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그 이상 가는 사람이군.
천부중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앞의 위지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넘은 적 없는 위지철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터였다.
위지철을 이기기 위해서 정말 절치부심 노력했으니 말이다.
‘보여 주마.’
천부중의 검에서 자색의 기운이 넘실넘실 나오기 시작했다.
자하신공(紫霞神功).
화산파에서도 선택받은 이들만이 익힐 수 있는 절세의 내공 심법.
자색 기운과 은은한 매화향이 특징인 내공 심법으로, 내공에서 향이 나는 내공 심법은 거의 자하신공이 유일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이런 특징이 아니더라도 자하신공은 무림에서 손에 꼽을 만큼 뛰어난 안정성과 엄청난 위력을 가진 무공이었다.
화아아아아악-
그렇게 매화 향기를 내며 뿜어져 나오던 검기가 점점 더 진해지더니, 이내 주변을 완벽히 장악해 버리는 강렬한 매화 향기와 함께, 찬란한 자색 빛을 내는 검강으로 변하였다.
본래 초절정의 벽을 넘지 못하고 막혀 있던 천부중이었는데, 이번에 그것을 완벽히 뚫어 내고 그 이상으로 올라선 것이었다.
“자, 너도 준비해라.”
“물론입니다.”
천부중의 말에 위지철도 검을 꺼내었다.
사아아아아아악-
그리고 위지철의 검에 찬란히 빛나는 시리도록 푸른 검강이 나타났다.
지금 천부중이 보여 준 검강보다 훨씬 더 크고 찬란한 검강.
이 검강의 모습만으로도 위지철이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이 보여질 정도였다.
‘말도 안 된다.’
위지철이 더 강해졌을 것이란 것은 분명 천부중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본 위지철은 천부중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있었다.
저토록 쉽사리 저런 검강을 뿜어내다니?
‘하지만 검강의 크기가 전부는 아니다.’
대련에서의 우위는 검강의 크기가 전부는 아니다.
천부중은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후우. 간다.”
“얼마든지 오십시오.”
탓-
천부중이 먼저 움직였다.
순식간에 공간을 줄이며 다가오는 천부중의 신형.
그와 동시에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라라라라락-
아름답게 주변을 수놓는 자색의 검강.
보는 이가 다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
물론 그 아름다움에 취했다가는 그대로 목이 달아날 만큼의 날카로움을 숨기고 있는 검법이었다.
‘매화삼십이검(梅花三十二劍).’
화산파에 내려오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심오한 검법.
그것이 지금 천부중의 검에서 능숙하게 펼쳐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카캉- 카카카캉-
정신없이 위지철을 압박하는 천부중.
지금만 봐서는 천부중이 훨씬 앞서 나가는 듯 보였지만, 이 주변에서 그렇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너무나 여유로운 위지철의 표정 때문이었다.
마치 어린아이와 놀아 주는 듯한 어른의 표정으로 천부중을 상대하는 위지철.
“확실히 많이 느셨습니다.”
“흥! 여유로움도 끝이다!”
천부중의 검이 현란하게 움직이더니, 수많은 자색의 검강이 위지철을 완전히 감쌌다.
빠져나갈 곳은 없었다.
“이제 저도 좀 움직여 보겠습니다.”
말과 함께 위지철의 검이 천부중의 검강들을 그대로 흘리고 갈라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훤하게 틈이 열려 버렸다.
그리고 그 틈으로 위지철의 검이 그대로 천부중을 향해 뻗어 나갔다.
위지철의 공격적인 태극혜검이 펼쳐진 것이다.
팽중호와 만난 후 완전히 변한 위지철만의 태극혜검.
스으으으윽- 스윽- 스슥-
카캉- 캉-
“큽!”
천부중의 검을 계속해서 가볍게 흘려 내며 날카롭게 찔러 들어오는 위지철의 검.
천부중은 지금 위지철의 검을 피해 내고 막아 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떤 수를 펼쳐도 가볍게 흘려 내고 매섭게 역으로 공격해 오니, 어쩔 도리가 있겠는가?
“아직이다!!”
위지철에게 밀리는 것이 분한 천부중이 악을 쓰며 검을 뻗기 시작했다.
그의 악만큼이나 더욱더 강렬한 검강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위지철을 죽이려는 듯한 기세의 공격.
분명 대련에서 쓰기에는 너무 과한 공격이었다.
