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당연히 걱정되실 만하겠지요.
무림맹(武林盟)에 도착한 하북팽가 일행.
어마어마한 규모의 정문이 입구부터 사람을 압도하고 있었다.
구구구구구궁- 쿠웅-
하북팽가 일행이 정문 앞에 서자, 정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활짝 열린 정문을 지나 무림맹 안으로 들어서는 일행.
조금 더 안으로 들어서자, 앞쪽에 모여 있는 일단의 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히이이이이잉-
일단의 무리 앞에서 마차를 멈추고, 하북팽가 일행이 모두 마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팽중호가 마차에서 내리자, 앞을 가로막고 있던 사람들 중 중앙에 서 있던 건장한 풍채의 중늙은이가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해 왔다.
“하하. 어서 오십시오. 무림맹주를 맡고 있는 선주천이라 합니다.”
“하북팽가의 소가주인 팽중호라 합니다.”
무림맹주(武林盟主) 권신(拳神) 선주천.
무림에서 가장 강한 무인을 꼽을 때 항상 첫 손에 꼽히는 무인.
그는 소림의 속가제자로, 소림이 차기 무림맹주의 자리를 위해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로, 소림사의 승려가 되면 무림맹주의 자리에는 앉을 수 없게 되기에 속가제자에 일부러 머물고 있는 자였다.
물론 속가제자라고 하지만 그는 분명히 소림사의 사람으로, 소림의 절예들을 모두 익힌 무인이었다.
“소가주님 정말 잘 오셨습니다.”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맹주님.”
그렇게 곧바로 그 자리에서 서로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지금 하북팽가를 마중 나온 이들은 무림맹의 핵심 수뇌들.
그들이 인사를 하기 위해 모두 나섰다는 것은 정우맹이 발족한 시점에 무림맹에 와 준 하북팽가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춘 것이었다.
“자,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모든 인사가 끝이 나고, 곧바로 무림맹에 내에 있는 접객당으로 움직였다.
접객당으로 들어서자 이미 식사 준비가 완벽히 되어 있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각자 자리를 안내받았는데, 팽중호는 선주천의 옆자리에 자리를 안내받았다.
무림맹주의 바로 옆자리.
이것도 분명 하북팽가를 대우하고 있다는 무림맹의 표시였다.
“준비한 것이 많이 없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적당히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진행되는 식사 자리.
그렇게 식사 자리가 거의 끝나 갈 때쯤.
무림맹 무인 하나가 선주천에게 다가와 무어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알겠네. 가서 준비들 하라 하게.”
“예. 맹주님.”
무인이 돌아가고, 선주천은 식사를 마친 팽중호를 잠시 불렀다.
“팽 소가주님.”
“예.”
“구파에서 도착했다고 하니, 혹 같이 가시겠습니까?”
아무래도 방금 무인이 전한 것은 구파의 행렬이 도착했음을 알리려 온 것인 듯싶었다.
구파의 행렬 정도라면, 무림맹주가 직접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선주천은 지금 이왕 자신이 움직이는 김에, 팽중호에게 함께 구파를 맞이하러 가자고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하북팽가가 무림맹에 합류했으니, 구파와 안면을 트는 것이 좋을 테니 말이다.
“아, 좋습니다.”
팽중호는 고민할 것 없이 선주천의 제안을 수락했다.
구파와 인사를 해 두는 것은 훗날을 위해서라도 분명히 필요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바로 식사를 마치고, 다들 다시금 밖으로 나섰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딱 때맞추어 무림맹 내부로 끝없는 마차의 행렬이 들어섰다.
다들 저마다 각자의 문파를 상징하는 기와 문양을 내건 마차들.
하나같이 꽤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확실히 구파는 구파군.’
정도 무림에 정말 오랜 시간 동안 군림해 온 그들이다.
오개세가 보다도 훨씬 더 전부터 말이다.
그런 구파의 힘이 그저 마차의 행렬에서부터 느껴져 왔다.
덜컥- 덜컥- 덜컥-…….
마차들의 문이 열리며 안에서 무인들이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팽중호에게 낯익은 인물들도 있었다.
‘종남파 놈팽이들이랑 정혼검신이군.’
