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알아서 판을 깔아 주는군.
- 숭무문과 서문세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 하북팽가는 무림맹과 협조하기를 바람.
위지철이 건넨 서찰에 쓰인 내용을 축약하면 저랬다.
무림맹과 하북팽가가 힘을 합쳐서 숭무문과 서문세가와 싸우자는 이야기.
‘개방이 움직였나 보네.’
분명 팽중호도 정보통을 통해 숭무문에 대한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딱히 들어온 정보는 없었는데, 그보다 이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무림맹이 얻었다는 것은 아마도 개방이 움직였기에 가능한 것일 터였다.
게다가 숭무문이 서문세가와 접촉한다는 것도 알아낸 것을 보면 더욱더 확신이 갔다.
개방.
구파일방 중 일방이 바로 개방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개방은 온 무림에 널린 거지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문파였다.
그들은 수없이 많은 문도들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개방은 무공도 무공이지만 특히나 정보에 관해서는 무림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곳이었다.
세상에 거지가 없는 곳은 없다는 것을 내걸고 움직이는 그들의 정보력은, 정말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위지철이 팽중호의 의견을 물어왔다.
지금 의견을 듣고 다시금 무림맹으로 답을 해 주었어야 했으니 말이다.
“춘오야. 어떻게 생각하냐?”
“당연히 손을 잡는 게 낫습니다.”
“그래? 그럼 위 소협. 무림맹에 알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팽중호는 장춘오의 의견을 곧바로 반영하였다.
지금의 하북팽가에 대해서는 자신보다 장춘오가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당연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위지철은 다시금 무림맹으로 회신하기 위해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급보로 온 것이기에 한 시라도 빠르게 보내기 위해서였다.
“무림맹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지?”
“예. 준비해 놓겠습니다.”
무림맹을 처음 하북팽가에 들이는 것이니, 당연히 준비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보이는 첫인상이니 말이다.
첫인상을 강렬하게 줘야 그들이 하북팽가를 무시하지 않을 터다.
“그나저나, 무림맹에서 어떤 사람이 오려나?”
팽중호는 무림맹에서 어떤 이가 올지가 궁금했다.
지금 보니까 무림맹이 아예 일을 안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또 일을 제대로 하는 것 같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괜히 이상한 사람이라도 오면 골치가 아프지 않겠는가?
“뭐, 그래도 위 소협이 있으니까, 제대로 된 사람 보내 주겠지.”
* * *
무림맹(武林盟).
정도 무림의 수호를 위해 만들어진 연합으로, 구파일방, 오대세가, 중소방파들이 속해 있는 전무후무한 범 무림 연합이었다.
하지만 정마대전 이후 무림맹은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사실상 지금의 무림맹은 이름만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가 되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아무런 힘도 없는 상태는 아니었고, 그저 예전보다 힘이 많이 약해졌을 뿐이었다.
예전의 무림맹이라면 하북팽가의 도움도 필요 없이 무림맹 자체의 힘으로 숭무문을 막아 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의 힘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절차에 부딪혀야 했기에 쉽지 않았다.
그래서 무림맹은 바로 움직일 수 있는 무인들과 하북팽가의 힘을 빌려서 숭무문을 막을 생각인 것이었다.
“여기가 하북팽가인가? 확실히 많이 바뀌었군.”
“정말 많이 바뀌었습니다.”
하북팽가의 앞에 나타난 일단의 무리들.
그들 모두 가슴에 맹(盟)이라는 글자가 적힌 푸른색 옷을 입고 있었다.
무림맹의 무인들.
그들은 무림맹 소속 청룡대 소속의 무인들이었다.
무림맹의 무력 부대들은 흑, 백, 청, 적, 황, 녹 이렇게 여섯 가지의 색으로 구분하였는데, 청룡대라면 세 번째로 강한 무력 부대였다.
이 정도면 무림맹에서도 꽤 힘을 쓴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쿠그그그그- 쿵-
그때 하북팽가의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문 안에서 한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하북팽가의 소가주. 팽중호입니다.”
문 안에서 나타난 인영의 정체는 바로 팽중호였다.
