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제일 약한 놈이란 거지, 네가?
장순학은 지금 눈앞의 참상을 바라보자 분노가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갈라지고 나뉜 종남파였지만, 바닥에 쓰러진 그들은 분명 모두 종남파의 제자들이었다.
팽중호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장순학은 어느 정도의 무력 사용과 피를 보는 것은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종남파가 예전과 같이 돌아간다면 말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참상은 그가 생각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이 참상을 만들어 낸 이들이 종남파를 썩게 만든 혈천궁이라는 것이 그를 더욱더 분노케 하였다.
“네가 이 일의 주모자인가?”
장순학이 칠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 담겨 있는 조용한 분노와 살의.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절로 몸이 떨려 올 정도였다.
정혼검신이라 불리는 그가 이렇게나 살의를 내보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
“주모자? 흠. 뭐 내가 이들에게 지시한 것은 맞으니, 내가 주모자라고 할 수 있지.”
장순학의 분노와 살의의 기운을 받으면서도 태연하게 말을 내뱉는 칠주.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물론 장순학도 칠주가 고수라는 것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너를 죽이고, 이들의 혼을 추모하겠다.”
“하하하!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콰아아아아아아-
칠주의 몸에서 질식할 듯한 지독한 혈기가 뿜어져 나왔다.
팽중호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엄청난 양의 혈기.
이 혈기에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사람이 담을 수 있는 혈기인가?’
저 정도의 혈기라면 당장에 미쳐 버리거나 주화입마에 걸려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의 양이다.
안정적이지 않은 혈기를 저렇게까지 많이 담는다는 것은 분명 상식 밖의 일이었다.
‘쉽지는 않겠어.’
팽중호 자신이 상대한다면 분명 이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칠주를 상대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장순학이다.
지금의 장순학은 칠주가 상대가 아니라면 안 될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장순학과 칠주가 싸운다면 누가 이길지 장담할 수 없었다.
‘믿어야지.’
그렇다면 일단 장순학을 믿고 자신은 자신이 할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팽중호는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지금 두 세력이 나누어져 서로를 바라보며 대치하는 상황.
팽중호는 맞은편에 있는 혈천궁 중에 오랑에게 시선이 딱 멈추었다.
‘내가 상대할 놈이 저놈이네.’
딱 느낌이 전해져 왔다.
지금 자신이 상대해야 할 상대가 오랑이라는 것이 말이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있는 오랑 또한 팽중호에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 것이다.
“부탁드립니다.”
“알겠네.”
팽중호는 장순학에게 긴말은 하지 않았다.
부탁한다는 한마디.
그리고 팽중호는 살짝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그런 팽중호를 따라 걸음을 옮기는 오랑.
칠주와 장순학이 있는 곳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 멈춰선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너는 이름이 뭐냐?”
“오랑이다.”
팽중호는 어떤 놈인지 이름은 들어 둬야겠다 싶어서 물은 것이다.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데, 느껴지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으니 말이다.
딱 느낌이 오지 않는가?
‘혈천궁에서 뭘 또 준비했군.’
정상적인 방법으로 준비했을 리는 없고, 아마 상상도 못 할 방법으로 저들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준비한 만큼 분명 평범치는 않을 것이다.
“오랑? 네가 마지막이냐?”
“그래.”
“아아. 그럼 제일 약한 놈이란 거지, 네가?”
오랑이 마지막이라면, 위로 넷이 더 있다는 것.
그들이 지금 눈앞의 오랑보다 강하다고 한다면, 분명 꽤 큰 문제였다.
무림맹과 정우맹으로 나뉜 지금, 무림의 힘으로 그들을 막기는 힘들 테니 말이다.
“내가 제일 약한 것은 맞다.”
역시나.
팽중호는 오랑의 대답에 속으로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번 오대회합에서 수를 써서 정우맹과 무림맹을 하나로 합치게끔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지 않으면 혈천궁과의 싸움에서 정말 큰 낭패를 볼 테니까.
