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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의 개망나니-88화 (88/200)

88화 이 뒤로는 아무도 못 나간다.

슈와아악-

순간 팽중호가 은신해 있는 곳으로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텁-

팽중호는 그것을 그대로 손으로 잡아채었는데, 그냥 평범한 쇠꼬챙이였다.

도군호의 옆에 있던 허리가 굽은 중년인이 날린 것.

그는 지금 정확히 팽중호가 있는 곳을 보고, 내공을 담아 주변에 있던 쇠꼬챙이를 날린 것이었다.

“클클클. 모습을 드러내라.”

팽중호를 향해 예의 그 소름 끼치는 웃음을 흘리며 말하는 중년인.

팽중호는 어차피 들켰으니 당당하게 모습을 나타내었다.

“어떻게 알았냐?”

“이곳은 바로 나 팔주(八柱)의 공간이다. 쥐새끼가 들어온 것은 언제든 알 수 있지.”

허리가 굽은 중년인의 정체는 혈천궁의 십이주 중 여덟 번째인 팔주.

그는 도군호를 따라서 팽중호가 들어온 그 순간부터, 팽중호가 이곳에 잠입했음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 기척이 워낙 희미하였기에, 완벽한 위치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것일 뿐이었다.

“아아. 네 입으로 혈천궁 놈이라 해 주니까 고맙다 야. 귀찮게 물어보지 않아도 되니까.”

콱-

팽중호는 손에 들린 쇠꼬챙이를 바닥에 던져 박아 버린 뒤에, 팔주를 바라보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너랑 네 옆의 놈이랑 둘 다 잡아가면 되겠네.”

“클클클. 팽중호 네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긴 나의 공간이다. 여기서는 네놈에게 지지 않는다.”

팔주는 이미 팽중호가 종남파에 왔다는 것도, 팽중호의 인상착의도 알고 있었다.

종남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그에게 보고가 들어오니 말이다.

그리고 혈천궁으로부터 팽중호에게 십이주부터 구주까지 모두 죽임을 당했다는 정보도 이미 들었기에, 그가 얼마나 강자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지금 오랜 시간 동안 장악해 놓은 그만의 공간.

이 안에서만큼은 몇 배의 힘을 낼 수 있기에, 전혀 팽중호가 두렵지 않았다.

“그래? 잔재주가 얼마나 되는지 좀 볼까?”

파지지지지직-

팽중호의 몸에서 뇌기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 공간을 집어삼키는 압도적인 팽중호의 기운.

이 엄청난 기운에 팔주도 그 옆에 있던 도군호도 모두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생각 이상이군…….’

팔주는 지금 팽중호에게 느껴지는 기운이 자신이 생각한 범위를 벗어났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렇다고 자신이 이긴다는 생각이 변하지는 않았다.

구오오오오오오-

넓은 공동이 갑자기 알 수 없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넓은 공동을 가득 채우는 지독할 정도의 혈기.

혈기와 함께 갑자기 한쪽에 있던 관이 열리며 다섯 개의 강시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클클클. 자, 네가 얼마나 버틸까 보자.”

스슥-

팔주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강시들이 팽중호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강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움직임으로 팽중호에게 달려드는 강시들.

팽중호는 이 모습에 눈을 빛내었다.

‘혈강시를 제대로 만들었군.’

혈강시(血僵尸).

보통의 강시와는 다르게 혈천궁에서 만들어 낸 특수한 강시를 혈강시라 불렀다.

이 혈강시들은 재료가 되는 무인이 가진 전생의 힘보다 수배는 더 강해지기에, 여간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것들이었다.

게다가 강시라는 특성상 상처를 입는다고 주춤거리지도 않을뿐더러, 피부가 마치 쇠처럼 단단하기에 베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파짓- 파팟- 파지직-

팽중호는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곧바로 무적도에 뇌강을 만들어 내었다.

한 번에 베어 내야 귀찮지 않고 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파파팟- 파파파팟- 파팟-

뇌강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갑자기 뇌기가 이상하게 튀어 오르며 뇌강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클클클. 어떠냐?”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는 팔주의 목소리.

팔주는 지금 뇌강이 만들어지지 않는 팽중호를 보며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혈라금기진(血羅禁氣陳).’

