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의 개망나니-72화 (72/200)

72화 금방 고쳐 드리겠습니다.

곽홍은 내장이 울렸지만,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팽중호 같은 무인과의 대련은 정말 흔치 않은 기회이니, 정말 즐거웠다.

이런 기회를 속이 좀 아프다고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다시 가겠습니다!”

탓-

곽홍의 검에 다시금 몰아치는 파도와 같은 검강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이번에는 팽중호도 같이 마주 달려들었다.

어느새 팽중호의 도갑에 다시금 들어가 있는 무적도.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혼뢰단세(混雷斷世).

파직- 철컥-

팽중호가 그대로, 달려들던 곽홍의 옆으로 지나갔다.

그러자 빠르게 팽중호를 향해 쇄도하던 곽홍의 신형이 뚝 멈추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을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다.

스으윽- 챙그랑- 챙-

곽홍의 검이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 바닥에 떨어졌다.

“헙!”

“저게 말이 되는 건가?”

지켜보던 청룡대 무인들이 모두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검강을 머금은 검이 반으로 잘렸으니 당연했다.

같은 강기끼리의 부딪침인데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리다니?

그것은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가 없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청룡대 무인들보다 직접 겪은 곽홍은 더욱더 놀라고 있었다.

‘완벽하게 잘려 나갔다.’

마치 결이 갈라지듯 너무나도 쉽고 가볍게 검강을 머금은 검이 잘렸다.

이것은 그저 단순히 내공의 우위 때문만이 아니라, 무공 자체의 깨달음의 차이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검은 새로 사 주시는 겁니까?”

“하하, 물론 사 드려야죠.”

곽홍의 너스레에 팽중호가 웃음과 함께 답했다.

그렇게 마무리가 된 청룡대와 하북팽가 간의 대련.

전체적인 싸움에서는 하북팽가가 패했지만, 그 누구도 하북팽가가 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 결과는 어찌 보면 하북팽가의 승리였다.

“춘오야.”

“예.”

“오늘은 저녁에 잔치를 열자.”

“기분이 좋으신 거 같습니다?”

“당연히 좋지. 이만큼이나 따라와 줬는데.”

물론 아직도 멀었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하였다.

확실히 상을 줄 때는 상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사람이 앞으로 나갈 원동력을 얻는 법이다.

* * *

서문세가.

문을 완전히 닫고 봉문에 들어간 그곳에 손님이 찾아왔다.

“무슨 일이지?”

서문정천은 자신을 찾아온 숭무문 사람을 향해 차가운 눈빛을 보내었다.

같은 산서성에 자리 잡고 있지만, 이렇게 찾아와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좋은 사이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제안을 하나 하러 왔다.”

“제안? 하! 바쁘니까 나가라.”

“들어서 나쁠 것 없을 건데?”

“감히! 우리가 봉문했다고 무시하는 건가?”

“그럴 리가.”

서문정천의 몸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숭무문 사람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숭무문이 자신들을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자신의 앞에서 저렇게 당당하게 서 있지 못할 테니 말이다.

“하북팽가를 없애고 싶지 않나?”

“뭐라고?”

갑자기 숭무문 사람의 입에서 하북팽가가 거론되자, 서문정천의 기운이 꿈틀거렸다.

이 말에 동요하는 것이었다.

“함께해라. 확실히 하북팽가를 없애 주지.”

“우리의 힘으로 충분하다.”

“크크크. 그렇게 당해 놓고도 그런 소리를 하나?”

“…….”

숭무문 사람의 말에 서문정천의 말문이 막혔다.

최대한 복수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세가의 최고 전력 중 하나인 장로들을 모조리 잃었으니 사실 쉽지 않았다.

게다가 봉문과 함께 무인들마저 떠나고, 자금줄도 끊겼으니 더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너희와 손을 잡는다고 달라질까?”

숭무문은 애초에 서문세가보다도 힘이 약한 곳.

그런 숭무문과 힘을 합친다고 하북팽가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있겠는가?

“우리만 있다면 그렇겠지.”

“우리만? 그럼 누군가 더 있다는 소리인가?”

