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검마 이후로 처음인가.
“호?”
막주승은 자신의 검을 막은 팽조운을 향해 의외라는 눈빛을 보내었다.
나름 힘을 쓴 공격이었는데, 손쉽게 막아 내었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실력이 더 있나 보군.’
막주승은 팽조운을 얕잡아 본 것을 인정했다.
아무리 하북팽가가 최근에 무서운 기세를 보여 주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팽중호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
그러니 당연히 다른 하북팽가의 무인들에 대한 평가는 조금 박할 수밖에 없었다.
막주승은 팽조운이 하북팽가의 대장로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연히 그를 높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그저 나이가 많기에 대장로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단 일수지만, 부딪쳐 본 결과 그래도 나름대로 실력은 갖추고 있는 듯싶었다.
‘좀 더 힘을 내 볼까.’
막주승은 좀 더 제 실력을 내기로 하였다.
괜히 비등비등해 보이기만 하여도, 자신은 물론 종남의 명예가 떨어질 테니 말이다.
겨우 하북팽가의 장로와 비등한 실력이라니?
대 종남파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파아아아아아악-
막주승의 검에서 푸른 검기가 터져 나왔다.
도가 무공 특유의 푸른 검기.
웅혼하고 강렬한 힘이 검기에서 느껴졌다.
종남파의 오랜 힘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것이었다.
파지지직-
막주승의 검기에 맞서서 팽조운도 뇌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착실히 수련해 온 그이기에 이제는 꽤 많은 뇌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서로에게 일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쾅-
검기와 뇌기의 부딪침.
강렬한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촤아아악-
이 부딪침에 팽조운의 신형이 뒤로 밀려났다.
그에 반해 막주승은 그저 세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난 정도.
이 한 번의 부딪침으로 내공의 위아래가 드러난 것이다.
“…….”
막주승은 분명 내공에서 우위를 점했음에도,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저릿- 저릿-
검을 타고 전해지는 손이 저릿할 정도의 힘.
그 힘 때문에 세 걸음이나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건 결코 이겼다고 좋아할 상황이 아니었다.
“하북팽가의 장로도 대단하군.”
“그러게나 말일세. 단봉검객을 상대로 이 정도라니.”
주변에서 벌써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종남파에는 전혀 달갑지 않은 웅성거림.
‘빨리 마무리 지어야겠다.’
본래 조금은 가지고 놀면서 힘의 차이를 각인시킬 생각이었는데, 더 이상은 안 될 듯싶었다.
이대로라면 오히려 손해만 볼 테니 말이다.
파아아아앗-
막주승의 검기가 밝은 빛을 내며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
검강.
지금 막주승은 승부를 빠르게 결정짓기 위해 검강을 피워 올린 것이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검강을 보고, 팽조운의 눈이 조금 깊게 가라앉았다.
“후우.”
팽조운은 길고 깊게 숨을 한 번 내뱉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도에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파짓- 파파팍- 파아아앗-
불안정하게 튀던 뇌기가 안정되기 시작하더니, 이내 밝은 빛을 내뿜으며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크기는 막주승의 것보다 작지만, 똑같이 찬란하게 빛을 내는 강기가 팽조운의 도에 나타났다.
뇌강.
지금 팽조운이 초절정을 넘어선 이들만 쓸 수 있는 강기를 뿜어낸 것이다.
탓- 탓-
팽조운과 막주승 두 사람 모두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카캉- 캉- 카아아앙- 캉-!
그리고 시작된 엄청난 공방.
서로 어느 한쪽도 밀리지 않는 치열한 공방이었다.
그때 막주승의 검과 검강이 다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막주승이 드디어 천하삼십육검을 펼쳐 내는 것이었다.
후우우우우웅-
막주승의 검에서 느껴지는 웅혼하면서도 거대한 힘.
절대로 그냥 막을 수 있는 일격이 아니었다.
파지지지직-!
팽조운의 도도 새로운 움직임을 보였다.
처음부터 팽중호를 지지해 주었던 팽조운을 위해 팽중호가 화경의 경지에 오른 후 새롭게 전해 준 도법.
태호군산도(太虎君山刀).
뇌강을 머금은 도로 펼쳐지는 태호군산도의 힘은 일견 보기에 천하삼십육검과 비교해도 전혀 뒤져 보이지 않았다.
콰아앙--!!!
천지가 요동칠 정도의 굉음이 두 사람 사이에서 터졌다.
거력과 거력의 대결.
이 충돌 때문에 발생한 기파에 비무대 위에 먼지가 한가득 비산해 있었다.
덕분에 보이지 않는 비무대 위의 상황.
사람들은 눈을 부릅뜨며,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스으으으-
차츰 시간이 지나며 굵은 먼지가 가라앉고, 희미하게 비무대 위의 상황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의 인영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고, 다른 인영은 고고한 자세로 서 있었다.
사람들은 과연 누가 서 있는 것인지를 추측했는데, 때마침 비무대 위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잉-
바람이 남은 먼지들을 날려 주면서 비무대 위의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예상대로 서 있는 자는 막주승이었고, 무릎을 꿇은 자는 팽조운이었다.
“졌소.”
“…….”
팽조운이 패배를 시인하는 말을 꺼내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승리자인 막주승은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팔랑- 팔랑- 팔랑-
그때 막주승의 오른쪽 팔의 옷깃이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팽조운과의 일격에서 옷이 베인 것이다.
‘내가 진 것이다. 이건.’
하북팽가의 이름 없는 장로에게 팔의 옷깃이 통째로 잘려 나갔다.
이건 자신의 패배나 다름없는 수치였다.
철컥-
막주승은 자신의 검을 허리춤에 다시 넣은 후, 그대로 몸을 돌려 비무대를 빠져나갔다.
