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자.
한쪽 팔이 잘린 것을 잊었는지, 미친 듯이 웃는 조걸학.
팽중호는 그런 조걸학을 베지 않고 잠깐 살려 두었다.
왜 웃는지 이유는 들어 보고 싶었으니 말이다.
“왜 웃냐?”
“지금쯤이면 너희 하북팽가는 불타서 잿더미가 되어 있을 테니까! 크하하하하!!”
이 전쟁이 있기 전.
숭무문과 혈천궁은 병력을 따로 빼서 하북팽가로 보내었다.
팽중호가 빠진 지금의 하북팽가는 빈집이나 다름없을 테니 말이다.
만약 이 전쟁에서 패하더라도, 하북팽가를 망하게끔 하겠다는 심산.
조걸학은 그것을 알기에, 죽기 전에 하는 통쾌한 복수라 생각해 웃는 것이었다.
“뭐야? 그딴 거 때문에 웃는 거였어?”
“크크크.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소용없다.”
서걱-
“설마 너네가 빈집털이할 거를 생각 못 했을까.”
“커어억…….”
천천히 떨어지는 조걸학의 목.
팽중호는 조걸학의 머리가 채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자리를 떠났고, 조걸학은 팽중호의 마지막 말뜻을 이해한 그 순간의 놀란 표정 그대로 생을 마감했다.
* * *
하북팽가.
지금 그곳에는 무인들이 뒤섞여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아니, 겉으로 보기에는 치열했지만, 실상은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하북팽가 무인들이 일방적으로 담을 넘어 쳐들어온 무인들을 베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디냐! 어디서 오는 것이냐!”
“으아아아악! 불이다!”
하북팽가의 담을 넘어 쳐들어온 이들은 바로 숭무문의 무인들.
그들은 호기롭게 담을 넘었지만, 대다수가 정한승이 설치한 환영진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모자란 놈들.”
물론 그들과는 다르게 환영진에 당하지 않고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숭무문 무인들과 다르게 혈의를 입고 있는 이들.
그들은 환영진을 벗어나 하북팽가를 휘젓기 시작했다.
“크윽!”
“컵!”
혈의인들의 공격에 쓰러지는 하북팽가의 무인들.
지금 팽가 무인들이 막을 수 있는 수준의 무인이 아니었기에 피해가 늘어나고 있었다.
카캉-
하지만 파죽지세로 움직이던 혈의인들의 움직임이 얼마 못 가 막히고 말았다.
그들의 앞을 막아선 다섯 사람.
가주인 팽자성과 대장로 팽조운, 곽채령과 도수 그리고 팽구준이었다.
그들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팽가에 남아 세가를 지키고 있던 것이었다.
“감히 이곳에 허락도 없이 발을 들이다니!”
파지지지지직- 쾅-!
가장 앞서서 혈의인들을 상대하는 팽자성.
팽중호에게 혼원벽력신공과 혼원벽력도를 받아 익힌 그의 무공 수준은 이제 초절정을 넘어섰다.
뇌기를 가득 머금은 채로 휘둘러지는 벽력도의 위력은 그야말로 파괴적이었다.
“조심하거라!”
“예! 할아버님!”
카캉- 카아앙-! 서걱- 서걱-
그리고 그런 팽자성의 옆에서 서로 완벽한 합을 보여 주며 싸우는 팽조운과 팽구준.
두 조손은 역시나 혈육답게 서로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졌다.
팽조운이 힘으로 틈을 만들면 팽구준이 베었고, 팽구준이 환영으로 적들의 눈을 어지럽히면, 팽조운이 그대로 적을 베었다.
벌서 팽조운과 합을 완벽하게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놀랍도록 빠르게 성장한 팽구준이었다.
“이 안으로는 그 누구도 갈 수 없습니다!”
“흣차! 전각에 흠집이라도 낼 생각들은 마세욧!”
도수와 곽채령은 이미 수준이 일가를 이룬 실력자들.
당연히 혈의인들과 숭무문 무인들을 착실하고 빠르게 쓰러트려 나갔다.
“크아악!”
팽중호가 빠진 하북팽가를 쉽게 생각했던 숭무문과 혈천궁은 지금 제대로 그 값을 치르고 있었다.
빠르게 수가 줄어들어 가는 그들.
서거걱-
“끝났군.”