“천 소협께서는 여전히 성격이 급하십니다.”
크그그그그극-
위지철의 검강과 천부중의 검강이 부딪치며 강렬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처럼 가볍게 흘려 내지는 못하는 위지철.
천부중은 이 모습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신의 공격이 통한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카칵- 칵-
서걱-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천부중의 생각일 뿐이었다.
결국 완벽하게 천부중의 검강을 흘려 낸 위지철의 검이 천부중의 옷깃을 잘라 내었다.
목 부분의 옷깃을 정확히 잘라 낸 위지철.
“졌다…….”
천부중은 잘린 옷깃을 보고 바로 패배를 시인했다.
조금 전 위지철이 봐주지 않았다면 옷깃이 아니라 목이 잘렸을 것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더 멀어졌다.’
천부중은 위지철과 자신의 거리가 더 멀어졌다는 걸 느꼈다.
좁혀졌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더 멀어졌다니.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강해졌단 말인가?
“어떻게 강해졌지?”
“기연이라고 해 두겠습니다.”
기연이라 말하며 팽중호를 바라보는 위지철.
천부중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팽중호에게 향했다.
나뭇조각으로 이를 쑤시며 자리에 앉아 있는 팽중호의 모습.
분명 느껴지는 기운은 범상치 않은데, 지금 모습은 누가 봐도 한량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저 사람이 정말 그렇게 강한가?”
“물론입니다. 말도 못 하게 강하십니다.”
* * *
위지철과 천부중의 대련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청룡대와 하북팽가 무인들 간의 대결.
청룡대 무인들은 자신들의 일방적인 승리를 예상했지만, 정작 대결은 꽤 막상막하로 흘러갔다.
하북팽가 무인들은 모두 예상외의 실력을 자랑하며 힘을 뽐내었으니 말이다.
이것은 지금 하북팽가 무인들의 수준이 무림맹 청룡대 정도의 수준이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청룡대의 실력자들을 아직 이기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좋아. 좋아.’
팽중호는 그래도 지금 하북팽가 무인들이 보여 주는 성과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이만큼 이들이 강해졌다는 것이 정말 팽중호를 기쁘게 했다.
저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드러난 것이었으니 말이다.
“자, 이제 이것으로 대련을 끝…….”
장춘오가 이제 대련의 끝을 알리려고 할 때였다.
청룡대 무인들 사이에서 곽홍이 앞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잠깐 말을 멈추고 곽홍을 바라보는 장춘오.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혹여 실례가 안 된다면, 소가주님과 대련해 볼 수 있겠습니까?”
곽홍의 시선이 팽중호에게 향했다.
곽홍운 지금까지의 대련들을 지켜보면서 속으로 당장이라도 뛰쳐 나가고 싶다고 계속 생각했다.
싸움과 대련, 그것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참고 참다가 마지막에 나서서 팽중호에게 대련을 요청한 것이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무인 중 가장 강한 무인인 팽중호의 실력을 직접 보고 싶었기에 말이다.
“뭐, 좋습니다.”
팽중호는 시원하게 곽홍의 대련 제안을 받아들였다.
거절하려면 거절할 수 있겠지만, 그럼 저들의 신뢰가 조금 떨어질 것 아닌가?
여기서 실력을 한 번 보여 줘야 저들이 자신을 완벽히 신뢰할 터다.
그래야 숭무문과의 싸움에서 훨씬 편하게 명령을 내리지 않겠는가?
‘쓰읍. 근데 저 사람 눈이 좀 위험한데?’
대련을 앞둔 곽홍의 눈을 바라본 팽중호는 그의 눈이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광기로 번들거리며, 뜨거운 불길로 활활 타오르는 곽홍의 두 눈은 무공광……. 아니, 그것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위 소협이랑 과거에 같이 일했다더니, 그 이상 가는 사람이군.’
처음 만났을 때 봤었던 위지철을 뛰어넘는 곽홍의 두 눈.
두 눈을 봤을 때 두 사람이 과거에 꽤 죽이 잘 맞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소가주님.”
“아닙니다. 저도 마침 대련을 꼭 해 보고 싶었습니다.”
스릉-
스르릉-
서로를 바라보며 각각 도와 검을 빼 드는 두 사람.
그러자 순식간에 주변의 공기가 변하였다.
드드드드드드드-
두 사람의 기운으로 인해 연무장 주변에 있는 돌멩이와 물건들이 떨리기 시작했다.
