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불만 있으신 분들 전부 나오십시오.
철혈적혼공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철혈갑공과 청혼회원신공을 합쳐서 만들어 낸 내공 심법이었다.
안정성으로 알아주는 두 무공이 합쳐졌기에, 어느 무인이 익혀도 문제없을 만큼 안정적인 것이 특징이었다.
이 철혈적혼공을 처음 받아 본 팽중호는 곽채령에게 딱 한마디를 해 주었다.
‘너 천재 맞다니까.’
물론 곽채령 혼자서만 만든 것이 아니라, 성무각 모두가 합쳐서 만들었지만 팔 할은 곽채령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팽중호야 이미 전생의 기억이 있어서 무공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다지만, 곽채령은 그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것을 본다면 곽채령은 분명 역대급 천재가 맞았다.
“저희 성무각에서 여러분께 이 두 무공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곽채령의 말까지 모두 끝났다.
다시 앞으로 나선 팽중호.
모든 시선이 다시금 팽중호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혹시 불만 있으신 분 계십니까?”
팽중호의 물음에 새롭게 하북팽가에 합류한 곳의 인원들이 웅성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본래 하북팽가 무인들은 입을 꾹 닫고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으니까…….
여기서 불만을 제기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말이다.
“체계는 그렇다고 쳐도, 저 두 무공이 좋다는 건 어떻게 압니까?”
그때 적검문의 무인 중 하나가 팽중호에게 입을 열었다.
적검문에서도 나름 실력을 인정받은 이로, 다른 적검문 무인들의 신뢰가 두터운 인물이었다.
그는 곽채령이 만든 두 무공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팽중호가 만들었다고 해도 쉽게 수긍이 가지 않을 텐데, 곽채령같이 젊은 무인이 만들었다고 하니 당연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아아, 분명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씨익-
말과 함께 팽중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 미소를 보는 팽가의 무인들은 몸을 흠칫 떨었다.
‘불쌍하군.’
그리고 방금 이의를 제기한 적검문 무인을 조금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처참한 미래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한번 보여 드려야겠지요?”
몸을 풀며 팽중호가 앞으로 나서려고 할 때였다.
누군가 팽중호의 옆에 나타나 그를 막아섰다.
“소가주님. 제가 대신해도 되겠습니까?”
팽중호의 앞에 선 이는 바로 위지철.
위지철은 지금 팽중호를 대신해서 적검문의 무인에게 적호검법과 철혈적혼공을 보일 생각이었다.
뭔가 결연하기까지 한 눈빛의 위지철.
팽중호는 그 모습에 속으로 씨익 미소 지었다.
‘그렇군. 그렇게 된 거야.’
팽중호는 힐끔 곽채령을 바라보았다.
위지철에게 완벽히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곽채령.
팽중호는 두 사람에게 무언가 싹트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긴 그렇게 붙어 있었는데.’
곽채령이 적호검법을 만들 때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위지철이었다.
아무래도 곽채령이 아는 검을 쓰는 무인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갖춘 무인이 위지철이었으니, 그에게 많이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젊은 남녀 둘이 붙어 있었는데, 정분이 안 나겠는가?
“위 소협이요? 알겠습니다.”
팽중호는 당연히 적당히 빠져 주었다.
그리고는 슬쩍 적검문의 곽무조 옆으로 갔다.
지금 곽채령과 위지철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그.
“저 둘이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네만.”
팽중호는 곽무조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알았다.
그는 곽채령을 자신과 혼인시킬 생각일 터였을 것이다.
그래야 안전하게 하북팽가에 안착할 수 있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아주 좋은 짝이 아닙니까? 채령이랑 문주님도 이제 저희 팽가의 일원이니, 무당파랑 함께하면 더할 나위 없을 겁니다.”
“우리도 이제 팽가의 사람인가?”
“물론입니다.”
“하하하, 그렇군.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군 그래.”
팽중호의 말의 뜻을 이해한 곽무조가 개운한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지금 팽중호의 말은 이제 곽채령과 적검문 모두가 하북팽가의 사람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곽채령을 팽중호와 혼인시킴으로 팽가에 소속되려던 그의 고민을 덜어 주었다.
