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간만에 힘을 쓰면 힘들단 말이야.
“소가주님. 숭무문이 움직인다고 합니다.”
팽중호에게 숭무문의 움직임을 알려오는 청룡대의 무인.
그 이야기를 들은 팽중호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청룡대 무인이 나가고, 팽중호는 곧바로 하북팽가의 모든 수뇌를 불러 모았다.
이전보다 확실히 많아진 인원.
이번에 하북팽가에 들어오게 된 적검문, 태도상단, 신조상단의 사람들도 모두 불렀기에 당연히 인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저희는 숭무문과의 전쟁을 하기 위해 갑니다.”
팽중호의 목소리에 모든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팽중호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한 번 쭉 둘러본 후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번은 말 그대로 전쟁이 될 겁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이번은 정말 말 그대로 전쟁이 될 터였다.
서로의 모든 것을 걸고 한쪽이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는 싸움.
서문세가 때나, 비룡문 때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여기에서 누군가 죽을 수도, 아니면 친우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흠.”
“으음…….”
확실히 이번의 전쟁 상대인 숭무문의 정확한 힘의 측정이 불가능했다.
숭무문이 서문세가와 손을 잡은 것은 그렇다고 쳐도, 문제는 혈천궁이었다.
혈천궁이 단순히 조소린만 도와준 것인지, 아니면 숭무문 전체를 도와준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뭐, 전쟁을 하겠다는 걸 봐서는 당연히 숭무문을 도와주는 것이겠지만.’
이 내용을 무림맹에 미리 전해 주었는데, 무림맹은 알았다고 하였다.
아마도 그들은 따로 움직이려는 듯싶었다.
개방의 정보력이면 아마도 혈천궁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제가 최대한 아무도 죽지 않게끔 하겠지만, 제 몸이 하나인 만큼 분명 한계가 있을 겁니다.”
자신 혼자서 모든 것을 막아 낼 수는 없다.
적들의 수는 많을 것이고, 만만치도 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 눈앞에 있는 이들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모두들 죽기 살기로 싸우십시오. 그리고 다시 웃으면서 만납시다. 아시겠죠?”
“물론입니다!”
“알겠습니다!”
힘찬 대답.
이 대답을 들은 팽중호가 씨익 웃었다.
이것이면 족했다.
전쟁에 앞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런 사기였으니 말이다.
“그럼. 남을 분은 남고, 갈 사람은 갑시다.”
* * *
하북성과 산서성의 경계에 있는 한적한 공터.
그 중간에 지금 거대한 두 세력이 서로를 마주 보며 대치하고 있었다.
서로를 향해 아낌없이 살기를 보내고 있는 두 세력.
바로 숭무문과 하북팽가였다.
“서문세가 무인들에 알 수 없는 혈의인 셋이라…….”
팽중호는 멀리서 숭무문 쪽을 바라보며, 그들에게서 특이한 점들을 찾아내었다.
숭무문의 한쪽에 자리 잡은 서문세가의 무인들과 숭무문 문주인 단죄검 조걸학의 뒤편에 서 있는 혈의인 세 명.
그중에서도 단연 팽중호의 이목을 잡아끄는 것은 혈의인 세 사람이었다.
‘날 죽이려고 작정했군.’
저 셋이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혈천궁에서 보낸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니,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저들 셋이 노골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준비들 하시죠.”
팽중호의 말에 하북팽가 무인들과 청룡대 무인들이 일제히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일정한 형태로 진을 짜기 시작했다.
철갑구궁진.
그것을 변형해 더욱 크고 유기적으로 바꾼 새로운 진이었다.
이것을 하북팽가 무인들과 청룡대 무인들이 모두 함께 모여서 오늘을 위해 연습하고 연습한 진이었다.
“선수필승이니까 갑시다.”
파지지지지직- 파지지지지지직-
파직-
팽중호도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기로 하였다.
팽중호의 온몸을 타고 도는 강렬한 뇌기와 두 눈을 밝히는 뇌전.
‘빠르게 정리한다.’
모든 전쟁이 그렇겠지만, 길게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
빠르게 끝내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다.