정말 무지막지한 두 사람의 기운.
“이러면 주변 전각이 괜찮겠습니까?”
팽중호의 기운을 따라 기운을 끌어올리던 곽홍이 입을 열고 물었다.
아무리 연무장이 넓다지만, 지금 이 상태로 부딪쳤다가는 주변 전각들이 상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진법이 주변을 보호하고 있으니, 괜찮습니다.”
연무장 주변에는 연무장 안의 여파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게끔 하는 진법이 설치되어 있었다.
귀묘자 정한승이 직접 설계, 설치한 진법이니 그 효과는 확실했다.
팽중호가 정말 있는 힘껏 날뛰지 않는 한은 쉽게 깨질 진법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대로 가 보겠습니다.”
팽중호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짓는 곽홍.
마음껏 싸워도 된다는 말이 매우 만족스러운 듯싶었다.
파지지지지직- 파지지지지직-
팽중호는 그런 곽홍의 미소를 보고 뇌신지체로 들어섰다.
제대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 줄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파짓-
그렇게 두 눈까지 황금색으로 변하며 뇌기를 머금었다.
완벽한 뇌신지체.
꿀꺽-
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팽중호의 모습을 보고 침을 삼켰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위압감을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과연 저것이 정말 사람이 이룩할 수 있는 경지가 맞나 싶었다.
“먼저 갑니다!”
“예.”
곽홍이 먼저 팽중호에게 검을 뻗었다.
콰아아아아아-
곽홍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른 검강.
그것은 마치 거대한 파도와도 같이 팽중호를 덮쳐 오기 시작했다.
‘칠십이파검(七十二波劍).’
청성파의 비전 무공인 칠십이파검의 등장이었다.
무당파나 화산파에 밀려 무림에서 인지도가 조금 떨어질 수 있지만, 청성파는 도가의 발생지인 청성산을 끼고 있는, 그야말로 도가 무공의 중심지였다.
결코 두 문파에 밀리지 않는 곳이 바로 청성파였다.
곽홍은 그 청성파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고수였으니, 당연히 그 실력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
무림에서 낙일검이라 불리게끔 해 준 그의 칠십이파검이 내뿜는 거대한 검강의 파도는, 정말로 하늘 위의 태양을 떨어트릴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쾅- 쾅- 쾅- 콰앙-
팽중호의 뇌강을 머금은 무적도와 곽홍의 검강을 머금은 검이 부딪칠 때마다 주변 공간이 펑펑 터져 나갔다.
공전절후한 두 사람의 싸움.
열심히 팽중호를 몰아치는 곽홍이었지만, 팽중호는 제자리에 버티고 서서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곽홍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이게 화경을 넘어선 자의 힘이지.’
곽홍은 몇 번 화경의 경지를 넘어선 자들과 대련해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느꼈던 무력감과 강렬함을 지금 팽중호에게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그때의 그 실력이 아니다.’
곽홍은 최근 작은 깨달음을 얻어 초절정의 끝에 거의 다다랐다.
그렇기에 상대가 화경의 고수라도 어느 정도는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 팽중호에게 그것을 한 번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콰콰콰콰아아아아아-
성난 파도와도 같이 넘실대는 곽홍의 검강.
일검보다 이검이 더 강해지고, 이검보다 삼검이 더 강해졌다.
파도가 밀려오듯 밀려오는 끊임없이 강해지는 검강.
이것이 곽홍이 얻은 깨달음으로 해석한 그의 칠십이파검이었다.
‘이건 또 새롭네?’
부딪칠 때마다 강해지는 곽홍의 공격에 팽중호는 속으로 흥미를 느꼈다.
무적도를 타고 밀려 들어오는 힘이 계속해서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콰앙- 콰아아앙-!
치익-
곽홍의 공격에 결국 팽중호의 발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이제 저도 움직여 보겠습니다.”
뒤로 한 발짝 밀린 팽중호가 드디어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와 함께 뻗어 나가는 팽중호의 무적도.
그대로 곽홍의 거대한 파도에 맞부딪치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콰앙-!!
추우우우욱-
“헙!”
단 한 번의 부딪침에 곽홍의 신형이 뒤로 쭈욱 밀려났다.
그리고 곽홍은 당혹감과 고통이 담긴 소리를 내뱉었다.
그의 검을 타고 전해 들어온 팽중호의 힘이 내장을 다 울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과찬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