팽중호는 지금 직접 청룡대 무인들을 맞이하기 위해 직접 나타난 것이었다.
존재감을 숨기지 않고 있는 대로 드러내며 나타난 팽중호.
청룡대 무인들은 그런 팽중호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소문 그 이상이다!’
지금 팽중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이곳에 오면서 들었던 팽중호의 소문 그 이상이었다.
마치 무림맹주를 봤을 때와 비슷한 위압감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아직 한참이나 어린 팽중호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당연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청룡대 대주 곽홍입니다.”
팽중호의 인사에 청룡대 무인 중 가장 앞서 있던 중년인이 나섰다.
무림맹 청룡대 대주 낙일검(落日劍) 곽홍.
곽홍은 청성파의 무인으로 청성파에서 자랑하는 청성십이검 중에서도 단연 손에 꼽히는 실력자였다.
그는 무림맹에 들어와 수많은 공과 능력을 인정받아 무림맹 청룡대 대주의 자리에 앉게 된 자였다.
‘뇌룡의 실력이 화경에 다다랐다더니, 그것이 결코 거짓이 아니구나.’
현재 무림에는 팽중호의 실력이 화경을 넘어섰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었는데,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만나자 알 수 있었다.
지금 팽중호에게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위압감.
분명 이것은 곽홍이 꽤 오랜만에 느껴보는 위압감이었다.
“남은 인사는 안에서 마저 하시지요.”
“예. 감사합니다.”
팽중호의 안내에 따라서 하북팽가 내부로 들어선 청룡대 무인들.
청룡대 무인들은 바쁘게 돌아가는 하북팽가의 내부를 보면서 살짝 감탄했다.
‘하북팽가가 다시 세를 되찾았다더니, 대단하게 변했구나.’
안에서 보이는 전각들의 모습과 이곳저곳에 보이는 하북팽가 무인들의 모습을 보니, 하북팽가가 얼마나 대단하게 변했는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내부로 계속 걸어 들어가자, 마치 잔칫날처럼 성대하게 차려진 음식들이 보였다.
“오시느라 피곤하셨을 텐데,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죠.”
“잘 먹겠습니다.”
청룡대 무인들이 자리에 앉았고, 팽중호는 곽홍의 옆자리에 앉아서 같이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팽중호의 옆으로 위지철이 나타났다.
“대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 지철아 오랜만이구나.”
위지철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곽홍.
두 사람은 이미 무림맹에서 안면을 튼 사이였다.
특히나 과거에 함께 임무를 나간 사이였기에, 매우 친밀한 사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곳에 와서 많은 활약을 했다더니, 실력도 많이 는 것 같구나.”
“예. 아주 좋은 분을 만나서 실력이 많이 늘었습니다.”
위지철은 힐끔 팽중호를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팽중호를 만난 후에 정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실력이 늘었으니 말이다.
아마, 팽중호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까지도 실력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흐음. 저기 저 친구가 들으면 아주 기뻐하겠구나.”
곽홍의 시선이 청룡대 무인 중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가만히 앉아서 오로지 음식만 먹고 있는 젊은 청년.
다른 청룡대와 조금 다른 기운을 내뿜고 있었는데, 그 기운이 확실히 범상치 않았다.
“이봐 천 부대주. 그렇게 만나고 싶어 했으면서, 뭘 그렇게 아닌 척하고 있나?”
곽홍의 부름에 가만히 음식을 먹던 청년의 표정이 꿈틀하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다. 위지철.”
“아. 천 소협. 오랜만에 뵙습니다.”
위지철에게 무뚝뚝하게 인사를 건네는 청년.
그는 청룡대 부대주이자, 팔룡삼봉의 일인인 취매룡(醉梅龍) 천부중이었다.
화산파의 일대 제자인 천부중은 가장 어린 나이에 매화검수에 발탁되는 기염을 토한 화산파의 자랑이었다.
이런 천부중에게는 당연히 무림맹 요직 제안이 들어왔지만, 그는 그 모든 제안을 뿌리치고 자진해서 청룡대에 들어갔다.
