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지?
팽중호는 전생에 이미 혈천궁과 싸워 보지 않았던가?
당연히 수없이 많은 혈천궁의 무인들을 상대해 보았고, 그들의 수법들을 꽤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직접 당해 보고 안 것도 있고, 들어서 안 것들도 있었는데, 지금 정우도가 쓰려고 했던 금제 수법은 당해 봐서 알고 있는 것이었다.
‘사로잡아 놓고 자백을 받아내려 했더니, 나를 지목해서 좀 귀찮았지.’
그때 그래서 대대적으로 이 수법을 파헤치기 시작했고, 그 당시 주변의 도움을 좀 받아서 이렇게 역으로 이용해 먹는 방법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으드득-
정우도가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지금 상황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고, 분할 수밖에 없었다.
역공을 당했으니 말이다.
“네놈! 무슨 술수를 부린 것이냐!”
“술수? 제가 말입니까? 그럴 리가요. 술수는 그쪽이 쓰려고 하셨겠지요.”
“흥! 오늘은 이만 자리를 파한다. 내일 다시 이 일에 대해 명명백백히 밝힐 것이다!”
팽중호의 말에 말문이 막힌 정우도는 소리를 치고는 급하게 지금 이 자리를 파했다.
지금 주변에 아직 혈천궁에 포섭되지 않은 종남파 무인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그들이 지금 자신을 향해 의심의 화살을 보내고 있으니, 당연히 이 자리가 계속되어서 좋을 것이 없었다.
‘장순학 저놈까지 일에 껴 있으니 지금 당장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고, 밤까지 기다려 준비를 한 후에 움직여야겠다.’
정우도는 속으로 밤을 기약하며, 일단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몸을 이동하자, 그를 따라나서는 종남파의 무인들과 가만히 제자리에 서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종남파의 무인들로 나뉘었다.
“이제 어쩔 생각인가?”
옆에 가만히 서 있던 장순학이 팽중호를 향해 질문을 하였다.
지금 이 상황으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지금 확실히 나뉘지 않았습니까?”
“음?”
장순학은 팽중호의 말에 주변을 바라보았다.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서 있는 많은 종남파의 무인들.
“이분들은 확실히 종남파입니다.”
남은 이들을 보고 종남파라는 팽중호의 말에 장순학의 눈이 조금 빛났다.
팽중호의 말뜻을 이해한 것이다.
“그렇군.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나?”
“저분들은 일단 선배님께서 모두 모아 주십시오.”
팽중호는 일단 주변에 있는 이들을 장순학에게 맡겼다.
어차피 외부인인 자신이 말하는 것은 신뢰가 떨어질 터.
하지만 장순학이라면 달랐다.
장순학은 정말 종남을 위하는 이들에게는 빛과도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장순학의 말이라면 분명 경청하고, 잘 따라 줄 것이다.
“내가 해 줄 이야기가 있네. 들을 각오가 된 사람만 따라오게.”
지금까지 생각을 정리하던 종남파 무인들이 장순학의 말에 그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금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었으니 말이다.
사실 그들도 어느 정도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종남파가 예전과 달라졌으며, 그 중심에는 장문인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혈천궁과 관련이 있을 것이란 것까지는 예상치 못했기에, 그들은 장순학에게 이야기를 듣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렇게 앞서 걷는 장순학의 뒤를 따라나서는 무인들.
물론 몇몇은 아직도 깊은 생각에 잠겨, 제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또 몇몇은 조금 전 장문인이 사라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자도 있었다.
‘흐음.’
팽중호는 가만히 서서 그들 모두를 지켜보고 서 있었다.
그들의 선택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완벽하게 모두를 분별하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지금의 상황으로 분명 얼추 종남파 무인들을 나누기는 하였다.
혈천궁의 수족인 자들과 아닌 자들로 말이다.
하지만 분명 이렇게 나눈 것은 어디까지나 아주 단순하게 나눈 것일 뿐.
지금 혈천궁의 수족인 듯 따라나선 이들 중에서도 분명, 그들의 수족이 아닌 자들이 있을 터였다.
그들을 모두 찾아내어 구제한다면 아주 좋겠지만, 그렇게 시간을 끌었다가는 분명 또 다른 문제들이 생겨나 결국 일을 그르치게 될 확률이 높았기에 그럴 수 없었다.
지금 이 일은 신속하게 처리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뭐, 어쩔 수 없지. 결국 모두를 구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 * *
정우도는 지금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왔는데, 그의 뒤를 따라 두 사람이 더 따라 들어왔다.
모두 이번에 새롭게 종남파에 들어선 무인들.
한마디로 혈천궁의 무인들이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정우도는 두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팽중호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이다.
“죽이는 것이 제일 낫겠지.”
“동감입니다.”
죽이자는 의견을 낸 중년인은 혈천궁의 칠주의 자리에 있는 인물이고, 동의한 청년은 혈천궁에서 새롭게 키워 낸 비밀병기 중 하나인 오혈랑(五血狼) 중 하나인 오랑(五狼)이었다.
두 사람은 당연히 팽중호를 죽여야 한다고 했다.
아니, 그들은 애초에 어떤 일이든 모두 죽이고 보는 이들이니 어쩌면 당연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었다.
“팽중호도 장순학도 쉽지는 않은 자들이오. 손해가 막심할 것이오.”
정우도는 둘을 죽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두 사람 다 화경의 경지를 넘어선 무인들이다.
칠주와 오랑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벌써 팔주가 당하지 않았는가?
팽중호 하나도 아니고 장순학까지 죽여야 일이 편해질 것인데, 지금 전력으로 둘을 죽이려면 분명 큰 손해를 치러야 할 것이다.
“손해? 하하. 우리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움직인다 생각하나?”
“……?”