“그래.”

숭무문 사람이 대답하며 자신의 뒤쪽에 서 있는 혈의인을 가리켰다.

그제야 서문정천은 뒤에 있던 혈의인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마치 시체를 보는 것 같은 혈의인.

“혈천궁의 혈주인 십일주(十一柱)다.”

마치 동굴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의 십일주.

서문정천은 십일주에게 아무런 기운도 느끼지 못했지만, 그가 범상치 않은 자라는 것쯤은 대번에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가 말한 ‘혈천궁’이라는 곳.

서문정천도 분명 알고 있는 곳이었다.

“어때? 우리와 손을 잡는 게?”

“……우리 무인들을 원하는 건가?”

“그래. 그리고 궁에서 하나를 더 요청했다.”

“뭐지?”

“서문천호.”

“내 아들을?”

서문천호는 아직도 팽중호 때문에 다친 머리 탓에 제대로 된 생활을 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서문천호를 왜 혈천궁에서 원한단 말인가?

“궁에서 사람으로 바꿔 준다더군.”

“좋다. 그럼. 손을 잡지.”

서문정천은 어차피 이대로 있어 봐야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숭무문과 손을 잡기로 했다.

그리고 혈천궁의 힘도 이용하고 싶었고 말이다.

‘혈천궁이라……. 지금으로서는 최상의 선택지다.’

물론 혈천궁이 지금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의 기록을 생각해 보았을 때 봉문당한 서문세가에 이보다 좋은 선택지는 없을 터였다.

하북팽가에 복수도 하고, 어쩌면 망가진 서문천호를 그들의 힘으로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서문천호는 오늘 데려가지.”

* * *

하북팽가 내부의 모든 전각 공사가 완료되었다.

덕분에 하북팽가 내부에 수많은 사람이 오가기 시작했다.

다행이라면, 외원과 내원을 나누는 담이 있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이군 그래.”

적검문의 문주인 적사검객 곽무조가 팽중호에게 인사를 건네 왔다.

적검문이 이번에 하북팽가로 들어오면서 그도 아예 팽가로 들어왔다.

“예. 뭐, 오랜만입니다.”

어찌 보면 원수가 될 만한 사이였지만, 그래도 곽채령이라는 연결고리 때문에 이렇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라고 해도 되었다.

“오, 오랜만이다…….”

그리고 그런 곽무조의 옆에서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팽중호에게 인사를 건네는 한 명.

바로 곽종구였다.

괴사검 곽종구.

과거 하북칠성이라 불리며 잘나가던 그였지만, 팽중호에게 제대로 당하고 난 후에는 적검문에 틀어박혀 조용히 지냈다.

지금 곽종구는 오랜만에 팽중호를 만났는데,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는지 몸을 덜덜 떨며 팽중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 오랜만이다.”

“히익!”

팽중호가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려고 하자, 곽종구가 그대로 겁을 집어먹고 몸을 뒤로 내빼었다.

“이해하게. 많이 괜찮아졌었는데, 자네를 보니 좀 덧난 것 같네.”

“뭐, 이곳에 왔으니 제가 금방 고쳐 드리겠습니다.”

아직까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곽종구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적검문이 하북팽가로 흡수된 만큼, 이제 곽종구도 하북팽가의 사람이었다.

저 상태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써먹을 수 있게끔 만들어야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써먹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안녕하십니까.”

그때 또 다른 인물들이 팽중호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었다.

태도상단의 사람들.

팽중호에게 인사를 건넨 이는 태도상단의 상단주인 무상 태철호였다.

“상단주님께서 직접 오셨습니까?”

“하핫. 당연히 제가 직접 와야지요.”

보통의 곳이라면 태철호가 직접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이 하북팽가라는 것과 신조상단과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이 태철호가 직접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하북팽가는 태도상단에 그만큼 중요한 곳이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지금 태도상단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조만간 큰일을 앞두시고 있다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저희가 선물을 하나 준비해 왔습니다.”

태철호는 말과 함께 옆에 서 있던 자에게 눈짓하였는데, 그가 재빨리 움직이더니 어디선가 수레를 끌고 다시금 나타났다.