“후우. 내가 이게 뭔 개고생이냐.”
스릉-
무적도를 꺼내든 팽중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하북팽가를 예전처럼 돌려놓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일이 커져 버렸다.
이래서는 마치 자신이 지금 무림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는 꼴이 아닌가?
‘뭐, 어쩌겠어. 해야지.’
하북팽가를 온전히 남기려면 자신이 분주히 뛰어다닐 수밖에.
무림이 멀쩡해야 하북팽가도 멀쩡할 것 아니겠는가?
“빨리 끝내자.”
“동감이다.”
파지지지지지직-
싸움을 길게 끌 생각이 없는 팽중호였다.
곧바로 들어간 뇌신지체.
그리고 곧바로 오랑에게 달려들었다.
파직-
순식간에 오랑의 코앞에 도착한 팽중호.
무적도가 그대로 오랑을 가르기 위해 움직였다.
쾅-!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굉음과 함께 무적도를 타고 전해지는 묵직한 느낌에 팽중호는 조금 놀랐다.
‘이놈 봐라?’
한 손으로 무적도를 막아 내고 있는 오랑.
그의 손에 일렁이고 있는 핏빛 혈기가 팽중호의 뇌기를 완벽하게 막아 내고 있었다.
“그럼 이것도 막나 보자.”
파짓-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혼뢰단세(混雷斷世).
뇌기가 뇌강으로 변하고, 혼뢰단세의 초식이 그대로 오랑에게 향했다.
팽중호의 이 일도를 본 오랑은, 조금 전 팽중호의 공격을 막으며 조금 의기양양했던 표정이 대번에 사라졌다.
오랑의 모든 감각들이 경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이 공격은 위험하다고.
콰앙-!! 서걱- 촤아아아악-
오랑도 곧바로 더욱더 많은 혈기를 내뿜으며 양손으로 팽중호의 공격을 막았지만, 손에 깊은 상처를 입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저 손에 깊은 상처를 입는 것으로 끝난 것만으로도 다행일지 몰랐다.
조금만 잘못했으면, 그대로 몸이 갈라졌을 테니 말이다.
“크윽!”
오랑은 팽중호가 자신이 어떻게 이겨 볼 상대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를 마지막 가는 저승길 동무로 삼길 마음을 먹었다.
파앗-
오랑이 그대로 팽중호를 향해 몸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도외시하고 팽중호를 향해 달려드는 오랑.
팽중호는 그 모습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부르륵- 꾸드득- 꾸득- 뚜드드드득-
아니나 다를까?
오랑이 몸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몸이 부풀기 시작했다.
점점 괴상한 형태로 변해 가는 오랑.
팽중호는 다시금 오랑에게 무적도를 휘둘렀지만, 오랑은 몸이 갈라지는 그 공격을 당하면서도 그대로 계속해서 팽중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지금 오랑은 모습은 마치 터지기 직전의 화탄과도 같은 상태로 보였다.
‘스스로의 몸을 터트리려는 건가?’
이런 것은 지금 두 번째 생을 사는 팽중호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몸을 화탄처럼 만드는 무공이라니?
물론 지금 생각을 길게 할 시간은 없었다.
코앞까지 당도한 오랑의 신형이 이제 곧 터질 것 같았으니 말이다.
어느 정도의 위력일지 정확히 짐작이 가지 않지만, 하나는 확실히 느껴졌다.
‘가까이서 직격당하면, 죽는다.’
지금 이것에 방비하지 않고 그대로 직격당한다면, 절대로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오랑의 몸에서 느껴지는 폭발 직전의 혈기를 느꼈을 때 말이다.
파지지지직- 파지지직- 파파팟- 파지지직-
퍼엉-!
그렇게 팽중호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오랑의 몸이 그대로 폭발했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비산하는 오랑의 뼛조각과 살 조각, 그리고 핏방울.
콰가가각- 콱- 콰각- 푸푹- 푹-
오랑의 몸에서 터져 나온 모든 것들이 흉악한 암기로 변하며 사방을 덮쳤다.