“자. 그럼 미래 사위의 실력을 직접 한 번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 * *
위지철은 자신의 앞에 선 적검문의 무인을 차분하게 바라보았다.
지금 이 자리는 적호검법과 철혈적혼공을 보여 주는 자리.
“후우.”
위지철은 짧게 숨을 내뱉으며 허리춤의 검을 꺼내어 들었다.
곽채령이 만든 무공을 처음 선보이는 것.
그간의 노력을 알기에 절대로 헛되게 보이게끔 하고 싶지 않았다.
스윽-
위지철의 검에 푸른 검기가 아닌, 붉은 검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철혈적혼공으로 만들어 낸 검기.
적검문의 내공 심법인 적운심법(赤雲心法)이 합쳐졌기에 붉은색을 띠는 것이었다.
“하북팽가의 식객 위지철이라 합니다.”
위지철은 이제 자신의 소개도 하북팽가의 식객이라 소개했다.
하긴 최근에 계속 하북팽가에 눌러앉아 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소개였다.
“정협룡을 뵙게 되어 영광이오. 적검문의 비중전이라 하오.”
아직까지 새로운 체계에 적응이 되지 않아 자기를 적검문이라 부르는 비중전.
비중전은 지금 적검문의 무인 중 문주와 장로를 빼면 가장 강한 무인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가 인정한다면, 다른 적검문의 무인들도 인정할 터였다.
“적호검법과 철혈적혼공이 얼마나 뛰어난 무공인지 제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지켜보겠소.”
타탓- 탓-
서로를 향해 동시에 달려드는 두 사람.
달려드는 비중전의 검에도 어느새 붉은 검기가 서려 있었다.
카캉- 캉- 카카캉- 캉-
서로 붙자마자 날카롭게 주고받는 검격.
비중전도 나름의 실력자라 그런지, 위지철의 검격을 잘 받아 내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지철이 그의 수준에 맞춰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격적으로 가겠습니다.”
위지철의 검의 움직임이 변했다.
빠르면서도 강력한 힘이 담긴 검의 움직임.
카앙-! 카아앙-! 캉-!!
“윽!”
바뀐 위지철의 검에 비중전의 신형이 연신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간신히 검은 막아 나가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손아귀에 전해지는 강렬한 힘에 지금 당장 검을 놓치기 일보 직전이었으니 말이다.
“적호도곡(赤虎渡谷).”
카캉- 카앙-!
위지철의 공격에 비중전의 검이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허공을 날았다.
처억-
그리고 비중전의 목에 올려진 위지철의 검.
“졌……. 소.”
비중전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분명 위지철은 딱 자신의 수준 정도로 맞추어서 비무를 해 주었다.
그럼에도 너무나 일방적인 결과가 나왔다.
물론 검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에 나올 수 있는 결과였지만, 무공 자체의 힘에서도 밀렸다.
“그럼. 무공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으신 거겠지요?”
“예. 물론입니다.”
위지철의 활약으로 비중전은 완전히 적호검법과 철혈적호공을 인정했다.
분명히 두 무공은 뛰어난 무공이 맞았다.
“혹시 불만이 더 있으신 분이 계십니까?”
상황이 얼추 끝나자, 팽중호가 다시금 물어왔다.
적검문 무인들은 다시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 뭔가 불만이 더 있으신 것 같군요. 주저하지 말고 말씀해 주십시오.”
아주 평온하고 인자한 표정으로 묻는 팽중호.
그러자 적검문 무인 중 다른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북팽가의 기존 각주님들과 소가주님의 실력을 보고 싶습니다!”
적검문 무인의 말은 어쩌면 하북팽가 각주들과 팽중호의 실력이 미덥지 않다는 소리로 들릴 수 있었다.
굉장히 기분이 상할 수 있는 질문.
하지만 팽중호는 전혀 기분 나빠 하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진하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그렇지요. 실력을 당연히 보여 드려야 하겠지요.”
