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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의 개망나니-85화 (85/200)

85화 빨리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

팽중호는 무림맹에 며칠 더 머무르며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느낀 것은 생각보다는 그리 상태가 나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오대세가랑 매일 드잡이해서 그렇게 된 것이었군.’

아마 무림맹에서 뭔가를 하려고만 하면, 구파와 오대세가가 갈라져 싸웠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무림맹은 무능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게 지속이 되다 보니 점점 부패하고 썩어들어 갔을 것이다.

치열한 알력 다툼 속에서 다들 제 밥그릇을 챙기려고 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오대세가와 그들을 따르는 문파들이 무림맹에서 떨어져 나가 정우맹이라는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 내면서, 무림맹은 오히려 결속력이 좀 더 좋아졌다.

구파를 주축으로 한데 뜻을 모았고 정우맹이라는 거대한 경쟁자가 생겼으니 말이다.

“그럼 대장로님 부탁드립니다. 도수 너도.”

“걱정하지 마시오. 소가주.”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군!”

하북팽가가 무림맹에 소속되었으니, 이제 무림맹에 한동안 사람을 두어야 했다.

그래서 팽중호는 이번 무림맹행에 팽조운과 도수를 함께 데리고 온 것이다.

두 사람을 무림맹에 남겨, 하북팽가를 대표하게 하도록 말이다.

“조만간 팽가의 무인들도 곧바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소.”

“그럼. 몸 건강하시길.”

“소가주도 언제나 건강하시오.”

“주군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팽중호는 이세경과 함께 하북팽가로 돌아가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위지철과 장춘오는 다른 마차에 몸을 싣고 뒤따라오고 있었다.

위지철은 무당파에 다시 돌아오라는 소리에도, 하북팽가로 가겠다고 해서 돌아가는 중이었다.

무당파에서는 더는 안 된다고 했지만, 현청이 위지철의 편을 들어주어 다시금 팽가로 향할 수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쉬지 않고 하북팽가로 향한 마차는 생각보다 빠르게 팽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합!”

“핫!”

팽가에 도착하자 들려오는 우렁찬 기합 소리.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 무인들이 내지르는 기합이었다.

덜컥-

무림맹으로 향했던 팽중호 일행이 도착해 마차에서 내렸지만, 그들은 그것도 모른 채로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흠. 좋아.”

팽중호는 그 모습을 보고 흡족함의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저들이 자신을 맞이하기 위해 움직였다면 조금 실망할 뻔하였다.

수련은 지금처럼 누가 와도 모를 정도로 집중해서 하는 것이 맞았으니 말이다.

“왔느냐.”

물론 아무도 반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가주 팽자성과 몇몇 각주들이 나와서 이들을 맞이했다.

그런데 팽중호는 그들의 표정이 조금 굳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일단 적당히 인사를 나눈 후, 팽중호는 팽자성과 단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우맹에서 왔다 갔었다.”

팽중호가 하북팽가를 떠나 무림맹에 있는 동안 정우맹이 하북팽가에 사람을 보내왔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전하고 떠났는데, 그것 때문에 지금 팽자성의 표정이 조금 굳은 것이었다.

“이번에 우리 하북팽가에서 오대회합을 열자고 하더구나.”

정우맹은 하북팽가가 무림맹을 선택한 것도 모자라, 아예 무림맹으로 향하자 위기감을 느끼고 사람을 보내어 오대회합의 개최를 선언한 것이다.

팽중호가 자리를 비운 틈을 노려서 말이다.

당연히 무림맹을 선택한 하북팽가이기에 오대회합의 개최를 거절해야 하건만, 쉽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지난번 서문세가에서 이루어진 오대회합 때문이었다.

그때 오대회합에 하북팽가가 참여함으로써 하북팽가는 오대회합의 일원이 되어 버렸다.

한 번 오대회합의 일원이 된다면 탈퇴가 자유롭지 못했기에, 정우맹은 이것을 노리고 하북팽가에서 오대회합을 열겠다고 사람을 보낸 것이었다.

