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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의 개망나니-78화 (78/200)

78화 사리 분별 좀 잘하면서 살아라.

팽중호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곳은 조한평의 바로 앞.

조한평은 코앞에 갑자기 나타난 팽중호의 웃는 얼굴을 보는 순간, 일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위험!’

위험함을 느끼고 몸을 급하게 뒤로 빼려는 조한평.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빠각- 퐈아악-

“컥!”

팽중호의 무릎이 그대로 조한평의 얼굴을 찍어 버렸다.

그러자 폭발하듯 조한평의 코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반쯤 뒤집혀 있는 조한평의 눈.

그가 이 한 방에 정신을 잃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걸로 기절하려고? 그렇게는 안 되지.”

팽중호는 쓰러지려는 조한평을 다시 잡아 일으킨 다음에, 혈도를 눌러서 다시금 정신을 깨웠다.

“커억!”

“자, 이 꽉 물어라.”

퍼억- 후두두두둑-

다시 한번 더 작렬한 팽중호의 무릎.

이번에는 조한평의 입을 가격했는데, 그의 입에서 하얀 무언가가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닥을 구르는 조한평의 하얀 이들.

그 모습을 본 다른 종남파 제자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자, 다음.”

파직-

이번 팽중호의 목표는 반종수.

아까 건방지게 문을 연 것에 대한 가르침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퍼억-

이번에는 주먹으로 반종수의 복부를 강하게 타격했다.

“우웨에에엑!”

곧바로 입에서 신물을 쏟아 내는 반종수.

팽중호는 그 모습을 보고, 그대로 그의 뒤 목을 가격했다.

타악- 철푸덕-

자기가 뱉어 낸 신물 위로 그대로 고개를 처박고 쓰러지는 반종수.

이제 남은 이들은 멀뚱히 서 있던 종남파의 여제자 둘 뿐이었다.

“자아. 너희들은 어떻게 할까?”

죄가 없다고 하기에는, 가만히 방관한 것도 죄가 아니겠는가?

팽중호는 어떻게 처리를 할까 고민하면서 천천히 둘에게 걸어갔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사, 살려 주세요.”

“죄송합니다!”

다가오는 팽중호를 보며, 마치 무슨 흉신악살이라도 본 듯이 몸을 떠는 두 사람.

그녀들은 눈앞에 처참하게 쓰러진 조한평과 반종수를 보고, 지금 팽중호가 자신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강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렇게 몸을 떨며 살려 달라며 비는 것이었다.

이것만이 살아남을 길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제가 뭐 죽인다고 했습니까? 당연히 살려 드리죠. 다만…….”

따악- 따악-

팽중호의 손가락이 정확히 종남파 두 여제자의 머리를 가격했다.

강렬하면서도 청아한 소리가 객잔을 울렸다.

“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그대로 머리를 감싸 쥐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는 두 여인.

그녀들은 지금 머리가 반으로 쪼개지는 듯한 고통에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 끝났다. 앞으로는 사리 분별 좀 잘하면서 살아라.”

팽중호는 바닥에 쓰러진 종남파 일대 제자 넷을 바라보며 인생의 교훈(?)을 남겨 주었다.

그리고 미련 없이 몸을 돌려 호정루를 벗어나기 위해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저렇게 두어도 괜찮겠습니까?”

“일대 제자가 감히 한 세가의 소가주에게 무례를 저질렀는데, 저 정도면 자비를 베푼 거지.”

팽중호는 그렇게 이세경과 이야기를 나누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객잔 아래에서 올라오는 한 중년인.

각이 진 얼굴과 짙은 이목구비 덕분에 상당히 깐깐해 보이는 인상을 한 자였다.

옷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백의에, 허리춤에는 고급스러운 검 한 자루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팽중호는 이 중년인을 보자마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고수다.’

검마 이후로 처음 보는 고수.

팽중호가 걸음을 멈출 정도의 고수라면, 당연히 화경의 경지는 넘은 무인이라는 소리였다.

‘종남파 사람이라…….’