이 넓은 공동에 설치된 진법의 이름이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이 진법에서 내공을 제대로 쓸 수 없다.

팔주 자신은 특수한 무공을 익혔기에 내공을 쓰는 것이 가능했지만 말이다.

‘이 혈라금기진 앞에서는 제아무리 화경의 무인이라도 소용없다.’

지금이라면 팽중호의 힘은 잘해 줘야 초절정 초입 정도가 될 터.

그렇다면 자신과 다섯 구의 강시라면 아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재밌는 짓을 하네? 이건 나중에 정 선생한테 알려 줘야겠어.”

씨익-

뇌강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팽중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전생에 수많은 싸움을 해 보았고, 이런 이상한 경험을 한두 번 해 본 게 아니었다.

“얼마나 대단한지 시험해 보자고.”

파지지지지지지지직-!!!

팽중호의 뇌기가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금 전의 뇌기는 마치 장난이었다는 듯이 뿜어져 나오며 사방을 옥죄기 시작했다.

이 엄청난 뇌기에 달려들던 혈강시들까지 몸을 멈칫했다.

콰각- 카가각- 콰각- 콱-

이 뇌기에 주변의 공간이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저 몸 안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만으로 주변 공간을 터트리고 있는 것이었다.

“화경이 같은 화경이 아니라는 걸 내가 보여 줄게.”

화경의 경지에 들어섰더라도, 그 수준에 따라 힘은 천차만별이다.

팽중호는 이제 어느새 화경의 끝에 다다른 수준.

화경 초입이나 중간에 있는 이들과는 당연히 차원이 달랐다.

쾅-!!!

팽중호가 진각을 강하게 밟았다.

순간 주변의 바닥이 모조리 터져 나갈 정도의 위력.

그리고 이 진각 한 번에 팔주가 설치한 혈라금기진이 깨져 버렸다.

단 한 방에 설치된 진법을 깨트릴 정도의 힘.

지금 팽중호의 압도적인 강함은 그를 정말 뇌신(雷神)처럼 보이게끔 해 주었다.

번쩍- 파지직-

황금색으로 빛나며 미약한 뇌전이 흐르는 팽중호의 두 눈.

조금 전 팽중호의 진각에 모습이 드러난 팔주는, 이 두 눈을 보고는 그대로 몸이 얼어붙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그는 깨달은 것이다.

팽중호가 자신 따위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도망쳐야 한다.’

도망치는 것만이 지금의 방법이었다.

스으윽-

팔주는 곧바로 도망을 선택하고 다시금 몸을 숨겼다.

지금 이곳에서 나가는 통로는 단 하나.

그곳으로 몸을 날리며, 곧바로 혈강시들을 팽중호에게 달려들게끔 하였다.

혈강시 다섯 구면 그래도 잠깐의 시간은 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파직-

“어딜 도망가냐?”

하지만 팔주의 이런 계획은 곧바로 무산되었다.

팔주의 바로 코앞에 나타난 팽중호의 인영.

쾅-!

팽중호의 무적도가 그대로 팔주에게로 쇄도했는데, 팔주는 그 와중에도 재빨리 내공을 끌어 올려 도를 막았기에 목이 떨어지는 것은 면할 수 있었다.

다만, 몸이 날아가 벽에 처박히는 것은 피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지금부터 이 뒤로는 아무도 못 나간다.”

입구를 떡하니 막고 선 팽중호.

마치 불가의 사천왕과 같은 그의 모습에 지금 공동에 있는 팔주와 도군호는 절망했다.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방도가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여기서 멀쩡하게 나갈 방법이 하나 있는데, 어떻게 들어 볼래?”

“뭡니까?”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도군호가 입을 열었다.

도군호는 지금이 자신이 나설 때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협상을 제시했다면, 자신의 능력으로 그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 너희 단전을 스스로 부수고, 그다음에 무림맹으로 가서 너희가 한 짓을 너희 입으로 떠드는 거.”

“그냥 죽으라는 소리가 아니오!”

“싫어?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파짓-

팽중호의 신형이 다시금 사라지고 이번에 나타난 곳은 도군호의 바로 앞.

“내가 그렇게 만들어 주는 수밖에.”

퍽-!

“크아아악!!”