“궁에서 오늘 명이 내려왔다.”
“뭐라고 왔소?”
“모든 계획을 변경한다고 말이다.”
푸욱-
정우도의 심장을 꿰뚫는 하나의 손.
정우도는 지금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금 자신의 심장을 꿰뚫은 주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크큭.”
촤악-
지금 정우도의 심장을 꿰뚫은 이는 바로 오랑.
오랑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정우도의 심장을 꺼내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아직까지도 펄떡펄떡 뛰는 심장.
오랑은 그 심장을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더니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으득- 으득- 으득-
완전히 생명이 꺼지지 않은 정우도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왜……?”
“말했잖나. 계획을 바꾼다고. 이런 장난 놀이는 이제 그만할 거거든.”
“…….”
털썩-
말을 끝까지 들었는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정우도의 신형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바닥을 흥건히 적시는 정우도의 피.
칠주는 그 피를 바라보다가, 곧바로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으아악!!”
“크억!!”
“왜, 왜! 우리를!!”
어지럽고 시끄러운 주변.
지금 종남파 무인들끼리 서로를 죽이고 있었다.
한쪽은 혈천궁의 무인들이 종남파의 무인인 척하고 있던 자들이었고, 한쪽은 혈천궁에 발을 담갔던 자들이었다.
지금 혈천궁의 무인들은 사정없이, 혈천궁에 발을 담그고 있던 종남파 무인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속절없이 죽어 나가는 종남파의 무인들.
“오랑. 마음껏 날뛰어도 된다.”
“알겠습니다.”
팟-
칠주의 말에 오랑까지 나서서 종남파 무인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비명과 혈향이 난무하는 곳으로 변해 버린 종남파.
칠주는 그 중심에 가만히 서서 그저 주변을 지켜 보고만 있었다.
“그래. 차라리 이것이 낫지. 쥐새끼처럼 숨어서 기회나 보는 것보다는 말이야.”
혈천궁에서 내려온 명령.
그것은 기존의 모든 계획들을 철회하고, 무림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존에 공작을 펼쳤던 곳들은 모조리 정리하고 오라는 명령.
그에 따라 칠주는 공을 들이던 종남파를 정리하고, 이곳을 떠날 생각을 했다.
“아. 그래도 가기 전에 그 팽중호란 놈은 죽여 놓고 가야지.”
* * *
“크아악!!”
팽중호는 저녁때쯤 혈천궁과 정우도가 움직일 것이라 생각하고,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급하게 밖으로 나섰다.
지금 이런 소리가 들려오면 안 되었으니 말이다.
“무슨 일이지?”
종남파 전체에 퍼져 있는 비릿한 혈향.
팽중호는 일이 크게 틀어졌음을 느꼈다.
팟-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팽중호.
그리고 팽중호는 참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사방에 널려 있는 종남파 무인들의 시신들.
그들에게서 흘러나온 피가 지금 종남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그때 이 소란을 느낀 장순학도 자리에 나타났다.
지금 장순학의 두 눈은 놀람과 분노로 가득 찼는데, 당연히 그럴 만했다.
눈 앞에 펼쳐진 종남파의 참상을 보았는데, 어찌 멀쩡할 수 있겠는가?
“이, 이게!”
“무슨!”
장순학의 뒤를 따라온 종남파의 무인들도 지금 광경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분명 조금 전에 장문인을 따라갔던 이들이 왜 서로를 죽이고 있단 말인가?
“아. 다 왔군.”
그때 지금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 아주 무감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팽중호를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마치 주변의 상황은 자신과 관계가 없다는 듯 천천히 걸어 나타나는 목소리의 주인공.
“나는 혈천궁의 십이혈주 중 칠주라고 한다.”
지금 나타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칠주였다.
‘강하다.’
팽중호는 대번에 칠주가 강자라는 것을 느꼈다.
팔주보다 하나 높은 칠주인데도, 느껴지는 기운은 분명 궤를 달리했다.
“크어억…….”
결국 칠주의 주변에 있던 마지막 종남파 무인마저 바닥에 쓰러졌다.
그렇게 되자, 중간에 조금의 틈을 두고 두 세력이 나뉘어 마주 보는 형세가 되었다.
팽중호와 장순학 그리고 장순학을 따라나섰던 종남파의 무인들로 이루어진 한 세력과 칠주와 오랑 그리고 혈천궁의 무인들로 이루어진 한 세력.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지?”
팽중호가 굳은 얼굴로 칠주를 향해 물었다.
이 상황은 지금 팽중호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더 이상 이런 놀음은 끝이라고만 해 두지.”
팽중호는 칠주의 말에 어느 정도 상황이 이해가 갔다.
‘계획이 바뀌었군.’
혈천궁의 계획이 바뀐 것일 터다.
그들도 세월이 흐른 만큼, 무림의 정세가 달라진 만큼 계획을 다르게 할 것이란 걸 간과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급하게 바꿀 이유가 있나?’
계획을 수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급진적으로 바꾼단 말인가?
그렇다면 분명 무언가 이들이 이렇게 급하게 바꿀 만한 무언가가 있단 소리일 터다.
‘일단 이 상황부터 정리하고, 생각해 보자.’
왜 이들이 이런 선택을 했는지는 일단 이 상황을 끝낸 후에 생각하기로 하였다.
분명 여기 말고도 이곳저곳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고, 다들 이 일을 조사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너희들도 모조리 여기서 죽여 주마.”
“아니. 너희가 모조리 여기서 죽을걸? 이분이 그냥 너희를 보내 주시지 않을 것 같거든.”
팽중호의 바로 옆에 있는 장순학.
그의 몸에서 지금 항거할 수 없는 엄청난 기운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의 인생 중 가장 크고 거대한 분노를 터트리는 중이었다.
“내가 너희를 단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