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내가 원하던 표정이야.
장순학은 팽중호의 도와 부딪친 소감을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 팽중호의 도에서 전해지는 힘은, 그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강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강한 자와 대련해 본 것이 얼마 만인가?’
정혼검신이라는 이름을 얻은 후로 자신에게 대련을 신청해 온 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며, 그중에 제대로 된 강자는 없었다.
장순학은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강자와의 대결에서 느껴지는 떨림에,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다.
‘지금은 이 대련만 생각하자.’
장순학은 지금의 이 대련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머릿속의 고민은 일단 모두 묻어 둔 채로 말이다.
스으윽- 쿠구구구구구구-
생각을 정리하자 바뀌는 장순학의 기도.
주변을 절로 압박하는 거대한 기운이 그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경외심이 들 정도의 거대한 기운에, 지켜보던 이들이 모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이게 정혼검신인가!”
사람들은 왜 장순학이 종남제일고수이며, 무림에서 가장 강한 검객이라 불리는지를 느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의 시선은 팽중호에게로 향했다.
과연 뇌룡이라 불리는 팽중호는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보기 위해 말이다.
조금 전까지는 비등하게 싸웠지만, 지금의 장순학은 아까와는 다르지 않은가?
분명 놀라거나,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파아아악- 파지지지지지짓-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을 비웃듯, 팽중호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미소의 이유를 보여 주듯, 팽중호의 몸에서 엄청난 뇌기가 뿜어져 나왔다.
장순학의 기운을 거칠게 밀어내는 팽중호의 기운.
“도대체 이게 무슨…….”
그저 기운일 뿐이지만, 지금 후기지수인 팽중호가 장순학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은 분명 나름 팽팽한 대련이 될 것 같다는 예상은 했지만, 대련의 승자는 당연히 장순학이라고 생각하고들 있었다.
장순학은 이미 오랫동안 무림에서 최고로 이름을 날려 온 무인이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젊디젊은 팽중호가 그런 장순학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고 있으니, 놀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비무대 좀 날아가도 문제없겠죠?”
“그건 걱정 말게.”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팽중호와 장순학.
물론 그 와중에도 기세 싸움은 아주 치열했다.
서로 조금도 밀리지 않는 백중세.
“그럼. 제대로 한번 날뛰어 보겠습니다.”
“부탁하지.”
파직-
팽중호의 두 눈이 황금색으로 변하며, 뇌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완벽한 뇌신지체.
그리고 그와 함께 팽중호의 신형이 사라졌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혼뢰단세(混雷斷世).
파짓-
첫 일격부터 혼원벽력도를 내뻗는 팽중호.
보통 무인이라면 지금 이 일격에 혼비백산하겠지만, 장순학은 달랐다.
그는 느껴지는 강대한 힘에 속으로 놀라기는 했지만, 차분하게 검을 움직이며 팽중호의 혼뢰단세를 막아 나섰다.
카아아앙-!!! 파팟- 파파팟- 팟-
콰가가각- 콰각- 크그그그극-
도와 검의 부딪침.
귀가 찢어질 정도의 강렬한 충돌음과 함께 주위 사방으로 비산하는 기파.
그리고 그 기파에 비무대 주변이 갈라지고 부서져 나갔다.
‘역시. 대단한데?’
팽중호는 혼뢰단세의 초식을 막은 장순학을 확실히 인정했다.
대련이니 모든 힘을 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일 터.
그런데 제자리에 서서 자신의 일격을 막아 내다니?
확실히 어중이떠중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실력자였다.
“대단하군!”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장순학이지만, 지금 팽중호의 일격을 막고는 놀람이라는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었다.
보기에는 손쉽게 막은 것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결코 손쉽게 막은 것은 아니었다.
내장이 떨려 울리고, 기혈이 들끓으려 하였으니 말이다.
“계속 갑니다.”
“오게!”
팽중호의 무적도가 계속해서 장순학을 향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공방.
너무나도 엄청난 공방에 이를 지켜보는 이들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지켜보고 있었다.
화경의 경지를 넘은 두 무인이 보여 주는 대련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제 슬슬 끝을 내야겠습니다.”
“나도 동의하네.”
팽중호는 이 대련을 끝을 낼 때가 왔다는 것을 느꼈다.
파짓- 파지직- 파팟-
뇌기가 뇌강으로 바뀌고, 무적도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장순학의 검에도 찬란한 검강이 나타났고, 그 크기를 끝없이 키워 나가기 시작했다.
누가 더 강하다고 할 것 없이 끝없이 기운이 강해지는 두 사람의 강기.
그리고 마치 터질 듯이 강해진 힘이 정점에 달했을 때, 서로를 향해 검과 도를 내뻗었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원뢰멸혼(元雷滅魂).
-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 천하무궁(天下無窮).
팽중호의 무적도에서 뿜어져 나온 원뢰멸혼의 초식.
그리고 장순학의 검에서는 천하삼십육검의 절초인 천하무궁이 펼쳐져 나왔다.
서로가 서로에게 절초를 날린 두 사람.
파앗-
두 절초의 부딪침은 예상과 다르게 별다른 파공음을 내지 않았다.
작은 소리와 함께 서로를 지나쳐 가는 두 사람.
그렇게 지나친 두 사람은 잠시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두 눈만 껌뻑이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이긴 거지?”
사람들이 아주 작게 웅성거릴 때, 장순학과 팽중호가 동시에 서로를 향해 몸을 돌렸다.
둘 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는데, 무언가 굉장히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였다.
“장강의 뒷물결이 너무 빠르군.”
“하하. 가끔 홍수가 내리면 그렇지 않습니까?”
“정말 대단하네. 내가 이렇게 패할 줄은 정말 몰랐는데, 내 식견을 다시 한번 넓혀 주어 정말로 고맙네.”
