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의 개망나니-89화 (89/200)

89화 말씀을 드렸을 텐데요?

밖으로 나온 팽중호는 무려 세 사람(?)을 들고도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 아래에서 그렇게 큰 소란이 났는데도 위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멀뚱히 전각만 지키고 있는 것을 보니, 지하 공동이 꽤 공들여서 지은 곳이란 것을 느꼈다.

그 공들여 지은 탓에 이런 사달이 나는 것도 모르게 되었지만 말이다.

스슥- 스윽-

빠르게 달려 다시금 신조상단이 머무는 전각으로 돌아온 팽중호.

팽중호는 곧바로 챙겨 온 이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털썩- 털썩- 털썩-

“어휴. 무거워.”

완전히 정신이 나가 버린 두 사람과 시신 한 구.

팽중호는 이들을 다시 한번 더 손을 본 후에, 옆방으로 옮겨 내일을 기다리며 상념에 잠겼다.

진짜 종남파에서의 일은 이제 내일부터 시작이니, 이래저래 생각할 것들이 많았다.

‘흠……. 지금 신조상단을 돌려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이어 가던 팽중호는 신조상단 사람들을 지금이라도 돌려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지금 이곳에서 팔주 하나를 잡았지만, 솔직히 팔주 하나가 끝이 아닐 터다.

이 거대한 종남파를 집어삼키려면 팔주 말고도 분명 더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상대는 팔주보다 더 강할 확률이 높았고 말이다.

‘내가 이들을 전부 지키기는 힘들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자신이 이세경 한 명이라면 모를까, 신조상단 전부를 지키기는 분명 쉽지 않을 터였다.

원래는 그들 모두를 지킬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직접 팔주를 만나 보니 그것이 쉽지 않을 것임을 느꼈다.

조금 전 지하에서 아주 쉽고 간단하게 팔주를 제압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억지로 강해 보이기 위해서 과하게 힘을 끌어 올린 것이다.

그래서 사실 지금 속이 썩 좋지는 않았다.

‘세경을 만나야겠어.’

팽중호는 생각을 정하자마자 곧바로 방을 나서서 이세경이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세경은 팽중호를 기다리다가, 이것저것 정리할 것들이 있어 먼저 방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똑똑-

“누구십니까?”

팽중호가 방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이세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들어가도 될까?”

“아. 가가. 오셨습니까. 들어오십시오.”

팽중호의 목소리를 듣자,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이세경.

지금 일을 처리하면서도 온통 팽중호를 걱정하던 그녀였기에, 팽중호가 무사히 돌아오니 당연히 목소리가 밝을 수밖에 없었다.

스으윽-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팽중호.

이세경은 정리하던 서류를 옆으로 밀어 두고, 팽중호를 맞이했다.

“앉으십시오.”

“응. 고마워.”

이세경의 옆에 앉은 팽중호는 생각했던 바를 이세경에게 전하였다.

신조상단의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이세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종남파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한 뒤에, 상단과 떠나겠습니다.”

곧바로 떠나겠다고 말하는 이세경.

그녀도 자신과 신조상단이 지금 팽중호가 하는 일의 걸림돌이 될 것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꼭. 꼭……. 몸조심하셔야 합니다.”

“물론이지.”

팽중호는 이세경에게 밝은 미소를 보여 주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이세경은 곧바로 움직였다.

신조상단의 모든 이들을 이끌고, 해가 뜨자마자 움직일 채비를 하였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가가.”

“집에서 보자고.”

포옥-

이세경은 떠나기 전에 팽중호의 품에 한 번 안기고는 종남파를 떠났다.

종남파에서 멀찍이 떠나는 신조상단의 행렬.

그 행렬을 지켜보던 팽중호는 어제 방에 처박아 놓은 셋을 꺼내어 장순학의 처소로 향했다.

“어제 아무 일 없으셨습니까?”

“뭐, 근신을 하라고 하더군.”

어제 팽중호가 움직이기 좋게끔 날뛰어 준 장순학.

그는 이 종남파가 뿌리 깊은 곳까지 물들었다며 거침없이 종남파 이곳저곳을 움직이며 소란을 피웠는데, 그를 막기 위해 종남파의 간부들이 대거 출동했고 간신히 그의 화를 진정시킨 그들은 장순학에게 처소에서 근신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솔직히 그 처분에 따를 필요는 없었지만, 장순학은 일단은 고분고분 그들의 말을 따라 주는 척을 하였다.

