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네.
“자. 네가 아는 건 다 불어 봐.”
“내가 말할 것 같으냐?”
표독스럽게 팽중호를 노려보며 입을 여는 조소린.
팽중호는 그런 조소린을 향해 씨익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렇지. 말 안 하겠지…….”
사아아아아악-
갑자기 주변에 가득 채워진 엄청난 살기.
입은 웃고 있었지만, 지금 그의 몸에서는 엄청난 살기가 계속해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덜덜덜덜덜-
조소린은 팽중호의 살기에 감히 저항하지 못하고 몸을 미친 듯이 떨기 시작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시작해 볼까?”
툭-
“꺄아아아악!”
가볍게 팽중호가 조소린의 머리를 건드렸을 뿐인데, 조소린의 입에서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 주변에 내가 기막을 쳐 놔서 소리 안 새어 나가니까, 마음껏 소리 질러도 돼.”
팽중호는 지금 이 주변에 기로 막을 쳐서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끔 해 두었다.
비명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서 좋을 게 없으니 말이다.
“말 안 할 거지?”
툭- 툭-
“끄아아아아아악!”
조금 전보다 훨씬 더 강렬한 고통에 눈을 반쯤 뒤집으며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는 조소린.
지금까지 조소린이 살면서 겪어 본 고통 중에 단연 제일의 고통이었다.
마치 온몸이 잘게 부서지는 듯한 고통.
도대체 적응을 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이게 말이야. 분골지라는 거야.”
분골지(粉骨指).
정도 무림이라도 분명 어두운 일을 하는 곳들은 존재했고, 마두를 잡았을 때 그들을 고문해 다른 마두를 찾아내는 일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쓰는 고문법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분골지를 이용한 고문이었다.
온몸의 뼈가 가루가 되는 듯한 고통을 주는 무공.
웬만한 인내력을 가진 마두라도, 이 분골지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하게 할 정도의 무공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조소린이 멀쩡하게 버틴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자. 얘기 안 할거지? 그럼…….”
“제, 제발. 다 말할게요. 다 말할 테니까……. 제발…….”
팽중호에게 다 말하겠다며 애원하는 조소린.
그 모습은 불쌍함을 넘어서 처절하기까지 하였다.
“그래? 그럼 내가 묻는 거에 답해. 만약 구라 치다 걸리면 알지?”
팽중호가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을 하였고, 그 모습에 조소린의 얼굴이 대번에 사색이 되며,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팽중호는 그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조소린에게 숭무문의 모든 것부터, 혈천궁에 관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살아남기 위해 아주 세세한 것까지 줄줄이 토해 내는 조소린.
‘거짓은 아니군.’
지금 조소린의 눈을 보니 말에 거짓은 없었다.
팽중호는 그렇게 조소린이 토해 낸 내용들을 머릿속에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툭툭-
“자. 나는 간다 그럼.”
“저, 저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너? 몰라. 신조상단에 맡길 거니까.”
조소린의 처분은 신조상단에 넘길 생각이었다.
어차피 지금 조소린에게 가장 원한이 있는 것은 그들이니 말이다.
“그럼. 맛있는 밥이나 먹으러 가 볼까.”
* * *
“오셨습니까. 가가.”
“으응?”
조소린을 만나고 나서 머물던 곳으로 돌아온 팽중호.
그곳에는 이세경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까와는 다르게 복장이 조금 특이했다.
수많은 장신구를 걸치고 지나칠 정도로 화려한 복장.
팽중호는 이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앞에 음식이 차려진 것은 자신을 위한 것임은 알겠는데, 왜 갑자기 이런 복장을 하고 나타난단 말인가?
게다가 주변에는 웬 악사들까지 가득했다.
식사하는데 이건 좀 과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가가를 위해 제가 춤을 준비했습니다.”
“춤? 아니, 뭐 그런 거 안 해도…….”
“제가 꼭 보여 드리고 싶어 그럽니다.”
“그, 그래. 그렇다면 뭐.”
팽중호는 일단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그러자 이세경이 팽중호의 앞에 서더니,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시작되는 악사들의 연주.