그렇게 마지막 적을 팽자성이 베어 냈고, 하북팽가에서의 싸움은 끝이 났다.
시체가 널려 있고, 피가 강이 되어 흐르고 있다.
그리고 곳곳의 전각들에도 싸움으로 인한 상처가 가득했다.
분명 이겼지만, 마냥 이겼다고 좋아하기도 힘든 상황.
털썩- 털썩-
팽가 무인들이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일방적인 것 같은 싸움이었지만, 오늘의 싸움만큼 피곤한 싸움은 지금까지 없었다.
주변에 쓰러져 있는 팽가 무인들의 시체.
그 수가 많지는 않다지만, 어찌 되었건 모두 함께 동고동락한 친우였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었다.
“자,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세.”
“예.”
팽자성의 말에 다들 다시금 몸을 일으켜 움직이기 시작했다.
쓰러진 이들을 이대로 둘 수는 없으니 말이다.
* * *
“끝이 났군.”
팽중호는 피로 얼룩진 옷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겼지만 썩 밝지는 않은 팽중호의 얼굴.
당연히 그럴 만했다.
지금 한곳에 모인 하북팽가의 무인들과 청룡대 무인의 수가 처음보다 줄어 있었으니 말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피해는 있었지만. 결국 우리는 이겼습니다.”
팽중호는 모여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이긴 전쟁임에도 팽중호처럼 표정이 밝지 않았다.
지금까지 있던 모든 싸움 중 처음으로 죽은 이들이 나왔으니 당연했다.
“분명 먼저 떠난 일들을 보면 슬픈 일이지만, 이것이 무림이란 곳 아니겠습니까? 슬픔은 가슴에 묻어 두고, 후에 저승에서 만날 날을 기약합시다.”
팽중호의 말처럼 이것이 무림이었다.
칼 밥을 먹고, 칼끝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곳.
죽음은 슬픈 것이지만, 그저 조금 먼저 떠난 것이라 생각하며 가슴에 묻어 두고 살아가야 하는 곳.
“우리는 이겼습니다.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돌아갑시다!”
“예!”
“예!”
팽중호도, 하북팽가의 무인들도 모두 일부러 더 힘차게 대답했다.
이 슬픔이란 감정을 날려 버리기 위해 말이다.
“주변을 잘 찾아!”
“여기에 있습니다!”
하북팽가의 무인들과 청룡대의 무인들은 동료들의 시신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 두고 갈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돌아가자.”
모든 일이 끝나고, 팽중호와 팽가의 무인들, 그리고 청룡대 무인들은 다시 하북팽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에 올 때보다 조금 무거운 발걸음으로 말이다.
* * *
숭무문과의 전쟁을 끝낸 하북팽가는 합동 장례를 치렀다.
이번에 죽은 이들을 모두 모아서 함께 치르는 장례.
그 어느 때보다 엄숙한 분위기가 하북팽가를 감돌았고, 그 누구 하나 가볍게 웃는 이가 없었다.
“가족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 주도록.”
“예.”
팽중호는 장춘오에게 사망자들의 가족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전해 주라 하였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슬픔이 아니겠지만, 해 줄 수 있는 것이 돈밖에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저희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하북팽가에 머물던 청룡대 무인들도 떠날 채비를 하였다.
이곳에서 해야 할 임무는 모두 마쳤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금 그들은 이래저래 무림맹에 보고할 내용도 많았다.
혈천궁의 혈주에 관한 것과 팽중호에 관한 것.
‘팽 소가주는 분명 무림의 큰 기둥이 될 사람이다.’
청룡대 대주 곽홍은 팽중호를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
그가 보기에 팽중호는 차기 무림맹주의 자리를 맡겨도 될 만한 사람이었다.
“조심히 가십시오.”
“그럼.”
그렇게 청룡대가 떠난 하북팽가.
팽중호는 혼자 조용히 자신의 처소로 돌아와 침상에 몸을 뉘었다.
“후우…….”
전생에도 주변 사람이 죽는 것은 숱하게 경험했다.
하지만 아무리 겪고 겪어도 주변 사람이 죽는 것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생각보다는 적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
분명 팽중호는 이번 숭무문과의 전쟁에서 죽는 이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팽중호의 예상보다 적은 수의 사망자가 나왔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전쟁에서 죽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아무도 안 죽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면 더 좋은 것 아니겠는가?
짝- 짝-
한참 상념에 빠져 있던 팽중호가 두 손으로 자신의 볼을 쳤다.
