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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의 개망나니-84화 (84/200)

84화 조사해 볼 필요는 있겠어.

하북팽가가 머무는 숙소.

그곳에는 지금 수많은 이들이 쉴 새 없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청성파의…….”

지금 하북팽가를 찾아온 이들은 모두 무림맹에 몸을 담고 있는 다른 문파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종남파와 하북팽가의 대련의 결과를 본 후, 하북팽가에 연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 찾아오는 것이었다.

하북팽가의 힘을 보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무려 종남파를 이겼으니 말이다.

그리고 종남파를 이겼다는 것보다 더욱 놀라운 팽중호라는 존재가 있었으니 당연히 연을 만들고 싶지 않겠는가?

“예. 안녕하십니까.”

팽중호는 일일이 그들을 모두 맞이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상당히 귀찮고, 생각보다 고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소홀히 하거나 안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들과의 관계는 분명 후에 하북팽가에 이롭게 작용할 테니 말이다.

‘귀찮아도 오늘만 좀 참으면 되니까.’

그렇게 한참이나 이어진 인사 행렬은 밤이 되어서나 전부 끝이 났다.

“하아. 피곤하다.”

팽중호는 대련을 끝냈을 때보다 더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대로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런 일이 익숙지 않은 팽중호이니, 당연히 대련보다 더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팽중호는 차라리 이런 것보다, 적진 한가운데서 싸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제가 어깨라도 주물러 드리겠습니다. 가가.”

“응? 아니, 괜찮…….”

그렇게 팽중호가 의자에 늘어져 있을 때, 이세경이 다가왔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있는 팽중호의 어깨를 주물러 주기 시작하였는데, 거절하려던 팽중호는 생각보다 야무진 그녀의 손길에 편안히 어깨를 맡겨 버렸다.

해 주겠다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시원하다.”

“호호호, 혹시 이런 일에 쓰일까 배운 것인데, 역시 배워 두길 잘한 것 같습니다.”

이세경은 이것저것 배우는 것을 꽤 좋아했는데, 그중에는 이런 안마도 포함되어 있었다.

의원에게 직접 배워, 주물렀을 때 시원한 혈 자리를 모두 꿰차고 있는 그녀였다.

“그래서 이번에 하남성에서 만나 볼 사람들은 다 만나 봤어?”

“예. 새롭게 거래하기로 한 곳이 몇 곳 생겼습니다.”

“잘됐네.”

이번 무림맹행에 이세경이 합류를 한 이유.

그것은 신조상단을 호남성까지 진출시키기 위해서였다.

물론, 당장 호남성에서 대대적인 상행을 한다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몇몇 품목만 거래하기로 한 것이었다.

“소가주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때.

밖에 서 있던 시종이 누군가 찾아왔다는 것을 알려 왔다.

분명 조금 전 웬만한 곳들과는 인사가 끝이 난 상황.

그래서 팽중호는 이 늦은 시간에 누가 찾아왔는지 조금 의아했다.

“들어오시라고 해 주십시오.”

“예.”

시종의 대답이 들려오고, 잠시 뒤.

숙소 안으로 들어오는 하나의 인영.

그 인영의 정체를 확인한 팽중호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정혼검신께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지금 팽중호를 찾아온 인영의 정체는 바로 정혼검신 장순학이었다.

‘흐음. 왜 찾아온 거지?’

팽중호는 자신을 찾아온 장순학의 의중을 짐작해 보았다.

대련의 앙금이 남은 것일까?

아니면, 종남파 제자들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위에서 무슨 명령이 내려온 것일까?

“사과를 하기 위해 찾아왔네.”

“예?”

예상외의 답변.

장순학이 사과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오다니?

그가 사과할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아니면, 종남파가 사과를 위해 그를 보낸 것일까?

“종남파를 대표해 내가 대신해 사과하겠네. 우리 제자들과 본파가 한 잘못을 모두 용서해 주게나.”

정중한 말과 함께 깊숙이 허리를 숙이는 장순학.

팽중호는 그제야 장순학이 왜 찾아왔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역시 그래도 명문 정파에는 됨됨이가 된 사람들 역시 있다니까.’

