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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의 개망나니-77화 (77/200)

77화 잠깐 내 뒤로 가 있을래?

객잔에서 식사를 마친 일행은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오랜만에 팽가를 벗어나 이런 먼 곳에 왔으니, 각자 하고 싶은 일이 있을 테니 말이다.

팽중호는 그냥 객잔 방에서 누워 있을 생각이었지만, 이세경이 명승에 가고 싶다고 하여 몸을 움직였다.

“어디인지는 이미 알아 두었습니다.”

“그래? 그럼 가자.”

팽중호는 이미 길을 알아 두었다는 이세경을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걸음을 조금 옮기자, 딱히 길을 몰라도 다가갈수록 점점 더 많아지는 인파에 목적지가 가까웠음을 알 수 있었다.

인파를 보니, 팽조운의 말처럼 유명한 명승이기는 한 듯싶었다.

“히야. 사람 많네.”

“저기 좀 보십시오.”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자, 드디어 눈앞에 주변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깨끗한 호수와 그 위에 떠다니는 수많은 나룻배, 그리고 호수의 중앙에 자리 잡은 섬 하나.

섬 위에는 거대한 전각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그곳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해 보였다.

“저희도 배를 하나 빌리죠.”

이세경은 조금 들뜬 표정으로 배를 빌리는 곳으로 다가가, 돈을 지불하고 배를 하나 빌렸다.

팽중호는 그런 이세경을 따라 배 위에 올랐다.

촤르륵- 촤르륵- 촤르륵- 촤르륵-

노는 팽중호가 직접 저으며, 호수 위를 움직였다.

구름 몇 점 하늘에 떠 있는 것이 뱃놀이하기에 아주 딱 좋은 날이었다.

“바람도 선선하니 딱 좋네.”

“네. 그런데 그냥 사람을 쓰면 되는데, 직접 저으신다고 하셨습니까?”

“왜? 나랑 둘만 있는 거 싫어?”

“예? 그, 그것이 아니라…….”

“크크크.”

팽중호의 갑작스러운 말에 이세경이 약간 당황했다.

지금까지는 보통 이세경이 팽중호에게 이런 말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팽중호에게 역으로 돌려받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했으니 말이다.

“조금 돌다가 우리도 저기로 가 볼까?”

“예. 좋습니다.”

그렇게 호수를 한 바퀴 둘러본 후, 팽중호와 이세경은 호수 중앙의 섬에 배를 대었다.

“흣차.”

“어멋.”

팽중호는 배에서 내릴 때, 이세경을 번쩍 안아 들고 사뿐히 내렸다.

섬에는 이미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지만, 섬이 꽤 컸기에 움직이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주루인가?”

“들어가 보죠.”

섬 중앙에 서 있는 거대한 전각의 정체는 아무래도 주루인 듯싶었다.

안에서 사람들이 술에 취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으니 말이다.

팽중호와 이세경은 그렇게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전각 안에 들어가자 보이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내부.

딱 봐도 저렴한 곳이 아니라는 티를 팍팍 내는 곳이었다.

게다가 점소이의 복장도 비단으로 된 옷인 걸 보니, 고급 주루임이 분명했다.

‘돈을 긁어모으겠군 그래.’

관광을 온 이들에게 덤터기를 씌워서 팔 테니, 분명 돈을 있는 대로 긁어모을 터였다.

팽중호는 이곳은 도대체 어떤 곳과 연관이 있을지 궁금했다.

보통, 이 정도라면 관 아니면, 무림 거대 세력과 연관이 있을 테니 말이다.

“지금 있는 자리 중에 가장 좋은 자리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세경이 점소이에게 돈을 건네며 말을 하자, 점소이가 곧바로 허리를 접고 인사를 하더니, 두 사람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일 층, 이 층, 삼 층…….

그렇게 거의 꼭대기 층에 다 와서야 점소이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이곳입니다.”

주변의 풍경이 한눈에 모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자리.

확실히 명당임이 분명한 자리였다.

“술과 음식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제일 비싼 걸로 세 가지 가져다주십시오.”

“예.”

점소이가 물러나고, 팽중호와 이세경 단둘만이 자리에 남게 되었다.