호정루에서 팽중호에게 대판 깨졌던 종남파의 일대 제자들과 아주 잠깐 인사를 나누었던 정혼검신 장순학이 보였다.
종남파의 일대 제자들은 팽중호를 보고 몸을 흠칫 떨더니, 슬쩍 장순학의 옆에 있는 노인의 등 뒤로 몸을 옮겼다.
‘저 사람이 저놈들이 믿는 구석인가 보군.’
아무래도 종남파 놈팽이들이 믿는 구석이 바로 저 노인인 듯싶었다.
노인은 팽중호를 은근히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 눈에는 적대감이 아주 가득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무어라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았을 것이다.
‘뭐, 이번 무림맹행도 재미가 있겠어.’
팽중호는 노인과 종남파 사람들의 눈빛을 보며 이번 무림맹행이 꽤 재미있어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저 인사나 하고 조용히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어서들 오십시오.”
선주천이 앞장서 먼저 구파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화산, 소림, 무당, 종남…….
그렇게 선주천이 모두와의 인사가 끝이 나고, 그다음은 이제 팽중호의 차례였다.
“하북팽가의 소가주 팽중호입니다.”
“허어.”
“호오.”
팽중호가 인사를 하자 구파의 인물들이 저마다 탄성 같은 것들을 내뱉었다.
지금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무인을 꼽으라면 단연 팽중호였다.
망해 가던 하북팽가를 다시금 일으킨 장본인.
게다가 한참이나 젊은 나이임에도 초절한 실력을 갖춘 무인.
당연히 구파의 사람들도 팽중호에 대한 관심이 지대할 수밖에 없었다.
“반갑습니다. 무당파의 현청이라 합니다.”
그때 팽중호를 향해 가장 먼저 인사를 해 오는 곳이 있었다.
바로 무당파.
위지철 덕분에 환생 후 처음 만나는 무당파였지만, 크게 낯설지가 않았다.
지금 팽중호에게 인사를 해 오는 현청이란 도사는 무당파에서 가장 젊은 나이에 장로의 자리에 오른 자로, 위지철에게 무공을 가르친 사부라고 해도 될 사람이었다.
“반갑습니다. 위 소협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하. 좋은 이야기만 들으셨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무당파로 시작된 인사는 마지막 종남파에 와서 잠시 멈췄다.
“반갑소. 종남파의 장로인 막주승이라 하오.”
종남파의 대표로 인사를 하는 것은 장순학이 아니라, 좀 전에 팽중호를 노려보던 그 노인이었다.
종남파 장로 단봉검객(斷峰劍客) 막주승.
막주승은 종남파에 꽤 오랜 시간 동안 장로의 자리에 있던 자로, 정혼검신 장순학을 제외하면 종남파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의 강자였다.
“반갑습니다. 하북팽가의 팽중호라 합니다.”
고오오오오오-
그저 두 사람이 인사를 하는 것뿐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정확한 자초지종은 몰라도, 지금 하북팽가와 종남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자. 인사가 끝났으니, 대회의장에서 이야기 나누시지요.”
무림맹주인 선주천이 두 세력을 중재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며 이동을 제안했다.
덕분에 기 싸움이 멈추었고, 서로 몸을 돌려 대회의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들 대단한 것 같소.”
“저도 이렇게 무림맹과 구파의 사람들을 본 것은 처음인데, 확실히 왜 이들이 무림에 군림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팽조운과 이세경이 저마다의 감상을 내뱉었다.
두 사람의 말에 팽중호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 주었다.
‘뭐, 예전이랑은 좀 달라졌지만 말이야.’
예전과는 미묘하게 달라졌지만, 그래도 대체로 다들 예전의 모습은 갖추고 있었다.
완전히 바뀐 듯한 오대세가와는 다르게 말이다.
“하북팽가가 저희와 함께해 주시는 만큼, 무림맹도 새롭게 개편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선주천의 말을 시작으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 주된 내용은 당연히 새롭게 합류한 하북팽가에 대한 것이었다.