지난번 호정루에서도 느꼈지만, 장순학은 다른 종남파 놈팽이들과는 달랐다.

그는 확실히 명문 정파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물론 전혀 아니다.

아직까지 괜찮지 않았다.

먼저 시비를 걸어 놓고, 그걸 무림맹까지 와서 복수하려 하였는데 괜찮겠는가?

물론 덕분에 제대로 힘을 보여 줘서 오히려 득이 된 부분도 있었지만 말이다.

“종남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 주게. 진짜 종남은 이렇지 않으니 말일세.”

장순학의 말에 팽중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 만났던 종남의 무인들은 조금 고지식하기는 해도, 모두 정파의 길을 걷는 사람다운 무인들이었다.

지금과 같은 놈팽이들이 아니라 말이다.

‘흠……. 아무리 무림이 바뀌었다지만, 종남은 좀 많이 바뀐 모양이군.’

종남파는 구파 중에서 특히나 많이 바뀐 듯싶었다.

약육강식의 무림에 발맞추어 변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렇게나 바뀐 것이라면 분명 무언가 내부적으로 일이 있는 것일 터였다.

‘한 번 싹 다 조사해 볼 필요는 있겠어.’

원래라면 종남파가 어쩌든, 자신들만 건드리지 않으면 딱히 신경을 쓰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팽중호는 조만간 미래에 마교가 무림으로 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렇게 둘 수 없었다.

마교를 막으려면 하나의 힘이라도 모두 모아야 했으니 말이다.

마교의 진격은 찢어진 무림의 힘으로는 결코 막을 수 없을 터다.

‘일단 무림맹부터 붙여 놓고, 다음은 정우맹을 손봐야지.’

생각 정리를 마친 팽중호는 다시금 장순학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반쯤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장순학.

“저도 종남이 이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일단 자리에 앉아 차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팽중호는 일단 장순학을 자리에 앉으라 한 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체적인 내용은 바뀐 종남파에 관한 이야기였다.

장순학은 무언가 응어리진 것이 많은지, 팽중호의 질문에 술술 대답해 주었다.

“나의 사형이 장문인의 자리에 앉은 후로 갑자기 우리 종남이 바뀌었네. 새로운 자들이 자리를 꿰차기 시작했고, 있던 자들은 자리에서 쫓겨났지.”

장순학의 사형인 정우도가 장문인의 자리에 앉은 후로 종남파는 크게 바뀌었다.

갑자기 새로운 이들이 속속 종남파에 들어와 요직을 꿰차기 시작했고, 본래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종남에서 쫓겨나거나 사라졌다.

새롭게 자리를 차지한 이들 덕분에 분명 종남은 이전보다 훨씬 더 힘이 강성해지기는 했다.

돈은 넘쳐났고, 무인들의 수준도 올라갔다.

하지만 반대로 종남파에서 더 이상 협의와 정의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게 변하였다.

“나는 지금의 종남을 종남이라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하네.”

장순학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는 지금의 종남파를 종남이라고 부를 수 없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가 사랑하고 그가 알던 종남은 완전히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 사형이라는 분에 대해서는 조사를 해 보셨습니까?”

팽중호는 장순학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장순학의 사형이라는 사람이 장문인의 자리에 오른 후부터 갑자기 바뀌었다면, 그에게 무언가 있지 않겠는가?

“사형은 나와 함께 평생을 종남에만 있던 사람이네. 그래도 알아보았지만, 나온 것은 없었네. 다만…….”

장순학도 당연히 조심스럽게 사형이자 장문인인 정우도의 뒤를 조사해 보았다.

그런데 그에게서 딱히 나온 것은 없었다.

정우도는 정말 대부분의 시간을 종남파 안에서만 지냈으니 말이다.

다만, 하나 의심이 가는 것이 있다면, 그가 새롭게 만난 친우란 자였다.

가끔 정우도를 찾아와 술잔을 기울이고는 사라지는 사람.

그자가 처음 정우도와 만난 그날 이후부터 그가 조금씩 바뀌어 갔으니 말이다.