만약 하북팽가가 이 제안을 거절한다면, 정우맹에게 명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고, 그들은 이것으로 하북팽가를 자유롭게 압박할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오대회합을 수락해 버리면, 무림맹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 있을뿐더러, 그들이 이 하북팽가의 안방에서 무슨 수작을 할 수 없으니 문제였다.

이런 일들 때문에 지금 팽자성과 하북팽가의 수뇌들은 골머리를 썩고 있는 것이었다.

“뭐, 한번 해 주죠.”

“음?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오히려 좋은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렇게 하자.”

팽자성은 팽중호를 지그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팽중호는 가주인 자신보다 더 훌륭하게 이 하북팽가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었다.

지금까지 언제나 팽중호의 말은 옳았다.

그렇기에 이번 선택도 분명 옳을 터였다.

“그런데 날은 언제로 하잡니까?”

“한 달 후로 하자더구나.”

“한 달이요? 흠……. 살짝 아슬아슬할 것 같기는 한데, 뭐 괜찮을 것 같네요.”

팽중호는 한 달이라는 시간을 듣고, 시간을 좀 빠듯하게 써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종남파를 다녀와야 하니 말이다.

팽중호는 팽자성에 무림맹에서 있던 일들과 이번에 종남파를 다녀오겠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래. 알겠다. 오대회합은 내가 잘 준비해 두고 있으마.”

“예.”

그렇게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팽중호는 오랜만에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처소.

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매일 청소해 놓은 듯싶었다.

털썩-

“역시 집이 좋다니까.”

팽중호는 자신의 침상에 털썩 몸을 던져 누웠다.

무림맹에서 있을 때도 분명 꽤 좋은 숙소에서 머물렀지만, 역시나 집만큼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한 곳은 없었다.

그저 침상에 몸을 눕히는 것만으로도 그동안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종남파란 말이지…….”

팽중호는 누워서 종남파에 대한 생각을 하였다.

이틀 뒤에 종남파로 신조상단과 함께 떠나기로 하였다.

사실 종남파는 팽중호도 처음 가 보는 것이었다.

전생에도 종남파에는 가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거기서 일을 빨리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

팽중호가 종남파로 향하는 이유는 그들 내부에 암약하는 혈천궁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지금 종남파가 얼마나 혈천궁에 잠식당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일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정혼검신 그 사람만 설득하면 쉬울 수도 있지만…….’

물론 일을 빠르게 하는 방법이 있기는 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분명 굉장히 위험(?)도가 큰 방법이었기에, 다른 종남파 사람들의 동의가 좀 필요했다.

팽중호는 종남파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정혼검신 장순학의 동의만 있다면, 이 방법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가서 다시 이야기 나누면서 한 번 물어는 봐야지.’

그거 수락할지 안 할지는 모르니, 일단 지금은 그 방법 말고도 다른 방법들도 몇 가지 생각은 해 두었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흐르고, 팽중호는 스르르 깊은 잠으로 빠져들어 갔다.

오직 하북팽가에서만 빠져들 수 있는 깊은 잠이었다.

* * *

종남파.

무당과 화산 다음으로 검으로 이름을 날리는 구파.

그들의 검은 웅혼하고 힘이 넘치며, 정직하기로 유명했다.

종남파는 항상 같은 섬서성에 위치한 화산파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는데, 최근 종남파의 위상이 조금 바뀌었다.

정혼검신 장순학이 등장하며 어느 정도 화산과 비슷한 위치까지 올랐는데, 거기에 더해 새로운 장문인이 등장한 후로 어마어마한 속도로 세를 확장하며 섬서성에서 화산파를 넘어섰다는 이야기가 돌았으니 말이다.

‘대 종남의 시대.’

그래서 섬서성의 혹자들은 이제 곧 대 종남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떠드는 이도 있을 정도.