가만히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평화로운 밖을 바라보는 두 사람.

팽중호는 이런 여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휘이이이잉-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시간.

잠시 후 음식들과 술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흐으음. 냄새는 좋네.”

“제가 먼저 한 잔 드리겠습니다.”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기 시작하는 두 사람.

이곳의 음식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덤터기 쓸 만한 실력은 되는 듯싶었다.

“여기 이름이 뭐라고 했지?”

“호정루라고 들었습니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본 현판에는 호정루(湖井樓)라고 쓰여 있었다.

호정루가 위치한 섬이 마치 우물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에 호정도(湖井島)라고 불렸기에, 이 주루도 호정루라는 이름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슬슬 해가 지네.”

음식을 먹고 있는 동안 해가 기울어 가고 있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와는 또 다른, 그림 같은 풍경이 호수에 그려졌다.

붉은 노을을 비추는 호수는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과연 명승이라고 할 만한 곳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때 밑에서부터 누군가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팽중호는 문 사이로 난 틈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하하하! 내가 그래서 말이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올라오는 네 사람.

젊은 남자 둘에 젊은 여자 둘.

그들은 하나같이 고급스러운 무복을 걸치고 있었는데, 딱 봐도 힘 좀 있는 세력의 사람들이 분명했다.

“이쪽 자리입니다.”

“응? 제일 좋은 자리를 내어 달라고 하지 않았나?”

점소이가 그들에게 안내한 자리는 팽중호와 이세경이 있는 반대편의 자리.

그곳도 분명 풍광이 뛰어났지만, 지금 가장 좋은 자리는 팽중호와 이세경이 앉아 있는 곳이었다.

해가 지는 것을 바로 볼 수 있는 자리였으니 말이다.

“이곳이 지금 남은 자리 중에 제일 좋은 자리입니다.”

“하! 일을 이딴 식으로 하나? 우리가 누구인 줄 알고?”

이남이녀 중 사내 하나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앞으로 나서며 점소이에게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사내의 너무나도 뻔한 대사에 팽중호는 하마터면 먹던 음식을 입으로 내뿜을 뻔하였다.

‘저런 놈들은 어디를 가나 언제나 꼭 있군.’

뒤에 업은 세력을 믿고 경거망동 날뛰는 이들.

전생에도 이번 생에서도 숱하게 봐 오지 않았는가?

“우린 대 종남파의 제자들이다! 어서 가장 좋은 자리를 안내해라!”

이남이녀의 정체는 종남파의 일대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무림맹으로 향하는 종남파 행렬에 속한 이들이었는데, 이곳에서 쉬었다 간다는 이야기에 곧바로 이곳으로 달려오는 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곳에는 먼저 오신 손님이 계십니다.”

“가서 종남파의 제자들이 자리를 원하니 비켜 달라 말하거라.”

“예? 하지만…….”

“쯧. 됐다. 내가 직접 하지.”

완전히 안하무인 격으로 나서는 종남파의 제자.

계속해서 점소이에게 신경질적으로 쏘아 대던 사내가 팽중호와 이세경이 식사를 하고 있는 방으로 다가왔다.

똑똑-

“누구십니까?”

팽중호는 상황을 다 알지만, 짐짓 모른다는 목소리로 누구냐 물었다.

드르륵-

팽중호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곧바로 문을 열어젖히는 사내.

이건 분명 도를 넘은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었다.

‘종남에서 아주 오냐오냐 키웠군.’

아마 자신보다 위에 있는 자를 만나 보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짓을 하지는 않을 터이니 말이다.

생각해 보라.

지금 이 방 안에서 식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다짜고짜 들어온다니?

혹여 관의 사람이나, 성격 더러운 마두이면 어쩌려고 저런단 말인가?

“종남파의 일대 제자인 반종수라고 합니다.”

나름대로 인사는 예의 있게 하는 반종수.

물론 그런다고 이미 범한 무례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팽중호가 살짝 인상을 쓰며 물었다.

불쾌하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은 것이었다.

“저희에게 자리를 좀 양보해 주셨으면 해서 말입니다.”