그에 대해 조사하고 싶었지만, 개방에도 그자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흠. 그렇단 말이지요…….”

팽중호와 장순학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었고, 슬슬 이야기가 마무리되어 가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네. 나도 이런 이야기를 남에게 할 줄은 몰랐는데, 하고 나니 조금은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네.”

그렇게 마지막 한 모금까지 차를 모두 마신 장순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표정은 이곳에 들어왔을 때보다 조금은 편해져 있었다.

무언가 마음에 결심이 선 듯한 듯했다.

“좋은 소식이 있길 바라겠습니다.”

“하북팽가의 앞날이 밝게 빛나길 바라겠네.”

장순학은 그렇게 숙소를 벗어나 사라졌고, 팽중호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흐으음. 그런 거군…….’

정확한 사정을 모두 들은 것은 아니지만, 들은 상황만으로도 대충 일이 짐작이 갔다.

종남파가 이렇게 변한 이유.

그것은 분명 혈천궁 탓일 것이다.

그들이 써먹는 수법과 아주 유사했으니 말이다.

‘전생에는 아마 해남파였지 아마?’

구파와 같은 거대 문파를 혈천궁으로 물들여, 자신들의 수족처럼 부리는 수법.

지난번 숭무문의 경우와는 다르게,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공을 들여 암약하며 문파를 장악한 그들을 찾아내어 뿌리를 뽑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것도 보통 문파가 아닌, 구파라면 그것은 더욱더 힘들었다.

팽중호의 전생에도 혈천궁은 이런 수법으로 구파 중 하나를 완전히 자신들의 밑으로 두었는데, 그 문파가 바로 해남파였다.

해남파는 그 당시에만 해도, 화산과 무당의 아성에 도전할 정도로 세력이 강성한 문파였다.

특히 그들은 특정 시기 이후로 그렇게 세력과 힘이 강해졌는데, 그때가 바로 혈천궁이 그들에게 손을 뻗쳤을 때부터였다.

혈천궁은 처음에는 아무런 사심이 없는 듯 접근한 뒤, 그들에게 뿌리치기 힘든 유혹을 하나씩 건네며 그들을 조금씩 조금씩 자신들로 물들여 갔다.

특히 혈천궁은 능력은 없지만, 욕심이 큰 인물을 노려 일을 진행하기에, 손쉽게 포섭해 일을 진행해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혈천궁에 완벽히 장악되어 버린 해남파는 가장 위험한 내부의 적으로 돌변해, 혈천궁을 없애는 것에 가장 큰 장애를 주었었다.

‘이번에는 종남파로 그 짓을 하려나 보군.’

아마 지금 종남파의 장문인도 능력은 없지만, 욕심은 큰 인물일 터였다.

혈천궁이 포섭하기에 최적의 인물.

분명 장순학에게 밀려서 떨어진 자신의 입지를 세우기 위해, 알면서도 그들의 손을 잡았을 것이다.

‘종남파에 한 번 들러야 하나?’

내부에 적을 두고 움직일 수는 없는 법 아닌가?

그래서 팽중호는 이번 무림맹행이 끝나면, 종남파에 들러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팽중호가 종남파에 방문하고 싶어도 문제는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갑자기 자신이 종남파에 방문한다면, 절대로 종남이 문을 열어 주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무슨 고민이 또 생기셨습니까?”

장순학이 와서 잠시 자리를 비켜 주었던 이세경이 다시 나타났다.

이세경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팽중호를 향해 고민이 있는지 물었다.

“종남파를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명분이 없어서 말이야.”

“이번에 저희 상단에서 종남산으로 상행을 갈 일이 있습니다.”

“오? 그래?”

“그때 그 상행에 동행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신조상단은 아주 가끔 섬서성에도 상행을 나갔는데, 종남파나 화산파에 산서와 하북에서만 나는 것들을 납품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세경은 그때 팽중호가 상행을 지켜주는 목적으로 동행한다면, 명분은 충분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좋아. 그렇게 방문하면 되겠다. 고마워.”

“호호. 오히려 저희가 감사해야 할 상황 아닙니까? 가가께서 함께해 주신다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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