어찌 되었건 그만큼 종남파는 현재 유례없을 만큼의 무서운 기세와 힘을 보여 주고 있었다.

종남파의 장문인실.

그곳에는 지금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중년인과 정혼검신 장순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네가 패하다니! 있을 수가 있는 일이더냐?”

장순학에게 인상을 쓰며 큰소리를 치고 있는 중년인.

그가 바로 현 종남파의 장문인인 직단검(直斷劍) 정우도였다.

정우도는 지금 자신의 사제인 장순학에게 무림맹에서 있던 일에 대해 추궁을 하는 중이었다.

“막 장로님에게도 말했지만, 정말로 내가 졌을 뿐이오.”

“아니. 너는 너의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자고 일부러 진 것이다. 우리 종남의 명예는 생각지도 않고 말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겠다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소.”

장순학은 이런 일이 이제 조금은 익숙했기에, 정우도의 말에 그냥 입을 닫아 버렸다.

여기서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정우도가 듣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쯧. 무공 실력 좀 있다고 거만하게 굴더니, 결국 그런 애송이에게 져서 종남의 이름을 땅에 떨어트려? 너는 앞으로 장로의 직위를 내려놓고, 네 처소에서 근신하도록 해라.”

“……알겠소.”

“나가라.”

나가라는 정우도의 말에 장순학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려 장문인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도 더는 힘들구나.’

종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는 어떤 불합리한 일에도 잘 버텨 왔다.

하지만 점점 더 자신을 향한 불합리함은 커져만 갔고, 종남은 예전의 종남이 아니게 변해만 갔다.

장순학은 이런 종남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 점점 더 힘이 들어감을 느끼며, 염증이 날 것만 같았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자시의 처소로 돌아가는 장순학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기만 하였다.

사랑하던 종남의 길을 걷는데 이렇게 불편할 줄이야.

덜컥- 끼이이익-

문을 열고 처소 안으로 들어섰다.

아주 조촐한 방 안.

작은 탁자 하나와 낮은 침상이 전부인 곳.

털썩-

장순학은 아주 오랜 시간 자신과 함께한 침상에 몸을 잠깐 뉘었다.

예전과 전혀 다를 것 없는 방이고, 침상이건만 왜 이렇게도 불편하게 느껴지는지.

마치 이곳이 내 집이 아닌 듯한 느낌.

‘마음이 불편하니 모든 것이 불편하구나.’

불편한 마음이 드니 모든 것이 불편한 것.

장순학은 이런 생각들을 애써 지워 보고자 억지로 눈을 감았는데, 그럼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너무나도 불편한 침상.

‘악몽을 꾸겠군…….’

이런 장순학의 생각과 함께 그는 잠시 잠에 빠져들었다.

물론 그리 편한 잠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 * *

종남파로 떠나기 전.

팽중호는 시간이 있을 때, 팽가 무인들의 수련 정도를 파악하기로 했다.

어제의 기합성과 모습만 봐서는 나쁘지 않을 것 같지만, 직접 보는 것과는 다르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들 중에 이제 무림맹으로 보낼 이들도 선별해야 했으니 말이다.

쿠우우우웅-

팽중호는 어디선가 가져온 거대한 기둥 하나를 무인들이 수련하는 연무장 중앙에 내려놓았다.

일견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크기와 형태의 쇠기둥.

장정 수십이 붙어야 들 수 있을 것 같은 그 쇠기둥을 혼자 번쩍 들고 나타난 팽중호를 보고 무인들은 입을 쩍 벌리며 감탄했다.

그리고 절대로 그에게 개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함께하였다.

“자. 이제 뭐 대련하는 것도 질리셨을 테고, 시간도 없으니까 간단하게 끝내겠습니다. 여기 이 쇠기둥에 세 치 이상 흠을 내시면 통과입니다.”

“예?”

“아아…… 그리고 이거 그냥 쇠기둥 아니고, 묵철로 만든 거니까 쉽지 않을 겁니다.”

“예에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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