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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의 개망나니-87화 (87/200)

87화 그런데 어떻게 들어간담?

팽중호는 장순학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금 신조상단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해가 산에 걸쳐 있는 늦은 시간.

신조상단의 사람들은 거래를 마치고 종남파에서 하루를 머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곧 해가 넘어갈 시간이니, 종남파에서 하루를 머물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이야기는 잘 끝내셨습니까?”

“응. 잘될 것 같아.”

팽중호는 가벼운 표정으로 이세경의 질문에 대답했다.

장순학과의 이야기가 생각 이상으로 잘 흘러갔기에 표정이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상과 다르게 장순학이 굉장히 흔쾌히 수긍해 주었으니 말이다.

“내일부터는 다들 따로 어디 가지 말고, 내 옆에 딱 붙어 있으라고 전해 줘.”

“예. 가가.”

팽중호는 이세경에게 내일부터 있을 일에 대해 미리 언질을 준 후에, 종남파가 마련한 손님들이 오면 머무르는 전각으로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그래도 종남파가 구파라 그런지, 아주 으리으리한 규모의 전각이 눈에 들어왔다.

“돌아가면 우리도 좀 더 규모를 키워 볼까?”

“앞으로 많은 사람이 찾아올 테니,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스으으으윽-

부드럽게 열리는 문.

관리를 얼마나 잘했는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런데 차 한 잔 안 내어 주네?”

원래 손님이 오면 차나 식사를 내어 주는 것이 손님에 대한 예의다.

차를 내어 주지 않는다는 것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라는 뜻.

지금 종남파에 자신들은 전혀 반갑지 않은 손님이라는 것이었다.

“나 때문에 미안.”

“아닙니다.”

팽중호는 괜히 자신 때문에 신조상단이 같이 푸대접을 받는 것 같아 조금 미안했다.

이세경은 아니라고 해 주었지만, 여전히 마음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디서 신조상단이 이런 푸대접을 받아 보았겠는가?

“내가 차를 끓여 볼게.”

“예? 가가께서요?”

이세경은 팽중호가 직접 차를 끓이겠다는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까지 팽중호가 차를 끓이거나, 음식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잘 끓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기대하겠습니다.”

이세경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리에 앉았고, 팽중호는 전각 한쪽에 있는 주방으로 가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차를 끓일 수 있는 주전자와 찻잎은 준비되어 있었다.

‘조금 편법을 써 볼까?’

차를 끓일 때 중요한 것은 불의 세기로 온도를 조절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팽중호는 주전자에 슬쩍 손을 대서 내공을 이용해 온도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하는 건데, 잘 될지 모르겠군.’

전생에 아주 가끔 팽중호는 혼자 차를 끓여 보고는 했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끓여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까 다른 이에게 차를 끓여 주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란 소리였다.

쪼르르르륵-

팽중호는 완성된 차를 찻잔에 따라서 이세경 앞에 놓았다.

“잘했는지 모르겠다.”

“호호. 일단 향이 아주 좋습니다.”

후릅-

가볍게 차를 한 모금 입으로 넘기는 이세경.

그리고 이내 이세경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호호호. 드디어 가가께서 못 하시는 걸 찾았습니다.”

팽중호가 끓인 차는 지나치게 많이 끓여 쓴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세경은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내공으로 물을 데우셨습니까?”

“응…….”

내공으로 물을 뜨겁게 하면 불로만 끓이는 것과 다르게 안쪽부터 물이 끓는다.

게다가 겉에는 불까지 뜨겁게 타오르고 있으니, 당연히 생각 이상으로 뜨겁게 데워질 수밖에 없었다.

팽중호는 사실 딱히 차에 대한 조예도 없었고, 그저 빠르게 데워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 이렇게 내공으로 차를 끓인 것이었다.

“그래도 가가께서 처음 해 주신 것이니,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고마워.”

팽중호도 차를 같이 마시기 시작했는데, 확실히 이세경의 말처럼 조금 썼다.