타타타타탓- 타다다다다닥-
팽중호를 필두로 일제히 달리는 하북팽가의 무인과 청룡대 무인들.
이 모습을 본 상대 숭무문 측도 달려들기 시작했다.
서문세가의 무인들과 숭무문 무인들이 합쳐진 수는 상당했다.
일견 보기에도 하북팽가 측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수.
수적으로는 분명 하북팽가 측이 열세였다.
하지만 무인들 간의 싸움이 어디 수로만 흘러가던가?
팽중호의 무적도가 뇌강을 뿜어내며 눈앞의 숭무문 무인들을 베어 내기 시작했다.
“수는 내가 맞춰 주면 되지.”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뇌룡진천(雷龍振天).
서거거거거걱-
뇌룡이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숭무문의 무인들이 우수수 죽어 나갔다.
팽중호의 앞에 서 있는 모든 이가 버티지 못하고 쓸려 나가고 있었다.
그 누구도 감히 그의 일도를 막지 못하는 상황.
“네 상대는 나다!”
카카아아앙-!!
그때 처음으로 팽중호의 도가 막혔다.
팽중호의 도를 막은 중년인 한 명.
팽중호도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거, 가만히 봉문하고 있지. 뭐라 뒤지러 기어 나왔습니까?”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느냐? 가주된 도리로, 아비 된 도리로 말이다.”
지금 팽중호의 앞을 막은 이는 바로 서문정천이었다.
서문정천은 오늘 싸움을 위해 직접 몸을 움직인 것이다.
“뭐, 알아서 하시는데, 오늘부로 서문세가가 완전히 끝이란 것만 알아 두쇼.”
“어느 쪽이 끝일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서문정천은 어차피 이번 싸움에 사활을 걸었다.
지금 서문세가의 상황을 뒤집을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시간 없어 못 놀아 드려서 죄송합니다.”
파직-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혼뢰단세(混雷斷世).
커거거거걱- 서걱-
공간이 반으로 갈라졌다.
서문정천이 강기를 사용해 막아 보려 했지만, 역시나 역부족.
서문정천의 실력으로는 지금의 팽중호를 막아 낼 수가 없었다.
등장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허무하게 당해 버린 서문정천.
그의 죽음으로 사실상 서문세가의 역사가 막을 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타탓-
팽중호는 쓰러진 서문정천을 지나쳐 곧바로 다시금 직진해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 서문정천을 지켜볼 여유조차 없었다.
한 걸음이라도 더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저기 있네.”
팽중호의 눈에 보이는 세 명의 혈의인.
다행이라면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팽중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왔군.”
팽중호가 나타나자 혈의인 중 하나의 입이 열렸다.
아주 듣기 거북한 목소리.
그저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내공이 뒤흔들릴 정도였다.
“혈천궁의 끄나풀들 맞지?”
“그래. 나는 구주(九柱)다.”
“십주(十柱).”
“십일주(十一柱).”
혈천궁의 십이혈주(十二血柱) 중 무려 셋이 팽중호를 죽이기 위해 나타났다.
팽중호가 신조상단에서 죽였던 이가 십이혈주 중 마지막인 십이주(十二柱)였고, 지금 눈앞의 셋이 십이주보다 위에 있는 구주, 십주, 십일주였다.
십이주는 무공보다 특이한 사술 등에 능한 이였기에, 당연히 다른 십이혈주들에 비해 무공 실력이 한참이나 부족했다.
그런 십이주보다 무공 실력에서 한참 위에 있는 혈주 셋이 팽중호 하나를 죽이기 위해 나타난 것이니, 혈천궁이 얼마나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려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팟- 팟- 팟-
갑자기 세 혈주가 팽중호를 향해 동시에 쇄도했다.
그들에게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으니 말이다.
팽중호를 죽인다.
그들에게는 이 명령의 완수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좋아. 한 번에 상대하는 게 낫지.”
팽중호는 상대가 오히려 동시에 달려들어 주는 것이 고마웠다.
여러 번 손 쓰지 않고,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으니 말이다.