도군호가 공동이 떨어져 나갈 듯이 비명을 내질렀다.

팽중호의 칼등이 정확히 도군호의 단전을 때려 부순 것이다.

“얌전히 쓰러져 있어.”

툭-

팽중호는 도군호의 마혈을 제압해 그대로 쓰러트렸다.

바로 죽일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후에 분명 쓰일 일이 있을 것 같아 살려 두었다.

“자. 이제 너희들이지?”

도군호를 쓰러트린 팽중호의 다음 목표는 다섯 구의 혈강시.

혈강시들이 재차 팽중호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뇌룡진천(雷龍振天).

거대한 뇌룡이 팽중호의 도에서 뿜어져 나오고 그대로 다섯 구의 강시를 동시에 삼켜 버렸다.

서걱-

그리고 뇌룡이 다시 모습을 감추었을 때.

다섯 구의 혈강시들은 모두 허리가 반으로 갈라진 채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단 일도로 한 번에 혈강시들을 모조리 갈라 버린 것이다.

“자. 이제 너는 어쩔까…….”

이 공동에 이제 남은 것은 팽중호와 팔주뿐.

방금 막 정신이 든 팔주는 지금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눈알과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내가 혈천궁에 관한 모든 것을 불겠다. 그러니 나를 살려다오.”

팔주는 일단 살기 위해 혈천궁을 팔겠다는 말을 던졌다.

물론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일단 이곳에 벗어나 밖으로만 나선다면, 종남파에 혈천궁의 무인들이 쫙 깔려 있을 것이니 말이다.

“아, 다 불겠다고? 그럼 또 살려 줘야지.”

“그, 그래.”

팔주는 팽중호의 말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복수의 칼을 날카롭게 갈기 시작했다.

‘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네놈을 가장 고통스럽게 죽인 후에 강시로 만들어 요긴하게 써 주마.’

“그래도 몸에 금제는 걸어야겠지?”

“마음대로 해라.”

팔주는 금제를 걸겠다는 팽중호의 말에 마음대로 하라며 그를 안심시켰다.

보통 금제라고 한다면 혈을 봉인하거나 단전을 봉인하는 것.

하지만 보통의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팔주이기에 그런 것은 자신에게 전혀 통용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몸은 반쯤은 강시나 다름없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금제에 당한 척한 뒤에 이곳을 빠져나간 후에 일단은 도망치거나, 기회를 보자.’

저벅- 저벅-

팽중호는 천천히 팔주에게 다가가 그에게 금제를 가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 금제를 준비하는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파지지직- 파지지지지직-

팽중호의 양손에 가득 뿜어져 나오는 뇌기.

보통 혈을 금제할 때 저렇게 기운을 뿜지는 않는다.

이 모습에 팔주는 지금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혈공을 익힌 놈들에게 금제를 가할 때 이만한 것이 없지.”

“무, 무슨……. 크아아아아아아악!!!!”

뇌기를 머금은 팽중호의 양손이 벼락같이 움직이며 팔주의 온몸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공동이 지진이 난 듯 떨릴 정도로 비명을 내지르는 팔주.

그는 지금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아예 단전은 부수고, 혈도는 다시는 쓸 수 없게 태워 버려야 좀 안심이 되더라고 나는.”

팽중호는 혈공이나 마공을 익힌 이들 중, 이따금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리고 팔주가 그것을 믿고 흔쾌히 금제를 받겠다고 했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팽중호가 아는 가장 확실한 금제(?)법을 쓴 것이었다.

완전히 단전을 부수고, 혈도마저 뇌기로 모조리 태워 버리는 금제법.

“내가 이 방법을 쓰고, 멀쩡했던 놈은 본 적이 없거든.”

치이이익- 털썩-

뇌기에 온몸이 타 버린 팔주의 신형이 바닥에 쓰러졌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아직 숨은 붙어 있었다.

“자. 기대 이상으로 챙길 건 다 챙겼으니까, 나가 볼까.”

팽중호는 바닥에 쓰러진 도군호와 팔주를 어깨에 들쳐 메고, 등에는 예의 그 시신을 업은 채로 다시금 밖으로 몸을 돌렸다.

팽중호가 떠나간 뒤의 공동은 화탄이라도 터진 듯 완전히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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