띠링- 띠리링- 띵- 띵-
악사들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이세경의 모습은 팽중호의 넋을 조금 빼놓기에 충분했다.
‘호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도 같은 이세경의 모습은, 과연 사람이 맞을까 싶을 정도였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네.’
팽중호는 전생과 지금 생을 합쳐서도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누군가 자신만을 위해 이렇게 춤을 춰 주는 경험을 어디서 했겠는가?
전생에 망나니인 자신을 위해서 그런 걸 해 줄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스으윽-
이세경의 움직임이 멈추었고, 그와 함께 악사들의 연주도 멈추었다.
“예쁘다.”
“호홋. 감사합니다.”
팽중호는 솔직한 감상을 이세경에게 말해 주었다.
지금 팽중호의 눈에 이세경은 그 어느 사람보다 아름다워 보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저희가 준비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이세경은 한쪽에 놓여 있던 작은 상자를 팽중호에게 내밀었다.
딱 봐도 범상치 않은 생김새의 상자.
“한번 열어 보십시오.”
열어 보라는 이세경의 말에 팽중호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딸칵-
부드럽게 열리는 상자의 뚜껑.
그리고 그 뚜껑 아래로 하나의 물건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진한 흑색의 단약.
“천호신단입니다.”
“천호신단?!”
천호신단(天護神丹).
내공을 증가시켜주는 영약은 아니지만, 천호신단은 소림사의 대환단과 비교해도 될 정도로 아주 귀한 영약으로 취급을 받았다.
그 이유는 천호신단은 내공을 제외한, 모든 것을 증진시켜 주는 영약이기에 그랬다.
내장이 강해지고, 근골이 강해진다.
기혈이 튼튼해지고, 만독불침과 한서불침에 가까워진다.
이런 효험이니 당연히 팽중호가 놀랄 만하지 않겠는가?
‘나도 천호신단은 처음 보는군.’
팽중호도 천호신단을 이렇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영약 중의 영약인 천호신단을 여기서 이렇게 보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다.
“저희 신조상단과 오라비를 구해 주신 보답입니다.”
“이건 좀 과한 거 같은데…….”
분명 팽중호가 신조상단을 위해 많은 것을 이번에 해 주기는 했지만, 천호신단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리 주는 건 마다하지 않는 팽중호라도 이건 좀 과한 보답이 아닌가 생각했다.
천호신단은 아무리 돈이 많은 신조상단이라고 하더라도 분명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물건일 테니 말이다.
“저희는 겨우 이것밖에 드릴 수 없어서 죄송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세경의 말은 진심이었다.
신조상단을 지켜 주고, 이세홍을 다시금 멀쩡하게 만들어 준 것은, 그 어떤 무가지보로도 보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선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응? 또?”
“예. 바로 접니다.”
와락-
갑자기 팽중호에게 안기러 달려오는 이세경.
팽중호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엄청난 반사신경으로 그것을 피해 내었다.
휘릭-
“가가! 저를 거부하시는 겁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거면 충분하니까.”
“어찌 그렇게 저를 밀어내려 하십니까?”
“밀어내는 거 아니라니까. 나는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을 잘 지킬 뿐인 거야.”
* * *
숭무문 내부.
지금 가주전에는 여러 인물이 모여 있었는데,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
가장 상석에서 엎드려 있는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혈의인 한 명.
“숭무문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죄송합니다.”
숭무문주를 부르는 혈의인의 말에 가장 가까운 곳에 엎드려 있는 이가 대답했다.
엎드려 대답한 이가 바로 숭무문의 문주인 단죄검 조걸학이었다.
지금 이곳은 숭무문인데, 숭무문주인 조걸학이 왜 바닥에 엎드려 있단 말인가?
그리고 지금 조걸학의 앞에서 오만하게 있는 혈의인은 누구란 말인가?
“그렇게나 자신만만하더니, 이번에 실패한 건 물론이고, 혈주까지 하나 잃었더군.”
“패, 팽중호를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래. 뭐, 변명거리는 있다는 것이지?”
사아아아아악-
혈의인의 몸에서 아주 지독한 살기가 뻗어 나왔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몸을 떨리게 만들 정도로 지독한 살기.