특히나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팽중호에게는 엄청난 양의 암기가 날아왔다.
뇌기로 호신강기를 두르고, 무적도로 뇌강으로 강기의 벽을 쳐서 막아 내었지만, 그래도 완벽히 다 막아 낼 수는 없었다.
푹- 푹-
팽중호의 어깨와 다리에 박힌 뼛조각 두 개.
너무 가까운 거리라 어쩔 수 없었다.
“쓰읍.”
팽중호는 재빠르게 뼛조각을 몸에서 뽑아내었다.
혈기를 머금은 이 뼛조각은 몸에 들어서자마자 몸을 망가트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파지직-
그나마 다행이라면, 팽중호의 뇌기가 스스로 움직여 몸 안에 들어온 혈기를 태워 버린다는 것이었다.
“쿨럭.”
뼛조각을 모두 제거한 팽중호는 이번에는 입에서 왈칵 검게 죽은 피를 뱉어 내었다.
그 많은 암기들이 호신강기를 두른 몸과 강기의 벽을 때려 대었으니 당연히 내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쓰으읍. 후.”
죽은 피를 뱉어 내자 속이 한결 개운해진 팽중호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조금 전 오랑의 폭발로 지금 팽중호를 중심으로 주변이 완전히 초토화되어 있었다.
성한 것이 하나도 없는 주변.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있던 혈천궁의 무인들도 이 폭발에 당해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물론 지금 팽중호에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
장순학과 칠주의 싸움.
이것이 중요했다.
“잘하고 계시는군.”
* * *
장순학은 팽중호가 멀찍이 떨어지고 난 후, 침착하게 칠주를 바라보았다.
장순학도 알고 있었다.
지금 칠주가 얼마나 강하고,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란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마음에 조금의 방심도 두지 않았다.
쿠구구구구구구구-!
장순학의 기운이 주변을 떨어 울리기 시작했다.
거대하고 웅혼한 도가 정통의 기운.
이 기운이 칠주의 지독한 혈기를 밀어내며, 팽팽한 균형을 맞추기 시작했다.
“역시. 정혼검신은 다르군 그래.”
칠주는 겉으로 태연하게 장순학을 칭찬하는 듯했지만, 속은 전혀 달랐다.
혈천궁에서 예상했던 장순학의 힘보다 지금 장순학이 보여 주는 힘이 훨씬 강했기 때문이었다.
스릉-
칠주가 허리춤의 검을 꺼내어 들었다.
요사스러운 검붉은 색으로 빛나는 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검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자. 정혼검신의 피 맛은 어떤지 좀 볼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팟-
탓-
서로를 향해 동시에 달려드는 칠주와 장순학.
두 사람의 검에는 시작부터 강기가 서려 있었다.
카앙-! 캉-! 카카캉-! 카아아앙-!
두 사람은 가까이 붙어서 쉬지 않고 검격을 주고받았는데, 두 사람 사이에서 나오는 여파만으로도 지금 주변에 있는 것들이 베어지고 잘려 나가고 있었다.
평범한 무인들은 두 눈으로 좇지도 못하는 싸움.
이미 평범이란 것에서 아득히 벗어난 초인들의 싸움이었다.
“이제 장난은 끝을 내자고.”
카아앙-
칠주가 강하게 검으로 장순학을 밀어낸 후에 다시금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칠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혈기가 온 사방을 뒤덮기 시작했다.
마치 안개와도 같이 사방을 휘감은 혈기.
그리고 그 혈기 속에서 칠주의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윽-
가볍게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리긋는 칠주.
장순학과의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는데, 보기에는 그저 의미 없는 헛손질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결코 의미 없지 않았다.
서걱- 촤악-
갑자기 장순학의 왼쪽 어깨가 베이며 핏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방금 장순학이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면 아마 그대로 어깨가 잘려 나갔을 터였다.
“혈운잔살검(血雲殘殺劍)을 피하다니, 감이 좋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