‘다시는 차를 끓이지 말아야겠어.’

팽중호가 그렇게 다짐을 하며 차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콰앙-

타탓- 타탓- 탓- 탓-

큰 굉음과 함께, 종남파가 뭔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팽중호는 이 소란스러움을 들으며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잠깐 나갔다 올게.”

팽중호는 이세경에게 말을 한 뒤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마치 귀신처럼 자리에서 사라지는 팽중호.

‘좋아. 역시 감시가 소홀해졌다.’

밖으로 은밀히 빠져나온 팽중호는 주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종남파에 들어온 후부터 팽중호는 자신에게 수많은 감시의 눈길이 따라붙은 것을 느꼈다.

심지어 장순학을 만나는 그때에도 감시의 눈길은 계속되었을 정도.

그래서 팽중호는 장순학에게 밤에 시끄럽게 소란을 좀 내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제가 밤 중에 알아볼 것이 있는데, 소란을 좀 내 주실 수 있습니까?’

‘감시 때문에 그런가? 알겠네.’

팽중호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 장순학.

장순학은 저녁이 되자 팽중호의 부탁대로 검을 들고, 종남파의 썩은 것들을 잘라 내겠다며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장순학은 화경을 넘어선 절대 고수.

당연히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종남파의 수많은 무인이 동원될 수밖에 없고, 팽중호를 감시하던 이들도 그 소란에 몸을 움직이거나 눈과 귀를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움직여 볼까?’

팽중호는 거침없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애초에 정해진 목적지가 있었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백운초의 향을 따라가면 되지.’

팽중호는 하북팽가에 그나마 남아 있던 무공서들 중에 유용할 만한 것을 찾아 틈틈이 익혔는데, 그중 가장 공들인 것이 추적술과 은잠술이었다.

상당히 유용하게 쓰일 일이 많을 것이라 판단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시나 들어맞아 지금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었다.

‘저기군.’

백운초의 향을 따라 움직여 도착한 곳은 종남파의 구석에 있는 전각.

그 전각은 특이하게 주변이 모두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이 소란에도 주변을 지키고 선 무인들이 많이 포진해 있었다.

딱 봐도 무언갈 숨기고 있는 수상한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지 않은가?

스으윽-

은잠술을 극성으로 발휘한 팽중호의 신형이 그대로 어둠에 동화되었다.

팽중호는 이 상태로 슬쩍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팽중호가 안으로 들어섰음에도 아무도 팽중호가 안으로 들어선 것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완벽한 은잠술.

지난번 신조상단에서 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스으으윽-

그렇게 거침없이 전각 내부로 침투한 팽중호.

팽중호는 전각 이곳저곳을 샅샅이 뒤졌는데, 이상하리만치 딱히 이상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

‘위에는 없단 말이지?’

전각 위로 아무것도 없다면, 남은 곳은 하나 아니겠는가?

팽중호는 곧바로 바닥과 벽들을 모조리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아주 이질적인 한 곳을 발견했다.

‘바람이 나온다라……. 여기군.’

분명 바닥인데 밑에서 바람이 새어 나오는 것이 느껴지고 있다.

바닥에서 바람이 새어 나온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어떻게 들어간담?’

문제는 이곳을 어떻게 들어가냐였다.

힘으로 열고 들어가는 것은 무조건 들킬 터이니 당연히 안되었고, 그렇다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도 문제였다.

이 뒤에 뭐가 있을지 알고 함부로 문을 연단 말인가?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때 누군가 지금 팽중호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팽중호는 천장으로 몸을 옮기고 더욱더 기척을 죽였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한 중년인.

분명 팽중호가 낮에 봤던 인물이었다.

‘도군호라고 했던가?’

종남파의 재정을 맡은 인물.

그가 지금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도군호는 주변을 쓰윽 둘러보더니, 이내 방 한쪽에 있는 다탁에 다가갔다.