“저도 많은 것을 얻은 대련이었습니다.”
주르륵-
대화를 하던 장순학의 입가에 한줄기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에 반해 팽중호는 머리가 조금 흐트러졌을 뿐, 멀쩡한 모습.
“내가 졌네.”
그리고 나온 장순학의 패배 선언.
장순학과의 대련에서 팽중호가 승리를 한 것이었다.
“이럴 수가!”
“정혼검신이 지다니!?”
“뇌룡이 이겼다!!”
예상외의 충격적인 결과에 주변이 난리가 났다.
그 정혼검신이 지다니?
팔룡삼봉이란 후기지수에 속해있던 뇌룡이 정혼검신을 이길 정도의 실력자라니?
이건 무림 전체가 놀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결과였다.
철컥-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네.”
인사를 끝으로 장순학은 종남파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는데, 그곳에 있는 종남파 사람들의 표정이 아주 볼 만하였다.
하얗게 사색이 된 자도 있었고, 멍하니 눈만 끔뻑이는 자, 겁에 질린 자도 있었다.
그리고 인상을 구기고 있는 자도 있었다.
‘좋아. 내가 원하던 표정이야.’
팽중호는 그런 종남파 사람들의 표정을 감상한 후에, 이번에는 이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구파와 무림맹 쪽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저희 힘은 충분히 보셨겠지요?”
“흐음…….”
당당한 팽중호의 말에 구파의 사람들이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대련으로 하북팽가의 힘은 확실히 볼 수 있었다.
특히나 앞에 서 있는 팽중호의 힘은 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나이에 화경을 넘어선 고수. 반드시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할 자다.’
무림에서의 전쟁에 무인의 수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고수의 숫자였다.
평범한 무인 백여 명보다 한 명의 고수가 가지는 힘이 더 컸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고수보다 더욱더 전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절대 고수였다.
화경의 경지를 넘은 무인을 절대 고수라고 불렀는데, 그들이 가진 힘은 혼자서 전쟁의 판도를 뒤엎을 수 있을 정도이니 당연히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정혼검신 장순학을 이겼으니 팽중호도 절대 고수라는 소리.
당연히 무림맹과 구파 입장에서는 팽중호가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정우맹과 혈천궁이라는 상대를 앞두고 있으니 말이다.
“소림은 하북팽가를 우방으로 인정하는 바이오.”
“무당은 하북팽가를 우방으로 인정하는 바이오.”
“화산은 하북팽가를…….”
구파의 대표들이 앞다투어 하북팽가를 인정하고 나섰다.
그리고 마지막.
종남파의 인정만이 남아 있었다.
“……종남은 하북팽가를 우방으로 인정하오.”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지만, 막주승은 결국 하북팽가를 인정하였다.
물론 속으로는 아직 완전히 인정치는 않았지만, 주변의 눈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이 수모는 후에 갚아 줄 것이다.’
막주승은 속으로 이 수모를 후에 갚아 줄 생각을 했다.
지금이야 순순히 물러나지만, 후에 종남으로 돌아가면 이 일을 되갚을 생각이었다.
종남은 절대로 이렇게 져서는 안 되었고, 지금 하북팽가에 당한 제자들의 복수도 꼭 해야만 하였으니 말이다.
“다들 피곤하실 테니, 이만 자리는 파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림맹주 선주천의 말에 모여 있던 이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다들 지금의 결과에 따라 생각할 것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자, 우리도 가자고.”
팽중호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팽가 일행을 이끌고, 무림맹의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종남파가 머무르는 숙소로 돌아온 막주승은 곧바로 장순학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장 장로!”
“왜 그러십니까?”
“그걸 몰라서 묻는 것인가?”
“몰라서 묻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자에게 일부러 져 준단 말인가?”
막주승은 지금 장순학이 일부러 팽중호에게 져 줬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장순학이 질 리가 없으니 말이다.
“져 주다니요?”
“자네는 이렇게 져 주는 것으로, 호정루에서의 일을 사과하려는 것 같은데, 덕분에 우리 종남의 이름에 크게 먹칠을 하게 되었네!”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오해?”
“예. 저는 절대로 그에게 져 주지 않았습니다.”
“하! 그럼 정말 실력에서 밀렸다는 건가? 그걸 나보고 믿으란 소리인가!”
“막 장로님도 보셨으면서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일부러 진실을 외면하시는 겁니까?”
“자네의 실력이 그 정도가 아님을 내가 누구보다 잘 아네.”
“제가 실력을 다 보이지 않은 만큼. 상대도 보이지 않은 건 똑같습니다.”
조금의 떨림도 없이 진중한 장순학의 눈빛.
이 눈빛에 막주승은 지금 장순학이 정말로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정말 장 장로가 졌단 말인가?’
막주승이 아는 장순학은 진짜 실력은 조금 전 대련에서 보인 것보다 훨씬 더 고강하다.
그래서 그가 일부러 져 줬다고 생각해 화를 낸 것인데, 지금 눈을 보니 전혀 그런 것 같지가 않았다.
‘이게 사실이라면 큰 문제인데.’
만약 정말 팽중호가 장순학보다도 더 고수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팽중호에게 어떻게 수모를 되갚아 준단 말인가?
“괜히 그에게 복수할 생각은 접고, 그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사과? 하! 종남의 이름을 어디까지 떨어트릴 작정인가? 종남이 허리를 굽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네.”
“……잘못하고, 사과하는 것은 결코 명예를 떨어트리는 일이 아닙니다.”
“되었네. 피곤할 테니 이만 돌아가 쉬시게.”
팽중호에게 사과하라는 장순학의 말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막주승.
장순학은 그런 막주승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돌려 자리를 옮겼다.
어차피 여기서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혼자라도 가서 사과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