가장 가까이 있는 조걸학은 두려움에 절로 마른침을 삼키며,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려 대었다.
“좋다. 팽중호는 우리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니, 다시 기회를 주겠다.”
“감사합니다!”
“궁에서 혈주들을 보내 줄 테니, 하북팽가를 없애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쿵-
혈의인의 말에 머리를 바닥에 찍으며 대답하는 조걸학.
혈의인은 그런 조걸학을 잠깐 내려다보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서 사라졌다.
혈의인이 사라졌음에도 한참을 가만히 엎드려 있던 이들이 하나둘씩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바로 전쟁을 준비해라.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라.”
“예. 문주님.”
조걸학은 지금까지도 흐르고 있는 식은땀을 닦을 새도 없이 곧바로 주변에 명령을 전달했다.
혈의인은 인내심이 깊은 자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 아비가 복수해 주마.’
조걸학은 팽중호 때문에 조소린의 임무가 실패하고, 신조상단에 감금되었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그는 팽중호에게 복수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혈의인이 혈주까지 내어 준다고 약속을 했으니, 더욱더 완벽하게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혈의인이 속한 곳인 혈천궁.
그곳에서 혈공을 익힌 이들을 혈주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보통의 상식의 궤를 벗어난 무인들이었다.
그들이 온다면 제아무리 팽중호가 화경의 고수라고 해도, 죽일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너는 가서 조용히 서문세가에 기별을 넣어라. 하북팽가를 없애러 가자고.”
“예. 문주님.”
* * *
팽중호는 신조상단을 떠나 하북팽가로 돌아왔다.
그리고 팽중호가 돌아오고 하북팽가에 다시금 연신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뚝딱- 뚝딱- 뚝딱- 뚝딱-
하북팽가의 한쪽에 아직 공터들이 많았는데, 그곳들에 지금 새롭게 전각들이 세워지고 있는 것이었다.
“춘오야. 잘한 거겠지?”
“물론입니다. 지금 저희는 이제 세력을 좀 키워야 했으니,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게 좋습니다.”
팽중호가 신조상단을 떠나올 때 신조상단에서 한 가지 제안을 해 왔다.
‘하북팽가 내에 신조상단의 분점을 세우고 싶습니다.’
하북팽가 내부에 세워지는 신조상단의 분점.
팽중호는 분명 괜찮은 제안이라 생각했다.
하북팽가에 공터는 아직 꽤 많았고, 신조상단이 팽가 내부로 들어옴으로 이래저래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그래서 조금 고민해 본다고 한 뒤, 팽가에 돌아오자마자 장춘오와 논의해 수락했는데, 문제는 다음이었다.
‘우리도 분점을 세우고 싶습니다.’
태도상단도 이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도 분점을 세우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경쟁 상단 두 곳이 모두 팽가 내부에 함께 있다니?
그렇다면 혹여 다툼이 일어나는 문제가 생기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도 전에, 이번에는 적검문이 나타났다.
‘우리는 하북팽가의 밑으로 들어가겠소.’
적검문 문주 적사검객 곽무조가 아예 하북팽가의 밑으로 들어가겠다고 선언하며 찾아온 것이다.
곽무조는 하북팽가가 하북성과 산서성까지 패자로 군림한 것을 보고, 아예 하북팽가에 흡수되는 것이 이득이라 파악한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팽중호와 곽채령을 잘 이어 볼 생각과 함께 말이다.
‘뭐, 지금은 많아서 나쁜 거 없지.’
갑자기 하북팽가를 찾아온 세 개의 세력.
팽중호는 장춘오와 고민하다가, 결국 모두 수락해 버렸다.
팽가가 더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덩치를 키워야 했으니 말이다.
저들이 모두 하북팽가로 들어온다면, 분명 어떤 식으로라도 하북팽가가 커지기는 할 터였다.
“소가주님. 무림맹에서 전갈이 하나 왔습니다.”
그때 새롭게 지어지는 전각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팽중호를 향해, 위지철이 손에 서찰을 하나 들고서 나타났다.