“증거는 잡았나 보군.”

“예.”

장순학은 팽중호가 데리고 온 셋을 보며 팽중호가 일에 성공했음을 알았다.

“헌데, 이들이 자백하지 않는 한, 분명히 끝까지 발뺌할 것이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이들이 혈천궁의 증거라고 내밀어도 이미 종남파는 혈천궁에 대부분 장악당한 상황.

아마도 이들만으로 꼬리를 자르려고 하거나, 아니면 역으로 자신과 장순학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솔직히 그들이 억지를 부린다면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오히려 그러기를 바라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음?”

“적과 아군은 확실히 구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팽중호는 이 썩어 버린 종남파에서도 장순학과 같이 아직 썩지 않은 이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살려 둬야 후에 마교를 막을 때 함께 싸우지 않겠는가?

그래서 팽중호는 그들과 혈천궁에 물들어 버린 이들을 분류해 낼 생각이었다.

‘이렇게 크게 떠벌려 놓으면, 놈들이 알아서 움직일 테지.’

그들이 이 셋을 보고 꼬리를 자르든, 누명을 뒤집어씌우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들은 그저 그들을 움직이게 할 미끼일 뿐이니 말이다.

이들을 데리고 종남파를 추궁한다면, 그들은 어떻게든 분명 무언가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그리고 팽중호는 그 움직임을 노리고 있었다.

“확실하게 갈라지면 아시죠?”

“음……. 알고 있네.”

팽중호는 장순학에게 지난번에 말했던 것을 다시 한번 더 상기시켜 주었다.

그가 만약 망설인다면, 일이 좀 어렵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어느 정도는 마음을 굳힌 것 같아 다행으로 보였다.

“그럼. 가 볼까요?”

* * *

종남파의 가장 넓은 연무장에 지금 필수 인원을 뺀 모든 종남파 인원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한 가운데.

팽중호와 장순학이 바닥에 누워 있는 세 인영과 함께 서 있었다.

“자, 제가 말입니다. 이 종남파에서 혈천궁의 종자들을 잡았습니다.”

여유로운 표정과 자신감 있는 말투로 주변을 바라보며 말을 하는 팽중호.

팽중호의 말에 일부는 얼굴을 굳혔고, 일부는 놀랐으며, 일부는 살기를 흘렸다.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팽중호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생각한 반응이 그대로 나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여기 이자는 얼마 전에 종남파에서 사라진 분입니다.”

팽중호는 얼굴에 화상 자국이 있는 시신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고, 그렇게 도군학부터 팔주까지 설명을 이어 갔다.

그럴수록 더욱 굳어지는 표정들과 진해지는 살기들.

“자. 제 설명은 여기까지입니다.”

팽중호의 설명이 끝났지만, 다들 섣불리 입을 떼지는 않았다.

가만히 팽중호를 바라만 보는 그들.

그때 드디어 가장 상석에서 이 설명을 듣고 있던 종남파 장문인 직단검 정우도가 입을 뗐다.

“소가주의 말을 우리가 어찌 신뢰할 수 있소?”

“여기. 정혼검신께서 보장해 주실 겁니다.”

“그렇소. 나는 오래전부터 혈천궁을 의심해 왔고, 드디어 여기 팽 소가주의 도움을 받아 그 꼬리를 잡은 것이오.”

장순학은 팽중호와 미리 입을 맞춘 대로 대답을 하였다.

“……우리를 대신해 혈천궁의 꼬리를 잡아 준 것은 고마우나, 우리 종남파의 문제이니 우리가 해결하겠네. 외부인은 이만 빠져 주게.”

정우도는 팽중호를 향해 더 이상 개입하지 말라는, 일종의 축객령을 내렸다.

물론 빠지란다고, 여기서 순순히 빠질 팽중호가 아니었다.

여기서 빠질 거면 애초에 이렇게 움직이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혈천궁은 지금 범무림적 문제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희 하북팽가도 그들에게 피해를 본 것도 있어서 말입니다.”

“이 이상 본파에 간섭을 하려 한다면, 더는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네.”