그그그극-

그리고 그 다탁을 우측으로 돌리기 시작했는데, 다탁과 함께 바닥이 소리를 내며 함께 돌아가기 시작했다.

스으으으으-

그리고 다탁이 완전히 돌아가자, 조금 전 팽중호가 느꼈던 바람이 새어 나오는 바닥이 열리며 하나의 통로가 나타났다.

중간중간 야명주가 박혀 있어 그리 어둡지 않은 통로.

도군호는 망설임 없이 그 통로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팽중호는 은밀하게 곧바로 그 뒤를 따랐다.

‘운이 좋았다.’

때마침 딱 도군호가 나타나 준 덕분에 시간을 오래 끌지 않고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터억-

뒤에 열려 있던 통로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렇게 팽중호는 도군호를 따라 안으로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생각보다 꽤 깊숙한 통로.

그렇게 일자로 난 길을 쭉 따라가다 보니, 앞쪽에 아주 커다란 공동이 하나 나타났다.

거대한 규모의 공동.

예전 흑상의 경매에 참여했을 때 보았던 공동만큼이나 넓은 곳이었다.

“도 각주 오셨소? 클클클.”

도군호가 공동에 나타나자, 허리가 굽은 한 중년인이 다가와 소름 돋는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었다.

“예. 백운초는 이제 더 안 구해도 되겠지요?”

“클클. 이 정도면 충분하오.”

지금 공동의 중앙에는 오늘 신조상단이 가져온 백운초가 가득 쌓여 있었다.

이렇게 모아 놓고 다시 보니 상당한 양의 백운초.

팽중호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저쪽에 시신에, 저쪽은 관짝들…… 그리고 저기서 대법을 하는 거군.’

팽중호의 예상대로 백운초는 지금 강시의 제작에 쓰이고 있었다.

공동 주변에 가득 널려 있는 강시 제작의 흔적.

더는 이제 볼 것도 없었다.

‘자, 증거가 어디에 있을까…….’

이 중에서 확실한 증거를 들고 나가면 된다.

물론 확실한 증거라는 게 찾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웬만한 것은 들고 나가 봐야 오히려 역으로 뒤집어쓸 수 있으니, 확실히 종남파와 혈천궁이 했다는 증거를 찾아야 했으니 말이다.

‘저기 있다!’

그때 팽중호는 원하던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얼굴의 반이 화상 자국으로 일그러져 있는 한 시신.

분명 아까 만났던 장순학이 설명해 주었던 인상착의와 일치하는 모습의 시신이었다.

‘역시 여기 있었군.’

장순학과의 대화를 통해 알아낸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최근 들어 자꾸 사라지는 종남파의 무인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점점 새로운 무인들이 종남파에 들어올 때마다, 기존 종남파 무인들이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는 이야기.

팽중호는 이 이야기와 백운초를 연결하자 곧바로 강시가 떠올랐고, 장순학에게 혹시나 인상착의가 특이한 사람 중에 최근에 사라진 자가 있는지를 물었다.

이때 장순학이 말해 준 자가 바로 지금 팽중호가 발견한 화상을 입은 자였다.

‘좋아. 그럼 일단 저자와 저기에 있는 대법에 쓰이는 것들을 챙겨 나가면 되겠어.’

시신 하나를 들고 나가는 것은 꽤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못 할 일은 아니었다.

팽중호는 은밀히 접근해 누워 있던 시신을 잘 감싸서 등에 멘 후에, 강시를 만드는 대법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다행이라면 지금 이 공동은 넓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썩 많지 않았기에, 시신을 메고 움직이는 것에 큰 무리는 없었다.

그렇게 팽중호가 은밀하게 움직여 목표했던 곳에 거의 다 다다랐을 때였다.

“클클클. 도 각주. 쥐새끼를 하나 달고 오셨구려.”

“쥐새끼?”

“그렇소. 아주 은밀한 쥐새끼가 하나 이곳에 들어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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