파지직- 파직- 파팟-
팽중호의 몸에 뇌기가 무적도로 빨려들어 가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더욱더 환하게 빛을 내는 팽중호의 두 눈.
팽중호를 향해 달려들던 세 혈주는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노릇.
그들은 더욱더 힘을 끌어 올리며 그들이 가진 가장 강한 수를 내뻗었다.
“혈수번천(血手翻天)!”
“선혼살(仙魂殺)!”
“잔륜겁살(殘輪劫殺)!”
혈공 탓에 검붉은색의 기운을 머금은 그들의 공격은 지켜보는 이의 모골이 다 송연해질 정도.
지금 셋의 합격이라면, 제아무리 화경의 경지를 넘은 무인이라도 한 줌의 핏덩이가 될 정도의 위력이었다.
검마를 만나기 전의 팽중호라면, 이들의 공격에 분명 명을 달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팽중호는 달랐다.
검마를 만난 이후로 매일매일 스스로가 느낄 정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그의 검을 생각하고 궁구할 때마다 깨달음을 얻어 갔으니 말이다.
어쩌면 지금의 팽중호는 벌써 화경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원뢰멸혼(元雷滅魂).
스윽-
팽중호의 무적도가 가볍게 주변을 휩쓸었다.
달려들던 세 혈주의 공격에 비하면 너무나도 미약해 보이는 움직임.
이것으로는 절대로 저 셋의 공격을 막을 수 없을 듯 보였다.
“간만에 힘을 쓰면 힘들단 말이야.”
팽중호의 말과 함께 마치 주변의 시간이 멈춘 듯, 달려들던 세 혈주의 움직임이 그대로 멈추었다.
그리고
파삭- 파사사사사삭-
세 혈주들의 몸이 그대로 가루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싸움하던 이들도 싸우던 것을 멈추고, 지금 이 광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사람의 몸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다니?
도대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춰야 인간이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자,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 * *
숭무문 문주 조걸학은 지금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궁에서 보내 준 혈주들은 화경의 경지를 넘어선 자들인데, 어찌하여 저리 쉽게 당한단 말인가?’
조걸학이 혈천궁에 가담하게 된 이유가 뭐인가?
바로 십이혈주들의 힘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무림에도 채 열 명이 넘지 않을 화경의 무인이 무려 열둘이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들이 깨달음을 통해 화경의 경지에 든 이들보다 조금 부족하다고는 해도, 어찌 되었건 혈공이라는 특수한 힘으로 화경에 다다른 이들이었다.
팽중호가 그들과 같은 화경의 고수라면, 저 셋의 합공에 살아남을 수가 없어야 했다.
하지만 팽중호는 살아남은 것도 모자라, 쌩쌩하기까지 했다.
‘저 무슨 터무니없는 괴물이란 말인가!’
혈천궁의 혈주 셋이 모두 죽은 이상 이 싸움의 승패는 정해졌다.
하지만 조걸학은 이대로 항복할 수도 없었다.
‘여기서 항복해 봐야 어차피 혈천궁에 죽을 터다.’
혈주 중 무려 넷이 지금 죽어 버렸다.
그런 실패를 한 자신과 숭무문을 혈천궁이 가만히 놓아둘 리가 없었다.
그러니 차라리 여기서 발악이라도 하고 죽는 것이 백번 천번 나았다.
혈천궁에 잡히면 편히 죽지도 못할 테니 말이다.
“한 놈! 단 한 놈이라도 더 베어라!”
조걸학의 검이 무자비하게 움직이며 하북팽가의 무인들을 향했다.
서걱- 촤아아악-
조걸학의 손에 하북팽가 무인들과 청룡대 무인들이 쓰러져 나가기 시작했다.
혈천궁의 밑으로 들어가면서 그들이 주는 달콤한 힘을 받은 조걸학의 실력은 생각보다 더 강했다.
물론 그의 그런 움직임도 결국 오래 가지는 못했다.
카캉- 서걱-
검을 휘두르던 조걸학의 팔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크흡!”
“네가 한 짓이냐?”
그리고 어느새 조걸학의 면전에 나타난 팽중호.
조걸학은 그런 팽중호를 보더니 이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크큭……. 크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