새하얀 백의에 푸른색 자수로 ‘종남’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으니 바로 알 수 있었다.

“흐음?”

천천히 객잔을 올라오던 중년인도 팽중호를 보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팽중호가 범상치 않은 자임을 알아본 것이다.

“자네는 누구인가?”

팽중호를 향해 다짜고짜 누구냐고 물어오는 중년인.

보통이라면 당신 이름부터 밝히라고 했겠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자가 보통은 아니지 않은가?

“하북팽가의 팽중호라 합니다.”

팽중호의 이름을 듣자 눈을 빛내는 중년인.

“호? 그 위명한 뇌룡을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군. 나는 종남파의 장순학이라는 사람이네.”

“아! 정혼검신을 뵙습니다.”

정혼검신(正魂劍神) 장순학.

종남제일고수이자, 무림에서 가장 강한 검객 중 하나로 반드시 꼽히는 인물.

종남파의 비전 무공인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을 펼치는 그의 검은 그야말로 정직하면서도 웅혼한 정도의 표본과도 같은 모습이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정혼검신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무림맹으로 향하는 길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렇군. 아, 그보다 여기서 우리 제자들을 보지 못했나?”

장순학은 지금 갑자기 멋대로 사라진 종남파의 제자들을 찾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위에 있을 겁니다.”

“그런가? 고맙네. 다음에 보세.”

“예. 그러길 바랍니다.”

그렇게 팽중호와 장순학은 서로 엇갈려 갈 길을 갔다.

여기서 뭐 서로 더 할 말도 없었으니 말이다.

“가가. 괜찮을까요?”

“응? 뭐가?”

“종남파의 제자들을…….”

“아아, 괜찮을 거야.”

이세경은 팽중호가 종남파의 일대 제자 넷을 완전히 박살 내 버린 것을 걱정했다.

장순학이 그 사실을 안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팽중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괜찮을 것이라며 이세경을 안심시켰다.

‘그런 것으로 트집을 잡을 사람이 아니다.’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만, 팽중호는 장순학이 그런 것으로 트집을 잡을 사람이 아니란 것을 간파했다.

얼굴의 관상과 그에게서 풍겨오는 기운이 그랬으니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는 오히려 자신을 질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경거망동 덤볐던 네 사람을 질타할 것이다.

“그보다 저녁을 같이해야 하니까, 빨리 돌아가자.”

* * *

“후.”

장순학은 객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일대 제자들을 보며 짧게 숨을 내뱉었다.

조금 전 만났던 팽중호의 모습이 떠오르며 대충 상황이 그려졌으니 말이다.

“모자란 놈들.”

장순학은 쓰러져 있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말을 한 후에, 그들을 모두 깨워서 일으켜 세웠다.

여 제자 둘은 그나마 눈물 자국 외에는 멀쩡했지만, 남 제자 둘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특히 조한평은 코와 입에서 흘러나온 핏자국과 훤하게 털린 앞니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제, 제성합니다…….”

“죄송합니다.”

네 제자는 장순학을 보자마자 곧바로 죄송하다며 허리를 숙였다.

종남파에서 거칠 것 없이 지낸 그들이지만, 단 한 사람.

장순학만큼은 두려워했다.

평소에는 그를 만날 일이 없기에 상관없었지만, 이렇게 함께 움직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장순학은 원리와 원칙에 매우 엄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종남의 제자로서 이렇게 따로 단독 행동을 한 것도 모자라, 이렇게 추태까지 보이다니……. 이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더냐?”

“그, 그것이…….”

그나마 상태가 멀쩡한(?) 반종수가 무어라 변명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저희는 정중하게 자리를 비켜 달라 요구하였는데, 갑자기 팽중호 그자가…….”

“시끄럽다!”

“헙!”

변명을 위해 입을 놀리던 반종수가 장순학의 호통에 입을 다물었다.

얼굴이 살짝 찡그려진 장순학.

이것은 지금 그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하다는 증거.

이때에는 무어라 입을 놀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반종수였다.