파지지지지직-

“그냥 갈 수 없다고 말씀을 드렸을 텐데요?”

“감히!”

“어허!”

팽중호가 명백히 위협을 목적으로 엄청난 기운을 발산했다.

주변을 가득 메운 모든 종남파 무인들의 피부가 저릴 정도로 강렬한 기운.

이에 종남파 무인들 몇이 소리를 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장문인이 보고 있는 곳에서 이렇게 노골적인 위협을 담은 기운을 발산하는 것.

그것은 분명 강호의 보편적인 도리에 굉장히 어긋나는 짓이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하! 이제 생각해 보니 소가주가 혈천궁의 수족이고, 이 일을 꾸민 건 아닐까란 생각이 갑자기 드는군.”

정우도는 팽중호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발끈하는 모습을 보고는, 입가에 아주 살짝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팽중호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면 혈천궁의 사람이 아닌 이들 또한 분위기에 편승해 팽중호를 충분히 의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씨익-

하지만 정우도가 미소 짓는 모습을 보고는 팽중호도 마주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생각한 그대로 정우도가 움직여 주니, 웃음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아. 그건 충분히 의심하실 만한 상황이지요. 그럼. 일단 이 자들을 깨워서 물어볼까요? 제가 혈천궁의 끄나풀인지 아닌지.”

“그러게.”

팔주와 도군호를 깨워서 물어보자는 팽중호의 말에 정우도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팔주와 도군호는 모두 혈천궁의 사람이니 말이다.

“그럼.”

툭- 툭- 툭- 툭-

“커헉!”

“크어억!”

팽중호가 쓰러져 있던 팔주와 도군호를 툭툭 건드리기 시작하자, 두 사람이 동시에 깨어났다.

깨어나자마자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주변 상황을 살피는 두 사람.

그렇게 주변에 가득한 종남파 무인들을 보고 안도하던 두 사람은 팽중호의 얼굴을 보고는 다시금 몸을 떨기 시작했다.

두 사람에게 지금 팽중호는 악귀나 마찬가지로 보였으니 말이다.

두 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얼굴.

“자. 자유롭게 물어보고 싶으신 걸 물어보십시오.”

팽중호는 아주 여유롭게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해 주었다.

너무나 여유로운 모습에 무언가 있나 싶은 정우도였지만, 이내 그런 걱정은 접어 두었다.

그가 무슨 수를 썼던지, 어차피 저 둘은 혈천궁에 유리한 말만 내뱉을 테니 말이다.

‘금제가 있다는 것은 모르겠지.’

혈천궁의 모든 무인은 금제가 걸려 있다.

특수한 무공에만 반응하는 이 금제는 손쉽게 금제를 당한 대상을 조종하게끔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정우도는 이미 그 특수한 무공을 익혀 둔 상태.

도군호와 팔주를 얼마든지 그가 조종할 수 있었다.

스으으으으-

정우도는 아주 은밀하게 기운을 뻗어 도군호와 팔주에게 쏘아 보내었다.

“자네들은 혹시 팽 소가주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혈천궁의 수족인가?”

“저, 저희는…….”

정우도는 둘의 눈이 점차로 붉게 변해 가는 것을 보고, 제대로 무공이 먹혔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대로 명령을 쏘아 보내었다.

‘너희는 팽중호의 명령을 받고 움직인 혈천궁의 끄나풀이라 대답하라.’

“저는 장문인 정우도의 명령을 받고, 종남파를 집어삼키려는 끄나풀입니다.”

“나는 혈천궁의 십이주 중 팔주다. 종남파 장문인의 명령을 받는다.”

“!!!”

정우도가 명령한 것과 정반대되는 말을 내뱉는 두 사람.

정우도의 두 눈이 지진이 난 듯 떨려 왔다.

그리고 그 눈으로 팽중호를 바라보았다.

씨이익-

명백한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는 팽중호.

이 미소에 정우도는 팽중호가 먼저 무슨 수를 썼음을 느꼈다.

‘어떻게?’

금제를 당했다는 것은 웬만해서는 알 수가 없다.

흔적이 남는 것이 아니라, 무공을 통해 거는 금제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팽중호가 금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손을 미리 쓴단 말인가?

“이거 수족은 제가 아니라, 장문인이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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