반종수는 그런 팽중호의 불쾌한 말투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자리를 양보해 달라는 말을 꺼내었다.

자신들이 종남파의 제자라는 것을 알렸으니, 상대가 알아서 자리를 비켜 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자신감이었다.

‘어쩔까…….’

팽중호는 이세경을 바라보며 잠깐 고민에 잠겼다.

예전이었으면 그냥 바로 세상의 쓴맛을 보여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세경이 같이 있는 자리.

괜히 귀찮게 하지 않고, 자리를 비켜 주면 일이 편하게 지나갈 것이다.

“이만 식사를 끝냈으니 자리를 옮기는 것이 어떻습니까?”

이세경이 팽중호의 생각을 읽은 듯, 이만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해 왔다.

팽중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슬쩍 일어났다.

“뭐, 그러자.”

“하하! 감사합니다.”

반종수는 역시 종남파의 힘이면 안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반종수.

그렇게 팽중호와 이세경이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거기 소저 우리랑 같이 합석하는 것은 어떻소?”

반종수 말고 또 다른 종남파의 남자 제자가 갑자기 이세경을 향해 말을 걸어왔다.

키도 크고 멀끔하게 생긴 청년.

딱 보니 저 무리의 대장인 듯싶었다.

“거절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러시지 마시고, 다시 생각해 보시오. 나는 종남파의 일대 제자인 조한평이라 하오.”

너무나도 자신감 넘치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이세경에게 말을 거는 조한평.

그는 종남파의 일대 제자 중에서도 가장 실력이 뛰어난 자로, 팔룡삼봉에 들지는 못했지만 이미 그 수준은 넘어섰다고 알려진 자였다.

그는 지금 이세경의 미모를 보고 혹하여 수작을 거는 것이었다.

옆에 버젓이 팽중호가 있는데도 말이다.

“저희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이세경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팽중호와 함께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였는데, 그때 갑자기 조한평의 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휘익-

이세경의 팔을 붙잡으려는 듯한 조한평의 움직임.

실력이 있는 무인답게 아주 쾌속한 움직임이었다.

다만, 지금 이세경의 옆에 서있는 사람이 팽중호라는 것은 그가 생각 못한 변수였다.

콱-

이세경의 팔을 잡으려던 조한평의 팔을 도중에 강하게 낚아채는 팽중호.

“큭!”

“무슨 짓이냐? 싫다고 거절했으면, 알아서 빠져야지.”

“크윽…….”

꽈아아악-

조한평은 팽중호의 손아귀에서 팔을 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오히려 더욱 강하게 팔이 조여들 뿐이었다.

조한평의 얼굴에 맺히는 땀방울.

지금 그가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좋은 데 와서 귀찮기 싫으니까, 이만 껄떡대고 조용히 술이나 마시다 가라.”

탁-

팽중호는 말과 함께 조한평의 팔을 놔주며 살짝 밀쳐 내었다.

그리고는 몸을 뒤로 돌려 다시금 걸음을 옮기려 하였는데, 갑자기 뒤에서 검을 뽑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릉-

“네놈. 감히 종남파의 제자인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하고 그냥 넘어가려는 것이냐?”

“하.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것들 봐라.”

자기들이 먼저 찝쩍거려 놓고, 피해자인 척을 하고 있다.

게다가 검까지 뽑아 들었다.

조금 수틀리면 검을 뽑는 버릇이라니.

‘아무래도 여기서 제대로 가르침을 한번 줘야겠군.’

씨익-

팽중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상대가 선을 넘었으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지 않은가?

“잠깐 내 뒤로 가 있을래?”

“예. 가가.”

팽중호는 이세경을 자신의 뒤로 가게 한 뒤에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뚜두둑- 뚜두둑-

그리고 가볍게 몸을 풀었다.

조금 조용해진 객잔에 울려 퍼지는 팽중호의 몸 푸는 소리.

종남파 제자들은 그 소리에 왜인지 몸에 오한이 드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오늘 너희들한테 크게 가르침을 줄게.”

“너, 넌 누구냐?”

“빨리도 물어본다. 하북팽가의 소가주 팽중호라고 한다 임마.”

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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