“내가 평소 너희의 행태에 대해 듣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

장순학은 보통 항시 수련하며 지냈지만, 그럼에도 눈과 귀는 항상 열어 두고 지냈다.

종남파의 제자들이 예전과 달리 안하무인처럼 지낸다는 소식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것을 바로잡고 싶은 장순학이었지만, 자신의 사형인 장문인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기에, 먼저 나서지 못하고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희 넷은 지금 당장 짐을 싸서 다시 종남으로 돌아가라.”

“하지만!”

“그만. 돌아가라 하였다.”

“……예. 알겠습니다…….”

종남파의 네 제자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호정루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에서 장순학이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쩌다 종남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분명 지금의 종남은 예전의 종남과 달라져 있었다.

정의와 협의가 사라지고, 오로지 힘만을 따르고 있었다.

자신의 사형이 새로운 장문인의 자리에 앉은 후부터 이렇게 바뀌기 시작했다.

‘저런 아이들이 종남의 제자라니.’

지금 장순학의 눈앞에 있는 네 명의 제자는 예전이라면 절대로 종남의 제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집안의 힘으로 종남의 제자가 된 이들.

장순학은 아직까지도 왜 저런 아이들을 종남의 제자로 받아 주는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시대의 흐름을 쫓지 못하는 것인가?’

정마대전 이후로 무림이 많이 바뀌었다.

철저한 약육강식의 무림이 되어 버리며, 협의와 정의가 사라졌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흐름이라고 한다지만, 장순학은 과연 이것이 옳은 방향의 흐름인지는 의문이라 생각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더냐!”

그렇게 장순학이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 종남파의 행렬이 머무는 객잔에 도착했다.

조한평과 남은 셋이 처참한 몰골로 객잔 안으로 들어서자, 종남파의 장로 중 하나인 사준평이 깜짝 놀라며 다가왔다.

“그 아이들이 팽가의 소가주에게 무례를 저질러 그에게 벌을 받았소.”

장순학은 호정루의 점소이에게 자초지종을 모두 들었고, 그 사실을 사준평에게 일러 주었다.

“뭐라?! 감히 하북팽가의 소가주 따위가 우리 종남의 제자에게 손을 대었단 말인가!”

사준평은 장순학의 말을 들었음에도, 모든 잘못을 팽중호에게 돌리고 있었다.

이 소리에 지금까지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네 명의 표정이 조금 펴졌다.

장순학과 다르게 사준평은 확실히 그들의 편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자네는 그런데 그걸 알았는데, 그냥 이렇게 돌아왔단 말인가?”

“잘못은 이 아이들이 하였는데, 제가 무엇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허허. 종남의 이름을 그들이 업신여기고, 이렇게 종남의 제자들에게 손을 대었는데 가만히 있는 게 말이나 되는가?”

“…….”

사준평의 말에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장순학은 자신의 방으로 몸을 옮겼다.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장순학이 사라지자, 사준평은 급히 의원을 불러 네 제자를 살펴보게끔 하였다.

“그래? 장 장로가 너희보고 돌아가라 하였다고?”

“예.”

사준평이 자신의 편임을 안 네 제자는 장순학이 자신들을 종남으로 돌아가라 하였다는 것도 일러바쳤다.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돌아가 필요 없다. 다만, 한평이 너는 치료를 받아야 하니, 이곳에 며칠 머물다가 다시 무림맹으로 오거라.”

“예. 장로님.”

“그리고 팽중호 그자에 대한 일은 무림맹에 가서 이야기할 테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장로님. 저희 부모님께서도 아주 기뻐하실 거 같습니다.”

“하하. 그래.”

사준평이 이 네 제자들에게 잘해 주는 이유.

그것은 그들이 부호의 자식들이라는 것에 있었다.

저들이 보내오는 돈이 종남파와 자신에게 아주 큰 힘이 되니 어찌 소홀할 수 있겠는가?

“종남은 종남의 제자들을 아끼고 사랑하니, 걱정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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