수레 안에 가득 실려 있는 무언가.

수레가 다가오자 진한 약 향이 확 풍겨 왔다.

“신보단입니다.”

신보단(身保丹)은 몸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데에 탁월한 약이었다.

주로 고위 관료나 부자들이 찾는 물건으로 상당히 값이 나가는 물건이었다.

지금 태도상단은 그런 신보단을 수레 한가득 싣고 나타난 것이었다.

하북팽가에 잘 보이기 위해서 말이다.

‘이건 남는 장사지.’

이만큼의 신보단을 하북팽가에 준다고 해도, 이것으로 하북팽가와의 거래를 계속할 수 있다면 그건 남는 장사가 될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팽중호는 태도상단이 건넨 신보단을 거절치 않고 받았다.

주는 건 받는다.

받아서 나쁜 것이 없다면, 당연히 받는 게 맞지 않겠는가?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그때 하북팽가 안으로 마차 한 대가 나타났다.

처음 보는 마차.

하지만 마차에 걸린 깃발은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다.

커다란 새가 그려진 깃발.

드르르륵-

도착한 마차의 문이 열리고 안에서 한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가가. 오랜만입니다.”

바로 이세경이었다.

지금 이세경이 타고 온 마차는 지난번에 폭발로 사라져 버린 마차를 대신해 새롭게 만든 마차였다.

“그렇게 오랜만은 아닌데?”

“단 하루만 떨어졌다고 해도 오랜 시간입니다.”

“그래, 그래.”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하북팽가에 들어온 세 세력.

적검문, 태도상단, 신조상단.

세 세력 간에는 보이지 않는 불똥이 튀고 있었다.

‘하북팽가를 놓치지 않겠다.’

세 세력 모두 하북팽가를 놓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자. 그럼 화합을 다지는 의미에서 다 같이 식사부터 하죠.”

팽중호는 세 세력 간의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을 알고 있었다.

그들 간의 적당한 기 싸움은 분명 득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너무 서먹한 사이가 되는 것은 안 되었다.

앞으로 이 하북팽가에서 함께 지내야 하니 말이다.

“춘오야. 준비한 거 시작하자.”

“예.”

장춘오가 신호를 보내자 팽가에 있는 이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순식간에 주변에 상과 의자를 깔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비어 있던 공간이 순식간에 잔칫날과 같은 분위기로 변하였다.

그리고 줄줄이 나오기 시작하는 음식들.

어느 것 하나 대충 준비한 음식이 없어 보이는 산해진미들이었다.

“청룡대분들도 다 오시라고 해.”

“예.”

청룡대 무인들은 물론, 최소 인원을 제외한 하북팽가 사람들도 모두 모였다.

정말 성대한 식사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다들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식사의 시작 전.

하북팽가의 가주인 팽자성이 대표로 말을 꺼내었다.

팽중호가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하지만, 어디까지나 지금 하북팽가의 가주는 팽자성이었다.

그래서 팽중호는 일부러 이런 자리에서는 팽자성이 나서도록 하였다.

사람들이 하북팽가의 가주인 팽자성을 무시하지 못하게끔 말이다.

“……앞으로 모두 잘 지내 보도록 합시다!”

“예!”

“예!”

팽자성의 말이 끝나고, 모인 이들이 모두 힘차게 대답하였다.

그리고 비로소 시작된 여러 세력이 처음으로 한곳에 모여 하는 식사.

다소 어색한 분위기가 처음에는 감돌았지만, 이내 금방 서로 친해지며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

“오오 채령아!”

“태도상단의 상단주 태철호입니다.”

“아, 신조상단의 부상단주 이세경입니다.”

곽채령은 오랜만에 곽무조를 보고 달려가 안겼고, 태도상단의 태철호는 이세경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 각자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며 팽중호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조금만 더 크면 오대세가에 다시 들어가겠어.’

물론 이제 와서 오대세가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지만, 그럼에도 오대세가라는 상징성은 포기할 수 없었다.

과거의 하북팽가로 돌려놓으려면, 상징적이라도 오대세가에 들어가야 했으니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