‘실전 경험을 쌓고 싶습니다.’
그가 청룡대를 선택한 표면상의 이유였다.
현재 무림맹에서 가장 바쁜 청룡대에 들어가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천부중은 과거 청룡대의 부대주의 자리에 올랐었던 위지철을 따라잡기 위해 그가 청룡대에 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찌 되었건 그렇게 자의로 청룡대에 들어간 천부중은, 뛰어난 실력으로 위지철보다도 빠르게 부대주 자리까지 올라갔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부대주 자리까지 오른 천부중이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단 하나 이루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무당파의 제자인 정협룡 위지철과의 대련에서 단 한 번도 그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전패.’
천부중은 위지철에게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였는데, 이것은 천부중에게 꽤 중차대한 문제였다.
무당파와 화산파.
구파일방의 수좌를 다투는 곳임과 동시에, 검으로 무림에서 첫손에 꼽는 두 문파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서로에게는 질 수 없다는 묘한 경쟁심이 두 문파에 존재했는데, 화산파의 제자인 천부중이 무당파의 제자인 위지철에게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은 당연히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와 대련을 하자.”
위지철과 인사를 나눈 천부중은 곧바로 다짜고짜 위지철에게 대련을 제안했다.
사실 천부중에게는 지금, 숭무문보다 위지철과의 대련이 더 중요했다.
오늘의 대련을 위해 정말 오랫동안 준비를 해 왔으니 말이다.
“소가주님. 괜찮겠습니까?”
위지철은 일단 팽중호에게 괜찮은지를 먼저 물었다.
이곳은 하북팽가이니 말이다.
“예. 뭐, 그래도 일단 식사는 다 하시고, 하시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련을 허락해준 팽중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위지철과 천부중.
천부중은 조금 무뚝뚝하고 예의 없어 보이는 말투와는 다르게, 그래도 정도의 무인답게 어느 정도 예의는 있는 자였다.
“저. 팽 소가주님.”
“예.”
그렇게 한창 식사가 계속되고 있을 때, 곽홍이 팽중호를 불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가볍게 서로 대련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곽홍은 하북팽가의 무인들과 청룡대 무인들 간의 대련을 제안했다.
서로 간의 실력을 알아보기에 가장 좋은 것이 대련이어서 그랬다.
‘팽중호가 강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다른 이들은 어떨지 직접 봐야겠다.’
곽홍은 이번에 하북팽가와 함께 숭무문과 싸워야 하니 미리 좀 실력을 봐 둘 생각이었다.
물론 그것뿐 아니라, 그에게 하북팽가의 힘을 알아보라는 위의 지시도 있었고 말이다.
대련은 그것을 확인하기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었다.
청룡대 무인들의 수준은 정확히 알고 있으니, 그것과 비교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오지 않겠는가?
“대련이요? 좋습니다. 대련해 주신다면 저희야 영광이지요.”
팽중호는 입가에 작게 미소를 머금고 흔쾌히 수락했다.
‘알아서 판을 깔아 주는군.’
안 그래도 힘을 좀 보여 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알아서 대련이라는 판을 깔아 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대련이 성사되자 다들 식사를 후다닥 마치고, 연무장에 청룡대 무인들과 하북팽가의 무인들이 모두 잽싸게 자리를 잡았다.
무인들에게 대련이란 것은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아주 재미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누구부터 대련을 시작하시겠습니까?”
대련의 진행은 장춘오가 맡았다.
첫 번째 대련을 묻는 장춘오의 말이 끝나자마자, 연무장 가운데로 날아오는 하나의 인영.
바로 천부중이었다.
“저부터 하겠습니다.”
그는 지금 당장 위지철과 대련을 하고 싶어 몸이 근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렇게 천부중이 나타나자 맞은 편에서 위지철이 조용히 걸어 나왔다.
“그럼 첫 번째 대련은 위지철 소협 대 천부중 소협의 대련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장춘오가 연무장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났고, 연무장 중앙에는 위지철과 천부중 두 사람만 남아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오랜만의 대련입니다. 천 소협.”
“그렇군.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