이겼지만 이긴 것이 아닌 기분.
지금 막주승은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하북팽가를 완벽히 찍어 눌러야 하거늘…….’
종남파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막주승은 이제 마지막 차례인 정혼검신 장순학을 바라보았다.
“장 장로가 잘해 주리라 믿네. 사문을 위해서 말일세.”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장순학은 솔직히 지금 이런 상황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잘못은 자신들 종남이 하였는데, 어째서 하북팽가와 이런 대련을 해야 한단 말인가?
사과를 하고,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을 벌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종남파는 오히려 힘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잘못한 이를 감싸고 있었다.
장순학이 보기에 한참은 잘못된 일.
하지만 그럼에도 장순학은 사문의 말이라면 잘못되었더라도 참았다.
그것이 그를 키워 준 사문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나도 참 나쁜 놈이군.’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거부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는 장순학.
그렇게 장순학은 검을 집어 들고는 천천히 비무대 위로 향했다.
‘그래도 뇌룡이란 자와는 무공을 논해 보고 싶었으니…….’
장순학은 마음에 들지 않는 대련이었지만, 팽중호와 대련을 한다는 것은 솔직히 좀 기대되었다.
호정루에서 잠시 마주쳤을 때 느낀 그의 강함.
무림에서 그 정도의 강자와 만나 무공을 논한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 말이다.
‘대련이 끝나면, 내가 따로 가서 사과해야겠어.’
* * *
“면목 없소. 소가주.”
조금은 흐트러진 모습으로 자리로 돌아온 팽조운.
그는 자리에 오자마자 팽중호에게 진 것에 대한 사과를 전하였다.
이런 중요한 대련에서 자신이 져 버렸으니 말이다.
“예? 그렇게 잘해 놓고 뭐가 면목이 없습니까? 정말 잘하셨습니다.”
하지만 팽중호는 면목 없다는 팽조운에게 정말 잘했다는 칭찬을 건네었다.
팽중호가 보기에 팽조운은 정말 기대 이상으로 잘 싸워 주었기에 전하는 진심이 담긴 칭찬이었다.
‘종남파의 장로, 그것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한 자를 상대로 이렇게나 잘 싸울 줄이야.’
팽조운은 비록 졌지만, 사실 팽중호는 애초에 팽조운의 패배를 예상하였다.
다만, 팽조운이 그간에 노력한 것들이 있으니 한 가닥 힘은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는데, 지금의 결과는 분명 그 기대 이상의 선전이었다.
막주승의 옷깃을 완벽히 잘라 내지 않았는가?
이 결과 덕분에 지금 주변에서 쑥덕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하북팽가의 장로가 단봉검객 막주승을 상대로 비등한 싸움을 했다고 말이다.
이 정도 결과면 지금 대련의 승자는 사실 팽조운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자자, 이제 여기서 다들 제가 이기고 오는 것만 기다리고 계십쇼.”
이제 마지막 대련만이 남았다.
팽중호 자신과 장순학의 대련.
팽중호는 자신감 넘치게 이길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었지만, 사실 팽중호도 속으로는 약간 긴장하고는 있었다.
‘검마 이후로 처음인가.’
화경의 경지를 넘은 무인과의 대련.
물론 중간에 혈공으로 화경의 경지에 다다른 이들과의 싸움은 있었지만, 그들과 장순학은 분명 다를 터였다.
정통 도가 무공으로 화경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것은, 혈공 따위로 화경에 들어선 것과는 차원이 다르니 말이다.
‘확실히 재미도 있고, 도움도 되긴 하겠어.’
검마와의 대련으로 큰 깨달음을 얻었었다.
그렇다면 아마 이번 장순학과의 대련으로도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마지막 대련자분들은 나와 주십시오!”
무림맹 무인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팽중호는 천천히 비무대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발걸음으로 걸어 나서는 팽중호.
그런 팽중호의 맞은편에서 장순학도 팽중호처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발걸음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스윽- 탁-
동시에 서로를 마주 본 채로 멈춰선 두 사람.
그저 비무대 위로 두 사람이 나타난 것일 뿐인데, 사방으로 엄청난 위압감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꿀꺽-
지켜보던 사람들은 기다리던 비무가 되었음에도, 말조차 하지 않고 집중해서 비무대 위로 시선을 고정했다.
정혼검신 장순학과 뇌룡 팽중호의 대련.
사람들은 당연히 장순학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최근 팽중호의 소문을 들으면 혹시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종남파의 장순학이라 하네.”
“하북팽가의 팽중호라 합니다.”
그저 서로를 향해 인사를 하는 것뿐인데도, 주변의 공기가 팽팽해졌다.
그리고 그런 팽팽한 공기 속에서 인사 후에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기 시작하는 두 사람.
사람들은 모를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이미 비무는 시작된 것이었다.
터억-
그때 비무대 주변에서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와 동시에 팽중호와 장순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두 사람.
파짓- 파지지지지직-
팽중호는 어느새 뇌신지체에 들어서 있었고, 무적도에서는 뇌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맞서는 장순학의 검에도 푸른 검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앞선 막주승이 보여 주었던 검기보다도 더욱 크고 짙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그저 검기의 모습 하나만으로도 장순학이 막주승보다 한참을 앞선 고수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카카캉- 카캉- 카가가강- 카카가각-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지금 두 사람이 어떻게 싸우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의 공방.
이런 엄청난 공방이지만, 사실 지금 두 사람에게 이 공방은 상대의 실력을 가늠해 보는 탐색전에 지나지 않았다.
과연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본 실력을 내도 좋을지에 대한 탐색전 말이다.
“젊은 나이에 대단한 성취네.”
“하하. 과찬이십니다.”
“과찬? 나는 그런 것을 하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