하북팽가의 무인들이 무림맹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직책을 맡을지, 그리고 무림맹은 하북팽가에 앞으로 어떤 지원을 할 것이며, 하북팽가는 무림맹을 위해 무엇을 할지 뭐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당연히 오늘 하루로 짧게 끝낼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오늘은 전반적인 큰 틀에 대해서만 대충 의논을 하고 자리를 파하기로 하였다.
“그럼. 다들 오시느라 피곤하셨을 터인데, 오늘은 이만 쉬시도록 하지요.”
선주천의 마지막 말로 자리를 파하려는 순간.
종남파의 막주승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제가 맹주께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소이다.”
“예. 말씀해 보십시오.”
“하북팽가가 우리 무림맹에 합류한 것은 정말로 고마운 일이나, 앞으로 서로 등을 맡겨야 할 사이인데 그저 들리는 이야기만을 믿고 등을 내어 줄 수는 없지 않겠소이까?”
“흐음…….”
“흠.”
막주승의 말에 구파 중 일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들은 하북팽가에 대해 많은 정보와 소식들은 들었지만, 실제로 그들의 힘을 본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하북팽가와 많은 일을 함께하게 될 터인데, 직접 그들의 실력을 확인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었다.
씨익-
몇몇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을 보자 막주승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지금 그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팽중호만 아니라면, 보잘것없는 곳. 팽중호는 장 장로가 상대하게끔 하면 된다.’
막주승은 지금 여기서 하북팽가의 실력을 운운한 뒤에, 이것을 빌미로 대련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팽중호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이외의 다른 이들의 실력은 부족하다는 것이 정설.
팽중호만 정혼검신이라 불리는 장순학이 상대한다면, 대련에서 종남파가 압도적으로 그들을 찍어 누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북팽가에 대해 무림맹에서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 그때 자신이 몇 마디를 거들면 팽중호와 하북팽가를 무림맹에서 존재감을 지울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우리 종남파가 하북팽가의 힘을 좀 시험해 보고 싶소이다.”
“하지만…….”
“목검을 이용한 가벼운 대련 정도라면 문제가 없지 않겠소?”
선주천은 고민스러운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지금 하북팽가를 이곳에 초대한 것은 무림맹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들의 실력이 의심된다면서 대련을 수락해 버린다면, 그것은 분명 하북팽가에 아주 큰 결례를 저지르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다 자칫 하북팽가가 정우맹으로 돌아서게 되면 일이 골치 아파지게 될 터였다.
물론 막주승은 선주천이 이런 고민을 할 것을 알았기에, 마지막에 목검을 이용한 가벼운 대련을 하자는 단초를 붙인 것이었다.
이 정도라면 큰 무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아아.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당연히 걱정되실 만하겠지요.”
그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팽중호의 입이 열렸다.
팽중호의 입꼬리도 막주승처럼 올라가 있었다.
‘공개적으로 한 번 밟고 가겠다 이거군.’
자신이 종남파의 제자들을 박살 내 놓았으니, 그것에 대해 복수를 할 겸, 공개적인 대련을 하자는 것이었다.
너무나 속이 보이는 생각에 팽중호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 안 그래도 힘을 한번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알아서 나서 주니 아주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럼 어차피 저희의 실력을 제대로 알아보셔야 하니, 목검을 사용한 가벼운 대련 말고, 진검으로 하는 것으로 하지요.”
“!?”
팽중호의 말에 막주승의 눈이 조금 꿈틀했다.
목검으로 하는 선에서 끝내려고 했는데, 오히려 한술 더 떠서 진검을 사용하자니?
분명 이것은 종남파에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선주천이 팽중호를 향해 괜찮겠냐고 물어왔다.
목검과 다르게 진검으로 하는 대련은 분명 큰 위험이 따른다.
물론, 무림맹에서 이루어지는 대련이니만큼 살초는 쓰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 진검 대련이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종남파를 상대로 하겠다고 한다니?
아무리 하북팽가가 최근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의 위용을 보여 주고 있다지만, 종남파는 보통 새가 아니라 봉황쯤은 되는 곳이었다.
그런 종남파와의 진검 대련은 분명 하북팽가에게 유리할 것이 전혀 없는 제안이었다.
“아,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구파의 힘을 좀 봐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