“후회는 묻어 두고,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자.”
이런다고 과거가 바뀌지 않는다.
후회와 슬픔은 과거에 두고 이제는 앞으로 다시 나아가야 할 때였다.
그래야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니 말이다.
“오대회합을 다시 열고, 오대세가로 들어간다. 그 후에는……. 혈천궁과 마교를 상대할 준비를 해야겠지.”
오대세가의 자리에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는 또다시 오대회합이 필요했다.
다른 오대세가의 인정을 받아야만 오대세가의 자리에 들어설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시금 오대세가에 들어가면, 이제 그 이후를 준비해야 했다.
혈천궁과 마교.
이 두 곳을 상대해야 할 준비 말이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니까.”
저 두 세력을 상대하려면 정도 무림 전체의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무림은 정마대전 이후로 사분오열 찢어진 상태.
팽중호는 하북팽가를 위해서라도 이 찢어진 무림을 하나로 붙일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북팽가와 자신의 명성을 일단 더 높여 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사람들이 말을 들을 테니 말이다.
“하아암……. 일단 오늘은 좀 자자. 나도 피곤하다.”
숭무문과의 전쟁이 끝나고도 한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한 팽중호였다.
오늘은 오랜만의 휴식이기에 팽중호도 조금은 편히 쉴 생각이었다.
해가 산으로 넘어가는 초저녁.
팽중호는 오랜만에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어 갔다.
* * *
다음 날 아침.
팽중호는 팽가에 있는 모든 무인들을 연무장으로 소집했다.
하북팽가 무인들의 수는 줄었지만, 다른 세력의 무인들까지 더해지니 오히려 수가 더 많았다.
“새로운 분들도 계시니, 다시 체계를 잡고, 수련도 새롭게 해 보려 합니다.”
팽중호는 사람이 갑자기 늘어난 만큼, 새롭게 하북팽가의 체계를 새롭게 잡을 생각을 했다.
처음 뽑은 각주들은 그대로 두고, 그곳에 새롭게 인원을 편성함과 함께, 아예 새로운 부서를 신설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무공 수련.
적검문의 무인들과 각 상단에서 팽가에 보낸 무인들이 있었다.
그들이 하북팽가에 소속되면서 그들을 위한 무공과 수련도 생각한 팽중호였다.
“새로운 부서에 관해서는 여기 장 각주가 설명해 줄 것이고, 무공에 관해서는 여기 곽 각주가 설명해 드릴 겁니다.”
팽중호의 소개에 앞으로 나서는 장춘오와 곽채령.
팽중호는 이제 공적인 자리에서는 두 사람을 각주라고 불러 주었다.
그래야 체계가 확실히 잡힐 테니 말이다.
“일단 제가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장춘오였다.
장춘오는 적어 놓은 족자도 없는데, 막힘없이 이름과 부서를 호명하며 사람들을 나누었다.
써 놓을 필요도 없이 머릿속에 전부 외운 것이었다.
“자, 이상 끝입니다.”
그렇게 장춘오가 호명을 마치자, 이번에는 곽채령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품에서 꺼내 드는 두 권의 서책.
이번에 성무각에서 새롭게 창안해 낸 새로운 무공이었다.
“검을 든 분들에게 맞춘 새로운 무공입니다.”
적검문의 무인들은 모두가 전부 검객이다.
하지만 하북팽가의 무인들은 모두 도법을 익힌다.
검과 도.
비슷하지만 분명히 완전히 다른 무기였다.
적검문의 무인들에게 하북팽가에 소속되었으니 갑자기 도를 들라고 하는 것은 솔직히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검을 버리라고 한다면, 무공을 아예 처음부터 다시 익히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그래서 곽채령은 적검문의 검법과 하북팽가의 도법을 합쳐서 새로운 검법을 창안해 내었다.
‘적호검법(赤虎劍法)’
어쩌면 하북팽가에서 처음 만들어진 제대로 된 검법이었다.
곽채령과 성무각 무인들의 수많은 노력이 들어간 무공으로, 성무각의 첫 작품이라고 봐도 되었다.
이 적호검법을 만들 때 팽중호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건 내공 심법입니다.”
곽채령의 손에 들린 또 다른 서책.
그것은 성무각이 만들어 낸 야심작이었다.
‘철혈적혼공(鐵血赤魂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