스르릉-
갑자기 허리춤에서 무적도를 꺼내어 드는 팽중호.
그와 동시에 주변의 공기가 바뀌었다.
“그럼 저부터 실력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팽중호의 모습에 하북팽가 무인들은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그리고 적검문 무인들을 불쌍함 가득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조금 전은 위지철이 나섰기에 좋게(?) 끝났지만, 이번에는 아닐 테니 말이다.
“자. 불만 있으신 분들 전부 나오십시오.”
“전부 말입니까?”
“예. 전부 나오십시오.”
팽중호의 말에 적검문 무인들 상당수가 몸을 일으켰다.
숭무문과의 싸움에서 적검문 무인들은 전부 하북팽가에 남아 팽가를 지켰다.
그래서 팽중호의 무위를 직접 본 이가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팽중호의 실력을 지금 직접 보고 싶은 이들이 모두 나선 것이다.
“좋습니다. 다들 바로 준비하십쇼.”
파지지지지지직-
팽중호의 몸에 뇌기가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뇌신지체.
뭐든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팽중호는 지금 실력을 여기 있는 모두에게 제대로 보여 줄 생각이었다.
“뭐 하십니까? 준비하시라니까요. 아니면…….”
파직-
퍼억-
“쿠억!”
팽중호의 앞에 있던 무인이 그대로 허리를 반으로 접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앞에 미소와 함께 주먹을 말아쥐고 있는 팽중호.
무적도는 쓰지도 않고 어깨에 걸친 상태로, 지금 주먹으로만 쓰러트린 것이다.
“아무것도 못 해 보고 이렇게 되십니다?”
“헙!”
스릉- 스릉- 스릉-…….
나섰던 적검문 무인들이 그제야 모두 검을 꺼내어 들었다.
장난이 아님을 느낀 것이다.
“다시 갑니다.”
파직-
다시 팽중호가 사라졌고, 다시 나타날 때마다 적검문 무인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악!”
“커어억!”
속절없이 쓰러져 나가는 적검문 무인들.
팽중호는 지금 적검문 무리들 사이에서 마치 한 마리의 호랑이처럼 날뛰며, 그들을 유린하고 있었다.
얼마 안 가서 모두 바닥에 널브러진 적검문의 무인들.
“흠.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한동안 저와 특.별.수.련.을 하겠습니다.”
특별수련이라는 말에 하북팽가 무인들은 하얗게 변한 얼굴로 적검문 무인들을 향해 묵념을 올렸고, 적검문 무인들은 갑자기 드는 오한에 흠칫 몸을 떨며,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제가 금방 강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크크크.”
* * *
무림맹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그저 방관자로 지켜만 보던 무림맹의 첫 목표는 숭무문과 서문세가였다.
혈천궁과 연관된 곳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서문세가는 봉문을 깨고 움직였으니, 당연히 무림맹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샅샅이 뒤져라!’
아무리 예전만 못하고,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무림맹이라지만, 그 힘은 아직까지 건재했다.
순식간에 서문세가와 숭무문을 점거하고, 그들의 모든 것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서문세가는 강제로 모두 해체되어 버렸고, 숭무문도 결국 완전히 끝나 버렸다.
하지만 이미 혈천궁이 손을 깔끔하게 써 두었는지, 그 어디서도 혈천궁에 관한 꼬리를 잡지는 못하였다.
‘혈천궁이 무림에 나타났다.’
최대한 쉬쉬하며 일을 진행한 무림맹이지만, 결국 무림에 혈천궁의 재등장이 알려졌다.
무림은 혈천궁의 등장 소식에 순식간에 혼란해졌다.
그들의 힘은 이미 무림에 직간접적으로 아주 유명했으니 말이다.
이에 따라 무림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금 무림맹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이들과 무림맹은 믿지 못하겠으니 새롭게 세력을 만들겠다는 이들이 서로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파일방을 주축으로는 무림맹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오대세가를 주축으로는 새로운 세력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서로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을 때, 그들의 시선이 하북팽가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 문제의 열쇠를 하북팽가가 쥐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