속에 팽중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눈을 감은 채로 계속해서 운기에 빠져들어 있는 팽중호.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팽중호의 몸이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오더니, 이내 팽중호가 살며시 눈을 떴다.
“후우…… 운기한 것만으로도 이런 성과라니.”
아직 태을선단은 먹지도 않았는데, 그저 태을신공을 운기한 것만으로도 이미 한 발짝 앞선 경지에 다다랐다.
지금의 팽중호는 수없이 많은 내공 심법들이 한데 모여 있는 상황.
태을신공은 그 어떤 내공 심법과도 부딪치지 않고 완벽하게 모든 심법을 포용하며, 그것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하나가 된 태을신공은 혼원벽력신공으로 흡수가 되며, 지금 팽중호의 내공을 완벽한 하나로 만들어 주었다.
딸칵-
화아악-
팽중호는 태을신공에 대한 감탄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태을선단을 꺼내었다.
목갑에서 꺼내자 청량한 기운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누가 보더라도 범상치 않은 태을선단의 자태.
꿀꺽-
팽중호는 그대로 태을선단을 입속으로 넣었다.
스으으윽- 화아아아아악-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 태을선단은 몸 중앙에 가서 녹아내리더니, 이내 온몸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그 기운들은 팽중호의 몸 곳곳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강행군하며 팽중호도 모르게 상한 몸이 치유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태을선단의 기운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
그곳은 단전의 깊숙한 곳에 있는, 선천지기가 있는 곳이었다.
선천지기에 당도하자 선천지기를 휩싸는 태을선단의 기운.
서서히 선천지기에 태을선단의 기운이 녹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번쩍- 파지직-
팽중호의 눈이 번쩍 떠지고, 황금색 안광에 뇌기가 번뜩였다.
스윽-
팽중호는 운기를 끝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지금 자신의 주변에 있는 가루(?)들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두 번째 환골탈태라…… 좋군.”
지금 팽중호의 주변에 있는 것은, 두 번째 환골탈태를 겪으며 생긴 부산물이었다.
두 번째 환골탈태.
무인이 처음 환골탈태를 겪을 때는 뼈와 근육이 뒤틀리며 무공을 익히고 펼치기에 최적화된 몸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다음 두 번째 환골탈태를 겪을 때가 오게 되는데, 이때는 온몸의 혈맥들이 무공을 사용하기에 최적의 상태로 바뀌게 된다.
이 혈맥이 바뀌면서 당연히 예전의 피부는 사라지고 새로운 피부가 나타나는데, 지금 팽중호 주변에 있는 이 가루들이 바로 예전 피부가 사라지며 생긴 것들이었다.
“기대 이상이야.”
팽중호는 이 정도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지금 태을신공과 태을선단 덕분에 몇 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스릉-
팽중호는 무적도를 꺼내어 가만히 손에 쥔 후에, 내공을 흘려보냈다.
쿠르르릉- 쿠릉-
무적도에 뇌강이 생겨났는데 이전과 같은 소리가 아니라, 마치 하늘에서 벼락이 치는 듯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성에 다다랐군.”
혼원벽력신공이 대성에 다다랐을 때 울려 퍼지는 소리가 바로 이 천둥소리였다.
전생의 자신도 다다르지 못했던 경지.
지금 그곳에 발을 내디딘 것이다.
“지금이라면…… 검마를 이길 수 있을까?”
장담은 하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쉽게 지지는 않을 자신은 있었다.
철컥-
팽중호는 무적도를 다시 도갑에 넣고는 연공실 밖으로 나왔다.
연공실 밖에서는 장춘오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후…… 오늘이라도 나오셔서 다행입니다.”
“뭐가?”
“내일이 오대회합 날인데 오늘도 안 나오시면 어쩌나 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오래 있었나?”
태을신공과 태을선단에 빠져들어 있던 시간은 팽중호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길었다.
팽중호는 하루 정도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내일이 오대회합이 열리는 날이 될 정도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예. 저는 혹시 안에서 돌에 깔려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
“크크크. 뭐 어떠냐? 나왔으면 됐지.”
“빨리 씻고 옷 갈아입으셔야 합니다. 곧 다른 세가 사람들이 도착하니 말입니다.”
“그래.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